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40화 (223/345)

240화

20장 7화 청나라의 사정

대한과 일본이 협력하는 동안 청나라도 많은 발전을 하였다. 본래의 역량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부패로 인하여 신음하였으나 어떻게든 나라를 개선하였다.

그 부패와 개선의 중심에는 홍수전이 이끄는 배상제회가 있었다. 오늘도 소집된 배상제회는 지방에서 일어난 민란과 기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두 달 전인 올해 일월 사천 일대에서 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전에는 풍년이 거듭되던 장소이나 기근으로…….”

자연스럽게 각지에서 빈발하는 기근, 민란 그리고 부정부패로 인한 후유증이 보고되었다. 배상제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만주족 관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민란을 일으킨 놈들 때문에 자네가 설립에 관여한 공장이 점거되었다 하는데?”

“그거참 크나큰 손해로군. 민란을 일으킨 놈들이 집기도 다 때려 부수고 다니겠지?”

배상제회의 간부 중 한 명이자 신진 관료인 증국번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만주족 관료들을 노려보았다. 이들은 청나라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오물에 불과하였다.

민란이 벌어지면 참가한 이들을 모조리 잡아다 팔아치운다, 민란이 일어나지 않으면 양귀비밭을 더욱 늘리고 채무에 신음하는 농민들을 노예로 팔아치운다.

심지어 깡통 공장을, 홍수전과 자신이 만들어 낸 제대로 된 공장과 비교할 수 없는 고철 덩어리로 수많은 예산을 착복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1890년 무렵에나 일어났을 부정부패가 30년 이상 일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만주족들을 함부로 배상제회에서 내칠 수도 없었다.

“홍 부도어사(副都御史 - 감찰기관 도찰원의 관리)는 어떻게 보는가?”

홍수전을 비롯한 그나마 제대로 된 생각을 품은 이들이 조정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이 만주족 관료 덕분이었다. 그러나 만주족 관리들의 질문을 받은 홍수전은 다른 생각을 하였다.

“홍 부도어사? 뭘 그리 깊게 생각하고 있나?”

“아, 민란을 어떻게 진압할지 고민하였습니다. 결국 진압은 하여야겠군요.”

“우리 팔기군이 나설 필요도 없이 지방 병력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합니다! 팔기군은 후방을 사수하고 탈주하는 놈을 제압하면 될 겁니다!”

홍수전은 이미 수많은 객가와 지방 군현에 손아귀를 뻗어두었다. 도합 32만에 달하는 병력은 죄다 브라운베스의 열화판인 배상 소총과 각종 화약 무기를 갖추었다.

이들은 지방에서 일어나는 민란을 진압하며 경험을 축적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격화되던 민란은 홍수전과 객가의 손으로 하나하나 진압되거나 아예 흡수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각 지방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객가들과 배상제회의 객가 출신 관료들이었다.

증국번은 이 대화를 들으며 못내 아쉬운 듯이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이라도 권농(勸農)을 하고 양귀비밭을 억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황제께서 내린 뜻을 모르고 있는가? 양귀비는 민란을 진압하고 억제하면 될 거라네!”

이미 청나라의 아편 생산량은 연간 3만 톤이 넘어갔다. 이마저도 내부에서 유통되는 양 기준이며 실질적으로 소비되는 양은 더욱 많을 것이라 추산하였다.

1880년 무렵에나 이룩할 원대한 아편 생산량은 20년이나 일찍 달성되어 더욱 빠르게 나라를 좀먹어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챙긴 만주족 관료들은 아편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마구 남용하며 예전보다 더욱 많은 양의 아편을 복용하였다.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회의에는 조금 더 긍정적인 보고가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네. 그러면 조선 대사관이나 한번 들러볼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섰다. 증국번은 홍수전을 바라보면서 회의에서 나누지 못한 대화를 논하였다.

“조선에서는 웬 머저리들을 잔뜩 보내서 두엄더미를 만들어두었더군.”

증국번은 대한제국에서 보름 전 북경에 설립한 대사관을 떠올렸다. 부임한 관료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부패 관료의 소질이 엿보였다.

반면 홍수전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증국번에게 말하였다.

“부패한 놈들이 끼리끼리 놀면 아무 성과도 못 거둘 걸세. 조선이 얼마나 이 나라를 우습게 보면 방심하고 있겠나?”

“혹시나 높은 관료들이 그들과 어울리다 서로 중요 사항에 대해 논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이득이지. 머리가 텅텅 빈 관료들이 내놓는 것이 많겠는가? 아니면 조선의 외교관이 내놓는 것이 많겠는가?”

홍수전은 대한제국이 빈틈을 드러냈다 판단하였으나 이는 오판이었다. 그가 일으킬 역성혁명의 희생양으로 삼아 청나라 내부 문제에 개입하려는 수단이었다.

증국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홍수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는 듯이 저 멀리 사라지는 만주족 관료를 째려보며 말하였다.

“이제 몇 년이 지나면 영웅약이 시판될 거라네. 그러면 아편이라는 두 글자는 이 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야.”

“어허, 아무리 공친왕 전하께서 들여온 약이라 하여도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홍수전은 뒷목을 쓰다듬으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증국번은 홍수전이 약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진정한 충신이라 생각하며 답하였다.

“자네가 직접 알아보는 약인데 어련하겠나. 혹시 모를 부작용을 찾고 있다면서?”

“그렇지, 내 집에서 쥐를 기르면서 여러 방도로 알아보고 있다네.”

“혹시나 부작용을 찾아내면 자네 공이 되겠지.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네.”

홍수전은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영웅약이 청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간 직후,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방 안에 여럿 전시된 솜 부인을 후려치며 짜증을 털어놓았다.

“하필 아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서역에서 개발할 줄이야. 그 서역 학자들에게 민닝(旻寧 - 도광제의 휘) 네놈의 혼령이라도 깃들어 있다는 말이더냐?”

홍수전은 도광제의 형상에 계속 주먹질을 하더니 아예 단검을 꺼내 들었다. 사람을 해부하듯이 아예 찢어버린 다음에야 심호흡을 하고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객가의 세력을 키울 수 있게 만든 아편이 무력화될 위기에 놓였다. 홍수전은 침울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였다.

“상황이 최악으로 돌아가는구나. 애를 써서 민닝의 장남(함풍제)을 아편에 중독시켰는데 해독할 수 있는 약을 차남 이힌이 가져올 줄이야.”

프로이센에 보낸 사절단에는 예순 명이 넘는 홍수전의 협력자가 배정되어 있었다. 이들이 사소한 기술을 배우고 있는 동안 공친왕이 핵심 연구진을 만나게 되었다.

급기야 올해 일월 초 프로이센의 연구진이 방문하였다. 그들은 아편을 해독할 수 있는 ‘영웅약’을 개발할 것이라 공표하였다. 함풍제는 동생이 데려온 기술자들을 국가 핵심 사업으로 배정하였다.

이후 두 달이 지난 1856년 3월 무렵,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강의를 듣기에 이르렀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홍수전이 개입하려 하였다. 그러나 명분도 없이 프로이센 연구진을 추방할 수도, 연구를 중단시킬 수도 없었다.

결국 홍수전에게 남은 길은 영웅약 개발 이전에 역성혁명을 시도하는 길이었다. 이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홍수전 본인도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변란을 일으키면 아무리 스승님의 원한을 앞세워도 호응이 부족할 것이야. 결국 한족 관료들의 호응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때쯤 되면 아편 치료가 끝나있겠지.”

홍수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영웅약 생산과정에 훼방을 놓는 것이 전부였다.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프로이센에서 가져온 헤로인 샘플로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회주(會主)님 오셨습니까?”

홍수전을 대신해 실험을 진행하는 하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이번에는 부작용이 생겨나기를 빌면서 하인에게 질문을 하였다.

“혹여나 쥐에게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느냐?”

“송구한 말씀이지만 이상이 생겼습니다. 다 제 실수로 인해 생긴 일이라…….”

하인은 쥐가 떼죽음을 당한 우리를 보여주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실수를 고변했다.

“오늘 아침에 오니 우리 하나의 쥐가 모조리 죽어 있더군요.”

“아까운 일이로구나.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겨났느냐?”

“찬장에 영웅약을 보관하였는데 바로 옆에 있는 비상(砒霜 - 비소)과 헛갈린 것 같습니다.”

하인은 쥐들이 모두 죽은 것을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였다. 반면 홍수전은 하인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답하였다.

“찻숟가락으로 한 숟가락의 비상을 먹였는데 쉰 마리의 쥐가 몰살을 당한다?”

홍수전은 비소를 쥐약 용도로 쓰려고 설탕을 많이 넣어 독성을 줄인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하인을 슬쩍 쳐다보고 아예 휴가를 내려주었다.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지. 며칠 동안 푹 쉬다 오거라.”

“감사합니다! 나리! 정말 감사합니다!”

“이 쥐를 모조리 땅에 묻도록 하고. 그동안 다른 사람이 쥐를 돌보게 하겠다.”

홍수전은 하인이 나가자 의자를 가져와 쥐를 기르는 별채에 머물렀다. 아예 조정에는 하루를 쉴 것이라 보고하고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알아보려 하였다.

헤로인도, 비상도 없이 오로지 쥐에게 물과 사료만을 투여하였다. 이미 20일 넘게 헤로인을 먹은 쥐들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금단증상으로 발작을 시작하며 사방으로 날뛰었다.

“아편을 강제로 끊게 한 쥐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하잖아?”

쥐의 신경계가 금단증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쥐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며 우리를 부숴 버릴 기세로 날뛰었다.

기력이 쇠약해진 쥐들이 하나둘씩 우리 안에서 쓰러졌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쥐를 홍수전이 만져보자 엄청난 속도로 쥐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편의 금단증상은 장난이로군. 영웅약의 금단증상이 열 배는 강한 것 같아.”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쥐들 모두가 죽어나갔다. 혈변을 쏟아 내거나 피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마구잡이로 물어뜯었다.

이 금단증상이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어느 누구도 견딜 수 없으리라.

홍수전은 죽은 쥐들을 양손에 움켜쥐고 미치광이처럼 웃기 시작하였다.

“영웅의 약이 맞구나! 나를 영웅으로 올려줄 약이니 영웅약이지!”

아편의 금단증상은 죽는 사람이 간혹 생겨날 수준이었다. 반면 헤로인은 금단증상으로 사람을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약이 분명하였다.

홍수전은 죽은 쥐들을 모조리 정원 한구석에 묻은 다음 바로 궁궐로 향하였다.

“보로서(프로이센)의 연구진들은 어디 있는가?”

“부도어사님 아니십니까? 한창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프로이센에서 파견된 연구진들은 각지에서 몰려온 의원과 연금술사를 교육시키며 고난을 겪고 있었다. 이 와중에 불쑥 홍수전이 끼어들어 수업이 중단되었다.

모두가 초조한 눈빛으로 홍수전을 바라보았다. 그는 영웅약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하던 사람이라 어떤 부작용을 찾아냈을지 몰랐다.

“홍 감찰관님께서 어찌 방문하셨는지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프로이센의 연구진을 보자 홍수전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는 며칠 전과 달리 영웅약에 대한 찬사를 보내었다.

“영웅약의 부작용에 관해서 논할 것이 있소. 나름 검증해 보니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약인 것 같더군.”

“부작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소.”

모든 연구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수전은 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변명을 하였다.

“내가 홍환안(紅丸案)을 생각하여 지나치게 염려한 것 같소. 전조 명(明)의 황제가 사특한 도사가 지은 약을 먹고 급사한 기록이 떠오르더군.”

“헤로인은 백 일 이상 투여해도 별문제가 없는 약입니다.”

“옳은 말이오, 옳은 말이고말고.”

홍수전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후 수업을 재개시키고 연구진 중 한 명을 불러 헤로인 생산과 관련된 질문을 시작하였다.

“약의 생산까지 삼 년이 넘게 걸린다 하더군. 그러하면 양은 얼마나 되는가?”

“합성 난이도가 꽤 높은 약입니다. 앞으로 삼 년이 지나야 일천 회 투약분량이 완성될 겁니다.”

홍수전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안도하였다. 쥐들에게 일어난 금단증상이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능지처참에 버금가는 끔찍한 고통을 겪으리라.

이 약은 꼭 필요한 놈들만 먹고 그다음에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약이었다.

홍수전은 이를 떠올리며 불쾌한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질문을 하였다.

“서력으로 1864년쯤 되면 총 생산량이 어떻게 되나.”

“그렇다면 팔 년 뒤군요, 백오십만 명 정도가 동시에 복용할 수 있으며 약 사천여 명이 일 년 내내 복용할 수 있을 겁니다.”

“아편을 치료하려면 순서대로 단번에 치료해야 할 터. 많은 양을 비축해야겠군.”

연구원 또한 고개를 끄덕여 의견에 동의하였다. 홍수전이 보기에도 이 정도 양이면 가장 적당한 수량이었다.

아편 치료용도가 아닌 함풍제를 비롯한 일부 황족과 만주족 주요 가문, 그리고 각 지방의 만주족 관리들에게 제공할 수량 기준이었다.

이들이 영웅약에 중독되고 이후 금단증상을 겪으면 나라가 동시에 마비되리라. 그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돌아갈 것이다.

“공친왕 전하께서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셨군. 난 돌아갈 것이니 앞으로 교육을 이어가시오.”

홍수전은 춤을 추듯 경쾌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였다. 자신의 역성혁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요소 두 가지가 모두 자신을 돕고 있었다.

“조선 놈들은 부패 관료를 보내서 대놓고 착취하려 하지 않나. 공친왕은 자신들의 목줄을 조일 물건을 만들지 않나. 이토록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다니!”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으나 홍수전은 개의치 않았다. 아예 장대비가 쏟아지자 그는 온몸으로 빗줄기를 맞으며 미치광이처럼 뛰어다녔다.

“아니 저 양반은 왜 또 미쳤대.”

“나도 몰라, 근데 부도어사 양반은 삼 할은 미치광이요 칠 할은 충신이잖아.”

“이제 칠 할은 미치광이가 된 건가?”

하급 관료들이 자신에게 욕을 하여도 상관없었다. 홍수전은 장대비 소리에 섞어 자신의 미래 계획을 흥얼거리며 계속 길거리를 가로질렀다.

“놈을 시작으로 만주족 모두가 금단증상으로 죽어 자빠지면 친위 명목으로 난을 일으키고 형제들을 소집해야겠군. 그다음에는 공친왕과 태후 그리고 귀비(서태후)를 제거해…….”

진흙탕에 구른 홍수전은 웃음을 머금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진흙을 대충 털어내고 다음 계획을 논하였다.

“그때쯤 되면 지방의 만주족들도 금단증상에 시달릴 거야. 스승님의 원한을 앞세워 모두를 처단한 다음 내 나라를 만들어내면 될 거다.”

처음에는 수많은 반발을 무릅쓰고 만주족을 하나하나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영웅약의 공급에 장난을 쳐서 대신할 수 있었다. 손을 댈 필요도 없이 금단증상으로 인해 죄다 폐인이 되거나 죽어나가는 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이후 잔당을 소탕하고 황제 자리에 오른 다음 국가를 정상화하면 충분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다짐하듯이 말하였다.

“영웅약은 무조건 폐기다. 아편을 폐기하면서 생산법을 아는 놈들을 죄다 제거해야겠군.”

뒤틀릴 대로 뒤틀린 홍수전조차 기겁할 만한 극약이 영웅약이었다. 홍수전은 집으로 들어와 이 역성혁명의 명분이 될 임칙서를 모신 사당으로 향하였다.

“스승님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저택 안에 있는 사당에는 임칙서의 생전 모습을 묘사한 초상화와 위패가 있었다. 홍수전은 진흙에 물든 몸으로 대충 인사를 올리고 절을 하였다.

홍수전은 두서없이 몸을 놀리며 동네 형님에게 말하듯 위패와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내 기나긴 대화가 끝나자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제가 요즘 자금이 부족하여 스승님을 따른 향용들의 지원금을 끊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본의가 아닙니다! 부하 놈들이 돈을 횡령하더군요.”

임칙서와 함께 광주를 수호한 향용과 그들의 유가족은 더 이상의 돈을 받지 못하였다. 홍수전에게는 푼돈에 불과하나 관리가 귀찮아서 더 이상 돈을 보내주지 않은 것이다.

변명하듯 진흙에 물든 손으로 손사래를 치자 진흙물이 손끝에서 튀어나가 초상화에 닿았다. 그중 진흙 두 갈래가 떨어진 장소가 너무나 절묘하여 홍수전도 감탄할 지경이었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군, 시커먼 피눈물 말이야.”

임칙서의 초상화에 떨어진 진흙은 먹과 섞여 마치 검은 피눈물처럼 변모하였다.

그러나 홍수전은 대수롭지 않게 콧방귀를 뀌고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의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저 홍수전은 도광제 그 개자식의 무덤을 파내고 뼈를 추려내 채찍으로 내리칠 작정입니다.”

홍수전의 원대한 계획은 더욱 정교하게 수정되었다. 최대한 내실을 다져 한족의 호응을 얻고 만주족을 자멸시키는 웅대한 계획이었다.

그 계획의 핵심 요소인 영웅약의 정보는 홍수전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새어나갔다.

북경 대사관이 설립되고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백낙신을 비롯한 미래의 부패 관료는 청나라 고위 관료들과 향응을 즐겼다.

“백 정사(正使 - 사신의 대표), 자네는 놀 줄 아는 사람이군?”

집무실에서 뛰쳐나온 만주족 관료들은 새로운 향응을 즐기고자 하였다. 평상시에는 부패를 감당하지 못하여 질겁하던 대한제국 관료들을 놀릴 생각이었다.

반면 새 관료들은 달랐다. 백낙신을 비롯한 다섯 명의 예비 부패 관료들은 시작부터 수천 냥 단위의 선물을 제공하고 실컷 쾌락을 즐기며 답하였다.

“젊어서 놀아야지 뭘 합니까. 이 술은 정말 맛이 좋군요.”

“술 한번 잘 마시는군. 선물로 귀한 산호석 곰방대를 줬는데 나도 하나 줘야겠지.”

청나라 관료는 자신이 품속에 넣어둔 금제 아편 곰방대를 백낙신에게 건넸다. 그러자 백낙신은 질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거부하였다.

“아편은 안 됩니다. 그건 피울 때는 좋은데 끊을 수 없는 약이라 하더군요.”

탐관오리의 자질이 충분하여 하늘을 뚫는 백낙신조차도 피하는 물건이 아편이었다. 그러나 고위 관리는 손수 아편을 눌러 담은 곰방대를 들이밀며 계속 권유하였다.

“그래도 피우고 즐겨야지. 이 향락을 누리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대한으로 돌아가면 아편은 의료용을 제외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배웠다가는 인생을 망치게 될 일 아닙니까?”

“어허, 영웅약이라 하여 보로서의 사람들이 아편을 끊을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있다네. 앞으로 몇 년 이내에 나올 약인데 단번에 아편을 끊어준다 하더군.”

“영웅약이라?”

만주족 관리는 영웅약의 상세에 대해 바로 알려주었다. 프로이센의 최신 연구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내고 홍수전이 검증한 아편 치료제라는 정보였다.

이 정보는 서신을 통해 대한제국에 전달되었다. 이 신규 약물에 대한 정보는 가장 뛰어난 학자인 조일준에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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