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22장 9화 수레바퀴(4)
아파치 부족의 마을이었던 장소는 암염과 피 그리고 타다 남은 재가 뒤섞인 흉물로 변해버렸다. 생존자 중 장정이라고는 셔먼을 위해 따로 준비한 열 명이 전부였다.
남은 사람들은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은 파괴에 어떠한 용기도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런 생존자들에게 셔먼이 다가와서 품평을 하듯 몸을 살펴보았다.
“사지가 멀쩡하니 벌판을 잘 뛰어갈 것 같군.”
“참모 양반, 우리가 누구인데 표적에게 상처를 입히겠나?”
알타이는 셔먼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들과 동조한 셔먼의 담대한 태도를 칭찬했다. 자신의 제자인 카우보이나 노예 신세인 흑인들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칸이 될 링컨이 보낸 장수는 누가 뭐라 해도 달랐다. 그는 학살을 즐길 줄 아는, 몽골인 기준으로 제대로 된 사람이 분명하였다.
“대충 반마일을 도망치면 구릉이 나오는군. 거기까지 도망치면 정말 살려줄 건가?”
“훈련은 아슬아슬하게 실패할 정도로 해야 병사들이 자극을 받는 법이지요. 무조건 합격하는 훈련은 하나 마나고 무조건 실패하는 훈련은 의욕을 깎아 먹는 법 아닙니까?”
“거 좋은 말이로군. 그럼 사격 솜씨 한번 볼까?”
달빛이 내리는 머나먼 벌판 앞에 아파치 전사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 열 명이 줄을 서서 대기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셔먼 휘하의 저격수들이 진식 소총을 점검하고 있었다.
셔먼은 단검으로 이들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들의 귀에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속삭였다.
“네놈이 들른 마을에 무조건 항복하라 말해라. 그리고 라코타에게 도움을 청해라.”
“어느 라코타를?”
“아무 라코타나. 스물을 센 다음에 사격을 실시한다! 하나!”
아파치 전사들은 발바닥이 찢어지고 자빠져서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온 힘을 다하여 평원을 질주하였다. 그리고 저격수들이 천천히 진식 소총을 들고 조준을 시작하였다.
“열여덟! 열! 아홉! 스물! 발사!”
스물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순간 아파치 전사들은 몸을 옆으로 크게 틀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두 명의 전사가 총알에 맞아 바닥을 뒹굴었다.
“명중이다! 계속 쏴라!”
능숙한 솜씨로 트랩도어를 열고 탄환을 장전한 저격수, 소이여는 셔먼이 사격 직전에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생존자를 다섯 명 정도 남기라는 조언이었다.
그 계획은 조금 어긋나 버렸지만 결과적으로 네 명의 생존자가 벌판을 넘어 도주하였다. 소이여는 셔먼에게 경례를 하며 훈련 경과를 보고하였다.
“인디언에 대한 장거리 야간사격 훈련 결과는 여섯 명 명중입니다!”
“고생이 많았어. 들어가서 푹 쉬도록.”
“고생이 많기는. 저런 좋은 총을 쓰고도 발치만 쏘다니 멍청한 놈들 아니야?”
몽골계 미국인들은 그 뛰어난 시력으로 사격의 어색함을 눈치챘다. 그러나 셔먼은 겸연쩍은 듯이 병사들을 칭찬하였다.
“저격수들이 앞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조준하는 버릇을 들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자 마을이었던 장소 밖에 숙영지가 차려졌다. 다들 곤히 잠든 가운데 셔먼은 개인 막사에서 따로 나와 고야슬레가 머무는 개인 막사에 다가가 헛기침을 하였다.
“이야기나 좀 하지. 오늘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고야슬레는 핏발이 선 눈으로 막사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저 멀리서 밧줄에 묶인 채 감시받고 있는 포로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보았습니다. 댁은 어떻습니까?”
“사람이 이토록 쉽게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주변을 돌아보니 카우보이나 흑인 바토르들도 잠을 청하지 못하고 술을 들이켜며 어떻게든 오늘의 일을 잊어버리려 하였다. 수레바퀴는 그토록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고야슬레는 셔먼이 미군 육군 준장이자 원주민 토벌작전에 참가하였음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는 셔먼의 착잡한 표정을 보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였다.
“참 이상한 일이로군요. 댁들은 우리 형제들을 사소한 시비로 죽이고 심심할 때마다 마을을 불태우고 농토를 짓밟으며 들소를 사냥하는 행동을 즐기지 않습니까?”
고야슬레의 지적을 들은 셔먼은 턱수염을 긁적거리며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시골에서 나무를 베던 나무꾼의 오두막이 불타버리고. 가장의 시체는 머리 가죽이 벗겨진 채 썩어가고 남은 가족은 인디언 놈들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나.”
“우리가 당한 것에 비하면 사소한 복수입니다.”
고야슬레는 아메리카 원주민도 기회만 되면 범죄를 저지르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 잘못했는가를 따지면 자신의 땅을 빼앗은 미국인들이 먼저 잘못했으리라.
셔먼도 이 사실은 인정하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불편한 표정으로 불이 다 꺼져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이었던 장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먼저 언제 잘못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사실은 이 학살을 저지르는 이들이 모두 미국인이라는 점이고, 언젠가는 유권자로 활동할 때가 올 거라는 점이다.”
“백인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행동 아닙니까?”
“네놈의 눈구멍은 얼굴 가죽이 찢어져서 생겨난 구멍이냐? 우리가 인디언을 죽이는 이유는 손해를 입혀서이지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지는 않아! 둘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셔먼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으며 고야슬레가 모르는 정치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였다.
“몽골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공화당의 지지자이고 자신의 중매를 서준 에이브러햄 링컨 상원의원을 극단적으로 지지한다. 그럼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되겠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미 민중의 의지와 정치적인 요구는 노예제 철폐와 흑인 해방을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조차 남북으로 나뉘어 흑인 해방의 의지가 높아지는 상황이지.”
“아, 그렇군요. 얼마 전까지는 사람을 모래주머니와 흡사하게 보던 양반들이 좀 철이 들었나 봅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군요.”
고야슬레는 흑인 바토르들을 막사로 불러들이던 셔먼의 오만한 태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비판을 들은 셔먼은 헛기침을 하며 부끄러움을 숨긴 다음 설명을 재개하였다.
“지금 벌어진 일은 종전의 미국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학살이다. 순수한 복수를 위해 얻는 것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비싼 암염을 바닥에 퍼부어가며 상대를 말살하고 있지.”
“그렇다면 공화당이라는 세력과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사람이 문제가 생기겠군요.”
“이 사건이 신문에 실리면 정치 판도가 뒤엎어진다. 몇 건은 몰라도 계속 벌어지면 대량학살자가 지지하는 공화당 전체가 정치적 위기에 빠진다고!”
전통적인 복수라는 명분을 내세우면 이번 사태를 무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 아파치 부족 전체를 이 방식대로 몰살시키면 더 이상 수습이 불가능했다.
고야슬레는 몽골계 미국인들이 링컨이라는 인물을 대표, 일종의 부족 추장으로 삼은 사실은 이해하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였다.
“자신들이 공화당을 지지해서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양반들이 생기겠죠.”
“그건 다행이지. 최악의 경우에는 반군이 되어 사방을 파괴할 거야. 이미 아무런 이득을 보지 않아도 학살과 파괴를 일삼는 괴물들이 통제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
셔먼은 육군 준장으로서 몽골계 미국인들의 전력을 분석하였다.
이들의 순수 전력은 화력을 기준으로 일개 사단 규모이지만 기동력을 감안하면 야전군 규모의 병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역사와 전통으로 다른 문명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기술까지 익힌 사람들이다.
셔먼은 사방을 순찰하는 간부들을 바라본 다음 몸서리를 치며 말하였다.
“막 개발이 시작된 서부는 초토화가 되겠지. 텍사스를 시작으로 인근의 모든 곡창지대가 파괴될 거야. 최소한 야전군 규모의 병력이 파병되어 쉴 새 없이 토벌 작전을 벌여야 하고!”
“그런다고 망할 나라는 아닌 것 같은데요.”
“대신 수많은 미국 국민들이 피해를 입겠지. 그리고 그 원한은 네놈들에게도 쏠린다.”
고야슬레도 미국의 저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서부 지부장으로서 수많은 가축을 판매하였고 가축 가격이 떨어졌을 뿐 끝없는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상대한 미국은 거인의 새끼손가락 수준의 전력에 불과할 거라 추측했다. 그 거대한 전력의 일부만 상대하여서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공화당이라는 세력은 흑인 노예의 해방을 원하였다. 고야슬레는 조금 덜 핍박받는 원주민 신세이지만 공화당이 집권하면 자신들도 이득을 볼 것이라 판단하였다.
결국 고야슬레는 정치적으로도, 입지적으로도 셔먼의 계획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부족들은 이미 머나먼 서쪽에서 (상대적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의 하수인 신세가 되었지요.”
“이해하고 있으니 잘되었어. 그럼 앞으로 할 일을 알려주마.”
“어차피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저를 앞세워서 아파치 부족을 항복시키는 것 말입니다.”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부족해. 이들에게 미국의 연방법과 질서를 주입할 필요가 있다.”
계획을 들은 고야슬레는 감탄을 섞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마지못해 수긍한 듯이 셔먼을 흘겨보며 계획을 평가하였다.
“진작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시면서 왜 못했습니까?”
“어느 누가 돈을 땅바닥에 버려가며 인디언들의 권리를 보증해 주겠나? 솔직히 말해서 아내와 형제들에게 미친놈이라면서 손가락질을 당할 것 같아서 후환이 두려울 지경이야.”
셔먼의 가문은 정치계, 법조계 심지어 금융계에도 영향력을 끼쳤다. 셔먼의 형은 법조계에, 동생은 각기 의원과 은행장을 역임하였다. 여기에 다른 친척도 한 가락 하는 이들이었다.
물론 재산으로 따지면 셔먼이 가장 많았다. 파울스 치킨과 소스 레시피를 취득하고 대한제국에서 만들어 낸 콜라의 수입권을 선점하여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 수준이었다. 그 재산의 상당수를 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해 털어내게 생긴 것이다.
고야슬레는 셔먼의 한탄을 듣고는 땅에 굴러다니는 암염 조각을 걷어차며 말하였다.
“돈을 땅에 부어가며 상대를 말살하려는 놈을 상대하려면 돈을 같이 땅에 부어버려야지요. 아무튼 계획은 잘 알게 되었으니 각자 열심히 활동해 봅시다.”
“반드시 라코타 부족들을 이번 전쟁에 합류하게 만들도록. 난 정부에 서신을 보내두지.”
셔먼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면 몽골계 미국인들의 잔인성을 억제하고 어느 정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고야슬레 또한 더 많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 * *
몽골계 미국인들은 첫 전투에서 세 개의 마을에 수레바퀴를 돌리고 한 개의 마을은 운이 좋게도 항복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마을이 다음 목표가 되었다.
“항복! 무조건 항복입니다! 우리 당신들이 정당한 복수를 위해 찾아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고야슬레가 방문하자마자 추장들과 젊은 전사들이 무장을 해제한 채 납죽 엎드려 자비를 구걸하였다. 알타이는 수염을 긁적거리며 사람들을 살펴본 뒤 심문을 시작하였다.
“그런 것치고는 전사가 부족한데. 마을 주변에 병력을 잠복시키고 거짓 항복을 했나?”
“아닙니다! 옆 마을의 소식이 전해지고 전사들이 공포에 질려 도주하였습니다. 저희 마을은 이제 전사도 없고 젊은이도 자취를 감추어 이미 망하게 생겼습니다!”
“못 믿겠군. 사람 몇 명 잡아와서 차근차근 물어봐.”
한 시간가량의 심문이 이어지고 결과가 나왔다. 벌판을 달려 도주한 생존자는 야생말에 올라타 마을로 향하였다. 이후 수레바퀴의 참상이 전해지며 마을 전체가 뒤집혔다.
“아예 산속으로 숨어들기 위해 짐을 꾸리고 준비하던 찰나에 여러분들이 도착한 겁니다.”
“그럼 도망친 놈들은 짐도 안 꾸리고 저 멀리 북동쪽으로 도주했다? 이 말이냐?”
정황 증거와 증언 모두 일치하였다. 더군다나 처음의 항복 권유를 받아들여서 수레바퀴를 굴릴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접대의 관습을 무시한 대가는 치러야 하였다.
“좋아, 항복을 받아들이되 조건이 있다. 구 년 전! 우리의 동료가 너희의 접대를 받아들이고 독에 중독되어 숨을 거두었다. 당시 이 인근에서 마흔 명이 모였다 하더군.”
“이미 몇 년 전에 범인을 찾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복수를 위해 여기에 왔다. 이 마을에서 그 당시에 있었던 자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아파치 부족민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세 명의 중년 남성이 밖으로 나와 알타이 앞에 당당하게 가슴을 들이밀었다.
“독을 탄 사람은 내 동료요, 나는 독에 취한 자의 목을 찔렀소.”
“나는 죽은 자의 머리 가죽을 벗겨서 전리품으로 삼았고.”
“그 머리 가죽은 어디에 있나?”
“내 옆구리에 묶어두었소.”
알타이는 마침내 황무지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동료의 일부를 돌려받게 되었다. 고운 사슴가죽에 시신의 일부를 감싼 알타이는 세 명의 죄인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네놈들을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고 싶지만 참도록 하겠다. 네놈들은 스스로의 죄를 알고 책임을 지려 이 자리에 나왔다.”
“그러하면 어떻게 죽이겠소?”
“피를 흘리지 않고 가장 깔끔한 방법으로!”
마을 한복판에 교수대가 설치되고 세 명의 아파치 부족민의 목이 매달렸다. 알타이는 세 명의 시신을 마을 어귀에 매장하라 지시한 다음 카우보이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 마을은 우리에게 먼저 항복하였다. 약탈과 폭력행위를 금지하니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씀입니까?”
“사람을 마구 죽이지도 않고 불도 안 지르고 암염을 뿌리지도 않지요?”
“안 한다니까! 네놈들이 멋대로 일을 저지르면 손모가지를 날려 버릴 줄 알아!”
처음에는 인디언을 죽이자고 모였던 카우보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마을 구석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알타이는 툴툴거리며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였다.
“그냥 소르칸 그 양반을 설득해서 자비심 없는 수레바퀴를 굴렸어야 하는데…….”
수레바퀴라는 말이 들려오자 카우보이들도 바토르들도 어깨를 움찔거리며 알타이를 바라보았다. 셔먼과 고야슬레는 이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음 마을이 문제였다. 어지간한 파발보다 빠른 몽골계 미국인들의 진격속도로 인해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마을에 먼저 항복 권유가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마을에서는 총과 활을 쏘아대며 항복 권유를 거절하였다.
알타이는 이 광경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수레바퀴를 돌려라!”
다시 한 개의 마을이 ‘없던 것’이 되어버렸다. 이후 주요 마을을 모조리 휩쓸어버린 군세는 사방으로 퍼져나가 소규모 마을들을 공략하였다.
60일 동안의 토벌로 총 11개의 마을이 항복하였고 7개의 마을이 수레바퀴로 존재가 사라졌다. 작은 마을들은 일종의 포로수용소가 되어 바토르들이 주둔하였다.
마침내 소르칸이 이끄는 후방 보급부대가 본대와 합류할 정도로 진격하였다. 이미 대부분의 죄인들은 처형당하거나 죽은 시신마저 훼손되었고 복수의 명분도 사라졌다.
“접대의 관습을 무시한 사십여 명의 죄인 가운데 서른네 명이 이번 토벌로 죽었다! 형제들의 복수를 완료하였으니 이를 기념하여 축제를 벌이자!”
마지막으로 항복한 마을, 아파치의 영토 끝자락까지 진군한 소르칸은 술통의 마개를 열며 전쟁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소르칸에 대한 찬양을 보냈다.
“드디어 토벌이 끝났다! 소르칸 주지사님이 승리하였다!”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
무차별 학살에 시달린 카우보이들도, 이 학살을 보고 손발을 떨어대며 수발을 들던 멕시코 무법자들도 모두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셔먼은 머나먼 동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동쪽에 보내놓은 보초들이 도착하였다. 이들은 소르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친 호흡을 다스리면서 이변에 대해 말하였다.
“소르칸 주지사님!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동쪽에서! 자신들을 라코타 부족의 일파 오글라라 라고 칭하는 이들이 군세를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뭐? 라코타 부족? 야! 타탕카! 너네 부족이 왜 군대를 이끌고 오나!”
라코타 부족 중 훙크파파의 일족인 타탕카 아요탕카, 웅크린 황소는 소르칸의 말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예전에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 라코타 부족의 지파는 저도 모두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넘쳐납니다. 당장 다코타나 나코타는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요?”
“그래도 이웃인데 좀 설득이라도 해 보던가!”
“일단 무엇 때문에 왔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지요.”
전령들은 소르칸에게 라코타 부족의 서신을 전했다. 서툰 영어로 기록된 서신의 내용은 소르칸이 상상조차 못 하고 있던 선전 포고문이었다.
-우리는 대평원에서 자신의 터전을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하얀 사람들과 라라미 조약(Treaty of Laramie)으로 서로의 영토를 규정하며 양보를 하였다.
-그러나 하얀 사람들은 우리를 배신하였다. 동쪽 방면으로 침공할 수 없는 조약을 핑계로 서쪽을 들쑤시고 다니니 이 어찌 원통하고 비통한 일이 아닌가.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모든 이웃이 한 몸이 되었다. 너희가 저지른 학살이 퍼져나갈 것을 염려하여 서로 증오하던 사람들도 합쳐져 만 명이 넘는 군대를 만들어내었다.
-나는 약속을 어긴 하얀 사람들을 증오한다. 하얀 사람의 일원이 된 너희 타타르라는 부족도 증오한다. 이 증오를 씻어낼 방법은 너희와 우리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라라미 조약은 뭐고……. 우리가 하얀 사람의 일원?”
소르칸은 급격히 확대된 전선과 새로운 적에 몸서리를 치며 머나먼 동쪽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몽골계 미국인들이 복수를 할 수 있던 이유는 정보전에서 앞선 덕분이었다.
아파치 부족의 영토를 손금 보듯이 꿰고 척후병의 경로까지 파악하여 압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라코타와 그 분파들의 영토인 북부 대평원에는 몇 번 오간 것이 전부였다.
“타탕카! 너는 빨리 지도부터 작성하고 놈들의 군세부터 확인해 봐라.”
“제가 아는 지식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아주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소르칸은 몇 년에 걸친 원정 준비도 없이 전선이 급격히 확대되어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앞으로의 전쟁은 복수라는 명분도 없는 증오와 증오를 쌓아가는 전쟁이 되리라.
더군다나 라라미 조약이 무엇인지 알 길도 없었다. 이 혼란 속에 셔먼이 다가와 참모 자격으로 조언을 시작하였다.
“우리 미국 연방정부는 라코타 부족과 협정을 맺었습니다. 부족의 영토를 인정하고 오십 년 동안 오만 달러의 영토 사용료를 제공하며 개척자들의 통행 권리를 받아냈지요.”
“그럼 왜 우리에게 시비를 걸고 난리를 피우냐고!”
“여러분은 미국 연방의 시민이 아닙니까? 혼인을 하고 보안관 자격도 취득하였으며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지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모두 다 외몽골 이주민이 아닌 몽골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연방의 발전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연히 ‘새로운 미국인’ 들이 서쪽에서 자신의 영토를 향해 살육과 파괴를 일삼으며 진군하면 적으로 보아야 마땅하리라.
셔먼은 혀를 차며 소르칸을 비난하였다.
“여러분은 연방법을 준수하며 갖은 혜택을 보아온 미국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며 진군하니 이 꼴이 난 겁니다.”
“그 법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나?”
“주지사 자격 반납하시고 투표권도 잃게 되겠지요?”
셔먼은 당황한 소르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계획이 아주 적절한 시기에 완벽하게 먹혀 들어간 것이다.
이미 카우보이들과 병력들은 지나친 진군으로 피로가 축적되어 있고 새로운 적인 라코타 부족의 정보는 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
물론 몽골계 미국인들의 토벌대 전력을 감안하면 라코타 부족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들이 승리하여도 끝없는 토벌전이 이어지는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