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47화 (230/345)

247화

20장 12화 호응

청나라에 보내는 선물이 착실히 준비되고 있었다. 1857년 1월에 처음으로 일만여 명의 화교들을 청나라로 보냈고 이후 매달 3만 명 단위로 ‘방면’ 작업을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난색을 겪던 노동 시장도 순식간에 안정화를 찾았다. 한양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상해와 청도의 개항지로 옮겨가 인력을 충원하였다.

“이쯤 여유 인력이 충원되면 슬슬 삼강평야를 개척해도 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연적 계획의 실효성도 서서히 떨어져 가는 실정이었다. 한양의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만주에도 슬슬 개척하기 힘든 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일본인들을 동원하여 삼강평야를 개척하고 다음 순서로 삼강평야에 사민을 보낼 차례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을 지지하는 일본인들이 갈수록 늘어가는 실정이었다.

“올해 일본에서 이민 혹은 임시 거주를 청한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내 아래 관료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잠시 서류를 분류하고는 답해주었다.

“단순 노동 목적으로 들어온 신청자 목록이 육만여 명입니다. 아예 사업자 허가를 받고 영주권을 얻은 사람이 이천여 명에 달하지요.”

“제법 많이 발전하였군. 슬슬 인력이 남아돌아서 문제를 겪을 것 같은데.”

대한제국을 통해 개화기를 겪는 일본은 여러 문제를 통제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본래 역사처럼 온갖 부작용을 겪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선을 지키고 있었다.

대한제국에 건너와 학문과 기술을 배우던 일본인들은 아예 새로운 업종을 창설한 경우도 있었다. 그 업종에 대해 생각할 무렵 사환(使喚)이 문을 두드리고 점심시간을 알렸다.

궁궐 밥이 맛있게 마련이라 식사를 거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이야기하던 주제가 일본이라 내 아래의 관료들은 얼마 전 개업한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박 후작님께서는 온천에 다녀오실 수 있는 분이나 저희는 그런 여유가 없어서 목욕탕에 다녀오곤 합니다.”

“목욕탕이라. 공장 근처에 마련했다던데 다닐 만하던가?”

“시가지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한데 안 가는 것보다는 났지요.”

한국인도 잘 씻는 민족이지만 일본인은 온천이 많아서 더 많이 목욕을 하는 민족이다. 하다 못해서 인구가 넘쳐나는 에도 시가지에도 목욕탕이 성업할 정도다.

그런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에 이주하여 목욕탕을 만들어 냈다. 여기의 주요 고객인 젊은 관료들은 때가 다 밀려 매끈해진 팔뚝을 드러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장에서 쉴 새 없이 가동되는 증기기관의 폐열을 사용해서 물을 계속 부어 넣더군요.”

“입장료가 두 푼(0.2냥)이라 제법 비싼 편이긴 한데 그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대한과 일본은 이미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서로 문화가 비슷하다 보니 빈 구석을 긁어주면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모든 사항은 일본이 군사적 무장을 거부하고 경제적 발전과 협력을 추구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격투를 벌일 일본 의회를 생각하며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왔다.

“외부대신님께 영국의 아일랜드에서 서신이 도착하였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서신이라? 누가 서신을 보내나?”

카를 마르크스가 보낸 서신을 확인하고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빨갱이가 대체 무슨 사고를 치고 나에게 수습을 부탁하고 있을까.

그 정체는 퇴근한 다음에야 알아차렸다. 마르크스의 서신을 읽으면서 러시아 제국의 변화와 이로 인한 약점을 교묘하게 노린 계획을 알게 되었다.

“이놈의 유사 봉건국가는 한번 뒤엎어질 때가 올 줄은 알았는데. 하필 털보 때문이라니.”

마르크스의 기나긴 서신을 읽을수록 정수리가 쑤셔왔다. 만에 하나 러시아제국과의 적대 구도가 생겨날 경우 최후의 계획으로나 쓸 계획인데 마르크스는 바로 사용해 버렸다.

그는 불안한 경제구조, 지방 귀족들의 채무 그리고 농노 해방령의 약점을 모두 꿰고 있었다. 여기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이 과정에서의 뒷수습을 나에게 떠넘겼다.

-앞으로 수많은 농노들이 유배를 자처해 동시베리아로 향할 겁니다. 박 후작님께서는 이들을 거둬들여 대한제국에서 필요한 일에 배치해 주십시오.

더 이상 편지를 읽을 수 없었다. 특유의 악필 때문이 아니고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외교적 분쟁 사항을 처리해야 할 고난이 떠올라 머리가 더욱 들쑤셨기 때문이지!

“이놈의 빨갱이가 정신을 못 차리나? 차르의 백성 수십만 명이 아니고 수만 명만 보내도 내가 해야 변명해야 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대비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는 유배를 떠난 농노들이 멋대로 대한제국의 문을 두드려 망명을 택한 상황이다.

이 시대 국제적 관계로도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하물며 농노를 사람이 아닌 가축 정도로 취급하는 러시아 제국이라면 불편함을 넘어서서 외교력을 총동원해 압박을 가하겠지.

“가뜩이나 할 일이 터져 나오는데 이딴 식으로 나설 줄이야.”

청나라에서 불법 입국자가 터져 나오고 온갖 문제가 빗발칠 시기가 머지않았다. 이 외교적 분쟁도 수습하려면 꽤 힘들 것 같은데 러시아까지 끼어들면 내가 과로로 죽어버리겠지.

내가 자처한 일이면 모르겠는데 남이 떠넘겨 준 일에 치어 살 수는 없다. 일감을 줄이려면 이 농노들이 명목상으로는 러시아 영토에 잔존해야 한다.

“그냥 삼강평야 북부에서 소작 시키다가 동시베리아 공화국이라도 만들어 버리자. 어차피 털보가 쪼갤 나라인데 좀 더 쪼개보았자 뭐가 달라.”

이 빨갱이의 혁명을 도울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결국 돕는 꼴이 되었다.

어차피 러시아 제국은 각 지방별로 군소 국가로 쪼개진다. 털보의 계략으로 경제 구조가 시궁창이 되면 제대로 영토를 관리한 지방 귀족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대한제국이 통제할 수 있는 크기의 국가, 동부 시베리아와 캄차카 반도를 지배한 국가를 만들면 딱 적당할 것 같다.

이 업무는 외국과의 직접 협상이 아닌 간접적 전략이다. 효명제까지 올라갈 일이 아니고 태자 전하의 업무라 내용을 정리하여 접견을 요청하였다.

* * *

효명제는 태자의 경험 축적과 외교 역량 함양을 위해서 신기술이나 신품종 도입을 비롯한 자잘한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 검증 과정에서 딱히 문제를 겪은 적은 없었고.

각부 대신들은 태자가 다음 황제가 되더라도 별문제 없이 나라를 통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나 또한 이 의견에는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지나치게 신중한 감이 있지만 나쁘지는 않아.”

그는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언제나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의회 도입을 생각조차 못 하고 황권이 비대한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였다.

물론 그 신중함 때문에 일 처리가 늦어져서 문제이기는 하다. 태자의 답신대로 저녁까지 기다린 뒤 동궁에 따로 배정된 만찬장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국정에 대해 논의하려 하였다.

“어서 오시오. 외부대신께서 요즘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폐하께서 나라를 다스리고 계시니 제 일이 많다 하여도 자랑할 거리가 아니 되옵니다.”

효명제의 취향은 조선 시대를 반영하여 가급적 곤룡포를 착용하였다. 반면 태자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 문물을 접하여 양복을 입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대한제국은 양복을 입건 한복을 입건 국상(國喪)이나 각종 국가 행사와 같은 상황이 아닌 한 선택적으로 옷을 입을 수 있다.

태자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까딱거리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만찬장으로 향하며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요즘 있었던 일에 대해 논하였다.

“이번 만찬은 외부대신께서 꼭 먹어보았으면 하는 음식이 있어서 초대하였소이다.”

“제가 꼭 먹어보았으면 하는 음식이라니요?”

“요즘 들어서 북방 개척에 관심이 많지 않소. 거기에서 요긴하게 쓰일 짐승을 들여왔소.”

저녁 정찬은 한식을 나름 서양 코스 요리로 재해석한 방식이었다.

처음으로 홍합찜, 다음으로는 된장국 그리고 민어조림 순서로 바뀐 요리는 분명 한식인데도 서양 정찬을 먹는 느낌이 들기까지 하였다.

이 정도면 꽤 괜찮다. 식사를 즐길 무렵 태자가 청주를 한 잔 마시게 하고는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서양은 고기 요리를 두 번 먹지만 그리하면 대화를 논할 수 없을 것 같아 한 번으로 줄였소이다. 그럼 다음 고기 요리로 어떠한 요리가 나올지 알 수 있겠소?”

“북방에서 사용할 짐승을 사용한 요리라 사료되옵니다.”

“바로 보았소. 어서 해리(海狸) 구이를 들여오너라.”

해리라는 짐승이 있었나? 대체 어디서 무슨 짐승을 들여왔는지 감이 안 잡히는데 접시에 손바닥 크기의 스테이크가 담겨 나왔다.

분명 고기 요리라 하였는데 처음 보는 짐승이었다. 형상은 물방울을 닮았고 가운데에는 생선 뼈처럼 큼지막한 뼈가 있었다. 이 고기를 앞뒤로 양념을 하여 구워내었다.

“어서 드셔 보시오. 내가 한 번 맛을 보고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 나라에 들여오기로 결정한 고기올시다.”

“태자전하께서 그토록 권하시니 어찌 거부할 수 있겠사옵니까.”

뼈를 피해 한 점을 잘라 먹었는데 돼지고기에 버금가는 두툼한 지방과 탄력 넘치는 살코기가 있었다. 물론 맛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방이 풍부할 뿐 생선과 흡사한 식감에 돼지고기와 비교해도 특히 뛰어난 점이 없었다. 요리는 잘하였는데 이 정도면 돼지고기보다 좀 부족한 맛이다.

물론 태자가 주는 음식이니 의미가 있으리라. 스테이크를 다 먹고 독한 코냑을 마셔 입을 헹궈낸 태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질문을 하였다.

“맛이 어떻소?”

“태자전하께 송구한 말씀이옵니다만 기름진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하옵니다.”

“그러하면 이 고기의 정체를 알 수 있겠소?”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해 보았는데 이 고기의 정체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오히려 질문을 하였다.

“신이 알지 못하는 짐승의 고기이옵니다. 해리라는 짐승이 어떠한 생물이옵니까?”

“서양의 말로는 비버라 하는 짐승이오. 우리가 먹은 것은 그 짐승의 넓적한 꼬리 고기지.”

처음 접시에 담겨있을 때 물방울 형상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대체 이 고기를 왜 먹였나 하였는데 태자는 짓궂은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는 말하였다.

“얼마 전 농부대신과 협의를 보아 삼강습지, 조만간 이 나라에서 개척할 땅에 해리를 풀어놓기로 하였소이다. 해리라는 짐승은 나무를 짚이는 대로 쏠아 먹는 짐승이더군.”

“신이 알기로 해리는 자기 마음대로 나무를 갉아서 거대한 둑을 만들어내는 짐승이옵니다. 태자 전하께서 어찌하여 이 짐승을 이주시켰는지 궁금하옵나이다.”

“수많은 나무를 하루 종일 갉아 먹는 짐승이 꼭 필요하지 않겠소.”

틀린 말은 아니다. 삼강평야는 말이 평야이지 이 시기에는 습지와 거대한 숲이 우거진 지옥 같은 곳이다. 이곳을 개척하려면 20만 명이 일 년 내내 나무만 베어도 모자라다.

비버들은 이 과정에서 벌채를 돕는 짐승으로 활용되리라. 태자는 여기에 비버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가져오게 하고 이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여기에 가죽의 품질이 우수하고 몸에는 사향(麝香)과 흡사한 향이 나와서 더욱 쓸모가 있소.”

태자는 좋게 설명하였는데 먼 훗날의 일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수만 마리를 넘어서 백만 마리 단위로 불어난 비버가 거대한 댐을 만드는 몰골이.

그 비버들이 뇌를 파괴하는 초음파를 발사하는 대신 홍수를 만들어 내서 이재민을 양산할지도 모른다. 내 심각한 표정을 읽었는지 태자는 비버 가죽 모자를 돌려보내며 말하였다.

“내 여러모로 알아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오. 해리는 거대한 둑을 만들어내서 물을 가두어 두니 삼강습지를 평야로 개척하는 데 쓸모가 있을 것 같소.”

“하오나 수가 너무 불어나면 쓸모없는 둑이 많아질 것 같사옵니다.”

“그럴 때에는 둑을 적당히 부수면 되지 않겠소? 중요한 것은 나무를 벌채하고 조금이라도 평야를 넓히는 것이오.”

농부에서 연구해 본 일이니 알아서 하겠지. 생각해 보면 현대의 비버가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맹수가 모조리 전멸해 천적이 없어서이다.

호랑이와 곰이 우글거리는 삼강평야라면 비버의 번식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겠지. 태자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미 이천 마리의 해리를 삼강습지 일대에 풀어놓았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습지 한복판에 풀어놓았으니 어지간하면 습지 일대에서 번성할 것이오.”

“신은 먼 훗날 통나무집을 통째로 쏠아 먹는 해리가 생겨나는 것을 염려할 뿐이옵니다.”

“그때가 되면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그러면 노서아와 관련한 일이나 논해 봅시다.”

이제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현재 러시아 제국에서 벌어지는 일과 마르크스의 서신을 기반으로 하여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태자는 진하게 우려낸 우엉차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러시아 제국의 현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평가하였다.

“가렴주구(苛斂誅求) 그 자체로군. 하긴 이 대한도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여 최악의 치세로 치달아가고 있었소.”

“언젠가는 모순이 극에 달하여 뿌리째 뒤엎어질 나라이옵니다.”

“외부대신이 왜 노서아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였는지 알 수 있겠소. 어차피 망할 나라라 관여하지 않은 것이로군.”

반은 정답이다. 러시아에게 어설프게 손을 대서 두고두고 화근을 만드는 대신 먼 훗날 스스로 모순이 터질 때까지 내버려 두려는 생각이었지.

그 생각과 달리 털보가 사건을 터뜨려서 내 손이 바빠지게 되었다. 태자는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내 행동을 예측하여 실실 웃으며 말하였다.

“물론 이번 개혁이 성공으로 향하면 손을 댔을 것 같고. 노서아가 공업화에 성공하면 이 대한이 서역에 수출하는 물량을 잡아먹지 않겠소?”

“신이 손을 대기 전부터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었사옵니다.”

“이미 공업화는 실패하였으니 더는 논하지 않겠소. 결국 최소 십만 명 이상의 유민이 이 나라의 강역 인근까지 넘어와 망명을 청할 것이라.”

그 망명을 함부로 허가할 수 없어서 문제이다. 러시아가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이고 내부 모순이 터진다 하여도 거대한 제국임은 확실하다.

일부 망명자는 받아들여도 유민 전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이들의 국적을 러시아 제국으로 남겨둔 채 대한제국에서 사용하려는 우회 수단을 권고하였다.

“신은 이 유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노서아의 사람으로 남겨두기를 권고하옵니다. 다만 삼강습지 일대를 소작 형태로 배분하여 개척에 손을 더하게 하시옵소서.”

태자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한계선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태자가 유민을 아예 대한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거나 군사적 행동을 취하면 효명제에게 업무를 넘겨 버리는 꼴이다.

그는 한동안 내 의견을 확인하고 종이를 가져와 이런저런 사항에 대해서 적어나갔다. 그리고 삼강평야 개척과 관련한 여러 부서의 의견을 떠올리고 말하였다.

“내가 알기로 습지를 개척하기 위해 일본에서 이십 만 명의 젊은 인력을 충원하여 첫 개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 이 나라의 사람은 삼십여 만 명이 차후 개척을 위해 투자될 것이고.”

“그러하옵니다. 삼강습지에 얼마나 많은 농토가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사오나 토질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못하여 견줄 곳이 없사옵니다.”

“그 개척에 십만 명 이상이 투자되어도 나쁠 것은 없겠지. 다만 문제가 있소.”

태자는 대한제국의 군대와 포졸을 비롯한 치안 유지 병력을 계산한 표를 보여주었다. 행정력이 풍부한 대한제국도 5만 명 이상의 치안 유지 병력이 상시 유지되고 있었다.

이 계산에 의하면 삼강평야에서 복무해야 할 인원이 최소 만 명 정도가 배정되었다. 그는 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이 여럿 부대끼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법. 하물며 노서아에서 보내오는 유민 가운데 정말로 범죄를 일으켜 유배를 당한 범죄자도 있지 않겠소?”

“그러할 수도 있사옵니다. 하오나 노서아의 조정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대다수이옵나이다.”

“자고로 흉포한 성품을 지닌 범죄자 한 명이 뭇 백성 만 명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법. 내가 보기에는 일본인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어도 노서아 사람을 모두 믿을 수는 없소이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문제를 태자가 제대로 짚었다. 그 신중한 성품이 정책 수립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나서 감동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노서아의 유민들 가운데 정말로 흉포한 범죄자라 유배를 당한 사람이 있을 터.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병력을 충원할 예정이오.”

태자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우엉차를 모두 비우고는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삼강습지의 남부이자 얼마 전 대한의 강역이 된 쌍성자는 이미 군수공장이 지어질 예정이지 않소? 사관학교 분원을 설립하면 파병 명목도 되지 않겠소?”

“사관학교 분원이라 하셨사옵나이까? 병력만 파견하여도 될 일이옵나이다.”

“외부대신이 원하는 바인데 왜 그리 어색해 하시오. 내가 외부대신이라면 노서아의 내란을 확실히 일으키기 위하여 훈련된 병사들을 되돌려 보낼 것 같은데.”

생각은 해 두었는데 효명제에게 할 말이라 굳이 안 했을 뿐이다.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확정 짓고 동시베리아 공화국의 체제 정비를 위해 유민 중에 참전용사를 선별할 생각이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군사학을 이수시켜 러시아 제국으로 돌려보내면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겠지.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번 건은 아바마마의 재가(裁可)를 받아 이행하겠소. 그나저나 사관학교 분원을 만들어내었으니 생도 수십 명 정도는 보내야 할 것 같군.”

“자처해서 머나먼 쌍성자로 이동할 생도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사옵니다.”

“그러하면 가산점을 주면 되겠군. 졸업 시험이 제법 까다롭지 않소이까.”

이번 일은 내 손에서 벗어나 태자의 손으로 들어갔다. 내가 할 일이야 삼강평야 개척을 위한 인력을 일본에서 충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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