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23장 11화 대륙 내부에서
청도 조차지의 전투 소식은 홍수전에게 즉각 전달되었다. 병사를 인솔한 풍운산은 승리를 자신하였지만 홍수전은 이번 전투의 승산이 거의 없다 판단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박현상이 머무르는 장소이다. 그 흉험한 자가 저렇게 당당하게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승리에 대한 기대는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기껏해야 조차지에 타격을 입혀 조선군의 진격을 막을 정도가 전부라 생각하였다. 그 기대와 달리 풍운산은 이마에 피가 솟구칠 정도로 머리를 찧으며 보고를 올렸다.
“황제폐하께 보고를 올리니 신 풍운산이 자질이 부족하고 병졸을 통솔하지 못하여 비참하게 패주하였사옵니다. 말 그대로 진멸(殄滅) 지경에 이르러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습니다.”
“진멸이라? 진영이 무너져서 퇴각한 것이 아니고 진멸이라 하였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홍수전에게 풍운산이 전투 경과를 보고하였다. 약 4만여 명의 병력이 참전하여 2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잡혔다.
퇴각 과정에서 부상 악화로 죽어나가거나 실종된 병사를 합치면 8천여 명에 달했다. 북경에 계속 태평천국 병사들이 집결하고 있는 것을 감안해도 막대한 피해였다.
“고작 팔천여 명의 병력에게 다섯 배가 넘는 숫자로 달려들었는데…….”
“말 그대로 도륙을 당하였습니다. 부디 신을 벌하여주시옵소서.”
한 시간에 가까운 보고가 시작되었다. 참호로 구성된 길고 얇은 진영을 보고 달려든 상황부터 그 진영이 막대한 화력을 뿜어냈다는 보고까지.
홍수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참호는 탄환을 막을 수 있더라도 퇴각할 수 없는 장소이다. 결국 공격자의 수가 더 많으면 참호까지 전선이 밀려나 백병전이 벌어진다.
“적의 병력이 더 많지 않았는가? 박현상이라면 일만 명이라 호언장담하고 수만 명을 참호 안에 미리 숨겨둘 수 있었을 것인데.”
“최전선까지 나아갔다 가까스로 퇴각한 병졸에 보고에 의하면 조선 병사는 참호 안에 각자 한보 반(1.8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총을 난사했다고 하였사옵니다.”
“그 적은 수로? 총을 난사해? 권총도 아니고 소총을 난사하였다?”
다른 간부들은 말이 안 된다면서 윽박질렀지만 홍수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이해하였다. 그는 풍운산이 입수한 정보에 호응하듯 적당한 말로 간부들을 타일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박현상이 버티고 있던 장소다. 놈들은 여러 해 전부터 조차지에 병력을 더 투입하고 모두 다 최신 병기로 무장한 정예 병력을 두었을 것이다.”
홍수전의 답을 들은 간부들이 조용해지자 풍운산이 자신이 퇴각하면서 입수한 정보를 되새겼다. 그리고 개틀링 건, 대한제국군의 십혈포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각 구획마다 기이한 화포를 두었는데 그 화포에서 숨을 한번 들이켤 동안 수십 발의 탄환이 날아들었다 하였사옵니다.”
홍수전은 물론이고 다른 대신들과 승상들 모두가 풍운산의 보고를 듣고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프로이센에 다녀온 간부가 첨언을 하였다.
“보로서의 군관에게 입수한 정보가 있사옵니다. 새로운 병기를 들일 적의 일이옵니다.”
“그 일은 이미 끝나지 않았는가. 미리 이백여 문의 강철포를 사들여 두었지.”
홍수전은 나름 새로운 병기를 사들이는 작업에도 몰두하였다. 공성전을 대비하여 본래 역사보다 조금 빠르게 개발된 9㎝ 구경의 크루프 야포(Krupp gun)를 사들였다.
무기의 수입과 관련 사항을 처리한 간부는 당시에 잠시 스쳐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보로서에서도 지나치게 비싼 물건이라 다루지 못하고 언급만 되던 물건이옵니다. 듣자 하니 일 분마다 삼백여 발의 금속탄피 총알을 쏠 수 있다 하였사옵니다.”
“그 병기를 한 구간마다 두었다면 말 그대로 엽전을 쏘아대는 군대나 마찬가지로군.”
홍수전도 나름 병장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스승이자 이제는 이름만 팔아먹는 신세가 된 임칙서는 서양의 병기로 서양인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럽에서 나름 최신 병기에 속하는 금속탄피 라이플을 쓰려 하다 포기하였다. 어떻게든 총은 복제할 수 있어도 총알의 안정적인 공급이 불가능해 비용을 감당 못 하였다.
부족한 기술력으로는 크루프 야포 탄환의 열화 복제품, 사거리가 짧고 정확도도 떨어진 물건만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였다.
금속탄피 소총은 북경을 접수하고 막대한 자금을 갖추어 5년에 걸쳐 천천히 연구할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 물건을 대한제국은 빗줄기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홍수전은 아직도 자신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번 패배는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보낸 자신의 실책이며 풍운산은 그 실책을 덮어쓴 사람이었다.
“풍운산에게 명을 내린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수행하여 북경 인근에 참호와 화포를 통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라. 조선군이 진격하면 우리가 당한 일을 똑같이 돌려주도록.”
홍수전은 풍운산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 패장이라는 명분으로 풍운산을 처형하면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병사들이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홍수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전투의 패배 규모를 축소하고 대한제국군의 진격을 북경에서 막아내는 길 하나이다.
다른 간부들은 질색을 하였지만 풍운산은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의 말을 연신 내뱉었다.
“신에게 오명을 덮을 기회를 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나이다.”
“그러하면 되었다. 다음으로 이수성에게 명을 내리겠다!”
아무리 보아도 적의 진격을 저지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 같아 이수성도 바짝 긴장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수전은 예상대로의 명령을 하달하였다.
“적의 진격을 저지시켜야 한다. 조선군이 공친왕을 앞세워 조차지에서 몰려나오기 이전에 놈들이 사용할 기차선로를 모조리 파괴하고 뒤엎어 버리도록!”
“이미 퇴각하면서 후속병력에게 명을 내려두었사옵니다.”
“그리 하여도 지휘관이 있고 없고는 천지차이다. 기회가 되면 놈들의 진영에서 떨어져 나온 병사들을 노려 적이 사용하는 병장기를 입수하라.”
그리 어려운 명령은 아니라 이수성은 즉각 인사를 올리고 방 밖으로 사라졌다. 홍수전은 이 모습을 확인한 다음 간부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지난 전투의 사상자는 이만 팔천여 명이 아니다. 약 일만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대부분의 병력은 분열되어 다시 북경으로 합류할 것이다.”
“하오나 이미 사람들이 어육처럼 짓뭉개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일은 사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제 정신을 찾지 못한 것이라 윽박질러라. 조선군을 북경 인근으로 끌어들여 격파하면 병사들도 사기가 회복될 것이다.”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린 홍수전은 창문으로 나아가 나름 안정되기 시작하다 다시금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북경을 바라보았다.
패전의 소문이 전해지며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흉흉하다 못 하여 사람이 갈대처럼 쓸려나가는 상황이라도 최소한의 형체는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하면 이번 패배의 원흉을 만들어 내야겠지.”
홍수전은 북경을 점령하며 황족과 최고위 왕공족을 모두 사로잡아 두었다. 민심이 어느 정도 복귀되면 선양을 받고 몰래 처형할 생각을 품었다.
당연히 함풍제는 식물인간 상태였다. 의식을 찾지 못하여 환관 여러 명의 간호로 가까스로 목숨만 붙어 있었다.
이마저도 미리 생산하여 보관한 헤로인의 지속적 투입으로 가까스로 명줄을 유지할 뿐, 기껏해야 석 달 뒤에는 헤로인이 떨어져 목숨을 잃을 상황.
여기에 황후와 태자는 전각 하나에, 나머지 왕공족은 가택에 연금했다. 평판이 안 좋던 의비는 독방에 감금하고 가까스로 죽지 않을 수준의 음식만 주었다.
이들 중 공친왕과 친한 몇 명을 배반 혐의를 덮어씌울 생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의비를 시작으로 내가 호명하는 놈들의 처형을 준비하라. 이번 패배는 공친왕을 통해 우리의 전략과 병장기에 대한 정보를 보낸 탓이다.”
“하오면 능지처참을 행할 것이옵니까?”
“그러한 일을 하면 너무 번잡하지 않은가. 구덩이를 파놓고 이들이 살아 있던 전각을 모두 허물어 그 안에서 불을 태우도록 하라.”
천안문 앞에 생매장을 위해 준비한 구덩이가 더 깊게 파지고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초췌한 몰골로 끌려온 의비는 병사들을 물어뜯으며 반항하였다.
“놔라! 놓지 못할까! 홍수전 네놈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느냐!”
본래 역사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던 서태후는 온데간데없었다. 권력의 욕심에 미쳐 자신의 나라를 망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의비에 불과하였다.
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이 몰골을 지켜보는 북경 백성들조차 그녀의 악명을 알고 아무 위로도 하지 않았다. 태평천국군은 아예 술을 마시며 이를 안주 삼아 즐기기까지 했다.
다른 왕공족들은 나름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하려 하였다. 사실 아편을 대량으로 먹여 약에 취해 의비의 목숨 구걸을 보여주려는 홍수전의 명령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아편에 취해 주변 상황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까스로 걸어 다녔다.
홍수전은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이 돌아가자 천안문 위에서 죄를 논하였다.
“네놈들의 죄 중에 가장 큰 것을 논하겠다. 나라를 망친 죄! 공친왕에게 병사들의 정보를 팔아넘긴 죄! 그리고 짐의 병사들이 패전하도록 이 정보를 유출한 죄다!”
의비가 사지를 뒤흔들며 난동을 부리자 네 명의 병사가 사지를 부여잡았다. 점차 불구덩이로 끌려가는 중에도 의비는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몸부림쳤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 너에게 유폐되어 있었고 공친왕은 진작 탈주하였는데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다들 내 말을 들어보시오! 뭐라도 말이라도 해달란 말이오!”
악을 박박 쓰던 의비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아편에 취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담아 홍수전에게 고함을 계속 쳐댔다.
“네놈은 무엇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야! 내가 잉태하여 황후께서 돌보고 있는 태자가 너희에게 복수를 할 것이란 말이다! 이 손을 놓지 못할까!”
“불구덩이에 집어 던져라!”
한 줄기 비명과 함께 의비의 몸이 누더기 몰골의 의복과 함께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곧이어 다른 처형자들도 등을 걷어차여 같이 구덩이에 떨어졌다.
의비가 남긴 것이라고는 불구덩이에서 타들어가는 뼈가 전부였다. 홍수전은 주변에서 울리는 환호성을 들으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연설을 하였다.
“싸움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패하지 않는 법! 이번 전투는 간자가 정보를 유출하여 패하였지만 다음 전투는 아니다!”
“폐하 만세! 태평천국 만세!”
대한제국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인한 패배는 의비의 배신으로 인한 패배가 되었다. 홍수전은 병사들이 한 번 패배의 쓴맛을 보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는 만세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한 손을 들고 태평천국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신중을 기해야 한다. 조선과 맞서 싸우면 우리 또한 타격을 입는다. 훗날을 생각하고 이 패배를 앙갚음 하려면 놈들이 북경에 쳐들어오도록 유인해야 한다.”
홍수전은 지리멸렬한 공방전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상대의 화력이 우수해도 참호를 미리 만들어두고 적을 유인하면 그 방어선을 뚫기 힘들 것이다.
설령 참호를 돌파하여도 태평천국은 북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지에서 병력이 호응하고 보급 경로를 끊어내면 조선군도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다.
홍수전은 북경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동안 각 지방에, 태평천국 군대가 도적 토벌군으로 위장하여 올라온 경로에 전신을 통해 명령을 하달하였다.
[각 지방의 통수권을 장악한 다음 제남(濟南 - 현 지남 시)에서 조선군을 요격하라.]
“아무리 모자란 녀석들이라도 조선군의 허리를 끊을 수 있겠지.”
홍수전은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라 판단하였다. 조만간 서역의 군대가 참전하겠지만 한족들이 태평천국의 휘하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조선군은 지나친 비용 소모로 패퇴시키고 한족을 방패로 삼아 서역의 군대를 소모시킨다.
이 대전제가 성립되기만 하면 태평천국은 수많은 적을 만드는 꼴이라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 판단과 달리 소문이 퍼져 병력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뒤늦게 북경에 합류하는 병사들로 평형이 유지될 뿐, 핵심 병력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여기에 합류 병력들은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적들이 반란 소식과 함께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 * *
합비(合肥 - 현 허페이 시) 인근에도 낙오된 태평천국의 잔당이 있었다. 이들은 낙오 이후 자연스럽게 재결집하여 일대의 한족들을 포섭하여 세력을 불려 합류할 계획이었다.
그 명령이 갱신되어 제남에서 대한제국군의 허리를 옥죄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태평천국의 낙오 병력은 이 명령을 전해 듣고 재집결과 진격을 병행하였다.
“이미 북경이 함락되었고 태평천국의 시대가 열렸는데 무얼 하는가!”
“모든 한족은 우리 아래 집결하라! 창칼을 들고 놈들과 맞서 싸워라!”
그 재집결 과정에서 필요한 물자와 군자금은 지방의 만주족을 통해 얻어낼 방침이었다. 애초에 병력을 소집하기 위해서는 본보기로 죽일 놈들이 필요했다.
평상시에 위세를 부리며 한족을 수탈하던 만주족은 이 상황을 보고 즉각 대응하였다. 그들의 대응은 맞서 싸우는 대신 재산과 함께 도망치는 길이었다.
“어떻게든 대운하로 간 다음에 배를 타고 도망쳐야 한다고! 옷가지 따위는 돈으로 살 수 있잖아!”
합비에서 나름 풍족한 삶을 살던 부호도 그 부류였다. 그는 아내가 챙기려던 옷가지 대신 금은보화를 챙기며 윽박질렀다.
집에서 일하던 하인들은 주인의 눈치를 보고 그 옷가지를 거두었다. 그러자 아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당신은 팔기군 출신이잖아요! 어떻게 좀 해보라구요!”
“내 아래 녹영군도 다 도망치고 팔기군이 고작 서른 명밖에 안 남았어! 저 미치광이들에게 죽을 생각은 없다고!”
만주족 부호와 주방팔기 병력들은 오로지 살길을 찾아 움직였다. 수레에 금은보화를 담고 적이 도착하기 전 도주하려 하였다.
아마 이틀 뒤에는 이 지역까지 놈들이 몰려올 상황이었다. 문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부호는 눈을 굴리며 아내에게 질문을 하였다.
“저 비렁뱅이들이 왜 여기 왔지?”
“모르지요, 소작 붙여 먹던 놈들 같은데 올해 추위가 심하다고 소작료 협상을 하려나 본데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리자 부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쫓아내. 지금은 뭘 어떻게 해 볼 상황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라고!”
한시가 바쁜 상황에서 소작료를 논할 이유가 없었다. 고작 오십 리(20㎞) 거리에 태평천국이라는 미치광이들이 진군하는 와중에 부호는 어떻게든 귀중품을 챙기려 하였다.
갑자기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호가 대문을 바라보자 하인들이 널브러져 있고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들어왔다.
“나리께서 매우 바쁘신 것 같아 제가 짐을 좀 덜어드리려 왔습니다.”
“넌 누구냐! 감히 내 하인들을 구타하고 문을 부숴!”
한때 주방팔기로 활약하였던 부호는 자신이 예전에 사용하였던 창을 들고 상대를 내쫓으려 하였다. 여기에 같이 도주하려던 팔기군이 앞으로 나서서 그를 막아서려 하였다.
그 당당한 모습은 남자가 한 손을 높이 들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수없이 밀려든 사람들이 병장기를 높이 들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본래 팔기군이라면, 예전의 청나라를 세운 시절이라면 말에 올라 맞서 싸웠으리라.
그러나 창날은 무뎌지고 뱃살이 붙은 이들은 모두 뒷걸음을 치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꼭 험악한 말을 하여야 이야기를 들을 작정이십니까?”
“원하는 것이 뭔가! 혹여나 저 태평천국이라는 놈들의 끄나풀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한때 진사로 한림원에 있었던 사람이며 자는 자불(子黻)이라 합니다. 이제는 낙향하여 하릴없이 지내던 사람이지만요.”
기골이 장대한 남자의 정체는 이홍장, 본래 역사에서 증국번의 제자이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명장이었다.
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인물이 이홍장이었다. 자식을 둘이나 진사시에 합격시킨 이문안(李文安)의 둘째 아들이며 관직 생활 일 년 만에 은퇴한 사람이다.
부호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삿대질을 하면서 윽박질렀다.
“이홍장 이 미친놈아! 한림원에 들어가자마자 낙향하고! 낙향해서 아버지 등골이나 빼먹으면서 허송세월을 하던 놈이 이제는 도적질을 해!”
“나라가 썩어 문드러졌는데 뭘 해보겠습니까? 형님은 공장 허위 설립 관련으로 누명을 쓰고 실각당하고! 나 또한 압박을 당하여 낙향했는데!”
도광제의 어설픈 정책의 피해자 중 하나가 이홍장 형제였다. 만주족들은 공장 허위 설립으로 인한 자금 유출을 대부분 한족 신임 관료들에게 덮어씌웠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이한장이요, 형의 누명으로 인해 같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이홍장이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은 뒤 재산 더미를 가리키며 윽박질렀다.
“그따위로 나라를 다스리니 이런 일을 당하는 겁니다. 이미 북경이 함락되었고 만주족들이 사냥을 당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기회라? 우리가 너희에게 뭘 했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재물에 욕심부터 내는구나!”
“야 이 자라새끼야! 양주에서 니들이 저지른 일 몰라!”
칼을 휘둘러 부호의 앞가슴을 슬쩍 긁은 이홍장은 분노를 가득 담아 상대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의 존댓말도 필요가 없다는 듯이 격분하여 말을 내뱉었다.
부호는 한때 금려팔기 소속이었던 만주족 가문 출신이었다. 양주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부호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양주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
“양주십일기라는 증거가 남아 있는데 뭐가 없었어! 그래! 없겠지! 네놈들이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또 죽여서 생존자를 거의 안 남겼으니 없다고 생각하겠지!”
이홍장 아래에 집결한 의병(義兵)들은 불태워 죽이라는 흉흉한 말을 하면서 다가왔다. 사람들을 제지한 이홍장은 분노를 속으로 삼키고 마지막 선언을 하였다.
“네놈들을 양주 사람들이 겪은 대로 모조리 찔러 죽이고 싶지만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자라새끼가 되는 꼴이다. 한 사람 앞에 은자 백 냥만 남겨줄 것이니 목숨이나 부지하도록.”
“네놈들 태평천국의 끄나풀이 맞잖아!”
“태평천국의 끄나풀? 그놈들은 네놈들 만주족 아래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다 목덜미를 물어뜯은 개새끼지! 우리는 태평천국이 아니다! 이 합비는 우리 한족의 것이다!”
박현상이 미리 뿌려둔 양주십일기로 인해 한족들이 집결하였다. 만주족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던 이들은 한족이야말로 복수의 주역이자 중원의 주인이라 생각하였다.
태평천국에 합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멸만흥객, 객가를 흥하게 하는 시점에서 이들은 또 다른 만주족이라 보는 한족이 더욱 많았다.
곧이어 수많은 지역에서 만주족의 재산을 두고 한족과 태평천국의 잔당들이 격돌하였다. 이는 홍수전의 예상을 완벽히 엎어버린 박현상의 안배였다.
#작가의 말
현재 대한제국군 총인원은 34,000명, 후속사단에서 순차적으로 병력과 물자가 증원됩니다.
최종 규모는 89,000명이며 순조가 보낸 동티단도 포함됩니다. 또한 북경 북서쪽 방면에서 외몽골도 개입합니다.
태평천국군은 175,000명으로 북경에 현재 남아 있는 수는 75,000명
낙오병들이 북경으로 합류하여 수가 불어나고 현지 징병과 합류를 통해 병력을 증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추가 징집과 합류와 거의 대등한 수의 탈주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남경에 있는 병력이나 지방 병력들은 아직 온존한 상태입니다.
프랑스군은 15,000명이며 대월이 일단 지원군을 2만 추가 파병했습니다
영국군은 세포이를 닥닥 긁어모았고 본국에 증원 요청도 하였습니다
나머지 국가 병력은 1만여 명의 소규모 원정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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