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23장 6화 연합 결성(2)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같은 군주를 섬기는 청나라의 신하이자 몽골의 귀족은 병력을 이끌고 북경 북부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4일 전부터 북경에서 벌어진 반란을 지켜보았다.
사태가 너무 빨리 진행되어 감히 북경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정작 북경을 수호해야 할 금려팔기는 버티지도 못하고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사방으로 도주해 자취를 감췄다.
셍게린첸은 북경의 혼란을 틈타 탈출한 만주족과 팔기군을 수없이 만나왔다. 오늘도 한 무리의 팔기군이 거지꼴을 한 채로 북경 외곽으로 도주하다 그와 마주쳤다.
“북경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좌익후기는 대체 뭘 하였소!”
갑주조차 제대로 못 챙기고 물도 못 마셔서 피골이 상접한 만주족 지휘관이 셍게린첸에게 항의를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셍게린첸은 콧방귀를 뀌면서 답했다.
“고작 삼천 명의 병력 가지고 뭘 어떻게 하나. 거기에 지원이 풍족하기라도 해? 외몽골 놈들이 발작을 하면서 권총을 난사하는 마당에 우리보고 뭘 어쩌라고.”
셍게린첸에게 뭐라 항의도 못 하던 만주족 지휘관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셍게린첸은 진영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도 식량이 떨어지는 마당이니 한 끼 배불리 먹고 샘에서 물이나 퍼마시고 가시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북쪽이지. 슬슬 북쪽에도 포위망이 생기려 하는데 아직은 정찰병 몇 명이 전부요. 아니면 요서회랑을 넘어서 조선에 의탁하시든가.”
그나마 홍수전의 포위망이 없는 지역이 북경 북쪽이었다. 서쪽, 남쪽 그리고 동쪽 모두가 끄나풀에 의해 점거당한 상황이라 셍게린첸도 슬슬 도망칠 장소가 필요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외몽골에 고개를 숙여야 하나.”
“하지만 한 나라의 신하로서 해야 할 일이…….”
“그러면 이미 망해버린 나라를 위해 한 줌의 병력으로 돌격해서 죽어버리자는 말이냐?”
부관의 항의를 간단하게 묵살한 셍게린첸은 남쪽으로 떨어진 북경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연기가 치솟고 간혹 다녀온 정찰병이 시체가 수십 수레씩 쌓인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가 섬기던 황제는 물론 지체 높은 왕공족 대다수는 유폐당한 채로 처형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셍게린첸은 그냥 외몽골로 도주할 생각을 굳히고 부관에게 질문을 하였다.
“외몽골에 보낸 전령은 어떻게 되었어? 놈들이 북쪽에서 습격하면 도망칠 곳도 없잖아.”
“임시 휴전요청이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도 전령을 보내 서로 만났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며칠 뒤에나 소식이 돌아오겠지요.”
“내가 보기에는 열흘 정도 지나면 이쪽 방면에도 반란군이 올 것 같은데.”
열흘도 길게 잡은 시간이고 실제로는 그보다 빠르게 포위망이 형성되리라. 그 전에 외몽골 측에서 자신들의 휴전 협정을 받아들여야 숨통이 트이고 살길이 열릴 신세이다.
초조한 표정으로 북경을 바라보던 셍게린첸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고 말을 돌려 본영으로 향했다. 이제는 항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항복을 하면 놈들이 끼워 맞춘 족보에 내 가문이 억지로 편입되겠지. 이게 뭔 꼴이람.”
대한제국의 족보 위조는 몽골 가문들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족보의 신빙성을 의심하기 힘든 상황이고 옛 법전까지 함께 첨부되어 잃어버린 가문이 되살아 난 꼴이 되었다.
셍게린첸과 같이 명망 높은 가문 출신조차 이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던 셍게린첸에게 전령이 예상보다 며칠 빨리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사령관님! 외몽골에서 사람을 보내서 예상보다 며칠 빠르게 접촉하였습니다!”
“외몽골에서도 사람을 보냈다고? 어쩌다가 일이 그렇게 돌아갔나?”
“놈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조건만 만족하면 모든 사항을 인정하고 지휘관님의 칸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서한입니다!”
대한제국에서 보낸 전신은 요동까지 이어진 전신을 통해 전달되었다. 다시 임시로 가설된 외몽골 전신으로 연결되어 파발의 손에 들어가 셍게린첸의 손에 닿았다.
공교롭게도 셍게린첸이 전령을 보낸 덕분에 예상보다 며칠 빠르게 소식이 도착하였다. 내용을 확인한 셍게린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북경으로 간다! 탈출한 서역인을 구조하면 우리에게 살길이 열린다!”
몽골팔기가 청나라의 신하가 아닌 독립 세력으로서의 작전을 감행하였다. 태평천국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는 없더라도 이들은 북경 근교를 오가며 사람을 찾아 나섰다.
보병 위주로 편성된 태평천국군 입장에서는 발작적인 침입으로 생각하였다. 기병의 기동력을 따라올 수 없는 상황이라 차근차근 목줄을 좁혀가듯 에워싸기 시작했다.
“놈들이 포위망을 형성했습니다! 후방이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빠져! 평원은 넓고 예비 말이 세 마리씩 있지 않나!”
당장은 우월한 기동력과 몽골의 말 특유의 지구력으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오래 시간을 끌 수 없는 입장이라 모두가 생존자들이 빨리 발견되기를 기원하였다.
자신들의 생명줄을 찾기 위한 노력은 결실을 맞이하였다. 셍게린첸의 진격 경로에서 소규모의 태평천국 병사들이 대사관에서 도주한 서양인들을 추격하여 교전이 벌어졌다.
“저기 서역인들이 있습니다! 얼핏 보아도 절반이 넘는 사람이 아녀자입니다!”
“일단 놈들을 쓸어버려! 그다음에 구조하도록!”
전열을 형성하지 못한 채 평원에서 기병의 돌격을 당한 태평천국군은 단번에 궤주하였다. 그 대가로 몽골팔기도 제법 다쳤지만 그 정도 손해는 감당할 수 있었다.
태평천국군에게 머스킷을 쏘던 전직 군인들은 이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동양인의 외모를 보고 움찔거렸지만 셍게린첸이 먼저 내려와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구하러 왔소. 뭐 말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대한? 대한으로 가나?”
“그래! 대한이라는 단어 하나는 잘 알고 있지! 우리는 조선으로 간다!”
조선이라는 답에 생존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셍게린첸은 인원을 확인하고 전투로 인해 죽은 시신들을 챙긴 다음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지정된 장소로 진격한다! 사람 죽지 않게 잘 간수해라!”
셍게린첸은 대한제국이 부탁한 대로 아직 홍수전의 반란군의 손길이 안 닿은 진황도(秦皇島, 현 친황다오 시)로 향하였다.
삼 일에 걸친 강행군으로 몸이 쇠약한 사람이 몇 명 사망하였지만 이 정도는 늘 일어나는 사고였다. 마침내 항구를 점거한 대한제국군의 손에 의해 생존자들이 구조되었다.
이들의 증언은 즉각 전신을 통해 서양으로 전달되었다. 하루에 걸쳐 전달된 전신으로 인한 파급은 막 박현상과 접견을 시작한 공친왕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 * *
젊은 시절부터 정치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디즈레일리는 1859년, 본래 역사보다 빠르게 총리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1기 내각은 아일랜드 독립 문제로 항시 불협화음을 앓고 있었다.
“이번 아일랜드의 대학 건립 문제에 대한 표결을…….”
“총리님! 급보입니다! 대한에서 긴급 전신을 보내왔습니다!”
모든 의원들의 시선이 전령에게 쏠렸다. 6일 전 보고된 청나라의 반란 사태와 연이은 대한제국의 전신은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은, 아직은 정치권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반란이라는 거대한 군사적 충돌에서 영국 민간인들이 얼마나 희생되었는가. 그 희생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사가 주를 이루었다.
마침내 4월 4일, 반란이 시작되고 8일이 지날 무렵 소식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에 도착한 것이다.
디즈레일리는 표결 과정에서 이견이 속출할 아일랜드 문제 대신 청나라의 현실로 주제를 돌리려 하였다.
그는 거칠게 손을 놀려 전신 해석본을 낚아챘다.
“청나라의 이변에 휩쓸린 우리 외교관과 시민들의 안전을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그러나 전신을 읽은 디즈레일리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묵했다. 의사당 내부가 오로지 숨소리만 가득할 정도로 적막해질 무렵 답이 나왔다.
“여러분. 영국 시민들이 도축장의 돼지처럼 집단으로 학살당했습니다.”
“도축장의 돼지라니요? 대한이 우리를 반란 진압에 참여시키고자 수작을 부린 것 아닙니까?”
“생존자의 증언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북경에서 탈출한 영국 시민은 이백여 명에 불과하고 이들 중 가장 마지막에 탈출한 영국 시민의 증언입니다.”
심호흡을 한 디즈레일리는 신상명세가 똑똑히 적혀 있는 증언을 확인하였다. 자신이 돈을 투자한 회사 임원이, 정확히는 그의 아내가 작성한 증언이라 신뢰성이 매우 높았다.
“반란군이 북경 내부로 진입하고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모두는 외국인으로 신변 보호를 받을 거라 예상하였지만 아니었습니다. 반란군은 문을 부수고 난입하여…….”
반란군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반항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찔러 죽이고 총으로 쏘아 죽이며 항복한 사람은 자기들이 가지고 놀며 더더욱 잔혹하게 죽였다.
증언을 덤덤하게 읽어가던 디즈레일리는 몇 번이고 망설이며 말을 헛갈렸다. 평상시에 연설에 능숙하던 그조차도 이번 사건을 덤덤히 바라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남동생이 잠시 시간을 끄는 사이 대사관으로 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지옥이 있었고 저는 그 지옥을 벽 하나를 두고 지켜봐야 했습니다.”
“팔백여 명이 피난했을 무렵 대사관이 가득 차버렸습니다.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사관 밖에서 발을 굴렀고 반란군은 이들을 하나씩 잡아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반란군이 노래를 부르며 구호를 외치며 더 즐거운 일을 할 것이니 사람을 내놓으라 하였습니다. 대사관 안의 신사들은 제비를 뽑아 밖으로 나섰습니다.”
“저는 제 남편이 겪은 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제 남편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사들이 아편을 강제로 먹고 사지가 무딘 톱으로 조금씩 잘려나갔습니다.”
“그 틈을 타서 비밀통로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권대사가 남아 책임을 완수하기로 하였는데 비밀통로에서 폭음이 들려왔습니다.”
디즈레일리가 증언을 다 읽자 의원들은 비통함에 사로잡혀 고개를 떨어뜨렸다. 개중에는 자신의 친인척이 희생되어 눈물을 흘리는 이조차 있었다.
의원들은 이번 사건에서 자신들이 ‘사람’으로 여기는 이들은 얼마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다 소중하지만 특히나 어떤 사람은 더더욱 소중하다.
최소한 투표권은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된 사람이며 지주, 부호, 거상(巨商), 아니라면 15년 이상 공장 경력을 지닌 숙련공이 되어야 그 조건을 만족할 수 있었다.
디즈레일리 또한 이번 사태에서 시종이나 하인 몇 명이 불운하게 반란군에게 살해당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 기대를 저버린 반란군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내릴 수 없었다. 그러자 자신의 친척을 북경에 파견한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청나라의 반란군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초적인 관념을 어겼습니다! 몇 명의 희생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계획적 살인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옳습니다! 반란군이 선전포고를 하지 않더라도 이는 선전포고에 준하는 행위! 전면전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인도의 세포이 병력을 보냅시다! 얼마 전 항의사태로 인해 불만이 팽배해 있지만 급료를 더 지불하면 불만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군요.”
본래 역사에서 발발한 세포이 항쟁은 영국의 태도가 변하며 단순한 항의사태로 격이 낮아졌다. 머스킷 탄환을 보관하는 약포(藥包)에 쓰인 기름이 원인이 된 사태였다.
소기름은 힌두교 교리에, 돼지기름은 이슬람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항의를 들은 영국은 마침 인도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면실유로 대체하였다.
그 결과 항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포이는 영국군의 명령을 들으며 사병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디즈레일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표결을 시작하였다.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아나갑시다. 우선 북경에서 탈출한 생존자의 보호와 다른 국가 생존자의 인솔을 위한 세포이 파병에 대한 표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더 많은 병력을 파병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용을 현지 충당하면 되니 어떤 방식으로든. 예를 들면 프레스 갱(press gang, 강제 징집)으로 육군도 충당합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다들 이성을 앞세워 사태를 바라봅시다.”
이런 열기를 뚫고 글래드스턴이 발의권을 얻었다. 예전에 조-청 전쟁처럼 반대를 할 것이라 생각하여 모두가 묵묵히 글래드스턴을 지켜보았다.
소란스러운 의회 내부가 조용해지고 시선이 단 한 사람에게 쏠렸다. 그는 다른 의원들을 바라보고 모두의 예상과 다른 말을 하였다.
“이번 전쟁은 꼭 필요한 전쟁입니다. 자국민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는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명국으로서의 이성은 지켜야 합니다.”
글래드스턴의 첫 발언이 끝나자 의회 안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침묵을 옆에 있던 의원이 삿대질을 하면서 분노를 담은 말로 채워나갔다.
“제정신이시오? 사람을 돼지처럼 도축한 개자식들에게 이성을 지키자고? 댁은 자기 자식을 물어뜯은 개를 걷어차는 대신 목줄을 채우고 훈련을 시키나?”
“이야, 누가 윌리엄 의원 아니랄까 봐 여기서도 도덕을 찾네. 그건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이고 사람 형상을 한 악마들에게는 할 일이 아니지?”
처음에는 증오로 시작한 발언이나 조금씩 비웃음이 섞였다. 의원들이 비극을 비극이 아닌 국가의 이득을 볼 상황으로 판단하고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는 증거였다.
물론 글래드스턴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의원들의 시선을 받아넘긴 뒤 자신이 할 말을 똑똑히 하였다.
“전 갈등이나 마찰을 여론과 중재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갈등의 범위를 벗어난 학살입니다! 따라서 청나라의 반란 세력을 진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소. 그런데 이성을 지켜? 당장 우리 영국 시민들이 얼마나 죽어 나갔는데!”
“쓸데없는 전쟁 확대를 막아내고 더 많은 실리를 추구하자는 말입니다. 이성을 잃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방식은 프랑스인의 전공이지 우리의 전공이 아닙니다!”
타협과 중재를 중점으로 삼은 글래드스턴도 이번 사건을 중재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협상을 해도 어느 정도로 이득을 보아야 만족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로 기강이 형편없는 군대가 협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지도 의문이고.
그래도 쓸데없는 희생자를 줄이고 국가에 손실을 끼치는 일을 막을 작정으로 주장을 이어갔다.
“이번 사태에 유럽 각국이 모두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영국 군대가 대놓고 학살을 저지르면 어떠한 평가를 받겠습니까?”
“뭐 프랑스 놈들이 더 많이 죽일 것 같은데 좀 죽이면 안 되겠소?”
“그래도 평판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언제 프랑스처럼 야만인이 되었습니까?”
디즈레일리는 자신의 정적이자 경쟁자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나친 과열을 막아내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해 준 덕분에 건설적인 내용으로 의제가 전환되었다.
이후 여러 법안이 나열되었다. 본국의 육군이 축소되던 시점이라 육군 파병은 할 수 없었지만 해군을 파병하여 제해권 확보 및 해병대 투입을 통한 작전까지 건의되었다.
영국 의회는 분노 대신 이번 전쟁의 명분을 거머쥐고 이득을 찾기 위해 눈을 번뜩였다.
반면 박현상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또 다른 국가가 있었다.
“의원 여러분! 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나폴레옹 3세 또한 동일한 내용을 논하였다. 그나마 이성과 격식을 차린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여과 없이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의장님! 당장 대육군을 파병하여 놈들을 모조리 생매장시킵시다!”
“군대를 파병하지 않겠다면 제 재산을 털어 용병을 고용하겠습니다!”
“결코 전쟁! 절대 전쟁! 나폴레옹께서 직접 군대를 이끌어주십시오!”
나폴레옹 3세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을 어떻게든 지휘관으로 세워두려는 그 시도에 질겁하였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 박현상이 영국에는 보내지 않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여러분.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베트남의 아편 반란은 물론이요 쿨리들이 중독된 아편의 근원이 이번 반란과 얽혀 있었습니다.”
“아편이 왜 이번 반란과 얽혀 있습니까?”
“대한의 외교관 박 후작이 보낸 기밀 정보입니다. 반란군의 자금원을 추적한 자료를 종합한 결과 청나라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통해 자금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어차피 영국에게는 보낼 필요도 없는 내용이라 안 보낸 것에 불과하다. 영국은 아편이 여전히 합법이며 판매량이 저하되었을 뿐 아무나 약국에 들러 아편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청나라와 얽히고 아편이라는 문제로 피해를 보았던 프랑스 입장에서는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다.
한 의원이 책상을 두드리며 화답했다.
“그래서 아편이 없는 광주의 용사들은 누가 보아도 용맹한 문명인이었고!”
“아편을 퍼마신 쿨리들은 벌레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번 전쟁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바로 아편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을 거머쥐고 죄 없는 시민을 학살한 놈들에 대한 처벌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아무 이득도 없는 ‘모든 청나라 반란군의 징벌’ 대신 좀 더 실리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우리 대육군은 청나라에 파견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아편에 의해 오염된 반란군과 그 후원세력을 근절시킬 것이며! 아편에 손을 대지 않은 용맹한 사람들을 수호할 겁니다!”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절(extinction)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입니까?”
나폴레옹 3세가 논한 근절은 약화시킨다는 의미와 소멸시킨다는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의원들의 기대에 찬 눈을 확인한 나폴레옹 3세의 입에서 모두가 원하는 말이 나왔다.
“아편이라는 단어를 청나라에서 소멸시킬 생각입니다! 다만 철저히 기회를 주고 반성하는 이들을 반드시 구제하고 보호할 의무도 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아편에 손을 대지 않은 착실한 청나라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듭시다!”
“중국 대륙의 새로운, 순수한 제국의 기반을 우리 프랑스가 마련해 줍시다!”
프랑스는 우선 베트남에 주둔하는 군대로 생존자를 보호하기로 하였다. 이후 협상이 결렬되면 동맹국 대월의 군대와 대육군의 동시 파병을 계획했다.
영국과 프랑스 두 열강이 움직이자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였다.
공친왕과 증국번이 예상한 것은 오로지 대한제국의 힘으로 태평천국과 맞서 싸우는 구도였다. 그 예상과 달리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전 세계의 군대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이 시대 제국주의 특징
국내 : 사람이 죽었네? 알 게 뭐람?
해외 : 우리 시민이 죽었다! 이 악마들! 네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멸절시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