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70화 (240/345)

270화

22장 4화 권한과 의무(2)

순조와의 면담을 위해 전기 사륜차를 조립하였다. 이미 한양에서 몇 번의 시험을 거친 전기 사륜차는 몇 번의 개수를 통하여 좀 더 쓸 만한 물건이 되었다.

“이제는 걷는 속도보다는 빠르긴 하군.”

전체적인 구조 강화로 무게가 줄어들기는 하였다. 결과적으로 좀 더 배터리 효율이 좋고 날렵한 어가가 된 것이 전부이지만 이게 어디인가.

순조가 어디 머무르는지 몰라서 동티단을 통해 찾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저 멀리서 옛 방식의 가마가 다가오고 가마 안에서 순조가 불쑥 내려왔다.

“태상황 폐하 납시오!”

“박 후작이 방문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오래간만에 보아서 참으로 기쁘구나.”

순조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예전에는 사방을 돌아다니느라 볕에 얼굴이 익었는데 이제는 새하얀 얼굴로 돌아왔다.

허리가 아픈지 지팡이를 짚었으며 옆에 부축하기 위한 듬직한 병사 두 명이 함께하였고. 순조는 지팡이를 짚은 채 내가 가져온 전기 사륜차를 확인하고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짓고 말하였다.

“백성을 위해 헐어버린 어가 대신에 새 어가를 준비하였구나.”

“실로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백성을 위해 어가를 훼손하였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가슴이 철렁였는지 아직도 당시의 일이 떠오를 지경이옵나이다.”

“어가 한 대를 헐어서 백성 천 명을 먹여 살릴 물건을 만들어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순조는 새 어가를 쓰다듬고는 지팡이를 짚은 채 주변을 돌아다니며 물건의 상세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손짓을 하여 운전수를 불러 차에 탑승하였다.

정확히는 탑승하려 하였다. 몇 번이고 높은 차체에 오르려다가 낭패를 보고 운전수가 손을 잡아주어 가까스로 오를 수 있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구나. 이러니 어가가 필요한 법 아니겠는가?”

정정하던 순조도 일흔이 다 되자 늙은 몸을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명을 내려 사륜차를 타고 주변을 돌아다니던 순조는 손짓을 해서 날 부르더니 명령을 내렸다.

“박 후작, 자네와 논할 것이 있으니 행궁(行宮) 터에 잠시 다녀오도록 하세나.”

“행궁이라 하셨사옵나이까?”

“내가 여기에 머무르다 보니 궁궐이 하나 필요하더군. 그리 큰 행궁은 아니야.”

말에 올라 순조의 뒤를 따라 별궁으로 향했다. 산기슭을 적당히 다듬어 낸 궁궐은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이미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까지 있었다.

완공된 건물은 벽돌로 지은 임시 정전(正殿)과 신하들이 머무를 건물 몇 개였다. 아예 전기 자동차 전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순조는 궁궐의 모습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여기가 새로 짓는 별궁이지. 명칭이야 완공된 다음 현판과 함께 수여하면 될 것 같군.”

“터가 좋고 산바람이 불어내려 더위를 피하기에 아주 좋을 것 같사옵니다.”

“추운 겨울이라면 몰라도 더운 여름에는 여기보다 머물기 좋은 곳이 없더군. 당연히 이 행궁에서 겨울을 지낼 생각은 하지도 말게나.”

대한제국의 여름 궁전은 요동의 심양고궁이 있다. 다만 이 궁궐은 너무나 안 좋은 인상, 조-청 전쟁에서 분변에 범벅된 사진까지 찍혀서 다들 머무르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여름궁전을 짓고 있었다.

순조는 자신이 명을 내려 한창 건설되고 있는 행궁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설명하였다.

“저곳은 진정으로 쓰일 정전이 들어설 자리, 이곳은 금군이 머무를 자리이며…….”

한참의 설명이 끝나고 순조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저 멀리 있는 산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행궁을 하나 더 지으려 했는데 차라리 다른 지역에 짓기 편하도록 욕심을 줄였노라.”

“경복궁 같은 궁궐도 아닌 외지의 행궁이니 별문제가 없사옵니다. 하온데 궁궐을 짓는 일에 사용할 목재가 너무 많은 것 같사옵니다.”

순조가 건설하는 행궁은 그가 오랜 세월을 함께한 궁궐, 창덕궁과 흡사한 크기였다. 물론 산림이 많이 훼손된 조선과 달리 이 지역은 나무가 너무 많아서 더욱 크고 웅장하다.

전체적으로 크고 든든한 나무를 많이 사용해서 건물의 규모가 커졌다. 하나같이 당시 한반도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아름드리 참나무만 고르고 고른 것이 분명하고.

그래도 재목이 너무 많다. 대충 눈으로 훑어보아도 막 공사가 시작된 현장에 최소 일만여 그루 이상의 목재가 쌓여 있고 주변에도 그 정도는 쌓여 있는 것 같다.

“나무가 많다 하였느냐? 앞으로 더 많이 사들일 것인데 무엇이 문제더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데 순조는 나무를 더 사들인다고 하였다. 그러면 행궁을 모조리 통나무로 지어도 남을 수준인데 말이 안 된다.

“더 많은 목재를 사들인다고 하셨사옵나이까?”

“쌍성자에 이주한 백성들과 일본인들 그리고 노서아의 사람들이 지금 무얼 하는지 아는가? 해리(비버)와 함께 숲을 없애고 농토를 일구어내고 있다.”

지름이 거의 1m에 달하는 거대한 참나무를 보니 순조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이런 나무 한 그루를 자르는데 장정 몇 명이 필요할까.

여기에 나무의 가공과 운반을 감안하면 얼마나 고된 작업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 순조가 개입하여 넘쳐나는 나무를 궁궐을 지을 명목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태상황께서 명을 내리시어 쓸 만한 재목을 비싼 가격에 사들이고 계시옵나이까?”

“바로 보았다. 모두가 나무를 베는데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하였지. 자고로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과 아무 관심 없이 자리만 지키는 것은 다르지 않더냐?”

순조는 열정을 다 잃어버리고 그저 권좌를 지킨 전적이 있어서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막 가공되어 들기름을 먹이는 과정을 거친 기둥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주 튼실한 목재를 은자 다섯 냥에, 그럭저럭 쓸 만한 재목은 은자 한 냥에 사들이지. 그 명령을 내리자마자 어떤 말이 나왔는지 아느냐?”

“사람들이 숲속으로 들어가 쓸 만한 재목만 찾다가 범에게 습격을 당했을 것 같사옵니다.”

“역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나. 그리하여 마을마다 조를 이루어 같이 벌목을 실시하게 하였다. 그러니 서로 화합하고 변고도 덜 일어나더구나.”

“태상황 폐하께서 혜안을 드러내 백성들을 구제하셨사옵니다.”

과장된 칭찬이 아니다. 자기 재산을 털어서 궁궐도 짓고 그 과정에서 돈도 뿌려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경제 순환에 참가하게 여러 배려를 해주었다.

내 칭찬을 들은 순조는 주변을 돌아보려다가 무릎이 아픈지 지팡이에 의지하여 탁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무릎을 두드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잘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제 종심(從心)이 다가오니 몸이 슬슬 말을 듣지 아니하는구나. 영종(영조)대왕께서는 여든의 몸에도 정정하셨는데 내가 이리도 빨리 쇠할 줄이야.”

“아니옵나이다. 찬바람을 쐬어서 잠시 불편해진 것에 불과하옵나이다.”

“그리 볼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이 북방에 직접 방문하였다면 논할 것이 있는 것 같구나.”

나 같은 대신 정도가 되면 선물을 직접 전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내 방문 목적이 순조와의 면담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순조의 뒤를 따라 임시 정전의 별실로 향하였다. 시종들이 방 밖으로 나가자 순조는 궁금한 듯이 눈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별실은 창과 벽이 튼튼해 어지간한 사람은 대화를 듣지도 못하는 장소이다. 혹여나 내가 큰 실책을 저질러서 이에 대한 대처를 논하러 왔는가?”

“실책은 아니오나 민감한 사안이 얽혀 있사옵니다.”

“노서아의 이주민과 관련된 사항이겠지.”

순조 본인도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 러시아 이주민의 동티단 가입도 다른 나라의 사설 단체 가입이라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수준이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군대에 입대하면 외교적 문책을 넘어서서 약점을 잡히는 수준이다.

이 사실을 명시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이야기하였다.

“태상황 폐하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는 잘못된 일이옵나이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은 오히려 노서아에서 권고할 수 있는 일이나 군문에 발을 들이면 지극한 결례이옵니다.”

“얼마나 지극한 결례인가?”

“자칫 잘못하면 노서아와의 전쟁을 불사할 수도 있사옵니다. 신이 그러한 일은 막을 것이오나 막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일 아니옵나이까.”

“나도 안 좋은 일이라 판단하였지만 이주민의 뜻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노서아의 사람들을 교화하려 사력을 다하였지만 이들이 너무나 가혹한 일을 겪어 성품이 난폭해졌지.”

순조는 지금까지 ‘교화’를 실시하며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순조가 불러온 천여 명의 옛 유생들이 사람을 가르치면서 들은 이야기가 오히려 이들을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유생들이 오히려 진노하여 사람들의 입대를 독촉하였다니요?”

“서학의 분파를 믿으며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자신의 병사를 핍박하더구나. 심지어 간신배를 끼고돌며 옹호하는 나라가 노서아가 아니더냐.”

그게 러시아이기는 하다. 여기에 시베리아를 건너오며 악다구니가 가득 들어찬 사람들이라 당장 차르를 찢어발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으리라.

가르치던 사람들도 분노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만 말하였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진노로 숨이 가빠왔는데 현장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유학자들이 후견인이 되어 사병(私兵)을 만들 기세기에 내가 막게 되었다.”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다만 후견인이 폐하가 되면 사병이 창설되는 것을 막을 뿐이지 더욱 크나큰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는 것과 같사옵니다.”

“어찌 방도는 없겠는가?”

처음에는 러시아 이주민의 정규군 가입만큼은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가입을 막아버리면 사병화가 진행되고 멋대로 일대를 휩쓸고 다닐지도 모른다.

결국 러시아에게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만들어 둬야겠다. 지금 협의 단계에 불과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핑곗거리로 삼으면 괜찮을 것 같다.

“하오면 노서아의 이주민들을 훈련시키는 명목을 시베리아 횡단열차 선로 일대의 도적 소탕이라 변명하겠사옵나이다. 그 정도면 변란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눈을 가릴 것이옵니다.”

“괜찮은 방안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열차의 종착역은 노서아로 향할 터, 아예 이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길로 삼으면 괜찮을 것 같구나.”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몇 년은 먹힐 변명이다. 아마 청나라와의 전쟁이 끝나고 경험을 축적한 러시아 이주민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만 먹힐 변명이고.

“그러하면 내가 교화한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역성혁명을 일으킬 것 같구나.”

“더욱 흉험한 일을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모든 귀족과 호족을 평민으로 끌어내리고 노서아의 군주를 새장 안에 가둬둔 새처럼 궁궐에서 사육할 생각이지요.”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자들이다. 오히려 후손을 남겨서 대를 이을 수 있으면 나은 편이지.”

이런 발언이 나올 지경이면 순조도 러시아에 대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이리라. 그러면서도 순조는 손뼉을 가볍게 치면서 말하였다.

“내가 가르친 사람들이 노서아를 올바른 나라로 만들어내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 그 일을 모두 지켜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울 뿐이구나.”

순조는 조선시대에 떨어져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정정한 모습이었다. 몸은 다 늙어버린 노인이 되었지만 아무런 의욕이 없는 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열정적인 눈빛을 보였다.

그 열정과 반대로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리라.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질문을 하였다.

“청나라와의 변란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더구나. 언제쯤 일어날 것 같은가?”

“신의 능력을 너무 믿지 마시옵소서. 신은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뿐 청나라의 심중을 꿰뚫어 볼 방법이 없는 사람이옵나이다.”

“내가 박현상 자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호적에 입적시킨 것은 잊었는가? 내가 아는 박현상이라면 아마도 가장 유리한 시기에 변란을 일으킬 것 같구나.”

순조는 나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이 나라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여러 권한을 쥐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의무를 다한 행동을 보아서 신임하는 것이다.

물론 사리사욕 정도야 조금 챙겼지만 그조차도 국익에 딱히 해를 불러오지는 않았지. 순조의 생각대로 대한제국이 가장 유리한 시기에 청나라를 자극할 생각이고.

어찌 대답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였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태상황 순조의 말이고 나를 신뢰해서 물어보는 요청이기에 답을 해주었다.

“내년 말엽에 청나라의 내부를 뒤흔들 생각입니다. 아마도 내후년 초, 서력으로 1860년 3월경에 변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옵나이다.”

“옛 병법에 의하면 농사를 시작할 무렵인 봄에 변란을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다 하였다. 다만 이 나라는 이미 많은 곡식을 비축하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구나.”

순조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내부를 뒤흔들 방법, 변란을 일으킨 이후의 대처 방법. 그리고 최종적인 해결책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니 순조는 수염을 쓰다듬고 말하였다.

“이겨놓을 판을 짜 놓고 내부를 뒤 흔들어 변란을 일으킨다. 역시 박현상이로다.”

“신이 여러 해 동안 꾀를 모으고 모아서 내놓은 대책일 뿐이옵나이다.”

“그런 대책이야말로 자네의 장기 중 하나이지.”

순조는 내가 이야기한 정보를 되새기듯이 혼잣말을 하였다. 홍수전이 준비하는 역성혁명, 날이 갈수록 부패하는 와중에 늘어나는 청나라의 군사적 역량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고는 한숨을 내쉰 다음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시늉을 하였다.

“신의 손을 잡으시옵소서.”

“이제는 동티단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도 없겠군.”

몸을 일으킨 순조는 지팡이를 짚어가며 후원으로 향하였다. 그러고는 궁궐 공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상대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참으로 훌륭하군. 더군다나 객가와 한족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건너온 화교들을 갈라놓는 방법 또한 걸작이나 마찬가지이지.”

“신이 여러 사람과 논의하여 생각한 방법이옵나이다.”

순조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일준이가 함께 있었다면 있을 내 왼쪽을 바라본 다음에 칭찬을 시작하였다.

“능력이 있는 자는 나라의 중책을 담당하기 마련, 중책을 담당하면 자연스럽게 의무를 짊어지고 많은 권한을 휘두르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 권한을 다루고 싶어 안달이 나기 마련이지.”

순조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의무를 다하며 권한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권한에 취하면 간신배요 역적이고, 권한을 적재적소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으로 활용하면 충신이며 능신이지.

순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내가 자네와 조일준 둘을 거둬들인 것은 그저 동정심에서 시작하였지. 이토록 걸물일 줄은 꿈도 꾸지 못하였어. 걸물도 아닌 명재상과 학자이지.”

그 말을 마친 순조는 저녁이 다 되어 불어오는 싸늘한 산바람에 몸서리를 친 다음 말하였다.

“솔직히 말해 자네들에게 휘둘린 감도 없지 않아 있건만. 그래도 자네들이 욕심을 덜 부려서 아주 고마운 일이야.”

“그토록 신을 믿어주시니 신하 된 자로서 어찌 힘을 함부로 휘두르겠나이까.”

“옳은 말이군. 그나저나 청나라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은 너무나 비참하고 끔찍할 것 같아 염려될 뿐이네.”

순조는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는 대목장을 바라보았다. 그 대목장은 다시 공사를 담당하는 군관에게 주의를 듣고 일터로 달려갔다.

“이 모든 것은 홍수전이라는 신하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준 청나라 조정 탓이지. 그 영웅약이라는 극약으로 인해 조정이 무너지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나.”

“북경에서 학살이 벌어질 것이옵나이다.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순조는 내 말을 듣고는 한참 동안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겪은 옛 전쟁, 조-청 전쟁을 떠올리듯이 눈을 질끈 감은 다음 말하였다.

“이 나라의 백성은 몰라도 청나라의 민초(民草)들은 온갖 고통을 겪고 있네. 여력이 남는다면 청나라가 무너지고 생겨날 새 나라가 백성을 위한 나라가 되게 노력해보게.”

“신이 얼마나 살아갈지는 모르는 일이오나 이를 위하여 노력해 보겠사옵나이다.”

“그러하면 되었어. 자네가 이 머나먼 쌍성자까지 방문하여 내 마음이 놓이는군.”

순조는 내 손을 맞잡고 부탁을 하듯이 청하였다. 고리타분한 조선시대에서 의무에 짓눌려 아무런 의욕 없이 살아가던 왕은 이토록 많은 변화를 거쳤다.

이제 태상황의 자리에서 온 세상의 백성들을 지켜보는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현명한 태상황을 모시게 된 신하이자 미래에서 온 사람으로서, 그의 바람을 이룩해야 하리라.

일단 청나라를 쪼개고 보자, 그다음에 독재자가 없는 중국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꿈을 이룩하도록 노력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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