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14화 (280/345)

314화

24장 9화 천명, 소멸(1)

북경 성벽을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공성전이 성공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던 중 공성전 시작 1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성문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성공했나 보구려. 문루가 무너지지 아니하면 좋을 것 같은데.”

“좌안문 방향에서 흙먼지가 치솟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계획과 다를 줄은 몰랐사옵니다.”

공성전과 시가전에 특화된 동티단 병력은 광거문과 좌안문 두 방향, 북경의 동쪽과 남동쪽의 두 개 문을 공략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기서 주력은 광거문이고 별동대 역할을 담당한 병력이 좌안문을 담당했다. 작전을 확인하고 핵심 사항을 확인해 재가를 내린 세자는 불편한 듯이 의견을 내놓았다.

“어찌하여 좌안문이 빨리 점령되었는지 모르겠구려.”

북경 외성은 아직 건물이 다 들어차지 않았다. 광거문에는 새로운 시가지가 확장되어 동티단이 활약하기 좋은 장소이지만 좌안문에는 건물이 별로 없다.

정보에 의하면 남동쪽 모서리에 예비대가 결집해 있었다. 그 예비대가 모두 소모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작업을 하는지 몰라도 좌안문이 먼저 함락된 것이다.

“그 예비대가 허둥거리다 때를 놓쳤을지도 모르옵니다.”

“그 또한 잘된 일이로군. 그나저나 문루가 좀 휘청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처음으로 점령에 성공한 좌안문에서 결국 문제가 터졌다. 폭약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서 문을 뚫은 충격이 문루까지 전파되어 문루가 무너져 내렸다.

망원경이 아닌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흙먼지가 퍼지고 뒤늦게 꽈르릉 소리가 들려왔다. 태자는 염려가 가득한 눈빛으로 이최응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혹시 문루에 동티단이 남아 있지는 않았겠지요?”

“동티단은 손발이 잘 맞는 집단이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염려 마시지요.”

“멋대로 진입에 성공한 병사들이 변을 당할 가망은?”

“그 또한 염려하지 마십시오. 문루가 지나치게 흔들리면 진입을 금지할 겁니다.”

그나마 순차적으로 폭발한 광거문의 문루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전장에서 깃발 신호를 받은 병사가 상황을 보고하였다.

“광거문에 사람 세 명이 드나들 정도의 틈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에 남은 정란도 모조리 운반하여 인근 성벽을 통해 병사를 유입시키고 있습니다.”

“훌륭하군. 지금부터 몰이사냥을 시작하도록.”

남은 것은 몰이사냥이다. 각 시가지의 대로를 점거한 병사들은 적을 사방에서 에워싸 구석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최종적으로는 집단 생포 혹은 소탕을 벌이겠지.

아마 한나절 정도가 지나면 북경 외성은 대한제국의 차지가 되겠지.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 전장에서 긴 나팔소리가 들리고 전방의 병사가 재차 보고를 올렸다.

“청색과 적색의 깃발이 흔들립니다! 내성의 서측 성문이 열렸습니다!”

예상대로의 결과다. 외성이 뚫린 지금이 아니라면 다음 공성전은 네 면이 모두 포위되어서 치르게 된다. 홍수전이 도망칠 기회는 외성이 막 뚫려 병력이 유입된 지금 외에는 없다.

“홍수전이 도주하는군. 놈이 완전히 바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머나먼 변방으로 도주하여 재기의 꿈을 누리겠지.”

현장의 병사들은 적의 증원 대신 도주 소식을 듣고 착잡한 심정일 거다. 아마 동맹군이 이번 전쟁을 끝내주길 기대하고 있겠지.

태자는 예상대로의 결과를 확인하고 잠시 고민하였다. 그리고는 신호탄 대용으로 사용하는 폭죽을 가리키고는 명령을 내렸다.

“동맹에 신호를 보내게. 홍수전의 병력을 여기서 필히 추포해야 하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어서 신호탄을 쏘아붙이지 않고 뭘 하느냐!”

하늘 위에서 폭죽 세 발이 터져나가며 연기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 미약한 신호도 대한제국군 본영을 예의주시하는 두 동맹이라면 확인할 수 있겠지.

곧이어 저 머나먼 서쪽 벌판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망원경으로는 병력이 대충 뭉친 정황만 포착되었다.

남서쪽에서 올라와 전방을 막은 공친왕의 병력, 만주족 찌꺼기들이 모인 병사들은 삽시간에 밀려나고 붕괴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서쪽에 외몽골의 전사들을 두었어야 하는데.”

“본인이 강권하니 별 방도가 있겠사옵니까. 이 모든 것이 공친왕의 강요 때문입니다.”

실은 의견 취합도 안 하고 공친왕이 남서쪽이 퇴각로라고 덮어놓고 막아 보겠다고 선언했지만. 모두 임무를 달성하지 못한 공친왕 잘못이 되어버렸다.

군관들이 상황을 전달하였다. 홍수전은 포위망을 뚫을 병력, 약 1만 5천여 명 혹은 그 이상의 병사를 신속하게 진군시켜 공친왕의 병력을 궤멸시키고 후발대를 남긴 채 달아났다.

그리고 추가 보고가 들어왔다. 내가 의도한 대로 기나긴 추격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셍게린첸이 꾀를 써서 추격을 중단한 것이다.

“외몽골의 장수는 추격을 중단하고 공친왕의 병력을 구원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구려. 짐 덩어리가 따로 없다니까.”

태자도 나와 입을 맞춰둔 대로 공친왕을 탓했다. 홍수전의 도주는 어설프게 남서쪽을 담당한 공친왕의 탓이요, 외몽골의 추격이 중단된 이유도 동맹의 구원 때문이다.

눈 뜨고 코 베인 사람이 사람 둘이 짜고 귀를 베어 가는데 어떻게 저항을 할 수 있겠는가. 소식이 전해지자 자연스럽게 공친왕과 만주족에 대한 불만이 솟구쳐 올랐다.

“또 추격전을 해야 해? 그 만주족 돼지새끼들은 대체 뭘 먹고 살아서…….”

주변의 병사들조차 이런 말을 할 지경이었다. 반나절 정도 지나자 북경 내부에서 총성이 점점 잦아들며 소탕작전이 점차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공친왕이 귀환하였다.

“미안하게 되었소. 사력을 다하여 어떻게든 해보았는데 실패하였소.”

“큰 기대도 안 하였습니다.”

태자의 한 마디가 비수처럼 공친왕을 찔러버렸다. 칼에 맞은 것처럼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던 공친왕의 뒤에서 셍게린첸이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며 보고를 올렸다.

“원의 장수 셍게린첸이 동맹 대한의 태자께 보고를 올립니다. 원명원 방면을 차단하던 본군이 뒤늦게 적을 추격하였지만 만주족의 구원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중요한 법이오. 그래도 경중을 좀 따져가며 판단함이 마땅하거늘.”

“그래도 한솥밥을 먹은 사이인지라 경중을 따지기 곤란하였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공친왕과 함께 병력을 이끈 증국번도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셍게린첸의 말을 들은 태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외몽골에게 징계를 내렸다.

“동맹의 맹주로서 가혹한 명을 내리겠소. 홍수전을 추포하지 못한 것은 모두 외몽골이 사태의 경중을 따지지 못한 탓, 모든 병력을 이끌고 홍수전을 필히 사로잡으시오.”

말이 가혹한 명령이지 외몽골 입장에서는 꽃도 따고 임도 보라는 권유에 가까웠다. 그러자 증국번이 고개를 들고 항의를 하였다.

“잠시만! 이 나라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그럼 그 병력으로 뭘 할 수 있소이까! 홍수전의 본대에 가볍게 돌파당하고 후발대에 몰살당하기 직전까지 몰린 병사가 멀리 도주하여 힘을 불린 역도를 처벌하겠다!”

태자는 며칠 전부터 나와 함께 몇 번이나 연습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온몸에 분노와 짜증을 담아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였다.

“동맹이라는 말도 탐탁지 않소. 우리 대한이 중병에 걸린 환자를 먹이고 재우는 식모요? 뭘 해도 결과가 없고 사리에 맞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북경에서 장정들을 소집하여 재차 추격을 실시하겠습니다.”

“어디 한번 잘해보시오, 그 북경이 어떤 꼴인지 나도 알고 싶구려.”

태자의 완벽한 연기에 공친왕도 증국번도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답을 내지 못하였다. 외성 내부가 정리되고 내성 문이 열렸다는 보고가 들어오며 북경이 함락되었다.

* * *

이틀이 지나도 북경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아직 홍수전의 잔당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폭발물을 설치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모든 전각을 점검하는 작업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중요 인사를 제외하고 꼭 필요한 병사들만 진입시켰다. 공친왕이 아무 반발도 안 하는 동안 물자를 공급하고 포로와 협력자를 가둬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는 조처를 취하였다.

다만 황족과 관련된 업무만큼은 처리해 주었다. 감금당한 태자와 황후를 북경 밖으로 피신시켰는데 그동안 감금생활을 하여 고초가 많은 것 같았다.

여기에 함풍제의 안위도 문제였다. 어느 정도 진정된 황후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뿐 의식불명의 상태라는 말을 하였다.

“형님께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사옵니까?”

“그렇습니다. 듣자 하니 영웅약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지라 조만간 명운이…….”

이대로 함풍제가 죽어버리면 대한제국도 할 말이 없다. 그의 죽음에 책임이 없도록 최소 보름 이상은 연명 조치를 하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의관 중 가장 실력이 빼어난 자 스무 명을 배정하도록. 여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

태자의 명령이 하달되자 황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공친왕이 황후에게 다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권고하였다.

“황궁의 모든 재물을 털어 역도를 징벌할 병력을 모집해야 합니다. 내부 상황은 어떠합니까?”

“텅텅 비었습니다. 쉴 새 없이 약탈을 하여 모든 금은보화를 원명원에 옮겨두었으며 심지어 선제(先帝)들의 무덤을 도굴하여 부장품을 약탈하기까지 하였지요.”

공친왕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고민하고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제물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한 일은 없지만 황궁 안에 있던 보물들과 도굴품은 소유할 권리가 있소.”

“그야 당연한 일이옵니다. 이번 기회에 원명원에 같이 방문하여 상세를 확인합시다.”

태평천국은 북경에서 회수한 자금을 일부러 북경 북서쪽의 공원, 원명원(圓明園)에 비축해 두었다. 듣자 하니 재물이 많으면 몸이 둔해져서 일종의 통장을 지급했다더라.

그 덕분에 북경 내부를 헤집을 필요가 없었다. 방 안에 떨어진 동전 수천 개를 도둑이 하나하나 주워서 돼지저금통에 넣은 상황이나 마찬가지이지.

“정원 중의 정원이라 하였는데 그 말이 옳은 것 같구려. 대충 보아도 경복궁 면적의 다섯 배는 가뿐히 넘는 것 같소.”

본래 역사에서는 아편전쟁 당시 영국군이 홧김에 불을 질러 복제품만 남은 원명원. 그 위대한 역작이자 보물창고를 먼저 둘러본 태자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 재물이 어찌나 많은지 바닥에 질질 끌린 금과 은의 흔적이 남을 지경이오.”

“반객(김좌근의 호) 대감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기뻐하는 수준이 아니고 너무 많은 재물이 쏟아져서 과로로 쓰러지고도 남을 거요. 세상에 저런 돈이라면 이 나라 병사들을 모조리 고용하고도 남았을 것인데…….”

애초에 청나라가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면 이런 최후를 맞이하지도 않았다. 그냥 만주족의 특권을 완화하고 녹영군에게 무기를 사주고 적당히 훈련만 시켰어도 되니까.

태자는 나와 공친왕 그리고 황후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헛기침을 하고 몸을 움직였다.

“난 이만 돌아가 보겠소. 북경에서 여러 공무를 처리할 것이니 재물을 알아서 분배하시오.”

태자가 돌아가고 침울한 표정의 공친왕과 황후가 내 뒤를 따라 원명원으로 들어갔다. 바닥이 이상하게 빛나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태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정말 바닥에 깔린 박석 위에 금과 은이 갈려 나간 흔적이 보이는군요.”

“그토록 철저히 약탈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황후는 궁녀의 부축을 받은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돌 하나하나, 건물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증오심을 드러냈다.

아마 나라를 망친 서태후, 여기서는 불타 죽은 의비가 함풍제와 사랑을 나눈 장소라 증오심을 품은 것 같다. 계속 들어가니 첫 전각이 보였고 그 안에 재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경덕진(景德鎭)에서 만들어낸 최고급 백자들이군요.”

사람 크기의 백자들을 보니 군침이 저절로 나왔다. 이 시기에는 같은 무게의 은보다 값싼 물건이지만 먼 미래가 되면 하나하나가 문화재고 같은 무게의 금보다 훨씬 비싼 물건이지.

그 옆에 있는 호수에는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부표(浮標)가 물 위에 흔들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사들을 시켜 부표를 자세히 살펴보라 하였다.

잠시 뒤, 나룻배를 타고 부표에 접근한 병사가 밧줄을 이리저리 끌어당겨 보다가 도저히 못 끌어내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그리고 삼십 초쯤 지났을까? 병사는 물개처럼 물 위로 뛰쳐나와 금덩이를 손에 움켜쥔 채 말하였다.

“금입니다! 금과 은이 뒤엉켜서 사람 몸뚱이 정도 크기로 그물에 묶여 있습니다!”

“이놈들이 금을 함부로 가져가지 못하게 물속에 보관했구나!”

홍수전도 나름 머리를 썼다. 그냥 금을 보관하면 알음알음 훔쳐가거나 수레로 대놓고 훔쳐갈 수도 있다. 그래서 번거롭다 못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조처를 취했다.

“배 위에서는 도저히 건져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기는. 물속에 잠긴 물건은 물을 빼내면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지.

“호수의 물을 빼내도록. 그동안 다른 물건들을 살펴보겠다.”

적게 잡아도 200개가 넘는 부표가 연못 위에 있다. 각각의 부표가 병사의 말대로 사람 몸뚱이 크기의 금과 은을 나타내면 여기에 잠든 금은보화가 최소 은자 이천만 냥이 넘어간다.

병사들은 흥분과 열망을 휘감은 채 가까스로 제식을 유지하여 명령을 수행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공친왕과 황후는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휘저었다.

다음 전각에는 미술품과 가죽 세공품이, 그다음 전각에는 의장용 보검을 비롯한 화려한 병장기가 가득하였다. 잠시 발을 멈춘 전각에는 보석들이 상자 여러 개에 나뉘어 있다.

현대에는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감상했던 유물들이 원명원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북경 박물관에 있어서 미처 보지 못한 유물조차 있다.

탁자 위에는 염소 머리를 조각하고 금으로 장식한 술잔이,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놓인 육형석(동파육 형상 조각)과 취옥백채(옥으로 만든 배추 조각)가 있어서 손으로 들어 살펴보았다.

“이런 귀한 물건을 왜 이런 장소에 배치하였는지.”

“그보다 더 귀한 물건이 있어서가 분명하군. 다음 전각으로 갑시다.”

이 유물을 중국 대륙에 두면 파괴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대한제국에서 안전히 보관할 명분을 생각하며 다음 전각으로 나아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옛 시대의 유물이 있었다. 전각의 행랑(行廊)에 수많은 책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고 내 눈이 잘못된 것이라 착각했다.

“당삼채(唐三彩)잖아! 최소 천 년 이상 된 고귀한 물건들이 모두 여기 있을 줄이야!”

당삼채는 청자 이전에 만들어진 도자기이다. 세 가지 안료를 사용하여 색상이 화려하지만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안료가 주로 사용되어 당나라 시대에도 희소한 물건이었다.

한반도 문화권도 신라, 발해가 흡사한 물건을 만들어 냈지만 여기 있는 문화재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형상에 가까웠다. 개중에 승려의 삼채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크기가 사람의 절반 정도인 이 불상은 옥색과 황색이 아로새겨진 장삼(長衫)을 입고 살구색에 가까운 아주 완벽한 색 배합으로 몸을 채색하였다.

내가 사학과라서 버틸 수 있지 고고학 전공자라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호흡곤란을 일으켜 즉시 기절할 정도다.

그다음 책장에는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가는 유물이 있었다.

“용천청자! 세상에! 세상에! 맙소사!”

청자를 제대로 생산한 국가는 송나라와 고려 두 국가이다. 개중에 고려는 청자의 상감 문양을 발전시켰고 본국인 송나라는 유약의 배합을 발전시켰다.

그 아름다움의 정점이 여기에 있었다. 우유와 같이 부드럽고, 녹이 올라온 청동과 같이 푸르스름하며, 반투명한 유약으로 한없이 가벼운 것 같은 송나라 청자의 정점.

본래 역사에서는 대다수가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되어 사금파리가 되었을 물건이 적게 잡아도 천 개가 넘게 책장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체면도 나이도 잊고 이 자리에서 당삼채와 용천청자를 양손에 들고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우아하고 청아한 자태에 쿵덕거리는 가슴을 어떻게든 다스리는데 공친왕이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왜 이런 물건들에 흥분하는지 모르겠소이다. 다른 물건도 확인함이 마땅하거늘.”

“아……. 알겠습니다. 다음 방에는 뭐가 있는가!”

“죄다 불상과 보탑입니다. 크기가 하나같이 사람에 버금갈 지경이지요.”

다음 방에 있는 유물도 만만치 않은 물건이었다. 금박이 덮인 등신대 불상, 금은보화로 장식되고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13층 보탑.

여기에 내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유물도 있다. 예를 들면 문화대혁명 시기에 사라졌을 도자기 활자라던가 옥판을 얹고 금을 상감한 바둑판이라던가.

“이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사람이 입으면 딱 적당할 크기의 물건이 있었는데 옥 조각을 금실로 엮어둔 전신 갑옷 같은 녀석이었다. 갑옷도 아닌 이 물건은 대체 뭘까.

다시 방 안을 살펴보는데 뒤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방 안을 바라보는 공친왕과 시선이 마주쳤다. 공친왕과 의비가 이 자리에 온 이유를 되새겨 물건의 정체를 유추했다.

“이건 수의(壽衣)로군. 아주 옛 시대의 무덤을 도굴한 것이 분명해.”

“그럼 선제의 묘소를 도굴하여 갈취한 유품이 근처에 있을 것 같군.”

공친왕은 닥치는 대로 문을 열어젖히며 안을 살펴보았다. 그가 가장 원하고 있던 청나라 황제들의 묘소에 있던 유품과 유해가 근처에 보관되어 있으리라는 집념 하나로.

그 집념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공친왕은 문을 열더니 몇 번이고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크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 분노와 증오가 뒤얽힌 표정만 보아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이 자리에 홍수전이 있었다면 사생결단이 아닌 시신을 갈기갈기 찢을 기세로 계속 고함을 치며 발작하였다.

“왜 그러십니까! 의관 있는가? 의관은 서둘러 진맥을 하라!”

“네놈은 천참만륙(千斬萬戮)을 당할 것이다! 놈을! 놈을 죽여! 어서 죽이란 말이다!”

심장을 움켜쥐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공친왕에게 의원들이 진정제로 모르핀을 투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친왕은 흥분을 모두 가라앉히지 못한 채 혼절했다.

의원들이 공친왕을 밖으로 끌어내 인공호흡을 시키는 동안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 안에는 그가 미쳐 날뛴 이유가 적나라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제대로 미친놈.”

북경 인근에 있던 청나라 황제의 묘소와 요동에서 북경으로 이장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묘소가 도굴된 흔적이 한 자리에 결집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한 자리다. 두개골을 제외한 뼈를 모두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대접에 담아두었고 두개골 위에는 휘도 아닌 ‘첫째 자라새끼’부터 ‘막내 자라새끼’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부장품 가운데 금속은 모두 불에 녹여서 덩어리를 만들었고 도자기나 보석은 최대한 잘게 부숴서 방 안에 널브러트렸다.

말 그대로 광기의 집합체이자 작은 문화대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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