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48화 (231/345)

248화

21장 1화 일본의 백성

일본의 평범한 농민 가정의 청년 마에다는 새벽 해가 뜨기가 무섭게 뱃속에 밥을 욱여넣었다. 그 모습을 지금 막 일어난 아버지가 보면서 혀를 차고는 측은하게 말하였다.

“네가 공장에 다니느라 고생이 많구나. 광독(鑛毒) 때문에 몸이 상하지는 않더냐?”

“저는 채굴 담당이 아니고 가공 담당이라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광독 조심은 누구나 하지요.”

“그래도 네 몸은 네가 건사해야 한다. 네가 고꾸라지면 동생들이 널 어떻게 보겠느냐.”

“염려하지 마세요. 솔직히 말해 귀찮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어요.”

보리와 기장이 대부분이고 쌀은 별로 없는 밥을 대충 목으로 넘긴 마에다는 배를 쓰다듬으며 일터로 향하였다. 그가 근무하는 공장은 자칭 최첨단 시설을 갖춘 광업 공장이었다.

-어서 들어오시오! 새벽 여섯 시 출근시간이 오 분밖에 안 남았소!

도야마 현의 진즈 강 유역에 설치된 카도미아(カドミア) 공장이 그의 일터였다.

1855년 말에 새로 설립된 공장은 작년 시험 가동을 거치고 1857년 3월이 되자 완전히 가동되고 있었다.

마에다는 다른 인부들과 같이 출석 명부에 이름을 적고 서둘러 탈의실로 향하였다. 그가 탈의실로 들어가자마자 그와 형동생 하며 지내는 고토가 작업복을 건네주었다.

“네가 입을 작업복 미리 챙겼다!”

“역시 고토 형님이라니까! 고맙습니다!”

고토가 건넨 작업복의 안감을 확인한 마에다는 생각보다 깨끗한 상태에 미소를 지었다. 이미 작업복을 다 입은 고토는 그의 등을 후려치며 일터로 향했다.

“나중에 네가 좀 빨리 출근해서 작업복 좀 챙겨 놔라. 예전처럼 궁둥짝에 완선(頑癬) 생기는 꼴을 보느니 좀 일찍 일어나고 말지.”

마에다는 옷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작업복을 착용하였다. 내부 재질은 질긴 삼베에 바깥 재질은 두툼한 고무로 구성된 이중 작업복이었다.

작업복 내부에서 올라오는 쉰내와 풀 냄새 그리고 땀 냄새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나마도 작업복이 멀쩡한 물건이라 다행이지 더 심각한 상태의 물건도 있었다.

“아……. 관리자님! 이거 속에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입는다고 안 죽어! 나중에 교체할 테니 광독을 막게 꼭 입으라고!”

공장주는 이 작업복을 입어야 광독을 제대로 차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더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속에 곰팡이가 피어난 작업복을 입고 울상을 지었다.

3월의 서늘한 날씨에도 벌써부터 온몸에 열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 있는 고토는 이마에 한 줄기 올라온 땀을 닦으며 말하였다.

“이놈의 옷 입고 여름에는 어떻게 일하지?”

“가토 형님은 여름에 휴업하는 공장에서 일하실까 봐 걱정하십니까?”

“네 말이 일리가 있어. 이런 옷을 입으면 여름에는 속에서 쪄 죽을 테니 휴업하겠지.”

근로자들은 시커먼 고무 옷을 입고 장화와 장갑까지 착용하였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관리자들이 안쪽에서 커다란 관이 달린 두툼한 마스크를 가져왔다.

“오늘도 힘내봅시다. 형님.”

“너는 힘 좀 빼라. 장갑 찢어먹고 배상금 내놓는 꼴 또 보기는 싫다.”

공장의 생산물은 네 단계에 걸쳐 제련되고 있다. 가장 먼저 아연 광맥을 캐내 아연과 잡다한 광석을 분류한다. 다음 단계는 아연 주괴의 제련이었다.

세 번째 공정은 아연을 먼저 분류하는 과정이었다. 바로 네 번째 공정이 정제되고 남은 찌꺼기에서 카드뮴을 분류하는 과정이었다.

밀폐된 작업복 내부의 산소가 희박해질 무렵 마스크의 관에서 공기가 밀려들어 왔다. 마에다는 양 뺨 방향으로 유입된 공기가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좌석에 앉았다.

“카드뮴 들어온다! 다들 공정 시작하도록!”

모두가 작은 망치를 들고 찌꺼기를 쪼개 덩어리를 잘게 부수었다. 치명적인 분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나 고무 옷과 마스크에 막혀 유입되지 않았다.

“이게 뭐 그리 위험하다고. 그리고 그토록 위험하면 왜 쓰는데.”

마에다는 온몸에서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로 카드뮴을 빻고 공정을 거쳐 불순물을 분리하였다.

두툼한 마스크로 시야가 비좁아졌으나 마에다를 비롯한 인부들은 카드뮴을 계속 분리하였다. 모두 숙련도가 높아져 통 하나 분량의 카드뮴을 분리하고 다음 통을 준비하였다.

어느새 마에다의 입이 마르고 수분 부족으로 눈이 충혈되었다. 엉덩이부터 하반신 전체가 땀으로 절어 축축하다 못해 미끈거리기 시작하였다.

“다른 공장은 쉴 수 있다면서! 여기는 왜 못 쉬는데!”

일본의 공장 직원들은 2시간마다 15분의 휴식이 주어진다. 반면 카드뮴 정제는 주변을 오염시킬 수 있어 특별 노동법이 제정되었다.

이들은 4시간 30분 동안 연속으로 작업을 실시할 의무가 있었다. 대부분의 인부가 두 통이 조금 넘는 카드뮴을 추출할 무렵 종이 울리고 교대 신호가 떨어졌다.

-교대! 교대! 다들 나와서 작업복부터 씻도록!

“아이고 이제야 지옥에서 벗어나는군!”

“그럼 뭘 해, 식사 마치면 또 교대작업이 기다리고 있는데.”

30명에 달하는 인부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금속제 통에 담긴 카드뮴 분말을 밀봉하고 한 구석에 정돈하였다. 그리고 출구로 향하여 줄을 서서 대기하였다.

이 공장은 카드뮴의 유출을 막기 위해 퇴장조차도 특수한 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마에다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고는 펌프로 공기를 공급하던 관을 분리하고 마개로 관과 호흡 구멍을 틀어막은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카드뮴 가루를 퍼트리지 않도록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세척용 방이었다. 방에 들어간 그는 팔다리를 벌리고 물을 맞으면서 온몸을 구석구석 닦고 또 닦아댔다.

-이 정도면 충분해! 퇴장!

영국인 공장 관리자가 신호를 보내자 출구의 문이 열렸다. 온몸을 허우적거리던 마에다는 밖으로 나와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심호흡을 하였다.

“아이고 이제야 살 것 같다!”

수분 보충용 소금물을 잔뜩 들이켠 마에다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촉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가 고무로 된 작업복을 벗자마자 땀이 질질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마에다를 비롯한 사람들은 작업복을 들고 몸을 씻으러 샤워실로 들어갔다.

모두가 비릿한 풀냄새가 나는 유대비누, 일본인들이 벌초 비누라 부르는 물건을 지급받았다. 마에다는 이 비누를 들고 중얼거렸다.

“풀 냄새가 싫다고 안 씻는 놈들 때문에 작업복에 곰팡이가 피었을 거야. 공짜면 맘대로 써야지!”

유대인들이 만들어 내는 목화씨 비누는 이미 일본에 수출되어 공장 같은 곳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물론 질도 좋지 않고 악취에 가까운 목화씨의 향이 진동하였다. 공장 측에서도 비싼 비누 대신 싸구려를 지급하고 생색을 내는 꼴이었다.

그래도 마에다 입장에서는 안 씻는 것보다는 나았다. 몸에 물을 끼얹자 저절로 소름이 돋아 올라왔다.

다음으로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작업복 안팎에도 비누를 아낌없이 바른 다음 미적지근한 물통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몸을 헹궜다.

“그나마 물이 미적지근해서 다행이지. 이 물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이 시기에 강물에 들어가면 손발이 에이고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댈 정도로 고생을 하였으리라. 반면 물통에 담긴 물은 적당히 미적지근한 수준이었다.

그가 물통에서 작업복을 재차 헹구자 아는 사람이 친근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였다.

“듣자 하니 증기기관이라는 기물의 열을 쓴다던데?”

“증기기관요? 목탄을 잡아먹고 콧김을 뿜는 요괴 말입니까?”

“영국인도 반쯤은 요괴 아닌가. 요괴가 요괴를 다루는 것이 뭐 이상하다고.”

아는 동네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작업을 마치고 먼저 빠져나갔다. 마에다 또한 그의 뒤를 이어 깨끗한 물로 마지막으로 몸을 씻었다.

인부들은 세척이 끝난 작업복을 거꾸로 뒤집어 물기를 빼놓고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모두가 가혹한 작업으로 허기가 지다 못하여 쇠도 씹어 먹을 기세였다. 마에다는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알아서 식단을 확인하고 콧노래를 불렀다.

“이야, 평소에는 계란찜이라고 물을 잔뜩 섞어 쪄주더니만 오늘은 흰 쌀밥에, 톤지루(돼지고기 된장국)에, 그리고 계란 부침이라고? 무슨 날인가?”

“오늘 교토의 가쿠슈인 총장께서 시찰을 오시잖아.”

“아. 조선에서 건너온 귀족 양반 말이야?”

공장 노동자들의 반찬은 대부분 채소 절임, 생선 요리, 된장국이나 각종 장국 그리고 생색을 내려고 약간씩 지급하는 고기나 계란이 나왔다.

이것만 해도 먹기 나쁘지 않은데 아예 진수성찬이 나왔다. 마에다가 흰 쌀로 지은 밥을 잔뜩 퍼서 자리에 앉자 시찰을 온 이하응이 그 모습을 슬쩍 확인하였다.

“총장님 덕분에 밥을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마에다의 인사를 받은 이하응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 익숙한 일본어로 답해주었다.

“식기 전에 어서 들도록 하게. 교대 작업도 있지 않나.”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에다는 진하게 우려낸 된장국 속의 돼지고기를 한 입 먹고 밥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고기를 처음 먹었을 때에는 입에도 못 댔는데 이제는 식성이 변하여 고기를 먹는 것이 즐거웠다.

예전이라면 명절에 온 가족이 나눠 먹었을 계란도 한 알이 온전히 부침개로 나왔다. 여기에 소금에 절인 연어 한 토막까지 합쳐지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인부들은 모두 식사를 마치고 잠시 볕을 쬐면서 몸을 말렸다. 어느새 마에다의 옆에 앉은 고토는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다음 작업에 대해 말하였다.

“어으! 배부르다. 오늘은 발길질 좀 제대로 하겠는데.”

“형은 역차 밟다가 고꾸라지는 거 아니야?

“그럼 뭐 고꾸라지고 말지!”

공장은 2교대로 운영되었고 마에다에게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공장 한구석에는 내부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공기를 공급하기 위한 설비가 있었다.

영국에서 가져온 거대한 트레드밀(Treadmill)이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전 내내 상반신을 호되게 사용한 인부들은 손잡이를 잡고 구령에 맞추어 발을 놀렸다.

그 압력에 자연스럽게 허벅지가 아려왔다. 그러던 중 에도로 올라가 여러 문물을 보고 온 친구가 땀을 흘리며 이 기구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거 영길리에서는 형벌 도구였다던데.”

“형벌 도구? 진짜야?”

“진짜라니까? 내가 알기로 죄수들을 앉혀놓고 하루 종일 굴리게 시켰대.”

작업자들 모두가 자신이 트레드밀을 보며 눈을 굴렸다. 4시간 30분 내내 밟으면 온몸이 고문을 당한 기분이었는데 진짜 고문 도구가 맞았다.

모두가 일본어를 아는 영국인 감독관에게 시선을 굴렸다. 그러자 감독관은 얼굴을 붉히며 괜히 목소리를 높여 지시를 하달했다.

“속도가 느리다! 밟아!”

“거봐, 맞는 것 같아.”

“세상에 이 흉악한 놈들. 차라리 덮어놓고 두들겨 팰 것이지…….”

“세상의 흉악한 물건은 모두 영길리에서 만드는 것 같다니까?”

사람들은 영국의 혐오스러운 면모를 하나하나 찾아내며 비꼬아댔다. 그 모습을 본 감독관은 괜히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계속 밟으라고 지시를 하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4시간 30분이 지나고 퇴근이 다가왔다. 출근일수를 제대로 채운 작업자들은 퇴근하기 전 파김치가 된 몰골로 급료를 받아갔다.

“마에다, 봉급으로 금화 두 닢에 은화 두 냥이다.”

“감사합니다!”

마에다는 기쁜 마음으로 안주머니에 봉급을 넣고 양다리를 후들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뼈 빠지게 일해야 얻을 수 있던 금화가 이제는 흔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유지는 할 수 있되 먼 훗날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땅 한 정보(町步 = 약 1만 제곱미터)만 사들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구할 데가 있나.”

아직도 부업을 하는 동생과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버지가 말하길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대에는 자식을 딱 둘만 낳아 잘 기르는 것이 풍습이라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는다. 딸은 시집을 보내고 아들은 가업을 이어 가게를 그대로 물려받거나 땅을 그대로 물려받아 또다시 아들과 딸을 낳는다.

그러나 마에다의 대에는 이 규칙을 어기고 자식이 넷이 되었다. 마비키라는 악습, 자식을 단둘만 남기고 죽이는 악습이 대한제국의 곡식 지원에 의해 중단된 결과물이었다.

결국 재산 분배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마에다가 이 생각을 할 무렵 아버지가 오늘도 동생 둘과 같이 보리농사를 짓고 돌아왔다.

“마에다 왔느냐. 이 아버지랑 이야기 좀 하자.”

방 안에 등잔을 밝힌 마에다는 아버지의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에다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너도 올해 열여섯이다. 이제 장가를 가야 하는데 형편을 알고 있지 않느냐.”

“알고 있습니다. 동생들의 배가 커져서 제가 버는 돈을 감안해도 재산을 모을 수 없지요.”

“그래서 말이다. 에도에 공장이 많이 생겨난다 하던데 동생들을 취직시키면 어떻겠느냐.”

마에다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장가를 가려면 누군가가 입을 줄이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동생을 보내려 하였다.

“아니라면 조선에 이주시켜서 경작을 시킬 수도 있고.”

“이제 열둘에 불과한 동생을 그 험한 곳에 이주시킨다니요!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농촌에 퍼진 소문이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비옥한 토지를 찾아냈는데 습지에 삼림이 어우러져서 개간하기가 너무 힘든 장소라 하였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도 개간 목적으로 이주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험한 오지에 동생들이 가게 생긴 꼴이라 마에다는 가슴을 탕탕 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였다.

“저는 공장에서 일 년 가까이 일 한 사람입니다. 제가 가면 개간을 어느 정도 하다 대한의 공장에 취직하고 기술을 더 배워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럼 결혼은 어찌할 거냐. 그런 험한 곳에 말이 통하는 며느리감이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아십니까? 대한 처녀와 혼사를 치러 돈을 잔뜩 벌고 돌아올 수도 있죠!”

마에다는 아버지의 눈을 살펴보았다. 그 안에는 장남을 머나먼 이국에 취직시키는 설움과 입이 줄어서 생기는 안도감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마에다에게는 꿈이 있었다. 더 이상 흙을 파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찾을 꿈이.

자신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대한제국의 말만 배우면 공장에 취직하여 더 많은 돈을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아마 내일까지 공장에 머무를 이하응에게 찾아가 질문을 하고 확답을 들어보려 하였다. 이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밤늦게 길거리로 몰려나왔다.

한편 이하응은 해가 저물어 갈 무렵에도 공장을 시찰하였다. 그는 광부들을 인솔하는 유장손을 비롯한 기술자들 모두에게 카드뮴 중독 검사를 하였다.

“중독 증상은 없는 것 같군. 혹여나 오한, 두통, 구토 그리고 설사가 계속 나오면 반드시 검사를 받도록 하게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기술자 대표로 유장손이 보고를 올리자 이하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조일준의 조언을 들어 개조한 공장은 작업자들에 한정하여 안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이 생각보다 제대로 돌아가는군요.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이하응의 평가를 확인한 공장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안전한’ 공장과 조일준의 제자로서 배운 이하응의 ‘안전한’ 공장은 수준이 달랐다.

두툼한 마스크 대신 아예 잠수복을 응용한 기구를 요청한 사람이 이하응이었다. 여기에 사방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방을 원한 것도 이하응이었다.

그는 아무리 일본인이라 하여도 같은 사람이며, 사람으로서 안전하게 일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이하응은 고개를 돌려 공장 뒤편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카드뮴 최종 처리공정은 잘 가동되고 있습니까?”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총장님의 말씀대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영국이라면 마음대로 방류할 폐수와 찌꺼기조차 마음대로 방류하지 못하게 하였다. 공장 뒤쪽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 연못이 6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이하응은 예전보다 맑아진 물을 확인하고 흥미로운 듯이 바라보았다.

“첫 폐수가 예전보다 훨씬 맑아진 것 같습니다?”

“저희가 꾀를 좀 써봤습니다. 바로 미꾸라지와 장어를 응용하는 것이지요.”

“아. 미꾸라지의 분비액이 부유물을 응고시키는 효과가 있었지.”

6개의 연못은 각기 3개씩 교대로 가동되었다.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를 최대한 걸러내고 카드뮴 찌꺼기를 가라앉혀 광독으로 인한 피해를 막아내려 하였다.

연못을 하나씩 거칠수록 앙금이 줄어들고 물이 맑아졌다. 마지막 세 번째 연못을 거친 물은 강으로 향하기 전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연못으로 합류하였다.

그곳에는 빼곡하게 부들이 자라고 있었다. 공장장은 막 자라나기 시작한 부들을 하나 뽑아내 상태를 확인하고 말하였다.

“부들이 생각보다 잘 자라서 다행이로군요. 이 연못을 거치면 이론상 카드뮴이 공장 배출량의 백분의 일 이하로 감소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도 언제나 범람에는 조심하셔야지요. 여름철에 공장 가동을 꼭 중단해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오늘도 사람이 오는군요.”

도쿄에서 올라온 처리업자는 거대한 수레에서 통을 내려놓고 연못에 가라앉은 슬러지를 조심스럽게 퍼냈다. 공장장은 휘파람을 불며 이하응에게 말하였다.

“마지막 슬러지는 애매한 곳에 매립하는 대신 바다에 방류하게 하였습니다. 카드뮴의 독성을 생각하면 이 정도 조처는 취해야 마땅하지요.”

이하응은 거대한 통에 담겨 바다로 향하는 카드뮴 슬러지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공장장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하였다.

“사람이 일에 익숙해지면 다른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며 주기적으로 고용 계약을 갱신하여 경각심을 더욱 북돋워 주십시오.”

“고견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하응은 시찰을 마치고 교토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가 막 마차에 오를 무렵 마에다를 비롯한 스무 명의 청년들이 마차 앞에서 인사를 올렸다.

“대한에서 건너오신 귀족 어르신께 청할 것이 있습니다!”

이하응은 마차에 오르지 않고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박현상이 서신을 통해 전한 대로 일본에서 삼강 습지를 개척하기 위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하응의 설명 끝에 한 달이 지나고 인근에서 일하던 청년 중 백오십여 명이 대한제국으로의 이민을 택하였다. 이는 삼강평야 개척의 신호탄과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