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20장 9화 포석
현대 한국은 분단국에 휴전국이라 대놓고 국경에 최정예 병력을 배치한다. 반면 평범한 국가는 전쟁을 대놓고 준비하지 않는 한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현대나 이 시대나 마찬가지로 ‘명분 없는’ 국경 군대 주둔을 선전포고로 행위로 인식한다.
결국 국경에는 일부 병력만 주둔하며 중앙군은 수도나 주요 도시 인근에 군대를 배치한 다음 전쟁 직전에나 진군시킨다. 그러니 포석을 놓듯이 먼저 군대를 보내둘 명분이 필요하였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지나가듯이 외부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내가 예전에 대월에서 추방당한 화교들을 관리하기 위해 여럿으로 분류해 두라는 권고를 한 적이 있는데.”
“분류는 대략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장 근로자는 이미 명부가 있으며 재주가 없는 사람은 항구나 각 공장에서 단순 노역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군. 그러고 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화교들은 인건비가 매우 적다던데.”
“경력이 십 년이 넘건 손재주가 좋건 모두 경력 없는 일반 노동자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대한제국의 사업가들은 법의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제대로 된 행정체계가 돌아가는 대한제국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경력을 인정받는다.
반면 화교들은 서류가 없다. 이들은 베트남에서 십 년을 일해도 기존 경력이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고 모조리 일반 노동자로 시작하였다.
물론 이들이 일반 노동자라도 버는 돈은 제법 많은 편이지.
직원들은 서류를 확인하고는 현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먹을 것을 아끼고 입을 것을 줄여서 자신에게 부과된 이주비와 정착비용을 거의 다 이행하였습니다. 오히려 공장에서 계속 잡아두려 하는군요.”
“이미 대한의 말을 능숙하게 하고 아예 청도나 상해에 눌러앉으려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여기까지는 재주 있는 화교들을 고용한 공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머지는 재주가 없어서 날품팔이 식으로 인력시장에서 구르고 구르는 신세라 다시 질문을 하였다.
“그러한 화교는 소중한 인력이니 잡아둘 수단을 마련하자고. 다만 공장에 취직하지 못한 화교들이 제대로 봉급은 받기는 하는가? 제대로 살기는 하고?”
외부 직원들은 날 보고 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너무 당연하다는 태도로 답해주었다.
“봉급이야 이 나라 사람들보다 좀 덜 받는 편이긴 합니다. 동일하게 받기는 하는데 채무를 미리 제하면 일백 냥 정도를 받게 되더군요.”
“거주 구획은 좀 부족하군요. 다층 목조 주택에서 비좁게 살고 있다 합니다.”
“식사는 그럭저럭 잘 먹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용직도 생선 정도는 먹지 않습니까.”
상해와 청도를 비롯한 조차지도 대한제국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지역이다. 당연히 화교들은 채무 탕감으로 일부 차감된 급료를 받고 있겠지.
이들은 의식주 세 가지 항목 모두 대한제국 사람들보다 ‘조금 부족한’ 수준으로 누리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준비한 대로 이러한 비용 문제를 트집 잡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을 계속 먹여 살려서 뭘 하나. 채무를 제외한 봉급이 거의 같다면 청나라로 돌려보내고 이 나라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나은 형편이지.”
“청도나 상해로 나아가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출장비나 이주비를 제공하는데요?”
“고작 출장비 따위를 염려하는가? 북경 대사관을 생각해 보도록.”
북경 대사관의 이야기가 나오자 외부 직원들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 모두가 설립 사유와 배정된 인원의 면모를 알고 있어서 한참을 웃고 눈물을 닦으며 답하였다.
“대놓고 탐학질을 일삼는 얼뜨기들도 일을 하긴 하지요. 지금은 몰라도 훗날이 되면 청나라도 노동자들을 통해 우리의 기술을 빼낼 수 있겠군요.”
“그러면 추방 방식이 문제입니다. 채무를 무시하고 돌려보내면 화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속출할 겁니다.”
“더군다나 상해와 청도의 사업자들에게 부채를 대신 탕감해야 할 겁니다.”
서류를 확인해 보니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화교는 육천여 가구이다. 이들의 가구당 부채는 평균 250냥 정도이며 한 해에 50냥을 갚고 있었다. 좀 독한 부류는 이미 채무를 거의 다 이행한 경우도 있었다.
총 합계 백만 냥이 그리 작은 돈은 아니지. 일단 속마음을 숨기고 의견을 내놓았다.
“북경 대사관을 통해 청나라에 가짜 공장을 만들고 이들의 채무를 이전하도록 하지.”
“겉으로는 청나라에 채무를 유지한 채 팔려나가는 것이요. 실질적으로는 채무를 모두 탕감하여 청나라로 돌아가는 격이로군요.”
가짜 공장에 들어가건 진짜 공장에 돌아가건 대한제국 맛을 본 화교를 돌려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한 직원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였다.
“청나라로 돌아가 보았자 생지옥에서 구르게 될 텐데. 하긴, 이걸 알 리가 없지.”
내 의도는 청나라와 대한제국의 격차를 ‘해방된 화교’를 통해 청나라에 퍼트리는 것이다.
봉급 차이는 3배에 달하고 사회 기반시설 격차는 그 이상이다. 하다못해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아도 청나라에 적응할 수 없으리라.
제대로 된 치안이 유지되고 법의 형평성이 준수되는 나라에서 치안도 없고 뇌물이 일상화된 나라로 돌아가는 상황이지.
이들을 돌려보낸 다음 벌어질 사태도 대비해야 하리라.
이를 위하여 군부에 접견을 요청해 군부대신 이응식과 면담을 나누었다.
“제가 대월에서 올라온 화교 중 일부를 청나라로 돌려보낼 계획입니다.”
“혹시 공장 직원을 돌려보낼 생각인가?”
“아닙니다. 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노역을 하는 부류입니다. 이들이 청나라 관리와 접촉하여 기술을 유출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응식은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하였다.
“청도와 상해에는 병사들이 일부 파견되어 화교들의 변란을 억제하지. 특히나 역부(役夫 - 단순 노동자)들은 간혹 난동을 피우는데 흉험한 지경이라네.”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칼부림을 하는 놈들도 있어서 아예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경우도 있다네. 이들을 추방하면 비용이 제법 나올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병력을 줄일 수 있을 걸세.”
그는 몸을 돌려 청도와 상해에 있는 압정 중 몇 개를 뽑아내려 하였다.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짓이라 손을 들이대 압정을 다시 밀어 넣고 말하였다.
“이들이 대한의 조차지에서 급료를 받다 청나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야 청나라 안에서 부대끼다가…….”
“대한의 봉급은 청나라의 세 배에 달합니다.”
지금 대한제국의 봉급은 단순 노무직 기준으로 연간 150냥 정도이다. 이 정도면 식량 문제도 없으며 한양이 아니라면 적당히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청나라의 평균 급료는 연간 50냥, 은자 10냥인데 앞가림만 하는 사람은 이것보다 더 적게 번다.
이응식은 괜히 콧수염을 쓰다듬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고 억지로 분노를 삭여가며 나를 윽박질렀다.
“외부대신 자네가 뭔 수를 썼는지 아는가? 잘못하다가는 청나라의 유민(流民)은 물론이요, 날품팔이에 장정들까지 모조리 조차지로 밀입국하려 할 걸세.”
이게 내가 청나라에게 주려는 선물이다. 세 배의 봉급을 받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 여기에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들 거다.
소문이 퍼져 나갈수록 청나라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리라. 대한 입장에서는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할 명분도 생기고 이 병력들에 최신 병기를 지급할 명분도 만들어진다.
물론 그 비용이 문제지. 이응식은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더니 결국 화를 내며 소리를 쳤다.
“최소한 열다섯 자(4.5m)에 달하는 장벽을 두 겹 넘게 만들어야 할 걸세. 여기에 수백 단위의 병력이 각 관문을 지켜야 하겠지!
“이미 경계에 이중으로 장벽을 치고 순시를 하지 않습니까?”
“그건 토담이고! 이제는 각 조차지에 최소 만 명 단위의 병력을 파견해야 하는 꼴 아닌가!”
벽돌로 만든 이중 장벽, 각 통행 경로의 철저한 관리 그리고 땅굴을 비롯한 각종 유입수단에 대한 방지가 모두 거론되었다.
할 말을 다 한 이응식은 기술은 중요하다며 중얼거리고는 나를 설득하려 하였다.
“물론 기술 유출을 막고 치안을 안정시키려는 자네 의도도 옳기는 해. 그러나 조차지에 군대를 두면 변란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자금과 보급만 끝없이 퍼먹는 꼴이 될 걸세!”
“이미 청나라 곳곳에서 발생하는 민란에 대한 소문이 문제입니다? 잘못하다가 조차지 인근에서 민란이 벌어지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설마 민란(民亂)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는가?”
“일어나고도 남습니다.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형국이지요.”
이응식에게 모든 말을 할 수 없어서 민란이라 돌려 말했다. 그는 내 의견을 신뢰하는 사람이라 몇 번이고 고뇌하다 실망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민란이 조만간 청도와 상해 인근에서 벌어질 수도 있겠지.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자네 말을 들으니 신빙성이 있어.”
“명분이 필요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민란을 대비하려고 병력을 파견하면 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포석을 놓아두듯이 미리 대비해야 하지요.”
“그러니 치안 관리를 명분으로 병력을 증가시키라는 말이군.”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양 인근에 배치된 압정 여러 개를 빼내어 청도와 상해에 옮겨서 박아 넣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의미한 재정 유출이나 실질적으로 홍수전의 변란에 치명타를 입힐 포석이지.
이응식은 목소리를 낮추어 나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좀 안 된 일이지만 숙련된 병사에 섞어서 초임 장교와 병사들을 보낼 생각이네. 장교 육성도 겸할 의도인데 자네 장남이 파견될 수도 있어.”
“어차피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장교 아닙니까. 그 정도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뭐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논할 일이지. 아직 합격한 사람도 아니지 않나.”
대한제국의 사관학교는 기초과정이 2년에 심화과정이 2년이다. 기초과정을 이수하면 초임 장교 딱지를 달수는 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은찬이가 상해나 청도에 파견되리라. 물론 내 아들을 위험한 최전방에 보낼 이유는 없다.
아마 장성들의 배려를 받으며 서류나 보는 편한 생활을 하리라. 물론 이 과정에서 높은 확률로 파견될 이토 히로부미를 관리해야 한다.
생각해 보니 소름이 돋아 올라 몸을 떨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새벽 4시부터 집 앞에서 은찬이가 교육을 나오기를 기다리는 미치광이라 관리가 너무 힘겨울 것 같은데.
“자네도 장남 생각을 많이 하는군. 저절로 몸을 떨면서 염려하다니.”
이응식은 내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탁지부로 향하였다.
이후 몇 단계의 논의를 거쳤다. 조차지의 밀입국자 방지를 위하여 장벽을 축조하고 초소를 배정하는 과정을 감안해 청나라 노동자의 해방은 1857년 1월로 계획하였다.
최종 보고는 당연히 내 몫이었다.
효명제는 각 부서에서 제공한 서류를 모두 읽어보고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생각을 하였다.
“청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날 때 대비하기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였구나.”
“바로 보셨사옵니다. 신이 보기에는 몇 년 이내에 변란이 일어날 것 같사옵니다.”
“오 년이 될지 십 년이 될지는 모르나 언제나 대비함이 마땅하지.”
포석의 마무리는 효명제의 손으로 놓였다.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은 효명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였다.
“청나라의 백성들이 대한과의 격차를 알게 되었다고 다 끝난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더 있구나.”
효명제는 예산안에 최종으로 결재 도장을 찍고는 말하였다.
“격차를 보여줄 사람들이 많다. 조금 귀찮은 일을 배정해 주겠다.”
“신은 격차를 보여줄 다른 방안이 궁금할 따름이옵나이다.”
효명제는 내 말을 듣고는 그저 돌아가라고 답하기만 하였다.
효명제가 놓을 다른 포석이 무엇인지는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바로 답이 나왔다.
* * *
대한제국의 국제 기술 박람회 이후 1857년 8월, 프로이센이 국제 기술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효명제는 각 부서의 대신들에게 이 박람회에 출품할 물건들에 대해 검증하라 하였다.
이 검증을 주도하는 사람은 한성부 관찰사, 판윤(判尹)의 위에 생긴 직책이며 종 1품의 직위를 누리는 김좌근이었다.
“내가 관여하는 순간 경제성과 자금 관련 심사는 피할 수 없음을 알아두게.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일 년 뒤에 열릴 박람회는 대한의 기술을 구주까지 퍼트리는 자리라 하였네.”
좀 엉뚱한 자리 같아도 효명제의 생각이 엿보였다. 프로이센에 유학을 간 공친왕을 비롯한 관리들에게 대한제국과의 격차를 보여주라는 말이었다.
“선보일 기술은 공표한 대로 먼 훗날일세. 미래에 널리 사용할 기술을 위주로 선별할 자리이니 눈앞의 이득을 추구하지 말도록.”
“먼 훗날에 널리 사용할 기술이라 하셨습니까?”
“폐하께서 신신당부하신 바일세.”
내 질문을 들은 김좌근은 불만을 삭이면서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항상 예산을 편성하던 그에게 미래의 일은 돈만 잡아먹는 하마로 인식되겠지.
물론 김좌근 입장이고 효명제의 생각은 다르다. 청나라는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다.’ 수준의 격차라고 대한제국을 평가하리라.
효명제는 이 평가를 뒤엎어 ‘지금 따라잡지 않으면 절대 못 이긴다’라는 절박함을 심어주려는 의도이다.
그 요소를 찾아낼 발표가 시작되었다.
“제가 발표할 물건은 에이다 교수님 휘하에서 연구한 축음기…….”
대략 열 개 정도의 품목이 김좌근과 우리 각 부 대신들의 심사를 받았다. 김좌근은 미래에 널리 사용할 기술을 철저히 선별하였다.
“그저 기존 기술을 개량한 것 아닌가. 다음 사람 나오게.”
다음으로 나온 사람은 조유나였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서 내 옆에 앉은 박규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헛기침을 하였다.
“국립이학대학 삼 학년 조유나입니다. 제가 발표할 기술의 이름은 전기 코끼리입니다.”
일준이의 딸 조유나의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전기 말, 전기 양, 그리고 전기 코끼리의 세 가지 물건을 개발한다는 소문이다.
당연히 부품 덩어리에 불과하여 완성품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개발 시기에 붙인 명칭으로 크기를 유추하는 것이 전부였지.
“이것이 전기 코끼리! 한양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차철도를 대신할 발명품이에요!”
조유나는 자랑스럽게 도면을 펼치면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제서 이 발명품이 왜 ‘코끼리’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형태는 한양에서 돌아다니는 마차철도와 흡사하였다. 대신 좀 더 높고 좀 더 크며 코끼리가 코를 들어 올린 것처럼 차체 전방에 부품이 높게 치솟아 있었다.
그 거대한 크기에 모두 질겁하는 사이 김좌근이 이마를 감싸 쥐고 고함을 쳤다.
“네가 내 삼종(三從 - 모계를 두 번 건너뜀) 친척이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전기 코끼리? 마차철도를 대신해? 그러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김좌근은 속이 타들어 가는 듯이 객석에 비치된 물을 들이켜고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울화통을 참아냈다.
김좌근은 내 외척이다, 일준이는 다시 내 외종사촌이라 유나와는 대충 9촌 사이이다. 현대 기준으로는 대충 육촌쯤 되는 느낌이지.
김좌근 입장에서도 애매한 관계라서 대놓고 욕은 못 하고 화만 터트리고 있겠지. 발표회장의 분위기도 싸늘해지다 못해 얼음장처럼 변해버렸다.
“전기라 함은 증기기관을 돌리고 그 힘을 변환하여 전기를 생산하지 않더냐. 이 물건 하나하나에 증기기관을 올리면 비용이 얼마더냐?”
“관찰사님께서 옳은 말씀을 하셨어요. 기존의 방식이라면 마차철도에 증기기관, 발전기, 그리고 모터까지 다 들어가야 할 거예요.”
“내 말이 그 말이다. 한양 도성에서 연기를 뿜어대는 증기기관차를 마차철도를 대신해 설치한다고?”
“전기는 전선을 통해 움직이잖아요? 그럼 전기만 공급하면 되죠.”
유나는 거대한 도면을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마차철도보다 좀 더 커다란 크기를 묘사한 단면도에는 증기기관도, 발전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전기 코끼리의 구동기관은 모터와 감속기관 단 두 개예요.”
개발명칭 전기 코끼리의 정체는 전방에 모터와 구동계만 갖춘 전기 노면전차(트램)다. 에이다의 발명품인 전기 자동차는 발상이 뛰어날 뿐 실용성이 없으나 이 물건은 다르다.
축적된 연구가 거의 20년이 지난 다음에 조유나의 노면전차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막대로 맨 위부터 도면을 가리키며 추가 설명을 하였다.
“상부의 전선으로 직류 전기를 계속 공급받아서 모터를 가동하는 방식이에요.”
“그럼 그 전기를 어디서 생산하는지 궁금하구나.”
“각 철도역에 발전기를 부설해서 전선으로 보내는 거죠. 마차철도 역에 부설된 마구간을 활용하면 공간은 충분할 것 같아요.”
김좌근은 셈이 빠른 사람이다. 지금이야 한성부 관찰사를 역임하며 휴식을 취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 예산을 쥐어짜 내는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주판을 튕기는 시늉을 몇 번이고 하더니만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그러하면 비용이 문제다. 대충 계산하여도 마차철도 유지비의 네 배는 들어갈 텐데.”
“작년에 개발된 신형 증기터빈 발전기의 변환 효율은 두 배가 넘는데요?”
예산 문제도 어느 정도 통과하였다. 김좌근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유나는 이 노면전차의 실용성에 대해 설득을 하였다.
“제가 알기로 런던은 이미 증기기관차를 도심에 들일 목적으로 지하철을 부설한다 하였어요. 나중에 가면 증기기관차 대신 전기 코끼리가 상용화될 것 같은데요.”
김좌근은 모든 설명을 듣고 나를 포함한 평가단의 의견을 물어보려 하였다.
“다들 전기 코끼리의 실용성에 대해 논하여 보십시오.”
“저 기정진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양은 지하수가 많아 지하철을 놓는 일이 난해하니 이런 대용 수단을 사용하면 매우 쓸 만할 겁니다.”
기정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정말 ‘미래에’ 쓸 만한 물건이라고 평가하였다. 이외에도 쓸 만한 기술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박람회장에 쓸 수 있도록 미리 건설해 두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기 코끼리의 명칭을 전기 기차라 개칭합시다. 아예 박람회장으로 향하는 경로에 미리 설치하여 모든 사람들이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겠군요.”
“보로서에서 먼저 시험해 보고 한양에 적용하자. 그 또한 옳은 말이로군.”
“또한 신형 발전기를 대량으로 양산해야 할 겁니다. 변환 효율이 좋다는 말은 이곳저곳에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까?”
그 전기를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상해와 청도 방어선에 사용할 개틀링 건의 배터리 충전용, 비상 전신을 가동하기 위한 전신기의 가동용 말이다.
변란의 예약을 걸어둔 채 하나하나 포위하듯이 포석이 놓이고 있었다.
다음으로 할 일은 얼마 전 영국에서 파견된 기술자 암스트롱과의 면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