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24장 9화 천명, 소멸(3)
북경에 나와 태자를 포함한 중요 인사가 들어간 것은 함락 후 5일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북경 내부는 나름 혼란을 수습하고 질서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태자는 전신을 주고받으며 실시간으로 효명제의 의견을 듣고 이를 현장 명령으로 하달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미리 말해둔 일이 잘 진행되는지 시찰 겸 확인을 하였다.
현재 대부분의 병력은 북경 내부의 치안과 질서유지 작업을 담당한다. 대신 청도 조차지에 대한제국의 사단 병력들이 집결해서 청도 조차지의 부대가 북경 외곽에 다시 들어왔다.
“우선 포로를 분류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증언을 확인하였습니다. 임시 수용소에 사만여 명에 달하는 포로를 배정해 두었지요.”
간 만에 만난 어재연은 먼저 포로수용소를 확인시켰다. 북경 외곽에 설치된 구덩이에는 기존 포로와 합쳐진 새 포로들이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나마 포로들이 안정적인 상태인 것 같군.”
“성이 함락되고 홍수전이 자기 병력을 이끌고 도주하면서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자폭을 불사하던 놈들조차 머리를 조아리면서 항복을 청하였지요.”
어재연은 그나마 잘된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포로수용소에서 북경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포로들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민심도 되돌릴 겸 포로들에 대한 재판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재판에는 북경 내부에서 사로잡힌 홍수전의 협력자들도 포함되어 있지요.”
“약식 재판이라. 사형 아니면 무죄 방면 둘 중 하나요?”
“그 정도는 아니고 나름 격식을 갖추어 두었습니다. 예전에 에마뉘엘 그루시를 본받아 기병 출신 장교들이 법률을 어느 정도 익혀두었지요.”
그루시는 대한제국에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기병 전력은 물론이고 귀족적인 태도와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여기에는 현지 민심을 끌어들이기 위한 재판도 포함되었다.
여기에 기병 장교들은 요동 사단에 배정된 이들이라 중국어에 그럭저럭 능통했다. 이 기병 장교들이 청도 조차지에서부터 데려온 협력자와 함께 재판을 실시하였다.
-네놈의 혐의는 더 이상 논할 것도 없다! 사형에 처하라!
-잠시만! 저는 사람을 한 명만 죽였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고작 한 명을 죽였다고? 고작 한 명이라는 말이 우습더냐!
신나게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던 태평천국의 병사는 북경 시민들의 손으로 교수대에 목이 매달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재판이 시작되었다.
“저 친구는 뭔가 이상하지 않나?”
한눈에 보아도 사지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소아마비 같은 질병의 후유증으로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는데 멀리서 보아도 두들겨 맞은 몰골이 여실히 보였다.
어재연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재판 당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판사를 담당한 장교가 서류를 확인하고 질문을 하였다.
-팔기군이 보낸 서신에 의하면 네가 사람 넷을 죽였다는 증언을 했구나.
-저는 억울합니다! 제 부모께서 저를 징집시키지 않기 위해 금은보화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혐의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저 또한 두들겨 맞아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저절로 두통이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다. 저 소아마비 환자의 부모는 분명 홍수전에게 협력한 반역 가담자다. 다만 그 이유가 불구인 자식을 징집시키지 않기 위한 일시 가담이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왜 빼앗나. 가담자는 재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병사를 두어 재산을 압류하고 자택에 감금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재연이 팔짱을 끼면서 말하였다.
“어제 점심부터 공친왕 휘하 팔기군이 북경 내부를 시찰하며 홍수전의 협력자를 찾아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행동을 하였군요.”
“재판은 우리 기준으로 돌아가니 무죄 방면을 당하겠군.”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압류당한 재산도 되찾고 피해 보상도 받아야지요.”
판사는 증인을 여럿 불러오고 팔기군 병사도 소집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증언을 모두 확인하고는 판사가 최종 판결을 내렸다.
-불구의 몸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을 터. 거짓 증언을 반영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하면 제 집안의 재산은요! 두들겨 맞아 뼈가 더욱 틀어진 제 몸은요!
-임시로 군표 스무 개를 지급하라. 팔기군 지휘관과 함께 면담을 하여 보상을 논하겠다.
제법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을 사람은 군표 스무 개를 받고 표정이 어느 정도 풀어졌다. 어재연은 주머니를 뒤져 은으로 찍어낸 군표를 보여주었다.
원명원에 보관된 은의 일부를 사용한 군표는 대한제국이라는 네 글자만 음각(陰刻) 형태로 대충 새긴 단순한 물건이다.
여기에 크기를 달리하여 은 1냥, 은 0.1냥 두 종류만 지급했다. 어재연은 군표를 다시 집어넣으며 안도감을 담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냥 은자가 아니고 대한제국 네 글자만 새긴 군표가 이토록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지요.”
“청나라 사람들은 일단 금붙이가 손에 들어와야 자신이 제대로 돈을 받았다 생각하지.”
“더군다나 군표를 지급하겠다고 답을 하자마자 인력 동원도 용이해졌습니다.”
어재연은 북경 골목 구석구석의 집을 가리켰다. 전쟁에 휩쓸려 무너진 집을 재건하고 시신을 찾아 수습하며 파손된 기물을 알아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군표를 기본 지급한 것은 물론 잡다한 일을 하면 추가 지급하기로 하였다. 모두가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챙기려고 악착같이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군표를 지급한 만큼 식량을 비롯한 돈을 주고 사야 한다. 한 길거리에서 고소한 우유 냄새가 풍겨왔는데 병사들에게 받은 연유 깡통을 뜯어 가마솥에서 쌀죽을 끓이고 있었다.
-쌀죽 한 말에 작은 군표 하나! 없어서 못 먹는 물건이니 어서 드시오!
상인이었던 사람들은 군표를 긁어모아 물자를 사고팔며 돈을 벌어들인다. 평민들은 이 군표를 더 얻어내기 위해 노역에 참가하며 악착같이 돈을 마련하였다.
곡창에는 대한제국군이 가져온 곡식이, 푸줏간에는 외몽골에서부터 가져온 소와 말의 고기가 걸리며 최소한의 물자가 배급되었다.
홍수전의 치하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북경 시내가 자금과 물자가 공급되며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청나라 황실이나 사용할 법한 마차가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양반 같으니. 내가 왜 걸어 다니는 줄 모르나.”
“아무리 봐도 공친왕 같습니다. 다른 황족이 나올 이유가 없지요.”
공친왕은 예전 그대로 마차를 타고 북경 시내를 돌아다녔다. 예전 같았으면 고개를 숙이고 길 구석에 물러났어야 할 시민들은 그 모습을 슬쩍 흘겨보고는 몸을 피하기만 하였고.
내 앞에서 호화로운 상감 장식이 된 마차가 멈추고 창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안에 탑승하고 있던 공친왕은 길거리에 있는 날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일전에 이야기한 대로 중앙 대로에서 병사들과 보인들을 소집할 예정이오. 일장 연설을 하여 역도들을 추적할 용맹한 이들을 소집할 수 있겠군.”
“그러면 마차를 타지 마셨어야 합니다.”
“어허. 그래도 권위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는 법 아닌가.”
공친왕의 태도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내 손바닥 위에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단상 바로 옆에 서서 연설을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역적 홍수전을 처단할 것이다. 모두 홍수전에게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함께 하지 않겠는가? 한 몸이 되어보지 않겠는가?”
일장 연설이 끝날 무렵 대충 삼천여 명 정도 되는 인파가 집결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섣불리 함성을 지르거나 응하지 않았다.
불길한 침묵이라 공친왕도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깨고 여든이 다 된 것 같은 노인이 단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고함을 쳤다.
“전하께서는 대체 뭘 하였소! 나라님이 대체 뭘 하였느냔 말이오!”
이최응이 데려온 정보원들, 요동 사단에서 사고를 당한 이들은 다시 거지 몰골을 하고 북경 시민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일종의 바람잡이다.
저 노인은 바람잡이에게 소문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거나 정말 공친왕이 대표로 나온 청나라 조정의 추태에 분노한 사람이다. 태도를 보아하니 아마 후자인 것 같은데.
“내가 무얼 하였냐고! 저런 불경한 놈을 보았나!”
“불경한 것은 댁들이지! 여러분! 내 아들은 옛 전쟁에 녹영군으로 끌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소! 그리고 조선군의 포로가 되어 노역을 하다 돌아왔소이다!”
20년 전 조-청 전쟁에 참전한 녹영군 생존자다. 당시에는 포로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기는 해도 그리 크지가 않아서 죽일 정도로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았지.
공친왕은 자신이 어린 시절 일어난 패전을 들먹이는 노인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그래도 인내심을 동원하여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겸손한 말투로 답하였다.
“그 패전에 대해 할 말이 없소. 또한 이십 년이 지난 일이라 아예 다른 사건 아니오.”
“저! 저! 저런 몰골이라니! 당시에 내 아들이 한 말이 있소! 조선군이 요동의 성을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진격할 때! 가짜 전투를 벌였다 하오!”
“가짜 전투라?”
“서로 성벽에서 싸우지 않고 벌판에서 요란하게 총을 쏘고 불을 피웠소이다. 이후 하루가 지나면 성을 통째로 넘겨주고 도망쳤다는 증언을 하였지!”
20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당시에 만주족들은 싸우면 몰살당하고 싸우지 않으면 목이 잘리는 상황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끌면서 가짜 공성전을 벌였다.
당시에는 어떻게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문이 퍼질 거라 예상했다. 그 예상과 달리 소문이 퍼지지 않아서 넘어갔는데 노인이 그 이유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 이후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소. 내 아들은 손자 둘만 달랑 남겨둔 채 머나먼 신강(新疆)으로 끌려가 여태껏 돌아오지 않고 있소이다!”
“선제께서 그런 명령을…….”
“사기가 무너져 패전에 관여한 병사들에게 징벌을 내리겠다면서 명령을 내렸지!”
“옳소! 내 형님도 끌려갔소!”
“내 남편도요! 자식이 장성했는데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도광제의 실책이 공친왕에게 되돌아왔다. 만주족은 내치지 못 하겠고 녹영군을 내버려 두면 이들이 벌인 실책이 공공연하게 드러나서 멀리 유배를 보낸 꼴이다.
지금까지 꾹꾹 억눌러 참고 있던 북경 시민들이 태평천국의 폭압적인 통치와 무력한 만주족의 작태에 실망하였다.
여기에 대한제국이 북경 시민들을 제대로 통치했고. 그 위에 바람잡이들이 가세하니 다들 쌓일 대로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우리 가족을 돌려내라! 이십 년이 넘게 지나지 않았느냐!”
“알겠다! 신강으로 보낸 녹영군을 북경으로 되찾아 올 것이다! 팔기군은 물론이요 이들 모두 안전하게 북경으로 데려올 것이니 더 이상 논하지 말라!”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으나 믿어 보겠소. 그 다음 문제는 댁들의 멍청한 짓이오! 속에서 혹 덩어리를 키우고! 그 혹이 머리통을 갈아치우는데도 아무 일도 안 했소!”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물러나고 노인은 북경 시민의 대표가 되어 공친왕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노인은 숨을 몇 번이고 헐떡거리며 분노를 삭이고는 말하였다.
“한 줌에 불과한 반군이! 그마저도 병자와 사지가 불편한 이들을 징집한 반군이! 북경 성을 열흘 넘게 사수하였소! 그에 반해 당신들은 뭘 하였소!”
“내가 대한제국의 원군을 불러오지 않았느냐!”
“한 나라의 종사(宗社)를 지키는 황족이! 비를 맞아 나무그늘 아래로 숨어드는 동네 똥개처럼 도주하였다는 말 아니오! 맞서 싸울 생각을 왜 안하셨소!”
공친왕 입장에서는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황제가 헤로인을 퍼먹다가 불구가 되었다는 말을 하면 아예 황실의 권위를 바닥으로 내리찍고 밟아 부수는 꼴이다.
그렇다고 비공식적으로 청도 조차지에 건너갔다는 말을 하면 임무를 저버린 배임(背任) 행위이다.
승산이 없어서 원군을 불러왔다는 말을 하면 병사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직무유기와 마찬가지다. 그래도 공친왕의 동맹을 자처하는 입장이라 적당히 끼어들었다.
“청국의 황상께서 심각한 병환에 빠지셔서 의원을 소집하려 조차지에 방문하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역도들에게 매질을 당하셔서 위중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내가 퍼뜨린 적이 없는 소문인데? 가만히 보니 공친왕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것이 이 인간도 바람잡이를 풀었다. 아마 함풍제를 앞세워 동정심을 얻으려 했던 것 같다.
노인은 그 말을 듣자 ‘시기가 정말로 안 좋았다.’라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하였다.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사라지자 공친왕은 북경의 백성들에게 다시금 보복을 강조하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패악과 패륜을 저지른 역도에 대한 복수다! 놈들은 선제의 능을 모조리 도굴하고 뼈를 부수었으며 부장품을 녹여 버렸다!”
공친왕은 동정심을 더 끌어올릴 생각으로 나름 많은 것을 준비했다. 유골을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홍수전이 녹이고 부숴버린 부장품을 수레에 넣어 가져왔다.
거대한 금, 은, 기타 귀금속이 섞인 덩어리가 차례차례 수레로 옮겨졌다. 여기에 상자 몇 개를 채우고도 남을 파편들이 북경 한복판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라! 백성을 죽인 것도 모자라 한 나라의 종묘사직을 모조리 능멸한 놈들이 아니더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침묵하였다. 몇몇은 정말로 부장품을 저런 꼴로 만들었는지 나에게 시선을 보냈는데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해 주었다.
“한 자리에 뭉쳐둬서 옮기기 좋겠네.”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에 한 사람이 비웃음을 섞어가면서 말하였다. 보통 비만이 아닌, 아주 많은 노력으로 살을 찌워 140㎏ 정도는 나갈 것 같은 젊은이였다.
공친왕은 나만 없었다면 당장 상대를 찔러 죽일 기세로 노려보았다. 그 불타는 시선을 받은 젊은이는 살집이 두툼하게 오른팔에 감긴 부목을 위로 올려서 보여주며 말하였다.
“다들 들어주시오! 나는 역적 놈들에게 끌려가 병사가 되었소. 그리고 조선 병사들이 성안으로 밀려들어 올 때 구석에 숨어서 위기를 모면하였지.”
“그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네놈은 예의범절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는…….”
“댁들은 사람 목숨이 중한 줄을 모르잖아! 내가 협박을 당해 창날을 억지로 쥐고 있어도 조선 병사들은 날 쏘지 않았다! 그런데 네놈들이 날 죽이려고 했어!”
주변에 있던 젊은 사람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모두는 뒤늦게 들어온 만주족에게 구타를 당하고 가담자로 분류되어 재판장까지 끌려갔던 사람들이다.
거기서 약식 재판을 받고 혐의 없음 판정으로 목숨을 구한 이들이다. 그는 분통이 치밀어 올랐는지 투실투실한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원망을 털어놓았다.
“방금 전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도 예의범절을 찾나! 네놈들은 그렇게 당해놓고도 사람 목숨이 중요한 줄 모르지! 네놈들과 홍수전의 차이는 만주족이냐 아니냐의 차이야!”
“저놈을 당장 주, 주, 죽이지 말고 내쫓아라!”
“또 죽이려 했잖아! 이보시오! 조선의 높으신 양반! 내가 조선 기준으로 무슨 죄요!”
암만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이대로 두면 반드시 맞아 죽을 사람이라서 대한제국 기준으로 적당히 낮은 형량을 선고해 버렸다.
“풍기문란과 폭언 및 황실 모독죄로 벌금 삼백 냥에 형무소 내부 노역 2년 정도가 선고되겠지. 끌고 가서 청도 조차지 공공노역에 투입시켜.”
선을 넘으면 본보기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냥 싫다고 하면 되지 한 자리에 뭉쳐둬서 옮기기 좋겠다는 말을 하면 선을 한참 넘었지.
-내가 만주족 아래의 병사가 되느니 조선의 거지가 되겠다!
-닥쳐! 죄를 저지른 놈이 말이 많다!
뚱뚱한 젊은이는 병사 넷에게 끌려가면서도 한 소리를 하면서 공친왕의 속을 긁어버렸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수수깡처럼 앙상한 젊은이가 절을 하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전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 친구는 가족 모두가 역도들에게 장살(杖殺)을 당하여 정신이 반 쯤 나가버린 사람이어서 험한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한 짓을 저지른 역도들을 가만히 두겠는가! 이래도 나에게 응하지 않을 생각인가!”
“네.”
수수깡처럼 앙상한 젊은이는 0.1초도 걸리지 않고 바로 부정적인 답을 보냈다. 그러고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숨을 크게 들이켜고 말하였다.
“무능하고! 탐욕을 일삼고! 사람 목숨을 헛되이 알며! 기회만 생기면 사람을 죽이려는 만주족 아래에서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있더라도 제정신이 아닐 겁니다!”
“아무렴! 차라리 조선 아래에서 일을 하고 말지!”
“만주족을 섬기면 쌀이 나와? 돈이 나와?”
“돈이 없어지고! 쌀이 없어지지!”
공친왕은 분명 올바른 일을 했다. 홍수전에게 협력한 사람들이나 부호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고 이를 군사비용으로 충당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억하심정을 부리거나 거짓 증언으로 줄줄이 엮여 재산을 털리거나 심한 경우 가족이 사형을 당했다.
설령 억울하지 않은 사람도 억하심정을 가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한제국이 내 명령에 의해 북경에 돈을 뿌리기까지 하였다.
“만주족은 물러가라! 우리는 조선에게 급료를 받으면서 벌어먹고 살 것이다!”
“그동안 오래 해먹었으면 빼앗긴 재산을 돌려놔라!”
“억울하게 형장에서 죽어나간 사람의 보상을 하라!”
내 의도대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공친왕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고 재판을 다시 하겠다, 누명을 쓴 사람을 분류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얼버무렸다.
동맹 자격으로 참전한 대한제국은 돈을 뿌리는데 동맹 덕분에 수도를 탈환한 청나라는 돈을 거둬간다. 그냥 빼앗는 것 보다 줬다 뺏는 것이 더 치졸하고 추잡해 보이기 마련.
차라리 함풍제를 폐제(廢帝)하고 보위에 올랐다면 권위를 내세워 수습이라도 가능했다.
공친왕은 자신이 황제가 아닌 일개 황족임을 자처한 순간부터 내가 깔아둔 덫에 걸린 것이다.
“그만! 그만! 너희를 이끌고 역도를 죽이느니 차라리 다른 지역의 병사를 고용하겠다!”
병사를 징집하고 지원을 받아내겠다는 공친왕의 입에서 마침내 다른 지역의 병사를 고용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북경 시민들이 역으로 삿대질을 하며 따지고 들었다.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우리도 댁을 황위에 얹어두느니 돈을 주고 이주를 시키겠소!”
“이번 기회에 천도라도 하시오!”
“옳소! 만주족은 물러나라!”
수도인 북경이 옛 지배자를 거부한 시점부터 천명은 대한제국에게 옮겨졌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북경을 점령하고 천명을 거머쥘 생각은 추호도 없는 국가이다.
공친왕은 아예 게거품을 물고 뒤로 자빠져 버렸고 천명은 소멸해 버렸다.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천명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