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22장 10화 대화합(2)
소르칸의 토벌대가 대평원으로 한창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워싱턴의 의회 인근 연회장에서는 상원의원들의 파티가 개최되었다.
“한잔 받으십시오. 요즘 구하기 힘든 프랑스산 코냑입니다.”
“이 귀한 물건을 링컨 의원이 어떻게 구하셨소?”
“제가 인맥을 좀 만들어둔 전적이 있어서 구해보았습니다.”
번잡한 파티 한복판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그는 쉴 새 없이 남부 출신 의원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아부를 떨어댔다.
얼마 전 의회에서 발의되고 비준 이전 시범 적용된 수정헌법 13조와 14조는 링컨의 로비로 남부 의원들의 동의를 거쳐 발의되고 시범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번 파티는 그 시범 시행에 동의한 의원들에 대한 로비였다. 남부 의원은 잔에 담긴 코냑을 살펴보고 향을 음미하며 말하였다.
“필록세라라는 병이 유행해서 유럽의 포도농장이 붕괴되고 있지. 혹시 칠레산 아니야?”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의원님들의 미각이면 맛을 분간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필록세라, 포도뿌리를 말려 죽이는 벌레의 영향으로 유럽의 포도주는 말 그대로 씨가 마르고 있었다. 그런 귀한 코냑들이 스무 병 넘게 준비되어 남부 의원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크어! 역시 코냑이라니까. 수많은 브랜디를 다 섭렵했어도 프랑스 코냑이 가장 좋다니까.”
아버지의 파산으로 인해 별다른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링컨은 이런 파티를 치를 재산이 없었다. 대신 셔먼의 지원으로 제대로 된 연회장을 구할 수 있었다.
샹들리에에 촛불 대신 전구가 번뜩이고 연미복을 차려입은 악단이 은은한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여기에 대한제국에서 수입한 미술품과 양탄자들이 장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남부 출신 의원들은 자신 앞에서 재롱을 떠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링컨에 대해 적대적이던 의원들은 어느새 뇌물공세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링컨 의원이 노예제를 금지하자고 주장해서 내 어찌나 간담이 서늘하던지.”
“그러게 말이야. 지난번에 자네가 의회에서 링컨 의원을 윽박질렀을 때의 말을 기억하나?”
“그 답변도 기억하고 있다네. 검둥이가 노예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검둥이 아내를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했었지. 마음에 드는 답변이야.”
링컨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코냑이 가득한 잔으로 건배를 하였다. 독한 코냑이 다시 배 속으로 사라지고 남부 의원이 술 냄새가 섞인 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수정헌법 13조와 14조의 발의도 마음에 들고. 여론으로 표를 긁어모을 생각이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 입장이라 여론의 입김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지식인을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흑인들을 해방시키라는 말이 많아서 할 일도 있었지요.”
링컨은 굳이 답변을 하지 않고 옆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쪽 구석에서 자신에게 패배해 상원의원에 낙선한 스티븐 더글러스가 그를 흘겨보고 있었다.
“결국 검둥이 이야기는 놓지 않는군. 그럼 자네 생각은 무엇인가?”
남부 의원의 재촉에 링컨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는 예전의 연설을 들먹이면서 흑인 해방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하였다.
“흑인 해방은 점진적이며 계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흑인들이 우리 미합중국의 시민이 되려면 그보다 먼저 인디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요.”
남부 의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점진적이고 계획적이라는 말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방시키겠다는 말이며 기존 방침이 조금 늦춰지는 것에 불과했다.
그 첫 단계로 링컨이 주장한 것은 대평원 인디언, 서부 개척에서 길목 역할을 하는 지역의 부족들을 병합하는 정책이었다.
이 시대의 미국의 흑인은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받았다. 반면 인디언은 언제라도 연방정부에 소속되어 미국의 사회에 들어올 수 있는 외부 세력으로 취급하였다.
흑인의 해방을 위한 단계적 법안이 수정헌법 13조와 14조였다. 남부 의원들은 얼마 전 의회에서 발의된 법안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수정헌법 14조를 발의하였군. 내용이 뭐더라?”
“헌법 5조를 기반으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미합중국의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사람은 미국과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할 수 없다.”
“그리고 시민으로부터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법률로 보호한다.”
“또한 하원의원은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할당하며 그 기준은 세금을 납부하는 자유민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것이 전문입니다.”
단 하나만 놓고 보면 논리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수정헌법 13조와도 연동되는 법안이라 문제였다.
13조는 ‘강제 노역은 정당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닐 경우 시행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었다.
두 법을 조합하면 흑인에 대한 노예제를 철폐할 바탕이 되었다. 흑인이 해방되는 즉시 강제노역이 해제되며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다.
남부 의원은 이 점을 들먹이면서 링컨에게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했다.
“자네가 발의한 두 조항을 연계하면 미국의 시민 권리가 더욱 높아지겠군. 대신 인디언들이 미국 시민이 되는 문턱 또한 낮아질 것 같고.”
“여기에 세금을 낼 수 있는, 나라에 헌신한 흑인들도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검둥이가 재산을? 막 총을 들고 나가서 전쟁에 합류하기라도 하나?”
남부 의원들은 글도 모르는 흑인들이 총을 잡으면 자기 상관부터 쏠 것이라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리고 술을 들이켜면서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를 하였다.
“정말 검둥이들이 공을 세우면 해방할 수 있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미개한 놈들이지만.”
“그건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저 또한 여러모로 고려해 보아 인디언에게 먼저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너무 성급한 행동 아닌가? 비준을 좀 더 빠르게 받겠다고 우선 적용을 하다니.”
“잘만 하면 이번 법안에 대평원의 인디언 모두가 합류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서부 개척도, 대평원 구간의 기차 노선 부설도 더욱 빠르게 이행할 수 있습니다.”
남부 의원 입장에서 보기에는 공화당이 지나친 무리수를 던졌다. 대평원의 원주민들은 이미 연방정부의 수작에 당해 울분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남부 의원들은 링컨을 보면서 앞으로의 일을 즐기듯이 이야기하였다.
“그나저나 이십만 달러의 거금을 내놓은 부호는 누구인가?”
“군부 관계자인 제 지인입니다. 그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인디언 토벌 비용으로 인디언을 사들이는 것이 고생도 덜하고 사람도 덜 죽는 길이라 하더군요.”
“참 대담한 방침이로군. 그런데 인디언들이 이번 제안을 거절하면 그 돈은 어떻게 하려고?”
“애리조나의 토벌대와 마찬가지로 개인 토벌대를 구축할 예정이라 합니다.”
군부 관계자는 미-맥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셔먼 준장이리라. 그의 성격을 감안하건대 법안 적용이 실패할 경우 벌어질 일은 불 보듯이 뻔했다.
“인디언들이 수정헌법 14조를 받아들이는 그 날을 위하여. 건배.”
원주민들에게 20만 달러와 시민권을 준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었다. 상대가 거절하면 민주당은 대평원 인디언 토벌을 발의할 예정이었다.
대평원을 토벌하는 일은 몇 년이 걸릴 엄청난 작업이다. 결국 공화당 입장에서는 무리수를 두다 못해 폭주하여 벌집을 건드린 꼴이다.
설령 인디언 토벌이 실패해도 제안 자체가 문제이다. 수정헌법 13조와 14조는 비준되지 못하며 공화당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리라.
대평원에 소속된 주는 물론 인접한 테네시, 켄터키를 시작으로 인접한 주 모두가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흑인 해방의 이야기도 없던 일이 되고.
남은 것은 호구의 손을 털어먹듯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 노예제도를 굳혀 버리는 것이다.
파티가 끝나고 의원들은 링컨과 악수를 나누며 말하였다.
“자네의 법안을 인디언들이 받아들이기를 기원하지.”
“아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쯤이면 서신이 돌아올 것 같군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하여 남부 의원들은 자신들이 최종적으로 이득을 볼 것이라 생각하였다.
유일한 변수는 애리조나의 토벌대였지만 일부 의원의 염려에 불과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애리조나 토벌대가 천 킬로미터 넘어, 대평원까지 갈 이유도 방법도 없다 생각하였다.
그 정도로 진격할 수 있는 군대라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정예 기병, 미국 기병대보다 우월한 기동력을 지닌 군대이리라.
반면 셔먼을 통해 애리조나 토벌대의 진격 정보를 입수한 공화당 핵심 중진의원과 링컨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신하였다.
이틀 뒤, 개최된 의회에서는 법안 관련 보고가 시작되었다.
“얼마 전 제안한 수정헌법 14조의 대평원 인디언 우선 적용에 대한 결론입니다. 놀랍게도 대평원에 소속된 여덟 개 부족 모두가 제안을 받아들이고 미국 시민이 되기를 청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링컨에게 쏠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링컨이 모자를 벗고 겸손하게 인사를 올리자 공화당 의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왜 이걸 받아들여…….”
“인디언들의 지역에 역병이라도 돌았나? 페스트라도 퍼진 거 아니야?”
뒤통수를 세게 맞은 민주당 의원들과 남부 의원들은 자리에 다시 앉은 링컨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이 단번에 성립되었다.
대평원 원주민들은 수레바퀴의 공포와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경험하였다. 이들 가운데 몇몇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미국 시민이 되어 목숨을 부지하려 했다.
“법안의 발의와 우선 적용을 도와주신 의원님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법을 주장한 사람으로서 현장에 나가 인디언들과 최종 조약을 맺을 수 있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링컨은 현장에 나가 적당히 여론조작과 정보봉쇄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는 같은 공화당 의원들에게도 셔먼이 보내온 정보를 적당히 검열해 알려주었다.
만약 흑인 해방으로 인한 내전이 발생한다면 이 정보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전쟁의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애리조나에 대한 정보 말이다.
* * *
링컨이 조약의 명문화를 위해 대평원으로 움직이는 동안 소르칸의 부대도 대평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미 보급 한계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진격 한계가 몇 번이고 찾아왔다.
원주민들은 토벌대와 정면 승부를 벌이지 않았다. 정보적 이점과 경험을 살려 최대한 시간을 끌려 하였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싸우면 우리가 이기는데 상대는 싸울 생각을 안 하는군.”
소르칸은 부상병을 치료하는 게르를 살펴보고 혀를 차며 돌아왔다. 점차 교전이 줄어들고 지루한 추격전이 연일 계속되며 모두가 피로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와중에 몇몇 전과를 올린 이들이 있었다. 분견대를 이끌고 돌아온 간부는 소르칸에게 인사를 올리고 오늘의 전과를 보고하였다.
“삼백여 명 정도를 죽였는데 죄다 아파치 잔당입니다.”
“또 아파치야? 이놈의 새끼들 아예 희생양으로 아파치를 굴리는군.”
“죽음을 피해 다른 부족에 몸을 의탁한 놈들은 다 저런 꼴이 되지요.”
대평원 부족들은 자신의 영토로 도주해 온 아파치 전사들을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들의 말을 듣고 승산이 없는 전쟁을 시작한 울분을 이런 방식으로 토해냈다.
“그런다고 수레바퀴를 안 굴릴 줄 아나. 마을 단위로 도주하면 더 크게 수레바퀴를 굴리면 될 것을.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는 편한 일이야.”
“후방을 단단히 다져둘 수 있어서 편한 입장 아닙니까?”
“내 말이, 바토르들도 본영에 합류하기 시작해서 앞으로 한 달은 진군할 수 있겠어.”
소르칸은 본영에 드문드문 보이는 바토르, 흑인 병사들을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괜한 돌멩이를 걷어차면서 짜증을 섞어서 외쳤다.
“그냥 다 무시하고 진군했으면 지금쯤 대평원이라는 동네 중간까지 와서 수레바퀴를 열 곳은 돌렸을 거다! 이제는 얼마 싸우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하잖아!”
“그래도 시작이 반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놈들이 도주한 마을까지 진군할 수 있는데요.”
소르칸은 이어지는 보고를 듣고 셔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르칸의 짜증과 분노가 섞인 시선을 받은 셔먼은 팔짱을 끼고는 앞으로 있을 좋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연방 정부가 주시하는 대평원까지 진군한 덕분에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 혹시 정부에서 군대를 파견해 같이 토벌을 하는가?”
“라라미 조약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회에 서신을 보내서 이번 전쟁에 지원을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싸우라는 소리군. 이놈의 대평원 인디언들이 어디 좀 안 사라지나?”
소르칸 입장에서 손해만 보고 질질 끌리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애리조나로 돌아가 소와 말을 불려야 할 사람들이 전선을 헤매며 허공에 돈을 펑펑 날리는 것 자체가 손해였다.
“소르칸 주지사님! 주지사님! 동쪽 평원에서 인디언 추장들이 집결하였습니다!”
그나마 한 번의 대규모 회전으로 적을 분쇄하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기회라 생각한 소르칸은 전령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대규모 회전이로군! 군대를 전부 동원해서 한 번에 압살해 버린다!”
“아닙니다! 추장이라 자처하는 이들과 호위병력 백여 명이 전부입니다!”
소르칸은 눈을 치켜뜨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상황을 보니 주제넘게 화평을 주장하는 자들 같은데 생각 같아서는 확 쓸어버리고 싶었다.
얼마 전 카우보이들의 눈을 피해 ‘자무카의 방식’으로 처리한 아파치 추장들과 같이 솥에 삶아 죽일 생각이 넘쳐났지만 참아야 했다.
진격 한계가 코앞이라 오히려 훗날의 일만 거추장스럽게 만들 짓이다. 추장이 사라진 부족들은 죄다 분열하여 사방으로 흩어져서 토벌이 더욱 난해해지리라.
“일단 대화나 나눠보자. 어차피 더 이상 진격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어.”
대평원의 한 언덕에서 대평원의 여덟 부족과 토벌대 주요 간부가 회담을 시작하였다. 양측이 언덕 정중앙을 두고 도열하자 먼저 대표인 하얀 방패가 찬사를 보냈다.
“이토록 용맹한 전사들이 우리와 대화를 나눌 줄은 몰랐소.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난폭하고 용맹한 전사들이오.”
“우리가 애리조나에서 먼 길을 건너오느라 힘이 빠져서 너희들을 모조리 죽일 수 없었을 뿐이야. 다음 토벌이 오는 그 날까지 공포에 떨며 살도록.”
“다음 토벌은 없소.”
“토벌이 없다? 항복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도망친 놈들이 미리 경고를 보냈을 텐데?”
소르칸은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 생각해 눈을 내리깔고 회담을 끝내려 하였다. 그러나 원주민 사이에서 길쭉한, 유난히 키가 큰 사람이 쓸 법한 중절모가 보였다.
“소르칸 임시 주지사님. 대평원의 인디언들은 연방정부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익숙하며 정겨운 링컨의 목소리였다. 간부들이 얼이 팔려 있는 사이 소르칸이 앞으로 나아가며 말하였다.
“칸! 링컨 칸께서 이 자리에 오시다니요!”
원주민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온 링컨에게 토벌대 간부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링컨은 그들의 어깨를 잡고 일으킨 다음 상황에 대해 상세히 말해주었다.
“대평원의 인디언은 이제 미국 시민입니다. 수정헌법 제14조에 의거, 시민은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가 아닌 한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법률로 보호받습니다.”
“그게 뭔 소리입니까?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링컨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주 쉽고 편한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소르칸은 링컨에 대한 존경심을 한껏 담아 답하였다.
“자고로 칸의 권위 앞에 두 부족의 싸움을 중재할 수 있는 법. 링컨께서는 아직 칸이 아니시지만 쿠릴타이를 움직여 저희를 중재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원한도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쪽은 모르지만 우리 토벌대에서 원한을 들먹일 이는 아예 없습니다!”
“저희 대평원의 사람들도 더 이상의 원한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사실 가질 수도 없지만요.”
원주민들은 링컨을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돈까지 준 은인으로. 소르칸과 몽골계 미국인들은 링컨을 부족 사이의 싸움을 중재한 차기 칸으로 보았다.
여기에 기나긴 전쟁에 지친 카우보이들과 바토르들은 약간의 앙금만이 남아 있을 뿐 어떻게든 끝을 낼 수 있다 생각하였다.
링컨은 마지막으로 조약문을 작성하였다.
“이제 대평원의 부족은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양측은 이번 조약의 공증인으로 조약의 뜻이 더럽혀지면 이의를 제기하고 법적 보호를 받을 권한이 있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링컨은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에는 몽골계 미국인과 카우보이, 왼쪽에는 대평원의 부족들이 연합하였다. 여기에 맨 앞에는 무릎을 꿇은 바토르들이 있었다.
“검둥이들이 뭘 했다고 사진을 찍습니까?”
“흑인은 시커먼 피부라서 우리의 하얀 피부를 더 돋보이게 하지요.”
며칠 뒤 신문 기사에는 ‘대평원 인디언, 애리조나 토벌대와의 마찰 끝에 미국 시민이 되다.’라는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신문을 받아본 소르칸과 하얀 방패는 코웃음을 쳤다.
“바토르들의 이야기는 귀퉁이에 딱 한 줄이 나오는군.”
흑인 노예들은 전쟁에서 백인의 앞을 막은 인간 방패 역할을 수행했다는 기사가 전부였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고 칭송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신문 기사는 일방적이고 편파적이었다. 한 사진은 부상을 입은 카우보이를 담아두었는데 이 기사 전문을 읽은 하얀 방패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피에 굶주린 악귀들이라 나오는데. 진정으로 피에 굶주린 악귀는 십자가를 들고 인디언을 정화한 정의의 사도라 칭송하고.”
“링컨 칸께서 중재한 사이라 더 이상 악귀가 아니라니까. 수가 틀리면 그렇게 되겠지만.”
추장들과 몽골계 미국인 간부들은 곰방대를 바꿔 피고 술병을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졌다. 지금까지 전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같은 미국인으로서 힘을 합칠 때였다.
소르칸은 바람에 흩날리는 대평원의 초원지대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소와 말을 먹일 수 있을지 자연스럽게 계산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얀 방패가 헛기침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말이오. 우리가 당신들과 영원히 싸우지 않을 사이가 되었으니 부탁을 하겠소.”
“부탁이라?”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위대한 능력과 지혜에 감탄하게 되더군. 그 지혜를 빌려 이 대평원에서 우리가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시겠소?”
소르칸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이 대평원까지 넓어지게 되자 오히려 반가운 눈초리였다. 황무지를 넘어 풀이 잘 자라는 평원이라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날 밤 더욱 많은 술이 오가고 대평원의 부족들은 몽골계 미국인을 자신들의 투자자이자 경영인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 또한 링컨이 바라던 일 중 하나였다.
글을 배우고 지도를 볼 줄 아는 지식을 갖춘 흑인. 상상을 초월한 진격능력을 보유한 몽골계 미국인과 그들의 제자인 카우보이가 있었다.
몽골계 미국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합류할 것이다.
링컨은 조만간 벌어질 남북전쟁에서 이들을 고용해 전세를 뒤엎을 방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