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25장 3화 뒤늦은 반성
<3월 28일 연재본 후반부가 수정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확인해 주십시오>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을 계속하였다. 피난민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위안을 삼을 새도 없이. 그저 말 위에 몸을 올리고 기차 위에 몸을 올렸다.
이제는 물이 불어난 황하 위의 부교를 넘어 청도 조차지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합류하게 된 은찬이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꾸벅 올리면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부친께서 나라의 중대사를 처리하는 동안 포로를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소자가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헛된 일을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하면 잘된 일이로구나. 네 몸의 안위가 최선이지.”
은찬이는 내 표정을 살펴보더니만 우물쭈물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날 찬찬히 살펴보면서 말하였다.
“혹여나 부친께 병환이 있거나 나라의 일이 어지럽혀지셨습니까? 소자가 듣기로는 북경에서 별문제가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하였습니다.”
“별일은 없지. 청나라에 새 주인이 들어설 것이며 이 나라가 실리를 챙기기는 하였다.”
그 이득을 챙기면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는 전제조건이 계속 마음을 억눌렀다. 그래도 은찬이의 심각한 표정을 보면서 마지못해 답해주었다.
“많은 업무를 처리하여 피곤하구나. 속히 대한으로 돌아가자꾸나.”
“가시는 길에 배를 정해 타시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병을 앓거나 상처가 악화되어 죽은 사람들과 같은 배를 타면 여러모로 피로가 더욱 심해질 것 같습니다.”
대한제국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분쇄했어도 교전을 실시한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기 마련.
이번 전쟁의 사망자만 2,200명에 달한다. 아직 중국 대륙에 남은 시신은 150여 구에 달하고.
저 멀리 항구를 살펴보니 그 관이 하나씩 배 위에 적재되기 시작하였다.
동료들의 어깨 위에 오른 채 배에 옮겨지는 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정들을 생각하니 대한제국에서도 생겨날 미망인과 고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고아가. 엄밀히 따지면 나와 연관이 없이 고아가 된 녀석이 저 멀리서부터 뛰어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나에게 달려와 인사를 올렸다.
“박 후작님께 소식을 들었습니다! 후작님과 조 총장님께서 외교를 조율하신 덕분에 남경에 파견된 제 동기들도 전공을 거두고 복수에 성공하였습니다!”
“그거 잘된 일이로군. 다들 복수를 제대로 챙기긴 했나?”
“그리 많이는 못 챙겼습니다. 기껏해야 아편을 퍼트린 태평천국 놈들을 총살하거나 놈들의 재물 가운데 일부를 갈취했을 뿐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일준이가 몸을 던져 영국군을 위협한 덕분에 남경의 독가스 살포를 막을 수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벌어질 일을 생각해 보니 더욱 답답해졌다.
아마 이득과 손실을 저울질하면서 영국군이 알음알음 독가스를 사용하는 걸 약점으로 잡았을 거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나도 대충 책임을 회피하려 할 거고.
속이 뒤틀려서 표정이 일그러질까 봐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정상적인 진로를 걸어가기를 기대하면서 질문을 하였다.
“이제 할 일은 다 한 것 같군. 돌아가서 장교 생활을 계속할 건가?”
“아닙니다. 서신을 통해 친구 여럿과 힘을 합쳐 사업체 하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이토 히로부미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였다. 그 사업이 어떤 사업일지는 몰라도 녀석에게는 적당한 후원금을 주는 것이 좋아 보였다.
이윽고 배가 움직여 대한제국에 도착했다. 거의 8개월 만에 돌아온 제물포항에 배가 닿자마자 사람보다 시신이 먼저 움직였다.
나와 다른 배에 타고 있는 태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을 존중하여 아직까지 하선하지 않고 굳게 선 채로 관이 옮겨질 때마다 인사를 하였다.
관이 내려오자마자 흰색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혹은 삼베옷을 입은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남편을 잃은 아내가 대성통곡을 하고, 자식을 잃은 부모가 관을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심사가 더욱 뒤틀렸다. 배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보고를 올리는 동안에도 내가 말을 하는 건지 다른 누군가가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넘겨짚어 온 생각 하나하나가 내 목을 옥죄는 것 같았다. 거의 한나절을 멍한 상태로 움직이고 한숨을 돌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박 후작 나리! 소인이 인사를 올렸는데도 왜 모르는 척하시는지요!”
일준이가 내 등판을 후려치면서 반갑게 인사하였다. 녀석은 지금까지 보내온 편지를 떠올리라는 듯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보여준 다음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방독면이 조금 새서 혓바닥이 새카맣게 변했지 뭐냐.”
“몸이 성하게 잘 다녀와서 다행이다.”
“몸이 성해? 넌 어디 병이라도 걸렸어? 완전 송장 몰골인데?”
그러고 보니 효명제가 내 공을 치하하면서 의원을 찾아가라 권고했던 것도 같고 주변 사람들도 염려하기는 했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경복궁에서 장례 행렬이 시작되었다. 효명제는 이번 전쟁의 희생자들을 한양 외곽의 사당에 모시기로 하였고 전체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러주었다.
당연히 나와 일준이도 장례식에 참가하였다. 기본적인 장례의식이 끝나고 시신이 고향에서 재차 장례를 치르게 인계되자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선뜻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와 함께 장례에 참가한 일준이는 내 모습을 뜯어보면서 다시금 말하였다.
“여전히 표정이 죽상이네. 너 혹시 몸의 병이 아니고 마음의 병이냐?”
“그거에 가까울 것 같아. 잠시 고민상담 좀 할 수 있을까?”
나와 비밀을 공유하는, 같은 시대 출신인 일준이라면 내 고민을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둘을 위해 마련된 별실에서 술을 들이켜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옳은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어.”
“지금까지 잘만 해놓고서 뭐가 문제야.”
일준이에게 대부분의 사항을 털어놓았다. 북경의 고아들을 보고 의문이 생긴 점, 엉킨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 점 그리고 장례 행렬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점.
두서없는 이야기를 끝내자 일준이가 팔짱을 끼고 한참 동안 고민하였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고 동치미를 들이켠 다음 말하였다.
“네 성격대로 잘해놓고서 이제 와서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이런 말이냐.”
“뒤죽박죽도 애매한 말이고 내가 옳은 일을 한 건지가 가장 큰 의문이지.”
“넌 옳은 일을 했어. 그 방법이 과격하고 희생자가 생겨서 난 아니라고 보지만. 너 처음에 도고들 족쳤을 때 기억해?”
당연히 기억한다. 조정에 가급적 빠르게 발탁되어 연줄을 만들고 효명세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시기이다.
열수환, 현대에는 정로환이라 불리는 약을 일준이가 만들어 냈고 권력의 핵심에 있던 김조순이 도고들이 백성에게 가짜 약을 팔고 누명을 덮어씌울 것이라면서 만류하였다.
그걸 역으로 이용하여 무고죄를 적용해 도고를 싹 쓸어버려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하였고.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속이 다 후련하더라.”
“다산 선생님 속이 썩어 문드러진 건 기억 안 나냐?”
당시 정약용은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면서 염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업, 효명세자의 죽음으로 나라가 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서 다음에는 이러지 말라며 만류했고.
이후에도 백성들에게 피해를 떠넘긴 꼴이라면서 자책하기까지 하였다.
일준이는 내 표정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그 당시처럼 열수환을 만들 듯 손가락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때 네가 했던 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쌀을 매점매석해서 굶어 죽게 만들 놈들인데 백성들이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던가?”
“그런 말을 했었지. 했기는 했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했었고?”
그때 먹었던 마음이 무엇인지 기억 속을 더듬었다. 당시에는 고통의 총량이 더 많다면 일찍 고통을 당해 총량이라도 줄이자는 생각을 품었던가.
그래서 한양 백성들이 수없이 굶어 죽는 사건을 막기는 했다. 대신 도고들이 싹쓸이당하는 과정에서 이백여 명 정도의 시민들이 구토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었다.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이 많았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일준이의 말 대로 많기는 하다. 내 정책은 가급적 부정적인 영향을 억누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희생을 감수한다.
그 희생이 점차 커지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마음속을 일준이에게 털어놓기까지 하였다.
수백 명이 가짜 약으로 고통을 겪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서, 청나라의 반란을 이용하며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가족을 잃고 고통을 겪고 있다.
“이제 와서는 홍수전의 반란을 방임하고 이를 이용해서 청나라를 무너트렸지.”
“잘 알고 있네. 그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홍수전의 반란을 미리 억제하고 청나라를 정상적인 국가로 바꿀 수는 있었냐? 그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 같아?”
“대한제국의 최대 적대국이자 초거대 강국이 만들어지겠지.”
안 한 것이 아닌 못 한 것이다. 그렇게 합리화를 할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 뒤엉킨 실타래가 풀려나지 않고 더더욱 뒤엉켜 큰 덩어리가 된 것 같다.
속이 답답해서 찬물을 들이켰지만 여전히 응어리가 진 것 같았다. 일준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네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건 다른 방법을 몰라서야. 나는 길을 걸어갈 방법을 모르는데 현상이 너는 평탄한 대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친구였고.”
“그대로 주변에는 길이 깔리면서 짓밟힌 사람들이 있었지.”
“이제야 철이 드셨네요. 육십 다 먹고 철이 들었는지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계속 보이더라고. 네가 무시한 사람들 말이야.”
일준이의 말 대로 내가 깔아둔 대로에는 구토를 일으키는 한양 백성들을 시작으로 효율을 추구한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이 있을 거다.
그 과정에서 나름 신경을 써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였다. 최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옥죄고 잘한 사람을 다독이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에서 본 고아들의 모습이, 관을 내리면서 통곡하던 유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서 망설임이 더욱 커졌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망설임이 생겨나니까 뭘 어쩔 줄을 모르겠네.”
“넌 아직도 감을 못 잡았네. 예순 살 살아오면서 뭘 배웠냐?”
배운 건 많고 계획은 많다. 그러나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답을 하지 않자 일준이는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을 하면서 말하였다.
“다산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 우리에게 어떤 유언을 남겼는지 기억해?”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하라고 유언을 남기셨지.”
“나에게는 양심을 가르치라 하셨잖아. 반대로 너에게는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하라고만 하셨지. 그 유언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남기신 말씀이 분명해.”
생각해 보면 나의 억제장치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앞에서 말릴 수 있던 사람이 정약용이다. 그 유언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지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정약용은 내가 언젠가 자책감을 느낄 것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효율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라는 예측을 한 것이다.
“지금 꼴을 보니 네 말이 맞아. 다산 선생님은 내가 이런 꼴이 될 거라는 걸 예측하신 거야. 언제부터 이걸 알아차리셨을까?”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지. 그럼 뭘 하셔야겠어요? ‘Keep calm and carry on’ 알지?”
“야 그건……. 아니다, 지금 내가 망설이면 추후 협상이 엉망진창으로 진행되겠지.”
“네 고민은 네가 저지른 일이고 네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야. 그걸 외면하고 합리화하다가 이제서 알아차렸다고 어떻게 할 수 있어? 그걸 마음속에 담고 계속 나아가야지.”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병사들은 북경 치안유지 역할만 담당하면 되지만 나는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과 중국 대륙 분할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확정 지어야 한다.
정약용의 유언대로 앞으로도 잘하지 않으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어버리겠지. 일준이는 내 표정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술을 한 잔 따라주면서 말하였다.
“이번 협상이 끝난 다음 은퇴해서 제자나 잘 키워. 지금까지 너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이득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그 장점이 사라질지도 모르잖아.”
“지금 은퇴하면 꼴이 뭐가 되냐? 우리 공식 연령은 만 오십삼 세에 불과한데.”
“의정부 대신이라도 되어서 직접 나서지 말라는 소리다. 그 이후에는 총리 한 번 하고 어디 박물관 관장이나 하시든가.”
일준이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면서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아 그리고, 쓸데없이 자선사업이니 뭐니 하지 마라. 좀 더 구체적이고 훗날 올바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거국적인 일을 해. 어설픈 반성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거 알지?”
녀석은 잔을 들고 마주치지 않은 채 입 안으로 털어 넣은 다음 자신의 신세도 한탄하기 시작했다. 녀석도 늙고 나도 늙어가는 신세로 할 말이 있겠지.
“내 제자는 이미 다 교수가 되었고 제자의 제자가 박사논문 심사를 받는 상황이다. 나도 이제 손이 떨리기 시작해서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위기인데.”
“그런 몸으로 어설픈 방독면에 의지해서 독가스 밭을 지나갔다고?”
“다산 선생님이 양심을 가르치라는 유언을 남기셨잖아.”
나도 소주를 들이켜고 일준이의 잔을 채워줬다. 그러자 녀석이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일준이는 내가 관여하지 않으면 언제나 양심과 윤리를 지키며 행동했다.
위험한 실험을 할 때는 언제나 그 현장에 자신이 함께하였다. 위험한 이론인 우생학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그 싹을 짓밟고 찰스 다윈을 통해 뿌리를 뽑아버렸다.
자신의 일이 아닌, 오로지 유럽의 광기로 인해 생겨난 방사능 물질의 피해를 막아내고 이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독가스 밭을 가로질러 그 끔찍함을 알렸다.
그 과정에서 내가 관여하여 양심과 윤리를 억누른 적도 있다. 이를테면 헤로인의 경우 일준이의 의도대로 청나라 황실에 직접 알렸다면 홍수전의 반란은 성공하지도 못했겠지.
녀석도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며 많은 것을 참고 억눌러 온 것이다. 일준이는 다시금 잔을 비우더니 머리를 세차게 흔든 다음 말하였다.
“넌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그런데 네가 잘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물러나야 하겠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네.”
“뼈와 살은 개뿔.”
일준이는 내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고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팔뚝에 힘을 잔뜩 주고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말하였다.
“솔직히 말해 널 쥐어박으려다 참은 것이 몇 번이나 되는 줄 아냐. 하긴 쥐어박고 뭘 어떻게 했다면 청나라가 강대국이 되어서 그 거대한 덩치로 대한을 압박하고 있겠지.”
일준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술을 몇 잔 들이켰다. 그리고는 홀가분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어설프게 주저앉거나 무너지지 말고 유언대로 앞으로도 잘해라.”
일준이가 먼저 방 밖으로 나가고 나는 한동안 방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일준이 덕분에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나는 발전과 이익을 추구하였으며 이 과정을 철저히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다.
그러나 언젠가는 죽을 사람이라면서, 더 많은 고통을 겪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덜어줄 것이라면서 얼버무렸다.
더 이상 얼버무릴 수 없는 내 잘못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적어도 대한제국의 미래가 여타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른, 조금이라도 더 도덕적인 국가가 되도록 후계자라도 육성해야 할 것 같다.
“다산 선생님 묘소라도 한번 다녀올까.”
문득 정약용이 떠올랐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세상을 떠났을까, 지금까지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제사라도 올려야 할 것 같다.
#작가의 말
어제 연재본 후반부 내용이 조금 수정되었습니다.
본래 오늘 연재본에서 한 번에 진행시킬 생각이었는데 너무 급격한 것 같아서 두 번에 걸쳐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