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37화 (220/345)

237화

20장 4화 자식 교육(2)

박은찬, 박현상의 장남에 대한 사관학교 입학 교육은 한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은찬과 동년배인 명문가 자제들이 함께하였다.

1856년 1월의 추위에도 모두가 공터에 모여 전직 장성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이들을 잠시 살펴보던 교육자 대표는 맨 앞으로 나아가 조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토록 당당한 이들이 사관학교 입학을 희망하고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밝아오는 것 같군. 나는 예전에 태상황 폐하를 모시던 장교이며 은혜를 입어 참장(參將 - 소장)을 역임하였지.”

“청나라를 격퇴하신 명장을 뵙습니다!”

“명장은 무슨, 청나라 놈들과 거짓 공성전을 벌여 헛된 명성만 쌓았을 뿐인데.”

자신의 옛 기억을 더듬은 퇴역 장성은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떨며 옷깃을 여몄다. 그는 옛 조선군의 기억을 되새겨서 입학 희망자들에게 진중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이 나라의 군대는 이십여 년 전과 달리 많은 것이 변하였네. 평범한 병사도 제대로 된 장비를 지급 받고 훈련에 임하며 글을 읽을 줄 알지. 무과시험은 예전에 사라졌다네.”

대한제국의 무과시험은 이제 사관학교로 대체되었다. 그 사관학교는 프랑스와 영국 육군의 장점을 흡수하고 옛 조선의 문화를 물려받아 아득할 정도의 난이도를 갖추었다.

“예전에는 무경칠서를 외우고 말에 올라 날래게 달리고 활을 쏘면 되었지. 솔직히 말해서 날래게 달리는 것 대신에 느리고 지구력만 좋은 쓸모없는 말을 사용하곤 하였네.”

대부분의 청년들이 알고 있는 말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평가하기를 ‘옛 조선의 군대 수만 명을 대한제국 군대 천 명이 격파할 수 있다.’라 말하였다.

팔짱을 껴서 추위를 어느 정도 버틴 퇴역 장성은 다시금 생각을 더듬었다. 그리고 청년들이 사관학교에서 배울 내용들을 미리 알려 주었다.

“자네들은 수학, 외국어, 역사, 지리, 요새 구축, 기초적인 포병 교육 그리고 현장에 대한 수많은 지식을 배울 걸세. 그뿐만이 아니고 다른 교육도 실시하지.”

“어느 정도 계열이 정해지면 각기 육군, 해군으로 진로를 나누고 그곳에서 다시 진로를 나눌 예정이라네. 당연히 심화 교육을 받을 걸세.”

“심화 교육은 양 국립대학 교수들이 파견 강의를 할 것이고. 포병이라면 수학에 능해야 하며 해군이라면 기상학을 비롯한 또 다른 학문을 섭렵해야 하지.”

이미 부모를 통해, 혹은 친척을 통해 사관학교 교육에 대해 지식을 축적한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박은찬은 이런 점에서 자신이 있었다. 이미 박현상과 어머니인 김서진이 보내온 교사들을 통해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였다. 여기에 역사학에 대한 지식 또한 축적하였다.

그를 비롯한 청년들은 퇴역 장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사방을 에워싸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퇴역 장성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손뼉을 치면서 말하였다.

“이 모든 과목의 기초가 될 학문을 이수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그럼 가장 중요한 기초가 뭐일 것 같나? 누구 아는 사람 있는가?”

“수학입니다!”

“지리학입니다!”

“역사학입니다!”

하나씩 학문의 종류를 이야기한 청년들을 바라본 교육자들은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말하였다.

“체력이지! 이제 백성들의 사 할이 글을 읽고 이 할이 교육을 이수하였는데 이런 백성들보다 체력이 부족하면 어떻게 최전선에서 지휘를 하겠나!”

퇴역 장교들은 청년들에게 누더기나 마찬가지인 낡은 군복을 제공한 다음 산더미처럼 쌓인 낡은 군화를 가리켰다. 이윽고 첫 명령이 내려졌다.

“오늘은 가볍게 두 시진, 네 시간 동안 체력을 키워보자고. 다들 안 갈아입고 뭘 하나?”

평상시에 많이 운동을 한 청년들조차 입김을 내뿜고 온몸이 노곤노곤 해질 난이도의 훈련이었다. 모두가 언덕을 뛰어오르고 진창을 헤집으며 온몸을 쉴 새 없이 놀렸다.

박은찬 또한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소총을 대신하여 구형 브라운베스의 총열에 납덩어리를 잔뜩 넣은 체력단련용 총을 짊어진 채 몸을 굴렸다.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호! 폭발탄에서 몸을 보호하고 총에서 몸을 지킬 수 있지!”

“모래주머니를 만드는 것과 쌓는 것도 중요하다! 병사들의 목숨을 지킬 준비를 하라!”

단 한 시간 만에 힘이 쏙 빠지고 세 시간이 지나자 입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체력 교육이 끝나고 연병장에 집합한 청년들은 사지를 휘청거리며 간신히 도열한 상태였다.

“그럭저럭 기초 체력은 있군. 그러나 산속에서, 혹은 한 평생 농사를 지으며 배불리 먹고 몸을 단련한 시골 청년들과 견주어 볼 때는 아직 부족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청년들, 예비 사관생도들이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까지 하였다. 모두가 혀를 차면서 첫날 훈련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렸다.

“앞으로 한 달 내내 체력 훈련만 해도 모자라겠군. 장점을 억지로 만들어야 할 수준이야.”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박은찬의 머리끝까지 열이 차올랐다. 그는 평상시에 불합리한 일이 아니면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나 이런 상황에서는 열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의하면 사관학교 시험은 이토록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다. 체력이 중요해도 어디까지나 앞가림을 할 수준이지 이렇게 개처럼 구를 이유가 없다.

퇴역 장성도 박은찬의 얼굴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좋은 태도로군, 궁금한 점이 무엇인가?”

“저희 사관학교 입학 희망자들이 체력을 갖추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다만 지나칠 정도로 체력에만 몰두하면 오히려 학업에 소홀해질까 심히 염려됩니다!”

“맞습니다! 체력 훈련을 조금 줄여 주십시오!”

나름 명문가 자제들이라 박은찬과 같이 집단 항의를 시작했다. 교육자들 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치려다가 억지로 헛기침을 하면서 웃음을 참아댔다.

이제 때가 되었다. 세상 물정을 알고 있으나 백성들의 삶을 자세히 모르고 있는 예비 생도들을 위해 준비해 둔 사람들을 보여줄 차례였다.

“옳은 말이긴 하네. 삼 년 전까지는 옳은 말이긴 한데 이제는 아니지. 근처로 가서 미리 준비한 사람들을 불러오도록 하게.”

신호가 전해지자 저 멀리서 장교가 한 무리의 백성들을 인솔해서 데려왔다. 이들이 멀리서부터 대열을 갖췄음을 확인한 박은찬은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복식은 백성들인데 사열 종대에 발을 맞추어 걷다니요. 혹시 퇴역 군인입니까?”

“백성일세. 얼마 전에 의무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이지.”

청년들 앞에서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에 대한 시연이 시작되었다. 나름 제식을 지키고 대열을 지키며 총검술까지 시연하기까지 하였다.

현직 병사들보다는 못 하여도 조금만 더 훈련을 받으면 충분히 군인으로 앞가림을 할 수준이었다. 퇴역 장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청년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염라부(학부의 별명)에서 우리 군문의 사람들을 데려가 교육을 시킨 결과라네. 어떠한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희도 몇 달 정도만 이수하면······.”

“황제 폐하 앞에서 사열을 실시하는 의장대(儀仗隊)도 아닌데 제식만 익혀서 뭘 하나. 제식을 철저하게 하면 적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나? 더군다나 저들이 글을 모를 것 같나?”

의무교육을 3년 모두 이수하면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으며 기초 학문 지식도 익힌다. 여기에 일상 한자도 200여 자 정도를 머릿속에 챙겨둘 수준이 되었다.

“앞으로 군문에 발을 들이면 이 정도로 익힌 사람들이 넘쳐날 걸세. 당연히 병사의 수준도 올라갈 것인데 장교들의 수준이 얼마나 올라가야 하겠나?”

의무교육과 겸해 실시한 기초 군사교육은 대한제국의 군사적 잠재력을 극대화시켰다.

교육을 이수한 백성들이 장교 시험을 보는 기현상이 벌어졌으며 몇 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다. 그 결과 사관학교 입학시험의 난이도 또한 자연스럽게 상승하였다.

매년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사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려면 체력 교육이 필수였다. 예비 사관생도 대다수가 이 사실을 알아차릴 무렵 엄중한 선언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닷새는 체력 훈련, 이틀은 휴식 순서로 진행할 걸세. 이후에는 두 시간의 체력 훈련과 네 시간의 교육을 실시할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더 이상의 반발은 없었다. 박은찬을 비롯한 모두가 5일 동안 파김치가 되어 체력 훈련을 이수하고 이틀간 꿀 같은 휴식을 누리게 되었다.

그 꿀 같은 휴식은 박은찬의 비명으로 시작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은찬은 온몸에서 솟구치는 근육통을 느끼며 네발로 기다시피 방 밖으로 나섰다.

“이게 사람의 삶인가 가축의 삶인가.”

가까스로 세수를 하고 대청마루에 앉은 박은찬은 과외교사를 떠나보내는 여동생 박은진을 바라보았다. 동생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박은찬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오라버니, 요즘 들어 몸이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요?”

올해 13세인 박현상의 차녀 박은진이 궁금한 눈초리로 물어보았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근육통을 겪은 박은찬은 몸을 움츠리면서 답해주었다.

“삭신이 무너지는 것 같구나. 유양목 환약(버드나무 약, 아스피린) 좀 가져와 주겠니?”

박은진이 아스피린을 삼키고 물로 넘긴 박은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바닥을 바라보았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물집을 터뜨리고 소독한 자리의 살이 들뜨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술 마셨다가는 발바닥이 모조리 곪아버리겠네. 일단 좀 나가 봐야 하니까······.”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옷을 갈아입은 박은찬은 터덜터덜 걸어 조일준의 집으로 향했다. 얼마 전 듣기로는 조유나가 단식 투쟁을 벌였다는데 몸이 멀쩡한지 궁금하였다.

거의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길거리를 걷자니 자신과 똑같은 몰골의 청년들이 보였다. 억지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눈 박은찬은 마침내 조일준의 집 문을 두드렸다.

“박은찬이오, 조 총장님과 유나 아가씨를 만나러 왔소.”

“도련님 아니십니까? 총장님은 안 계시는데 아가씨는 계십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놀러 온 집이라 하인이 목소리만 듣고 누군지 알아차렸다. 문을 연 하인은 박은찬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호들갑을 떨며 말하였다.

“아니 세상에! 산속에서 범을 만나 마구 도망치기라도 하셨습니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소.”

잠시 집 마당을 살펴본 박은찬은 초석이 놓이고 바닥부터 한옥이 지어지는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듣던 말대로 단식 투쟁이 성공하여 정말 미래의 신랑을 키울 집을 만들었다.

“아가씨께서는 후원에 있는 연구실에 계십니다.”

다시 후원으로 향하는 고통스러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증기기관과 발전기가 항시 가동되는 조유나의 개인 연구실에 도착한 박은찬은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기다리고 다시 문을 두드렸으나 답이 없었다. 박은찬은 당연하다는 듯이 문고리를 잡고 중얼거렸다.

“누나가 언제나 이렇지 뭐, 들어간다!”

문이 열리며 끼이익 거리는 쇳소리가 퍼져 나갔으나 조유나는 자신이 조립하는 기계에 몰두하였다. 그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확인한 박은찬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한참을 기다리자 기계 조립을 마친 조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지난 단식 투쟁으로 인해 조금 핼쑥해진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였다.

“은찬이 왔네? 내가 또 집중하느라 인사도 못 한 것 같은데.”

“언제는 집중 안 하는 때가 있다고. 이번에는 뭘 만들어?”

그녀가 만들고 있는 물건은 거대한 바퀴와 작은 바퀴가 조합되고 여기에 수많은 기계 부품이 얽힌 기계였다. 조유나는 손에 묻은 윤활유를 닦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발명한 전기 사륜차를 개조해서 전기 말을 만들어보려고.”

“얼마 전에는 전기 양을 만든다 하더니 이번에는 말이야?”

“그건 소형 전기사륜차라 양이고 이건 두 발이 동시에 움직이니 말이지. 이번 학기 개인 연구과제로 제출해 볼 생각이야.”

“개인 연구과제로 회사를 차리게 생겼네.”

박은찬은 그녀의 ‘개인 연구’를 떠올리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교육을 받는 입장이나 조유나는 이미 교육을 받는 단계를 넘어서서 새 이론을 창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미 교수들과 협업하는 일이 다반사이며 어지간한 공학자들조차 그녀와 협업을 하며 연구 성과를 공유하였다. 박은찬은 저절로 조유나에게 대한 찬사를 보냈다.

“누나는 몸이 네 개쯤 되는 사람 같이 움직이잖아. 그 일을 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사랑과 열정으로 하지!”

“그 사랑의 결실이 새로 생겨날 모양인데?”

박은찬은 얄궂은 표정으로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리 친척 사이라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 애정 행각)에 대해 말할 수 없으나 데릴사위를 들인 꼴이라 할 말은 해야 하였다.

반면 조유나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 막 건설하는 별채, 미래의 신랑감 유인석이 머무를 집의 방향을 한동안 살펴보고는 말하였다.

“사랑의 결실? 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니까 뭔 소리야?”

“그럼 데릴사위가 아니란 말이야?”

“교육을 제대로 시킬 목적으로 집에서 숙식시키는 거지. 내 기준에 안 맞으면 그냥 후원자로 남고 기준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사랑을 시작해 보려고.”

다른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과 달리 조유나는 감성을 철저히 억누른 채 미래의 인재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얘는 내가 외할아버지(바이런)인 줄 아니? 나도 이성이 있고 지킬 선이 있어.”

“뭐 그런 것도 사랑의 형태니까. 그런데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애초에 실패를 생각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잖아?”

조유나의 태도는 엄청난 재능으로 인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박은찬은 자신의 사촌 누나쯤 되는 조유나에게 미래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부친께 장교가 되어서 군인으로 성공하고 싶다 말씀을 드렸거든? 단번에 허락해 주시더라.”

“그거 잘 되었네. 혹시 반대는 안 하셨어?”

“내 생각을 들어보시더니 훈련을 좀 받고 교육을 이수하면서 생각해 보라 하셨어. 그 교육이 문제인데······.”

박은찬은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고 정강이를 걷었다. 치이고 밟히고 뛰어다니느라 멍과 상처가 가득한 모습을 본 조유나는 염려 가득한 눈빛으로 말하였다.

“장교 교육하다 사람을 잡아먹을 작정인가 본데?

조유나는 상처를 자신의 멍든 손가락과 비교해 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돌부리에 제대로 찍혀 피멍이 제대로 들고 그 위에 상처가 덧씌워졌다.

“이 정도는 해야지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있다 하더라고. 앞으로 여섯 달을 어떻게 버텨.”

“여섯 달 내내 하다가 교육을 시키는 쪽이 먼저 나자빠질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한 달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교육을 편하게 할 것 같아.”

조유나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초반부에 기강을 잡고 조금씩 풀어주며 많은 지식을 욱여넣을 것 같은 분위기 같았다.

물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의자에서 내려온 박은찬이 근육통으로 고통을 호소하자 조유나는 약통에서 꺼낸 유리병을 여러 개 건네면서 말했다.

“참, 상처는 즉시 치료해야 하니까 내가 만든 고약과 습포(濕布 - 파스) 좀 가져가.”

“습포? 이거 정체가 뭔데?”

“내가 손이 다치는 일이 자주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하나 만들어보았어. 효과 좋더라고.”

이외에도 조유나의 선물은 끝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발명품을 미리 시험해 보라는 듯이 수많은 선물을 안겨주었고 아예 예비 생도들에게 나누어 주라 하였다.

이후 한 달 동안 교육이 진행되었다. 조유나의 예상대로 교육 난이도는 조금씩 완화되었으며 생도들 대부분이 체력을 길러 교육을 어렵지 않게 이수하였다.

이 교육에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체력 훈련을 실시하기 전, 퇴역 장성이 갑자기 예비 생도들에게 불러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얼마 전 일본에서 요청이 왔더군. 우리 대한제국의 사관학교에 입학시킬 생도 이백여 명을 파견할 것인데 외부대신님께서 협상을 진행하고 계신다.”

“일본에서 예비 사관생도를 파견한단 말입니까?”

“군사적으로 미흡한 나라여서 사관학교를 만들어낼 장교들을 미리 양성할 예정이라 하였네. 이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교육을 함께 이수할 것이니 알아두도록.”

예비 생도들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지난 한 달 동안의 교육에서 어느 정도 기강을 잡았는데 새 생도들이 오면 또 기강을 잡을 것이 분명하였다.

모두의 시선이 박은찬에게 쏠렸다. 제발 아버지를 설득해서 귀찮은 일을 피하게 해달라는 암묵적인 압박이 가해졌다.

물론 박은찬 입장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뜻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태상황과 황제 단둘뿐이라는 사실을 아들 입장에서 절실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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