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24장 1화 한족 반란
북경이 홍수전의 손아귀에 들어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남경 또한 홍수전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차이점은 남경왕에 오른 양수천의 지휘로 함락되었다는 점과 약탈과 학살이 별로 일어나지 않은 점이었다.
양수청은 자신이 언젠가 홍수전을 넘어설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남경 및 강남 일대는 청나라 전체를 먹여 살리는 곡창지대니 여기를 점거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병력을 사방으로 분산시키고 가급적 사람을 ‘덜’ 죽이며 농노로 삼으라 하였다. 태평천국 병력들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땅을 차지하는 데 힘을 다하였다.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릴 줄이야. 역시 태평천국에 가입하기를 잘했어.”
합비 북부 산길에서 태평천국 병력 500여 명이 진군하였다. 그 적은 수에도 지방의 팔기군과 녹영군 모두가 전투를 치르기는커녕 알아서 해산하고 궤주(潰走)하였다.
진군이 늦어져서 저 멀리, 산 너머에 사는 부호의 집에는 뒤늦게 도착할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충분히 만주족을 털어대 돈을 많이 벌기는 하였다.
손쉬운 승리를 몇 번이나 거둔 병사들은 기강이 풀리고 오와 열이 흐트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부들은 주변을 돌아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뱃살이 뒤룩뒤룩 찐 팔기군은 우리의 상대도 못 됩니다.”
“놈들이 멍청한 덕분에 손을 놓을 수 있게 되었지. 인근에 농토가 넘쳐나는 고장은 남경왕(양수천의 임시 직위)께서 반드시 점거하라 하였는데.”
“그나저나 회남(淮南 - 현 하이난 시)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은 들으셨습니까?”
“뭔 연락이지? 아, 제남까지 올라가서 조선군의 허리를 끊으라는 명령?”
이미 양수청 아래에서 점령한 땅의 수조권(收租權 - 세금을 거두는 권한)을 약속받은 간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평야를 바라보았다.
“황제께서 내린 명령이기는 한데 우리도 좀 바쁘지 않나.”
제남, 머나먼 산동 반도의 시작점까지 접근하려면 기나긴 여정은 물론 순차적인 진군이 필요하다.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후속병력이 도착할 때쯤 출발하는 방식이다.
홍수전의 명령을 이행하면 이 합비 일대의 평야를 다른 병력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그 다른 병력들도 순차적으로 북상하면 나중에 소유권과 관련한 다툼이 생겨날 것이다.
이 답변을 들은 부하가 눈을 굴리자 간부는 괜히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어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못 하는 일이 있지! 주변에 역도들이 이렇게 많은데 요충지인 합비를 내버려 두고 어디를 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역도들은 죄다 도주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있어. 아무튼 있으니까 회남 인근까지 올라가 보자고.”
간부는 주변을 확인하며 괜히 딴청을 피우고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은 재물 욕심이 없으며 오로지 요충지 남경 인근의 방어를 위해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은 같이 수조권을 같이 받게 된 태평천국 병사들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에게 부귀영화를 안겨줄 인근의 평야를 바라보며 괜한 말을 하였다.
“그나저나 삼월 초이틀(음력 3월 2일, 양력 4월 20일)인데 왜 이리 쌀쌀하지?”
“지금쯤이면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한창일 시기 아닌가?”
중국대륙 전체를 강타한 이상저온 현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평년보다 조금 추운 정도인 북방과 달리 강남 일대는 상대적으로 더 심한 추위를 겪었다.
간혹 모내기를 시도한 논이 있었다. 그런 논들은 대부분의 모가 시들어 엄청난 손해를 본 상태이다. 당연히 태평천국 병사들의 주제는 농사가 되었다.
“이러다가 날이 풀리면 괜찮아지겠지. 대충 보름 정도만 지나면 될 거야.”
“시기를 놓치면 손해가 크잖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우리야 산골에 사느라 못 했지만 이 동네는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 아닌가.”
이미 중국 대륙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수십만 결이 넘는 양귀비밭이 생겨나고 노동력이 대량 투입되며 식량 생산이 둔화되었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겹쳐져 이중고가 되고. 다시 전쟁이라는 사태에 휘말려 삼중고가 되었다. 이 삼중고를 태평천국 병사들은 웃어넘겼다.
“만주족 놈들을 다 죽이고 식량을 분배하면 될 일 아니야?”
“곡식만 축내던 만주족 놈들이 다 죽으면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식량이 배분되겠지.”
“그래도 흉년이 올 것 같은데.”
병사들이 두런거리며 대화를 나누자 간부는 숙영 명령을 내렸다. 이미 남경에서 가져온 식량이 거의 다 떨어진 상황이라 아예 눌러앉을 생각으로 분란을 일으킬 생각을 했다.
“인근의 농가에서 식량을 보급하라.”
“얼마나 보급합니까? 곧 진군할 것 같은데 닷새 어치면 됩니까?”
“아니다. 언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최소한 보름 어치를 모아오도록.”
막 모내기를 시작할 무렵이며 추위로 인해 보리조차 이삭이 제대로 패지 않은 시기이다. 지휘관은 이 상황을 노려 자연스럽게 분란을 유도하였다.
흉년을 대비해 곡식을 아끼는 농부들의 식량을 빼앗으면 몇몇은 무기를 들고 항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을 적으로 규정해 토벌한다.
이후 식량을 재분배하고 일대의 치안 유지가 시급하다 보고하면 진군 거부의 명분도 생긴다.
간부는 논을 갈고 있는 농민들을 훑어보고 명령을 하달했다.
“머나먼 제남까지 행군해야 한다. 인근의 가축과 우마차를 징발하도록.”
사방으로 퍼져나간 태평천국 병사들은 총칼을 들이밀며 농민들을 수탈하였다.
“이걸 가져가시면 모내기도 못 합니다! 종자는 남겨주셔야지요!”
“모두 다 태평천국을 위해서이다! 어서 내놓아라!”
총을 들이민 명령에 농부는 어쩔 수 없이 볍씨까지 내어주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농민에게 종자를 빌려 농사를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데 사용하고 종자를 빌리는 데 담보로 사용할 황소 두 마리가 모두 태평천국 병사들에게 징발되었다.
“야! 소는! 소는 내버려 둬야지 이 자라새끼들아!”
소 두 마리 모두를 끌고 가면 자본도 기반도 모두 잃어버리고 굶어 죽게 생긴 꼴이다.
분노에 정신을 놓은 농부는 마당 한편에 있는 쇠스랑을 들고 소를 끌고 가는 태평천국 병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경고가 들려왔다.
“그거 안 내려놓으면 쏜다!”
“쏴라! 모두 가져가는 꼴을 보느니 죽는. 억!”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일대의 농토를 유지하고 세금을 거두려는 태평천국군이라 학살을 안 하였을 뿐이지 기회가 되면 한족을 쏘아 죽이려 하였다.
총성이 주변에 울리고 농부는 쇠스랑을 떨구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폐를 맞아 피를 토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농부에게 병사가 총검을 들이대며 말하였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말을 들어야지.”
버르적거리는 농부의 목을 찔러 숨통을 끊은 병사는 고개를 돌려 방 안에 숨은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손짓을 하며 다음 명령을 내렸다.
“이 집은 우리 태평천국과 황제께 반역을 저지른 집이다. 노비로 삼아 반역죄를 갚게 하라.”
“알겠습니다! 어서 나오지 못해!”
사람들이 모두 끌려나간 집을 차지한 태평천국군은 장기 거주를 위해 주변을 순시하였다. 이후 기강을 잡고 일꾼으로 사용하기 위해 장정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간부는 서른 명이 넘는 농민들이 사살당한 기록을 과장 보고하였다. 최소 삼백여 명 이상의 불순분자가 주변에 있으며 이로 인해 진군을 중단하겠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폭력이 빗발치며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며칠이 지나자 촌장이 간부에게 은자를 바치며 간절히 청하였다.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불손한 짓을 저지른 놈들을 살릴 기회를 주십시오.”
“어허, 놈들은 태평천국에게 반역을 저지른 역도다. 참수형에 처할 죄를 감면하였는데.”
“저도 그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작신 두드려 맞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이들을 치료할 의원을 부를 작정입니다.”
간부 입장에서도 군의관은 쓸 만한 인재였다. 혹시나 전투가 벌어지면 부상병을 치료할 전문가가 필요한 차여서 이를 단번에 허락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의원과 하인이 방문하였다. 커다란 약상자에 약을 잔뜩 챙겨온 의원은 장정들의 부러진 뼈를 단숨에 맞추고 붕대를 감았으며 다른 상처도 모두 치유하였다.
의원은 이미 대한제국에서 1년 동안 외과 의술을 배운 사람이었다. 간부들은 이 의원을 두고두고 아껴 쓸 생각으로 치료를 마친 뒤 술을 주면서 권고를 하였다.
“의술에 출중한 사람이로군.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군의관이 되면 어떠한가?”
의원이 놀란 척 눈을 굴렸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간부는 이 모습을 보고 의원이 욕심을 품은 것이라 판단하여 더욱 오래 둘 생각으로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앞으로 불순한 놈들을 상대로 싸울 계획이다. 거기서 공을 세우면 남경왕께 널 어의로 삼으라는 간언을 올려보도록 하마.”
“아……. 알겠습니다. 그러하면 장군님의 개인 의원 겸 군의관이 되겠습니다.”
태평천국군의 일원이 된 의원은 병사들의 자잘한 병을 치료하고 면담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약을 사용한 의원은 비어버린 약상자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져온 약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본가에 가서 좀 더 가져오도록 하지요.”
“병사를 두어 명 붙여주고 우마차도 보내줄 것이니 모든 약을 가져오도록.”
간부는 조만간 새로운 불순분자를 만들어 낼 욕심으로 주변을 정탐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의원이 사라지고 이틀이 지날 무렵. 의원이 먼저 진영 안으로 들어왔다.
“병사들을 시켜서 우마차를 끌고 오게 했습니다. 저는 일이 바쁜 상황이라 먼저 왔지요.”
“아주 잘하였네. 그나저나 약침(주사기)을 가져왔는데 왜 가져왔나?”
“조선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침과 약품이라서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잘 봉인된 주사용 약병을 간부의 앞에서 흔든 의원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연이은 격무로 피곤하신 것 같더군요. 주무시기 전에 이 약침을 한 대 맞으면 숙면을 취하고 온몸의 피로가 풀린다고 합니다.”
“약은 조선의 약이 제일이지. 어디 한 번 놓아보도록.”
간부는 대한제국에서 들여온 약이라는 소문에 혹하여 팔을 들이댔다. 조심스럽게 혈관을 찾은 의원이 주사를 놓았고 간부는 주사를 맞은 뒤 몸을 좌우로 흔들며 말하였다.
“마치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아편을 피웠을 때랑 기분이 흡사한데.”
“비슷한 효과가 날 겁니다. 이제 푹 주무시면 다음 날 편히 깨어날 수 있겠지요.”
말조차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간부는 침상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그리고 의원이 밖으로 나가 구멍을 낸 살구씨앗을, 이 시대에 사용하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웬 새소리가 나지?”
“이거 호각(號角) 소리 아니야? 동네 아이들이 밤중에 장난을 치나?”
보초들이 의아해하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불이 훤히 밝혀진 진형을 향해 불화살이 날아들며 사방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아편을 퍼트린 태평천국을 격멸하라!”
“태평천국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
잔뜩 방심하여 기강이 흐트러진 태평천국 병사들은 초반부터 큰 피해를 입었다. 총을 다시 장전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화살과 탄환이 날아들어 초병의 목숨을 앗아갔다.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보초의 위치마저도 파악한 기습이었다. 초병들이 대부분 목숨을 잃을 무렵 잠에 빠진 병사들이 서둘러 대응을 시작하였다.
“나리! 나리! 비상입니다! 정말로 불순한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곤한 잠에 빠져든 간부는 병사가 고함을 치고 몸을 흔들어대도 깨어나지 않았다. 의원이 고농도 모르핀을 주사하여 약효가 사라질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
곧이어 말에 오른 여러 명의 장정들이 창칼을 휘두르며 진영 안으로 파고들었다. 평상시에 대열을 유지하고 적과 맞서 싸우던 태평천국은 대열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빨리 모여! 서로 등을 맞대고 원진(圓陣)을 만들어야 한다고!”
“놈들이 기름을 뿌린다! 어서 물러나라!”
“거기 뒤! 뒤에 네놈들은 뭘 하느냐! 어서 우리를 도와라!”
나름 잔뼈가 굵은 병사들이 사태를 수습하려 안간힘을 썼다. 한 무리가 되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자 서로 합류해 대열을 형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대열을 형성하여 한 몸이 된 사람들의 정체는 사로잡힌 마을 장정들이었다.
의원이 혼란을 틈타 이들이 갇힌 창고의 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오냐! 네놈들이 저승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마!”
가까스로 형성되던 대열에 창칼을 거머쥔 장정들이 파고들었다. 미처 총을 겨누기도 전에 대열이 붕괴되며 혼란이 가속화되었다.
진형 내부에서는 주변에서 잡아 온 장정들이, 진형 외부에서는 사방에서 기습한 적들이 몰아쳤다. 결국 태평천국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퇴각을 감행하였다.
“퇴각해! 어서 남경으로 퇴각해 응원군을 불러라!”
태평천국군의 퇴각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남경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총성과 고함이 들려오고 화살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기습 공격, 이후 철저히 준비한 퇴로 차단에 병력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사로잡혔다. 반면 공격을 시도한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태평천국군의 진영 안에서 부상병 치료와 후속 조치가 이루어졌다. 야습을 지휘한 장수는 진영 안으로 들어와 명령을 하나씩 하달하였다.
“곧이어 형님의 병력이 돌아온다. 병사를 치료할 집을 여럿 마련하고 부상이 심한 사람부터 치료하라. 또한 포로를 손발을 잘 포박하여 창고 안에 가둬두도록.”
지휘관의 정체는 이홍장이며 그와 손발을 맞춘 사람은 형인 이한장이었다. 이한장은 자신의 능력이 동생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부관 역할을 자처하였다.
그 결과가 200여 명의 병력으로 두 배가 넘는 적을 격퇴한 첫 전투였다.
모르핀에 취한 태평천국 간부도 잠에 빠진 채 창고에 감금되었다. 그 무렵 남쪽의 퇴각로를 담당한 이한장이 돌아왔다.
“백여 명 정도를 참살하였다. 놈들이 지리멸렬하게 궤주하기에 별 피해도 안 입었지.”
“다 형님 덕분입니다! 그토록 많은 놈들을 죽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홍장이 인사를 올리자 이한장은 별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지만 동생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였다.
이홍장과 이한장 형제는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을 모아 만주족 부호의 집을 털고 바로 병장기를 끌어모아 반란을 구체화시켰다.
농민들을 끌어모아 일주일 만에 지휘체계를 만들고 기초 지식을 주입하였다. 이 과정까지 마치고는 첩자를 파견할 준비까지 하였다.
대한제국에 다녀온 의원은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의원을 통해 지휘관을 무력화시키고 사로잡은 병사를 심문해 적의 방어망을 확인하고 작전을 계획하였다.
이런 일을 엄두조차 못 내는 이한장은 동생을 보좌해 이 반란을 끝까지 이어갈 생각을 하였다.
그는 부상병을 바쁘게 치료하는 의원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쳤구나. 그래도 격퇴하였으니 망정이지 패하였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우리가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면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형을 이용하고 민심을 활용하여 적의 약한 점을 꿰뚫으면 위기에 처하지 않을 것이지요.”
“아무렴, 네 말이 옳은 법이니 이 부족한 형은 아우를 믿고 따르겠다.”
“형님의 재주는 저보다 훨씬 났습니다.”
형제는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이한장의 지시하에 약탈당한 곡식이 재분배되었고 장정들은 자신의 집을 찾아 돌아갔다.
다음 날, 사람을 죽인 태평천국 병사들과 간부의 처형까지 진행하였다. 이홍장은 기세를 더욱 올리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들여 일장 연설을 하였다.
“잘 들으시오, 우리가 맞서 싸운 놈들은 객가 가운데 가장 성미가 난폭한 놈들이오. 그러하니 반드시 복수를 감행할 것이고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거요.”
“그럼 맞서 싸우셔야죠! 우리가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만 있을 겁니까!”
“말 한번 잘하는구려. 그러면 댁은 당신을 죽이려는 놈들을 보고만 있을 거요!”
이홍장이 삿대질을 하며 트집을 잡은 농민을 가리켰다. 그러자 농민이 기세에 짓눌려 뒷걸음질을 치며 간절한 눈초리로 말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대로 여기 머물러도 죽는 형편 아닙니까!”
“당연한 말을 왜 하시오! 땅을 버리고 도주하면 되는데 왜 머물러야 하오!”
농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이홍장을 바라보았다. 농부가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말은 굶어 죽기를 자처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홍장에게는 만주족 부호를 털어 얻은 재산과 진영을 습격하며 얻은 태평천국군의 재물이 있었다. 그는 상자를 열어 은자를 한 줌 움켜쥐고는 말하였다.
“마침 잘 되었소이다. 올해는 천기가 흉흉하여 아직 모내기도 못 한 상황이지. 우리가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소?”
이홍장은 이미 대한제국에 다녀온 의원을 통해 상세를 알고 있었다. 곡식이 남아돌아 가축을 기르며 온 백성이 배불리 먹는 나라라 하였다.
청나라의 모든 백성을 먹여 살릴 수는 없더라도 곡식 정도는 돈으로 팔 수 있는 나라이다. 이 계산으로 이홍장은 자신의 진영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 하였다.
“땅은 되찾으면 되는 법이요. 그러나 곡기를 끊으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법! 내가 거둔 모든 재산을 조선에 쾌척하여 여러분이 먹고 살길을 열어주겠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내 앞에 있는 재산이 은자로 오만 냥이 넘소이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삼 년 동안 먹이고도 남을 돈이니 조선에서 곡식을 수입해도 일 년은 버틸 수 있지 않겠소!”
이홍장은 저 머나먼 북동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명령을 내렸다.
“이 나라는 한족의 것이오. 하다못해 이 합비 일대를 한족의 땅으로 만들 것이니 지금은 잠시만 물러나 먼 미래를 기약합시다.”
청나라에서 일어난 한족 반란은 여러 형태로 나뉘었다. 양주십일기로 만주족에 대한 불신을 품고 대한제국에 다녀온 의원들을 통해 이 나라를 망친 원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산속에 숨어 반란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이홍장처럼 대한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