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33화 (299/345)

333화

25장 8화 남북 전쟁(4)

몽골계 미국인들의 주력부대가 다른 도시를 공략하러 나선 사이 잔존 병력이 점령지를 임시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백인들을 흑인의 노예로 삼는다 하였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로지 흑인들을 백인과 동등한 미국 시민으로 임시 대우하여 현지 협력자로 삼았다.

“내 살아생전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터스컬루사 임시 시장을 역임하는 태비시는 텍사스에서 구매한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길거리를 가로질렀다.

길거리에는 소르칸이 남겨둔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어서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를 확인한 태비시는 옆구리에 챙겨둔 성경을 확인하며 혼잣말을 하였다.

“지금까지 일이 급해서 교회에 나가지 못했는데 시장이 된 마당에 교회에 나가 봐야지.”

흑인의 입에서 교회라는 말이 나오자 주변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던 백인들이 흠칫하며 태비시를 돌아보았다.

“시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반면 한 무리의 흑인들이 허름한 옷을 입은 채 깍듯한 인사를 하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십자가를 손에 쥐고 어디선가 얻어온 기도서를 옆구리에 낀 모습이었다.

“좋은 아침이고말고. 자네들도 교회에 나가나?”

“물론이지요. 지금까지는 흑인 전용 교회에 다녔는데 이제는 같은 사람 아닙니까?”

“이 동네에는 흑인 전용 교회가 있다고? 내가 노예 시절에는 교회에 못 다니게 했는데.”

이 시대의 백인들은 종교적으로 흑인들을 압박했다. 안식일인 일요일을 필히 엄수하라 해도 교회에 나가 교리를 배우는 종교적 자유를 주지는 않았다.

그저 교회에 못 나오게 하는 수준이면 차라리 나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노예를 위한 교리를 따로 만들어 흑인들을 종교적으로 예속시키려 하였다.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대충 얼버무린 채, 기원전의 노예제를 긍정하고 흑인은 백인을 통해 구원의 길에 한 발자국을 얹은 비천한 존재로 취급하였다.

“검둥이가 교회에 나가다니…….”

백인 신자들은 시커먼 무리를 보면서 질린 표정으로 교회로 향하였다. 얼마 전까지 줄초상으로 장례 예식을 거행하던 교회는 마침내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우측에는 백인들이, 좌측에는 흑인들과 소수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앉은 기묘한 모습이었다.

자살을 기도하다 총에 맞아 죽은 목사를 대신해 자리에 오른 대행 목사는 흑과 백으로 나뉜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다 예배를 거행하였다.

“얼마 전의 비극을 겪은 이 땅에 주님의 은총이 내려오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짧은 소개문으로 시작된 예배는 노예제를 위한 정당화를 주장하였다. 창세기로 시작된 정당화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며 예배에 참가한 흑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하니!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노예에 대한 부정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창세기부터 표현된 시종의 권리는 누군가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하며…….”

“목사 양반, 그리스도께서는 서로를 사랑하라 하셨지 증오를 품으라 하지 않았소.”

태비시를 따라온 병사가 성경을 펼치고 요한복음서의 구절을 두드렸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의 말씀이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목사 대리는 눈을 부릅뜨고 병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병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백인들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우리는 댁들과 같은 자리에 선 것이 아니고 인정받기 위한 자리에 섰소. 같은 미국 시민이 되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위해서!”

목회자로서의 자존심과 성경의 말씀이 충돌하였다. 그 첨예한 대립 끝에 대행 목사는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토해냈다.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마시오! 오늘 예배는 종료요!”

백인 대다수가 썰물같이 교회로 빠져나가고 흑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멀뚱멀뚱 눈을 굴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태비시는 짧게 깎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하였다.

“친구들. 우리는 이제부터 미국 시민이 되었어, 그러면 뭘 해야 할까?”

“글쎄요.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요.”

“뭘 하긴 뭘 해. 백인들과 같이 일을 해야지.”

태비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 손바닥을 위로 치켜올린 채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가 행정을 알아? 글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열심히 일하고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마. 여기에 백인들을 끼워 넣으면 된다고.”

“그럼 예전 생활과 같잖아요?”

“아니지. 우리는 노예일 때는 죽도록 일했지만 이제는 열심히 일하면 된다니까. 대신 우리를 일하게 해놓고 퍼질러 자던 백인들도 같이 일해야 하고.”

태비시와 흑인 기병들은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교회에서 나온 백인들이 흑인이 지나갈 때마다 자신들을 죽이고 약탈할지 모른다면서 쏜살같이 도망가고 있었다.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 하셨지. 링컨 대통령께서는 우리를 해방하겠다고 말했고.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받고 같은 미국 시민이 된 우리가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있을까?”

“그래도 원한을 품은 놈들이 많은데요.”

“미안한 말이지만 원한을 품은 놈들은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을 거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초장부터 일을 어그러트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흑인 노예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농장 일을 하였다. 자신이 기르던 작물에 대한 애착도 가지고 있었으며 딱히 다른 일을 할 방법도 모르고 있었다.

반면 점령지의 백인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첫 부류는 절반 이상에 속하는, 전쟁 전과 거의 같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흑인들의 감시를 받는 이들이었다.

부모를 잃은 자식도, 형제를 잃은 장정도 이러한 부류에 끼어 있었다. 이들은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상시처럼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였다.

거대한 밀밭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밀을 관리하는 농부는 옆에 있었어야 할 형님과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러한 밀밭에 검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 집에 줄초상이 났다 해서 일을 도우러 왔습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일을 도와?”

졸지에 형과 아버지를 잃은 청년은 두 명의 흑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혼자의 몸으로는 수십 에이커나 되는 밀밭을 관리하는 것도 벅찰 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청년은 막막한 현실에 굴복하였다. 그는 흑인들이 가지고 온 쟁기를 가리키면서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이 뭘 하려는지 모르지만 일이나 도와.”

시커먼 흑인 둘과 백인 한 명이 쉴 새 없이 방치되었던 밀밭을 다듬고 잡초를 뽑아냈다.

셋 다 땀에 절고 온몸이 쑤셔올 무렵,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평상시에 일구던 밭은 어떻게 한 거야?”

“그건 다른 사람들이 돕고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농부는 식사를 준비했고 흑인들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였다. 그들은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농토 주변을 정리한 다음 밀가루 포대를 내려놓고 말하였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희는 열흘에 한 번 와서 일을 도울 것인데 괜찮겠습니까?”

“……알아서 와라.”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농사일을 생각하며 답을 내었다. 그는 문을 닫고는 아버지와 형이 남긴 유품을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겠습니까? 언젠가는 해방이 되겠지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이 생활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일을 도운 흑인들이 보내주는 식량을 ‘타타르의 식사’라 부르며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연방 정부나 남부 연합 같은 머나먼 높으신 분들의 고귀한 뜻을 저버렸다. 대신 눈앞의 농토와 가축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흑인들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부류는 예전의 활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였다. 전문직이거나, 도시가 함락되며 죽은 가족들이 수입을 벌어오는 경우 그리고 대지주를 비롯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다수의 재산을 빼앗겨서 임시 시장인 태비시가 배분한 노역장에서 육체노동을 통해 식량과 생필품을 사들여야 했다.

“우리가 목화따개가 되라는 소리냐?”

“아직 목화를 딸 시기는 아닙니다만.”

지정받은 장소는 흑인 노예들이 활동하던 대농장이었다. 수백 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을 보며 질색한 백인들에게 흑인 노예들이 말없이 농기구를 내어주고 돌아갔다.

본래 90명의 흑인 노예들이 관리하던 농장은 50여 명의 노예만 남아 있었다. 여기에서 일하게 된 150명의 백인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더딘 손을 움직였다.

평상시에는 백인 감독관이 채찍을 들고 감시하겠지만 그 자리에는 기병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전직 백인 감독관이 웃옷을 벗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쟁기를 놀렸다. 그가 제대로 된 옥수수 뿌리를 건드리자 옆에 있던 흑인 노동자가 질색을 하며 말하였다.

“그만, 댁은 암만 봐도 손을 더럽게 못 놀리니까 저기 가서 짐이나 날라.”

“이 노예새끼가!”

“노예? 네가 내 등판을 후려치던 때를 아직도 떠올려? 지금 급료 받기 싫은가 보지?”

전직 흑인 노예는 실눈을 뜨고 농장 머나먼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총을 들고 있는 흑인 기병들이 마차 가득 실린 밀가루를 보호하고 있었다.

“우리는 댁들과 같은 미국 시민이라니까. 일을 못 하면 간단한 일이라도 제대로 하라고?”

“우리를 노예로 삼아놓고 같은 미국 시민? 우리를 두들겨 패고 약탈해도 찍소리도 못하고 당하라는 소리 아니야!”

“그런 일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댁들도 우리랑 같은 시민이라니까.”

흑인 노예들은 본보기를 보여주듯이 농장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온몸에 구타를 당한 흔적이 역력한 흑인 셋이 나무 기둥에 묶여서 인간 허수아비가 되어 있었다.

이들은 근처에서 잡혀온 범죄자들이었다. 각자 자신의 죄목을 담은 팻말을 목에 걸려 있었다.

<저는 백인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른 인간쓰레기입니다>

<저는 백인 처녀를 희롱하려다 걸려서 거세를 당할 예정입니다>

<저는 둘에게 범죄를 사주하다 걸려서 감옥에 수감될 예정입니다>

인간 허수아비가 된 범죄자들은 뙤약볕에 시달리고 모기에 뜯겨 반쯤 죽어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백인들은 말이 안 된다는 듯이 흑인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만들지 않고 말려 죽이겠다고?”

“법원에 보내기 전에 본보기를 보여야지. 우리는 같은 시민이 될 사람들인데 범죄를 저지를 종자들에게 미리 본보기를 보여야 하지 않겠어?”

더 이상의 이견은 없었다. 흑인들은 백인의 상전이 아닌, 진심으로 동등한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더 엄격한 처벌을 내렸다.

며칠 뒤, 광장 한복판에서 교수대에 한 명의 흑인이 매달리고 두 명의 흑인이 길거리에서 거세를 당했다. 백인들은 이 처벌을 ‘타타르의 규칙’이라 불렀다.

이후 모두가 군소리 없이 일을 하였다. 50이 넘은 전직 농장주도, 평생 험한 꼴이라고는 안 본 가정주부도 짚단을 나르고 쟁기를 들고 잡초를 뽑아냈다.

그러던 중 나이가 많은 전직 농장주가 짚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혀를 차고 다가온 흑인들은 농장주의 짚단을 번쩍 들고는 말하였다.

“왜 이리 열심히 일하십니까?”

“네놈들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지. 네놈들의 손아귀만 벗어나면 아주 그냥!”

바닥에 자빠진 농장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목을 졸라매는 시늉을 하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흑인들은 피식 웃으면서 농장주를 일으켜 세우고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저희 모두를 교수대에 올릴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때까지 이 질긴 목숨을 보존해서 그 영광스러운 날을 꼭 보려 한다.”

흑인들의 손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난 농장주는 다시 노동에 참가하였다. 각자 가족이 먹고도 남을 풍족한 식량을 배급받았고 몇몇은 세 번째 부류에게 이를 건네주려 하였다.

세 번째 부류는 모든 것을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약탈당한 식량이 다 떨어져 쫄쫄 굶어감에도 절대로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기를 거부한 부류였다.

이들은 스스로 식량을 찾아 나섰다. 지천에 식량이 넘쳐나는 상황인데도 언젠가는, 혹은 조만간 남부 연합의 군대가 이 지역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이들은 식량을 자연에서 얻으려 하였다.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막대기를 들고 개천을 쑤시자 아이의 손바닥만 한 커다란 가재가 낚여 올라왔다.

“엄마! 가재! 가재 잡았어!”

“우리아들! 장하다!”

한때 흑인 노예들이 먹었던 음식들이 이들의 배를 채우게 되었다. 개천을 헤집어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그마한 물고기들을 잡아들였다.

제대로 된 곡식 대신 망가지기 시작한 밀가루나 싹이 조금이라도 덜 튼 감자가 이들의 식량이었다. 여기에 도움의 손길이 조금씩 들어왔다.

“옆집에서 곡식 얻어왔소. 빵을 만들 수는 없더라도 수프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수프가 뭐예요. 일단 아무거나 넣고 끓여봅시다.”

사람들은 아무거나 넣고 끓인 잡탕죽의 이름을 ‘타타르 스튜’라고 불렀다. 맛은 끔찍하다 못해 비린내가 진동하고 배탈을 일으키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런 저항에도 한계가 있었다. 사실상 거지꼴을 하여 황무지를 돌아다니던 이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전선으로 나섰던 탈영병들이 편지를 확인하고 터스컬루사 해방을 위해 귀환하였다. 이런 탈영병을 사냥하기 위한 부대가 출격했고 교전이 시작되었다.

사실상 교전이 아닌, 보급이 끊기고 지휘체계도 없는 패잔병을 기습해 몰살시키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물이 터스컬루사에 돌아왔다.

“댁들에게 일감을 주지. 이 시신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

항복한 탈영병은 수용소로 끌려가고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 앞에 수십여 구의 시신이 남았다. 같은 시민의 시신을 수습하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윌슨! 윌슨아! 왜 여기에 있느냐! 이 아버지를 보고 눈을 좀 떠라!”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노인은 장남의 시신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어댔다. 차남과 삼남은 도시가 함락당하면서 시신으로 돌아왔고 늙은 아내는 험한 생활 끝에 병으로 잃었다.

오로지 장남이 돌아와 자신을 해방하기만을 기다리던 노인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노인은 자식의 시신을 묻은 다음 밧줄을 들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무렵부터 인근 숲속에는 목을 매단 시신들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이 몰골을 ‘타타르의 넥타이’라 부르며 돌려 말하였다.

터스컬루사를 시작으로 두 달 동안 앨라배마의 도시 4개가 함락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곡식의 수확이 코앞인 1861년 8월, 앨라배마도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 * *

최후방이라 별다른 대비도 안 하고 병력과 자원을 보내던 앨라배마는 이미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기차 노선들이 기병들에게 습격당해 기차 네 대가 털린 것은 덤이었다.

앨라배마의 주도 몽고메리에서는 회의가 시작되었다. 석조 건물 안의 커다란 의사당 내부에서는 주요 인사들과 시장이 전직 장성이자 민병대 지휘관의 보고를 확인하였다.

“적의 규모는 최소 일만 명 이상입니다. 아직 후발대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주력은 타타르, 보조로 인디언과 흑인들이 날뛰는 기병입니다.”

그러자 나름대로 상식을 가지고 있던 앤드류 무어 주지사가 탁자를 손으로 탕탕 내리치면서 말하였다.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일만 명의 기병이 어떻게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난입해!”

“옳은 말이오! 보조 병력은? 이들의 보급은? 물이야 그렇다 치고 식량은?”

“나름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여러 희생 끝에 놈들의 진군 경로에 남겨진 물건을 확인하였는데……. 이걸 좀 보시지요.”

“그건 가죽부대 아닌가?”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문제입니다.”

가죽부대 안에는 진한 갈색의 가루가 들어 있었다. 어찌나 건조하게 만들어두었는지 남부의 여름 더위와 습기에 노출되었어도 여전히 부슬부슬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건조한 쇠고기에 각종 향신료를 첨가한 물건입니다. 간혹 건조 우유를 담은 가죽부대도 있었고 대추야자 씨앗도 발견되었지요.”

“미친놈들 아니야! 어떻게든 앨라배마로 기어 들어오려고 보급도 포기했나!”

“정확히는 보급대가 전투도 할 수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전직 장성은 고개를 조아리며 몽골군의 진격 방식을 이야기하였다.

“이들은 지난 한 달 내내 진격과 보급을 반복했습니다. 텍사스에서 출발한 의용군 명목으로 최소한의 필수품을 백인을 통해 고용했겠지요.”

“그건 우리의 실수라 치자고. 진격 경로는? 그리고 말 먹이는?”

“농지로 편입되지 않은 시골 외곽의 초원을 조심스럽게 진격하며 획득했을 겁니다.”

비상식적인 진군을 마주한 앤드류 무어는 회반죽으로 칠해진 의사당 벽면을 확인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른 의원들을 바라보면서 부탁을 하였다.

“일단 들어온 놈들을 내쫓기라도 해야지. 이 미친 동양 원숭이들을 쳐 죽일 군대는 언제쯤 소집할 수 있나?”

이 시기 앨라배마 주의 인구는 1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그 인구의 40% 이상이 흑인이며 대지주의 아래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노예 신세였다.

백인의 숫자는 기껏해야 50만 명, 이 가운데 이미 3만여 명의 병력을 주요 전선에 투입한 상태였다. 장교들과 민병대 대표들은 결국 참담한 대답을 내놓게 되었다.

“타타르 기병들을 요격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들의 규모는 최소 일만 명 이상, 반면 우리 주의 가용 병력을 모조리 긁어모아도 삼만여 명에 불과합니다.”

“그럼 저 원숭이들이 도시를 짓뭉개놓고 우리의 시민들을 흑인의 노예로 만든 이 끔찍한 사태를 내버려 두자는 말인가!”

“그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지금 모든 민병대원은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군인이면 명령…….”

앤드류 무어는 손으로 입을 막은 다음 한참을 생각하였다. 민병대는 자발적으로 병사로 소집된 사람들이며 그 근본은 고향을 지키기 위한 애향심과 자긍심이었다.

가용 병력을 모조리 긁어모으고 한 자리에 모아 훈련을 마친 뒤 타타르 기병을 추격해 포위 섬멸한다. 말은 쉽지만 이 과정을 이행하려면 2개월이 넘게 걸린다.

그 2개월 동안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방어를 포기하는 셈이다. 약삭빠른 타타르 기병대가 또다시 지방 군소도시 5개 이상을 초토화시키고 남을 시간이다.

“어떻게 안 되겠는가? 이대로 전선이나 다른 주에서 응원군을 보내기를 기다려야 하나?”

“대통령 각하께서는 지속적으로 병력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현장도 빠듯한 상황에서 이런 최후방을 신경 쓸 수는 없겠지요.”

장성은 소르칸이 <너희 가족이 흑인의 노예가 되었다>라는 내용을 적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전선에서 우리 앨라배마 출신 병사들이 집단 탈영하는 사태를 염려해야 할 상황입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군. 병사를 소집하지도 못해, 적을 걷어내지도 못해. 그렇다면 전선에서 탈영한 병력과 힘을 합쳐서 놈들을 족칠 방법은?”

“그것도 문제입니다. 집단 탈영한 병사들이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추고 돌아오겠습니까? 제가 타타르 지휘관이라면 분견대를 끊임없이 운영해서 탈영병을 사냥할 겁니다.”

“탈영병을 사냥한다고? 아무리 탈영병이라 해도 군인이야!”

“지휘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무턱대고 돌아오는 일개 병사입니다. 보고에 의하면 최소 천여 명 이상의 탈영병이 적들에게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뭘 해도 손해가 누적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답이 나왔다. 그나마 앨라배마 주에서 끝날 문제라면 다행이다.

이미 남부 연합의 주 전략, 동계 공세가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소문이 퍼져나가며 남부 전체가 후방의 기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민병대원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일종의 적체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앤드류 무어는 새치가 잔뜩 돋아난 은발을 긁적거리고는 한참을 고민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병사 숫자를 부풀릴 방법이 있지. 검둥이를 훈련시켜 보조 병력으로 삼자고.”

“지금 검둥이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검둥이들을 훈련시키다니요!”

“그럼 뭘 하겠나! 병사들은 나서려 하지 않고! 돌아오는 우리의 아들들은 초원에서 기병들에게 짓밟혀 죽겠지! 그런 상황에서 손 하나라도 필요하지 않겠나!”

앤드류 무어는 노예제에 대해 온건한 생각을 가진 주지사였다. 어느 정도의 권리를 보장하되 노예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불과하였지만.

반면 몇몇 사람들은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이들은 앤드류 무어의 눈치를 보다 과격한 발언을 시작하였다.

“놈들에게 선택을 하게 합시다. 훈련시켜 보조 병력으로 자원하는 검둥이들은 어느 정도 대우하고 훈련을 거부하는 검둥이들은 죽여 없애지요.”

“죽여 없앤다고?”

“이미 소문이 퍼지고도 남았습니다. 불순한 마음을 품은 놈들을 내버려 두느니 그냥 죽여서 후환을 없애 버리든지 합시다.”

앤드류 무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흑인 장정에 대한 징집 혹은 제거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 명령은 또 다른 문제로 앨라배마 주의 의견을 분열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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