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32화 (298/345)

332화

25장 8화 남북 전쟁(3)

주 경계를 넘으며 소규모로 분열된 기병들은 앨라배마 주의 경계에서 다시 합류하였다. 이들은 진격 담당과 후방 안정 담당으로 나뉘어 역할을 분담했다.

후방 안정 담당자는 소르칸이었다. 그는 주지사이자 민병대 대표 겸 사령관을 역임하며 훈련장 공격을 주도하였다.

“태비시 이 친구가 아주 잘했어. 다들 돌격! 하얀 놈은 모조리 죽여!”

“칸께서는 설득을 원하십니다. 정말 다 죽이실 작정입니까?”

부관의 질문을 들은 소르칸은 괜히 귀를 후비적거린 다음 마지 못하는 말투로 답하였다.

“설득도 해야 할 놈이 있지. 우리와 같은 미국 시민들은 설득해야 할 사람이야, 이들은 높으신 양반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철새와도 같다고.”

“그러면 군인들의 항복을 받고 부하로 만들어서…….”

“넌 머리를 뒀다 국이라도 끓여 먹었냐? 저기 있는 놈들은 자발적으로 민병대에 합류했잖아? 그러면 칸에게 역심을 품은 반란 종자지?”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대평원의 논리대로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며 미국에 어설프게 끼워 맞춘 제도에 불과하였다.

“그 반란 종자를 설득해? 당장 자무카의 방식대로 삶아 죽여도 모자랄 판에?”

링컨의 설득 명령은 절반만 받아들여졌다. 사실 절반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소르칸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인 절반을 받아들였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항복 따위는 안 받아. 무기를 들고 있으면 적이고, 무기가 아니더라도 뭘 손아귀에 쥐고 우리를 위협했으면 적이다. 모두 이 기준에 따라서 활동하도록.”

“이러다가 사람들의 씨가 모조리 말라 버릴 것 같은데요.”

사방을 공격당한 훈련장은 이미 기병들이 목책을 모조리 무너트리고 난입한 상태였다. 화약을 잃은 상태에서 항복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항복을 외치던 민병대들도 학살을 피해 평원으로 달아났다. 소르칸은 그 모습을 몽골인 특유의 시력으로 확인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저놈들은 포로로 잡아. 나중에 쓸 데가 있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아주 좋은 생각. 링컨 칸의 자비하심과 우리의 위업을 드러낼 생각이다.”

이천여 명의 민병대가 머무르던 훈련장은 전투 시작 1시간 만에 모조리 궤멸하였다. 엉겁결에 살아남은 흑인 노예들은 그 참상을 보고 오히려 태비시에게 따지고 들었다.

“주인 나리들을 다 죽이면 어떻게 하는가!”

“이러다가 채찍이 아니라 우리 다 목이 매달리지 않겠는가!”

예상대로의 반응에 태비시는 위스키로 병나발을 불고 입을 훔쳤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마시던 위스키 병을 들이대면서 말하였다.

“앞으로 우리는 주인이 없어, 주인이 없는 미국 시민이 될 거라고.”

“그게 말이나 되나?”

“이 친구들아! 이 동네에 우리 같은 검둥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인구의 사십 퍼센트가 넘어! 애리조나 민병대가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우리가 뭘 해야 할까!”

평생 입에도 대보지 못한 위스키를 마신 흑인 노예들은 그 알딸딸한 술맛에 취하여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자 태비시가 새 병을 뜯으면서 답했다.

“이제 우리는 하얀 놈들과 대등한 관계다. 우리뿐만이 아닌! 법을 지키고 질서를 수호하는 미국인 모두가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그 방법이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을 품은 사람들과 달리 진격 담당이 이미 터스컬루사 외곽 농촌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훈련장의 굉음은 도시 인근까지 들렸다. 네 아들과 두 딸을 둔 가장은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머스킷을 챙겨 들고 나섰다.

“적들이 여기까지 침입해 왔나 봐. 당장 나가서 맞서 싸워야겠어.”

“사고겠죠. 동네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여기는 연합 한복판이라던데요?”

“어허! 사고가 저렇게 크게 벌어져? 나는 우리 남부를 위해 한목숨을 바칠 거라니까!”

40대의 중년 남성은 너저분한 수염을 가위로 대충 깎으며 몸을 단장했다. 그는 고작 십 에이커(4만 제곱미터)의 농토를 소유한 농부이지만 어엿한 남부의 꼴통이기도 하였다.

노예제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이 되는지, 노예를 해방하면 무엇이 좋은지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그는 모자를 덮어쓰고 총을 닦으며 말하였다.

“난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있지만 남부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있어! 내가 해야 할 직무(Call of Duty)를 방해하지 말라고!”

농사에 쓰일 말에 안장을 올린 가장은 만류하는 부인의 손을 뿌리치면서 농장을 나섰다. 그러자 부인이 방 안으로 들어가서 쟁반 위에 우유를 가져와 말하였다.

“말리지는 않겠어요. 대신 군대 식사가 부실할 것 같으니 우유 한잔하고 가세요.”

“우유 좋지. 내 뜻을 이해해 줘서 고맙소.”

말에 오른 채 부인이 건네는 우유를 받아마시던 가장의 뒤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특유의 기묘한 고함과 함께 발굽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끼요오오옷휘요오오오옷!”

“뭔 미친 소…….”

그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총을 꼬나 들고 말 위에 오른 순간부터 제1 살상 목표가 되었고 그의 등판에 총알 세 발이 쑤셔 박혔다.

“꺄아아아아아악! 인디언이다아아!”

부인은 자신에게도 총알이 날아올 것이라 질겁하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말총머리를 흩날리는 원주민 병사는 주변을 쓱 둘러보고 다음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히이이이익! 인디언이다!”

“난 미국인이야 멍청아.”

어설프게 총을 장전하던 청년의 이마에 한 발, 쇠스랑을 들고 달려드는 장정에게 한 발을 쏘아붙인 원주민 병사는 총을 재장전하며 후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방에서 더 많은 원주민 기병들이 난입하였다. 이들은 소르칸의 명령에 의거하여 전투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를 착실하게 죽이면서 사방을 파고들었다.

“민병대! 민병대 불러와!”

“로버트가 당했어! 의사 불러와!”

“민병대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총을 들고 있는 자는 가장 먼저 죽었다. 어떻게든 농기구로 저항하려는 자는 그다음으로 죽어 나갔다.

한 노인은 작두날을 앞세웠다가 배에 총을 맞고 피를 뿜어냈다. 그러나 원주민 기병들은 옆에서 짚단을 나르던 아들은 슬쩍 훑어보고는 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 나섰다.

마을을 습격하고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 인디언이 아닌 정규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원주민 기병들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자 생존자들이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저놈들 뭐야……. 왜 형님을 죽이고 나를 안 죽였지?”

“인디언 새끼들아! 차라리 아버지 말고 날 죽여라! 날 죽이란 말이다!”

모두가 가족이 남긴 무기를 부여잡고 추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무기를 거머쥐려다 저항한 자는 무조건 죽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살려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복수로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차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가장 먼저 죽은, 민병대 입대를 원하던 가장의 시신을 부인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여보! 왜 그러셨어요! 왜 총을 들어서!”

점차 피를 흘리며 식어가는 남편의 시신 앞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울음을 멎게 하는 또 다른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생존자들 모두가 무기를 들려다 차마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마을 한복판에는 어느새 족히 백여 명은 넘는 기병들이 질주하였다.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저것(It) 들은 대체 뭐야?”

시커먼 말을 탄 흑인들이 말 위에 오른 채 마을을 통과했다. 흑인이 말을 타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흑인들이 무기를 갖추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다음으로는 생전 처음 보는, 간혹 도시에서나 보이던 노란 피부의 황인종들이 마을을 가로질러 도시로 나아갔다.

터스컬루사는 훈련장에서 발생한 굉음을 듣고 병력을 소집하였다. 인근의 망루와 종탑에 오른 병사들은 새벽부터 하품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친놈들이 화약고 안에서 담배라도 피우다 불똥이라도 튀긴 것 같은데.”

“아무리 멍청해도 그러겠어? 야 잠깐. 저쪽 봐봐! 서쪽에서 뭐가 온다!”

종탑 위의 병사들은 저 멀리 벌판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확인하였다. 그 정체가 무엇일지,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하기 위해 망원경을 더듬거리며 꺼내 들었다.

“염병할. 이 동네에 기병은 없는데 어디서 기병들이 기어 들어왔나.”

싸구려 망원경은 800m 밖에 있는 기병들이 희끄무레하게 보일 정도의 성능이었다. 병사들은 저것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산발적인 총성이 들려오고 병사들이 자리에 고꾸라졌다. 뒤늦게 비상 신호가 보내지고 종탑의 종이 울리며 사방으로 전투 상황을 전달하였다.

“몇 놈 놓친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압도적인 시력을 자랑하는 몽골계 미국인들은 진식 소총의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했다. 이들은 스코프조차 필요 없이 600m 거리의 저격을 달성하였다.

이제는 본격적인 교전에 나설 차례였다. 민병대가 차례대로 소집되기 전에 모든 적과 잠재적인 적을 제거하는 진격전의 차례였다.

“다들 돌격하라! 링컨 칸께서 당부하신 대로 우리 미국 시민들을 설득할 차례다!”

“탄환과 검으로 설득하라!”

남부 연합의 최후방 터스컬루사에 몽골계 미국인들을 주축으로 한 기병대가 난입했다. 상당수의 병력을 외부로 돌린 탓에 이들은 조직적인 저항도 못 하고 사방을 유린당했다.

본래 마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들끓었을 길거리에 총탄과 칼날이 번뜩였다. 민병대를 시작으로 무기를 가진 모든 사람이 말발굽에 짓밟히고 총알을 두들겨 맞으며 시체로 변했다.

“무장이 없는 사람은 죽이지 마라! 야!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손이 헛나갔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이들은 원주민 기병들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체계적인 학살의 전문가인 몽골계 미국인들이 나섰고 흑인들은 실력이 처지는 바람에 조금 뒤처졌다.

그나마 건물을 끼고 저항하던 병력들조차 소르칸의 병력이 합류하자 반항조차 하지 못하였다. 거대한 교회의 문이 박살 나고 기병들이 안을 날뛰며 사람들을 학살하고 돌아갔다.

“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것이 지옥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끝입니까?”

남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딕시들의 기준에서는 세상의 종말이요 묵시록에서나 나올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들이 절대 미국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미국인을 죽이고 있었다.

평원에서 날뛰는 유사인류 인디언, 원숭이에 가까운 열등한 족속인 흑인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누런 피부의 괴물들까지.

기도를 올리다 밖으로 나온 목사는 손을 덜덜 떨며 권총에 탄환을 장전하였다. 그리고는 모든 기독교 문화권에서 대죄로 생각하는 자살을 기도하며 턱에 총구를 들이댔다.

“늙은이가 총 들고 있네.”

지금까지 목사를 스쳐 지나가던 흑인들이 총을 훑어보더니 총구를 겨누었다. 못마땅한 일이지만 적이 무장을 한 이상 작전을 준수하는 것이 군인의 의무이다.

권총이 연신 불을 뿜고 세 발의 총알이 목사의 몸에 박혔다. 그는 한동안 사지를 버르적거리다가 권총을 손에 움켜쥔 채로 사망하였다.

모든 시민들은 집 안에 숨은 채 자신들의 이웃이 죽어 나가고 길거리가 파괴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들에게는 세상의 끝이요 종말의 시작과도 같은 징조였다.

어느덧 총소리가 멈추고 시체가 길거리를 메웠다. 인구 2만여 명의 터스컬루사에서 쓸 만한 장정들 모두가 죽거나 항복한 상황. 본격적인 ‘설득’ 작업이 시작되었다.

“야! 검둥이들! 설득 시작해!”

“알겠습니다! 다들 시민들을 설득한다!”

소르칸의 명령을 받은 흑인들은 길거리에서 쓸 만한 수레를 꺼내서 말 뒤에 연결하였다. 그리고는 세 명이 조를 이루어 집의 문을 두드렸다.

문틈 사이로 이를 지켜본 부인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시커먼 얼굴을 보고 숨을 삼켰다.

“흐읍!”

남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었다. 글도 모르고 지능도 낮은 흑인들을 병사로 훈련시키는 존재는 지옥의 악마들 외에는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은 전투의 흔적을 추측하고 집 앞의 명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집주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유추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부인, 마당의 핏자국을 보아하니 가장이신 맨스필드 씨는 작고(作故)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 애리조나 민병대가 터스컬루사 지역을 점거하여 현지 보급을 실시하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관료들이나 쓸 법한 완곡어법을 평범한 백인이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장교진에 대한 핑커톤 인사들의 어휘 교육과 몽골계 미국인들의 주입식 몽둥이 교육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문틈으로 시선을 맞춘 다음 말하였다.

“열을 셀 때까지 협조해 주시지 않으면 물리력을 동원하겠습니다. 열.”

삐거덕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고 방 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온 병사들은 부인을 한 번 훑어보더니 방바닥에 놓인 시신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저희는 피에 굶주린 악귀가 아닙니다. 반항하는 자들은 응징하지만 여러분들은 이미 설득이 되신 분들 같으니 물자를 보충하겠습니다.”

“야, 배고파 죽겠다 닉. 빨리 재료 챙겨서 식사나 하자고.”

어느새 주방에 있는 식자재를 털어낸 흑인 기병들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쓰다듬고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신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말하였다.

“조만간 같은 시민으로 마주할 그 날이 되면 이번 일을 이해해 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흑인들은 알뜰살뜰하게 물자를 가져갔다. 대략 보름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최소한의 자금을 제외한 모든 물자를 징발하고 옷가지를 비롯한 생필품까지 모조리 가져갔다.

말이나 소는 한 마리를 남겨두었다. 이 과정에는 대지주를 비롯한 부유층까지 끼어 있었다.

“이 원숭이 새끼야! 그냥 죽여라! 차라리 날 죽이고 재산을 가져…….”

“그러지.”

옛 몽골이 그러하듯 수많은 재산이 자그마한 쇳조각으로 거래되었다. 대지주의 머리에 총알을 세 발 박은 몽골계 미국인들은 저택의 모든 재산을 알뜰살뜰하게 가져갔다.

다음으로는 흑인 노예들의 해방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흑인 노예들에게 소르칸이 직접 나서서 링컨의 뜻을 전달하였다.

“너희는 이제부터 미국 시민이다! 이는 위대한 링컨 칸의 뜻이다!”

“링컨 칸이라니요? 성이 칸이고 이름이 링컨입니까?”

“어허! 이 나라의 대통령이자 칸이신 분을 함부로 부르다니! 다들 복창해! 링컨 칸 만세!”

흑인들은 서로를 돌아보다 억지로 ‘링컨 칸 만세’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모습에 만족한 소르칸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칸께서는 남부의 꼴통들을 설득하라 하셨다. 너희를 더 이상 노예로 부리지 말라는 설득이지. 그런데 내가 말재주가 없어서 설득을 하려니 골머리가 아프더라고.”

소르칸의 본래 성격대로라면 딕시들을 모조리 죽이고 남은 사람들만 가지고 ‘설득’을 완료했을 거다. 애초에 말보다는 손이 앞서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배워온 문명사회, 정주민족으로서의 위치, 정치적 입지 그리고 링컨의 당부가 겹쳐졌다.

결국 소르칸은 옛 몽골의 방식을 나름 변형해서 적용시켰다. 몽골의 노예는 전공을 세우면 부족민이 된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을 적용해 상대를 노예로 만들고 다독이면 한 몸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니 같은 신세로 부대끼다 보면 설득이 되지 않을까 싶던데.”

“같은 신세요?”

“너희도 시민이고 여기 있는 사람도 시민이잖아? 너희가 이 동네를 관리하고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해. 그러다 보면 알아서 어울릴 것 같아.”

노예에서 갓 해방된 흑인들에게 바토르로 활약했던 흑인 기병들이 마주하였다. 이들은 서로 흑인이라는 동질감을 가진 채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인사가 끝나자 소르칸은 가장 많은 활약을 한 태비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그를 시장으로 임명하였다.

“앞으로 터스컬루사의 임시 시장은 너다. 네 동포들을 잘 다독이고 법률을 준수해.”

“알겠습니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우리는 피부색과 상관없는 미국 시민이다.”

남부 일대에서는 지옥에서 고문당하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는 설득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꿍꿍이를 생각한 소르칸은 후줄근한 옷을 입은 백인과 정장을 입은 흑인들을 데려왔다.

“다들 화합을 기념해서 사진 한 방 찍자고.”

“저기 찍고 나서…….”

한 흑인이 사타구니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소르칸의 발길질이 사타구니를 강타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새끼야! 같은 시민! 시민! 시민! 시민! 시민이라고! 니 새끼는 짐승이냐!”

게거품을 문 흑인의 몸 위로 소르칸의 발길질이 계속 날아들었다. 상대가 정신을 잃고 두들겨 맞은 온몸이 부어오를 무렵 소르칸은 침을 뱉고는 엄숙히 말하였다.

“함부로 손대는 놈은 거세다, 사람 죽인 놈은 사형. 그럼 사진이나 찍어!”

시가전에서 살아남은 사진기사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앞에는 거지꼴이나 마찬가지인 백인들이 앉아 있었고 뒤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시커먼 흑인들이 서서 대조를 이루었다.

“이 기괴한 사진을 왜 보내십니까?”

태비시는 인화된 사진을 소르칸에게 가져와 질문을 하였다. 소르칸은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상대의 머리통에 꿀밤을 날리고 답했다.

“칸의 고생을 덜어내려고. 네가 최전선에 있는 이 동네 병사면 뭔 짓을 하겠냐?”

“그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멋대로 상상하고 탈영하겠지요?”

“바로 그거다. 우리 전공은 패잔병 학살하는 거야.”

패잔병이나 탈영병은 명령체계를 이행하지 않고 진영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르칸은 자신이 가장 유리한 적을 상대할 수 있도록 작전을 계획한 것이다. 그는 사진들을 포로에게 건네주기 전, 멋들어진 필체로 이 글귀를 남겼다.

<너희 가족이 흑인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진은 지금까지 흑인을 학대한대로 돌려받을 것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태비시를 비롯한 흑인들의 관리하에 보복이 최소화되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이 의미를 모르고 있다.

“앞으로 관리 잘하라고. 우리는 앨라배마를 초토화한 다음 계속 진격할 거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졸지에 흑인의 관리를 받게 된 앨라배마의 시민들은 새까만 흑인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시커먼 미래를 두려워하였다.

이 관리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작가의 말

차라리 수레바퀴를 굴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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