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20장 11화 러시아 혁명(1)
대한제국이 점차 발전하는 동안 러시아는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크림 전쟁의 협상을 마친 알렉산드르 2세는 내부 실정을 점검하고 고뇌에 빠졌다.
러시아의 농업 생산력은 다른 유럽 열강, 심지어 일본이나 베트남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였다. 자기 땅이 없는 농노들이 적극적으로 농사를 지을 이유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차르에 대한 믿음과 신앙심, 두 가지 요소로 움직이는 가축과도 같았다.
알렉산드르 2세는 황제로 부임하자마자 이러한 체질을 개선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귀족들을 설득하여 1856년 8월, 농노 해방령을 반강제로 밀어붙였다.
결국 알렉산드르 2세의 권고에 지친 귀족들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농노 해방령을 받아들였다. 이 농노 해방령의 초안은 다음과 같았다.
-2년의 유예기간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농노제를 완전히 폐지한다.
-가구당 최소 3 데사티냐(1데사티냐 – 약 1만 제곱미터)의 토지를 우선 분배한다.
-분배된 토지의 가격 중 20%는 지주에게, 80%는 국가에 납부한다.
-국가에 토지 대금을 납부하는 기간은 최대 50년, 이자는 연 6%이다.
-모든 상환금을 납부하기 전까지 기존과 같이 소작료를 지불하고 부역을 실시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러시아의 노예를 해방하는 명령이며 알렉산드르 2세를 찬양함이 마땅하였다.
심지어 반정부 지식인들도 현실을 모른 채 농노들에게 자비를 베푼 차르를 찬양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농민들은 각 지역의 농민 공동체인 미르를 통해 전해진 개혁안을 확인하자마자 한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균등한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하는 것인데…….”
“유상분배에다 우리에게 내어줄 토지를 귀족 나리들의 손으로 분배한다고?”
집회장에 모인 러시아 농민들은 설명을 듣고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농노 해방령은 말이 해방이지 사실상 기나긴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같았다.
이 시대 러시아 농민들의 연간 수익은 약 120루블에 불과하였다. 여기에 소작료를 제하고 각종 생필품을 구매하면 아끼고 아껴야 10루블 내외의 돈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아껴둔 돈은 흉년이 들거나 병이 생겨 치료를 받으면 모조리 날려 먹게 마련이었다. 그 피와 살 같은 돈을 쪼개가며 구매하는 토지의 가격조차 엉망진창이었다.
“거기다가 이 지역에 적용되는 기준에 의하면 토지 가격이 데사티냐 당 백이십 루블이야.”
“뭐? 이 지역에서 가장 비옥한 옥토가 팔십 루블이 넘을까 말까인데 백이십 루블?”
“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로 토지 가격을 산정한 거야! 이자 납부를 끝내면 아들이 손자를 낳고 손자가 다시 장가를 갈 나이겠다!”
지나치게 높은 토지가격 때문에 손자들까지 채무를 이행하며 굶주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바보 이반들은 여전히 바보 이반이었다.
“희망은 보이지 않나. 차르께 의견을 내놓아 조금이라도 토지가격을 낮추자고.”
“의견이 언제 올라갈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이야기 끝났으면 돌아가세. 밀이랑 호밀이나 보러 가자고.”
농민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일터로 향하였다. 그러나 크림 전쟁에 참전해 포로 생활을 하다 탈출한 참전 용사가 이들의 앞길을 막았다.
“여러분은 멍에를 벗고 또 다른 멍에를 짊어지고 계십니다.”
포탄 파편으로 한 눈이 사라지고 손가락 몇 개가 날아간 발레리 잠자는 농민들을 자리에 돌려놓았다.
농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집중되자 그는 자신을 가르쳤던 카를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전수하였다.
“저를 가르친 프로이센의 카를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의 독점을 위해 정부의 체제를 유지하고 모든 노동자를…….”
평상시에는 끔찍한 전쟁을 겪은 후유증으로 언제나 냉소적이며 신랄하던 사람이 갑자기 열정적으로 연설을 하였다.
농민 대다수가 한 시간에 달하는 연설을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이며 다른 유럽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여기에 마르크스가 시범적으로 가르친 공산주의의 핵심을 발레리 잠자가 농민의 시선에서 재해석해 알려줬다.
“그럼 토지 가격이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간 이유는 일대의 귀족이 차르의 눈을 속여서라고?”
“아마 그럴 겁니다. 왕족과 같은 최상위 계층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협하고 설득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자들은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그도 농민이다 보니 차르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잠자는 물을 마셔 목을 가다듬고 이 상황에 대해 해설하였다.
“대대로 부를 축적하고 아무런 능력도 없이 세습적인 지위를 가진 자들이 어떤 능력이 있겠습니까? 이 지역의 높으신 귀족 양반을 직접 보기라도 했습니까?”
“평생 두 번 있지. 애초에 부재지주여서 큰 기근이 들 때만 내려오지 않나.”
“바로 그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차르의 뜻, 토지의 유상 분배도 마음에 들지 않으나 어느 정도의 타협이라 봅니다. 그러나!”
손가락 세 개가 사라진 왼손으로 벽을 후려친 잠자는 눈을 부라리며 말하였다.
“여러분에게 차르의 작은 멍에도 아닌 커다란 멍에를 짊어지운 놈은 이 지역의 부재지주입니다. 우리 모두 단결하여 귀족의 착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다수의 농민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착취에 벗어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는 얼마 전 옆 동네에서 벌어진 소작 쟁의를 떠올리며 말하였다.
“그렇다고 소작 쟁의를 했다가는 지주 휘하의 병력이 다 짓밟을 텐데.”
“제가 좋은 방안을 배웠습니다. 머나먼 동방의 대한에서는 지부상소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는 날을 잘 세워둔 커다란 도끼를 보여주었다. 이를 바닥에 내리찍고는 선언하였다.
“대한의 귀족들은 자신의 올바른 의견을 드러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도끼를 짊어지고 왕궁 앞에 무릎을 꿇어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목을 쳐 달라 청원합니다.”
“미친놈들 아니야?”
“미친 것 맞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전, 대한이 조선일 무렵에도 이 방식이 통용되었습니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선 도끼와 분노에 물든 잠자를 번갈아가며 바라본 농민들은 자신은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 반응을 예상한 잠자는 도끼를 다시 짊어지고 말하였다.
“이미 모든 러시아의 미르를 통하여 이 개혁안이 전해졌을 겁니다. 차르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지역도 있지만 우리와 같이 피해를 입은 지역도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말을 들을까?”
“수도로 수백 명의 농민들이 올라가는 겁니다. 귀족 나리들이 일반 농민의 의견을 묵살할 수 있으니 저와 같은! 차르를 위해 피를 흘린 참전 용사가 지역 대표로 향해야 합니다!”
잠자는 모든 설명을 마치고 도끼를 허리춤에 찬 채로 문을 나서려 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그의 앞을 가로막고는 말하였다.
“본래 미르의 역할은 토지 배분과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지. 이번 도끼 의견제출도 자네의 의무야.”
“도끼 의견 제출이 아니고 지부상소라 합니다.”
“지부나 도끼나 아무튼 간에 의무잖나. 의무를 수행하려면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가야 하고 궁궐까지 가야 하겠지.”
“그 여행 과정도 문제고 수도에서 머무르며 사람을 모을 여비도 문제겠지.”
농민들은 집에서 쌈짓돈을 가져와 잠자에게 전해주었다. 잠자와 함께 전쟁에 참전한 그레고리는 1루블을, 집이 가난한 이들조차 코페이카(0.01루블)를 몇 개 건네주었다.
충분한 여비가 쌓이자 잠자는 서툰 글솜씨로 차용증을 작성하였다. 언젠가 이 여행비용을 죄다 갚으리라는 다짐과 꼭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 * *
예상대로 러시아 농촌 각지에 퍼져나간 참전용사들이 대표로 올라왔다. 이들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수도 인근에서 합류하여 시내로 나아갔다.
아름다운 겨울 궁전과 그 앞의 거대한 광장에 어느새 300여 명의 참전 용사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위병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천으로 둘둘 말아 둔 도끼를 자신의 앞에 놓았다.
“위대하신 차르시어! 농민들이 개혁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개혁을 수정하시옵소서! 토지 가격을 현실적으로 낮춰주시옵소서!”
“눈앞을 가린 간악한 귀족들을 내치시고 백성을 보살피시옵소서!”
이들은 외곽에서부터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였다. 중복되는 의견을 지우고 각 지역과 현실에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며 56개의 개혁안으로 최종 안건을 정리하였다.
56개의 개혁안을 300여 명의 참전 용사가 합창하였다. 위병들도 이 사태에 난감함을 표시하였으며 몇몇 병사들은 이들을 끌어내리려 하였다.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미 살아서 지옥을 맛보고 온 참전 용사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총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을 밀어젖히며 말하였다.
“난 죽을 각오로 온 사람이다! 차르께서 내 목을 도끼로 쳐도 웃으며 받아들일 것이다!”
시위를 시작한 참전 용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르가 자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후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최소한의 타협이 시작되리라.
설령 알렉산드르 2세가 자신들을 구타하고 강제 해산시켜도 상관없었다. 그대로 해산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다음 항쟁을 준비하면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한 기대는 러시아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불행히도 알렉산드르 2세는 우크라이나 일대를 순시하며 흑토지대를 거머쥔 귀족들을 설득하고 있어서 이 시위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러시아 제국의 내무 3과, 언론통제와 비밀경찰을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이 사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너희를 수도에 침입한 무장 봉기 세력으로 규정하겠다. 즉각 항복하도록.”
“저희는 무장 봉기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차르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저희가 도끼를 휘두른 적 있습니까!”
“그럼 우리는 총을 발사한 적이 없으니 진압이 아니로군.”
러시아 제국 내부무 3과, 헌병대와 비밀경찰 그리고 언론 통제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먼저 진압에 나섰다. 이들은 지부상소를 택한 참전 용사들을 반정부 조직의 일원으로 판단하였다.
이들이 광장을 점거한 행위는 소지품 검문으로 인해 포위망이 좁혀와 택한 차선책이라 해석하였다.
헌병대에게 체포된 참전용사들은 고문과 구타 그리고 갖은 설득을 당하였다. 이 책임을 총괄 지휘하는 헌병대 참모총장 바실리에비치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신랄한 평을 내렸다.
“저런 반역의 씨앗을 남겨두면 데카브리스트 반란(1825년 일어난 반란)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그러면 나와 같이 애꿎은 희생양만 생기는 법이야.”
법과 절차를 무시한 행위라 이견이 나올 법하였다. 그러나 내부무 3과의 장관 알렉산더 티마셰프조차 그의 경력을 존중하여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지부상소를 실시한 참전자들은 고문과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절반가량이 자신이 반정부 시위자라 자백하였다.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가져온 도끼로 처형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차르! 차르를 뵙게 해주십시오!”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차르, 알렉산드르 2세를 찾으며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그나마 자백한 사람들은 머나먼 시베리아 벌판으로 유배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비밀경찰은 이들의 자백을 통하여, 자백하지 않은 이들의 소지품에서 차용증이나 각종 서류를 찾아냈다.
“러시아 전역에 역적도당이 퍼져있군. 거기다가 포로수용소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이 일관적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라는 웅변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더군요.”
“그 프로이센 미치광이가 러시아의 농노들을 현혹시키는군. 이제 어떻게 해야겠나?”
그가 지휘하는 비밀경찰은 푸시킨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가와 지식인을 염탐하였다. 개중에 ‘혁명’이라는 단어나 ‘시위’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닥치는 대로 찍어 눌렀다.
그러한 귀족이나 저명한 인사와 비교하면 농노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도 되는 먹잇감이었다.
그는 말년에 업적을 쌓을 생각으로 열정적으로 차르에게 보고를 올렸다.
“차르께 보고를 올립니다. 우크라이나 일대를 시찰하실 무렵 겨울궁전 앞까지 역도들이 도끼를 들고 난입하였습니다.”
“그것참 무서운 일이로군. 대체 어떠한 사람들인가?”
“이미 조사 보고를 마쳐두었습니다. 차르께서 결단을 내리신 농노 해방 법령의 흠집을 잡아 지방에서 세력을 구축하던 놈들입니다.”
알렉산드르 2세는 치밀어 오르는 두통을 억누르려고 정수리를 매만졌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 법을 벌써부터 흠집을 잡는다고? 규모는 얼마나 되나?”
“십여만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당장 이 반역종자들에 대한 체포 허가를 내려주십시오.”
알렉산드르 2세도 이 미완성된 개혁에 반발이 생겨날 것이라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안을 제시하자마자 각 지방에서 반정부 인사들이 활동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는 급진적인 반발에 급진적인 진압으로 응수하기로 하였다.
한 달 뒤인 1856년 11월, 지부상소를 시도한 사람들의 고향에 비밀경찰과 헌병 위주의 소규모 병력이 파병되었다.
이들은 차용증이나 증언 혹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농노들을 체포하였다. 개중에 반드시 체포해야 할 부류들은 참전 용사들이었다.
“그레고리 알바노프! 어서 나와서 차르의 명을 받도록 하라!”
“차르의 명? 얼마 전 수도로 올라간 잠자 녀석의 의견을 수용하셨나?”
기대감에 부푼 참전 용사 그레고리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머스킷과 총검에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는 총구를 보자마자 전장의 기억이 강제로 떠오르며 PTSD 증세를 보였다. 그가 문을 닫아 잠그자 비밀경찰은 문을 발로 걷어차며 그의 죄에 대해서 논하였다.
“수도에서 무장 봉기를 실시하려던 발레리 잠자가 너와 마을 주민들이 자금을 지원한 사실을 증언하였다! 반역죄의 죗값을 치를 때이다!”
“아! 아닙니다! 제가 반역죄라뇨!”
다시 문이 박차는 소리가 들리자 그레고리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의 귓가에서 어느새 포성과 천지가 뒤집히는 폭음이 들리고 코에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침대 아래에 숨겨둔 머스킷과 탄알을 반사적으로 장전하였다. 비밀경찰은 문에서 두 걸음 물러나고 말하였다.
“나와서 죗값을 치르도록! 열을 셀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들어가겠다! 열!”
그 사이 그레고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주 정확하게 머스킷을 장전하였다. 여기에 벽 사이의 틈으로 주변을 계속 정탐하며 눈을 굴렸다.
밖에는 여행 경비를 제공한 농민들 대부분이 포승줄에 사로잡혀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구타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한 자들도 있었다.
그레고리는 차르를 아버지처럼 섬기는 러시아 백성으로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무장 봉기에 대해 질문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무장 봉기를 실시하였다고? 무장 봉기가 아닌 지…… 지부상소라는 행동이었소!”
“무장 봉기이며 반역이다! 이미 절반이 넘는 반역자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었고 발레리 잠자는 머나먼 시베리아로 유형을 당했다! 다섯!”
“그럴 리가 없소! 차르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시오!”
“그 아버지에게 도끼를 들이댄 놈들이 네놈들이다! 당장 응하지 아니하면 즉결 처형하겠다! 둘!”
비밀경찰이 헌병에게 손짓하자 두 명의 헌병이 점차 문으로 걸어왔다. 마침내 비밀경찰이 손을 크게 올린 다음 명령을 내렸다.
“하나, 문 부수고 끌어내!”
그레고리의 눈빛이 급격히 변하며 한 명의 병사로 돌변하였다. 비밀경찰은 더 이상 차르의 대행자가 아니며 자신이 죽여야 할 적으로 인식되었다.
허름한 나무문의 틈으로 삐져나온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멋들어진 콧수염을 자랑하던 비밀경찰의 머리통에 탄환이 쑤셔 박히며 농노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꺄아아아아악! 사람이 죽었어!”
헌병 두 명은 이 사태에 손발이 굳고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이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비밀경찰의 지휘관은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난 다음 명령을 내렸다.
“반역자다! 반역!”
“니놈의 새끼들이 반역자다!”
실전을 경험한 그레고리와 달리 헌병들은 머스킷 장전조차 제대로 안 한 상태였다. 문을 부수고 뛰쳐나온 그레고리에게 총검을 찔렀으나 방향조차 틀려먹었다.
이미 두 명의 영국군 병사를 죽이고 생환한 그레고리는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총검을 피하고 도끼를 휘둘러 순식간에 헌병 두 명을 죽였다.
피분수와 비명이 솟구치는 가운데 미리 뒤로 물러난 지휘관이 가까스로 말을 잡아타고 머나먼 벌판으로 도주하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차린 그레고리는 아무런 후회도 없었다. 자신은 차르를 위해 봉사하였으며 목숨을 바쳤다. 그런 자신을 위해 차르는 아무 보상도 없이 죄를 덮어씌웠다.
그레고리는 농노들의 포박을 풀어주고 시베리아로 유배당한 발레리 잠자의 말을, 정확히는 그에게 카를 마르크스가 알려준 말을 외쳤다.
“러시아의 농노들이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노예의 멍에뿐이다!”
알렉산드르 2세의 명령은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반정부 단체가 아닌 크림 전쟁에서 생환한 병사 중 상당수가 수사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민중 봉기에 합류하였고 불길은 순식간에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알렉산드르 2세가 명령을 내리고 고작 두 달이 지날 동안 1,000건에 달하는 농민 봉기가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