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25장 9화 대행진(1)
앤드류 무어의 명령서를 받은 대지주는 몇 번이고 안경을 고쳐 쓰고 눈을 비벼가며 명령을 읽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혼잣말을 하였다.
“연합에 들어올 때만 해도 검둥이를 노예로 부릴 수 있다면서. 이게 뭔 개소리야!”
흑인 장정들을 선별하고 소집하여 보조 병력으로 지원하거나 제거하라는 명령은 지주층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선언이었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지금은 추수를 코앞에 둔 시기였다.
“정신이 나갔나? 이 상황에서 검둥이들을 징발하면 뭘 어쩌라고? 목화 다래가 맺혀서 터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밀이 다 여물어서 추수를 해야 하는데!”
탁자를 주먹으로 몇 번이고 내리친 대지주는 집사가 건네주는 얼음물을 마시고 속을 달랬다. 잔을 돌려받은 집사는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인력이야 농부들을 징집하여 벌충하십시오. 명령을 안 들으면 민병대가 난입해서 강제 징발을 실시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 민병대가 이 동네 농부들이잖아! 타타르와 검둥이가 몰려온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쓸 만한 사람은 다 징발해서 엉망진창을 만들어놓고! 그런다고 적을 격퇴하지도 못하고!”
처음 남부 연합이 세워질 때에는 노예제도를 지키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지주들의 재산을 지켜주겠다 하였다.
그 계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재산도 지키지 못할 신세가 된 것이다. 대지주는 명령서를 다시금 확인한 다음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집사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검둥이를 병사로 징집해? 그러면 노예 해방이나 마찬가지잖아! 총을 들고 있는 검둥이들이 정말 순순히 자기 말을 따를 거라 생각하나?”
집사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지주의 분노를 억누르려 하였다. 한참 동안 분통을 터트린 지주는 더 이상 화를 낼 힘도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였다.
“뭘 해도 개판이야. 그렇다면 내 재산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 지키려고 하시는지요?”
“일단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좀 해보고.”
일대의 대지주들이 소집되고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의견은 지금 상황이 정상적이 아니며 남부 연합은 자신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못 하였다는 결론으로 수렴하였다.
“대통령은 뭘 하는 거야! 우리를 위해 병사를 보내서 타타르를 내쫓아야지!”
“병사 오만 명 정도만 투입했으면 진작 진압하고도 남았겠다!”
“언제는 타타르 전담 기병대를 배치한다면서! 돈은 뜯어가고 우리 재산을 또 뜯어먹네!”
앨라배마와 주변의 4개 주가 훗날 대경색(大梗塞 - Great strain)이라 불릴 사태에 빠졌다. 이미 물자 공급부터 모든 것이 유통되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남쪽 항구의 생선이 썩어가고 북쪽의 가축들이 제대로 풀을 먹이지 못하여 굶주리고 있었다. 여기에 민병대와 병사를 닥치는 대로 징발하여 각 도시를 호위하는 게 전부였다.
전신은 비정상적으로 잘 가동되었지만 이는 각 도시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라 추정했다.
대지주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시커먼 현실을 상상하며 말하였다.
“무지렁이들이야 잘 먹고 잘살 거야. 그런데 우리는 곡식이 쌓여도 썩어가게 내버려 둬야 하고. 목화가 쌓여도 이걸 공장으로 보내지 못하는 꼴 아닌가.”
“개판 그 자체지. 그렇다고 병사를 징집해서 훈련하고 토벌을 보내서 적을 밀어내면 얼마나 걸려? 두 달 이상이 걸리잖아!”
“농사도 망쳐! 사람도 망쳐! 우리 재산도 망쳐!”
분위기가 점차 남부 연합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자 옛 장성 출신의 대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 나름대로 군사적인 전략안을 제시하였다.
“그나저나 이상하지 않나? 내가 알기로 지금 우리 앨라배마를 습격한 타타르 기병들은 최정예를 넘어선 미국 최강의 기병대라네. 그런데 이 병력을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알아서 잘 활약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체스를 생각해 보게, 나이트가 아무리 종횡무진 날뛴다 해도 폰이 포위망을 만들면 쉽사리 돌파하지 못하지. 대충 표현하면 이런 꼴이로군.”
체스 세트 여러 개를 가져온 지주는 이를 뒤섞었다. 체스판 위에는 나이트 네 마리와 20개에 달하는 폰이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체스는 전진만 가능하지만 실제는 다르니까. 아무튼 폰들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압박을 하면 나이트는 결국 잡아먹히는 꼴이 되겠지.”
“아니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거나.”
“애써 점령하고 검둥이들이 지배하게 만든 땅을 내버려 두고?”
듣고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북부는 기병들을 난입시켜 많은 이득을 보았지만 결정적인 이득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 체스판 옆에 지도가 놓이고 전황이 드러났다.
“전방에서 탈영병이 속출하고 우리 앨라배마와 주변 주들 모두가 경색되어 있지. 이 상황에서 적의 대군이 돌입하면 어떻게 되겠나?”
“어떻게 되기는. 그렇게 되면 연합 측에서도 구원을 위해서 병력을 보내겠지.”
“이렇게 경색된 상황에서 병력을 보내 맞서 싸운다고? 기병을 막으려고 각 거점을 지키는 병력은 주력군을 상대로 격파당하겠지.”
앨라배마의 병력은 각기 분열되어 기병들의 돌입을 막기 위한 거점 방어에 몰두하였다. 이런 거점 방어는 대군의 침입을 막지도 못한다.
“그러면 기병은 쓸모가 없잖나. 내가 북부의 지휘관이라면 기병을 우회시켜 구원 병력을 돈좌시킬 거라네.”
룩 여러 개를 지도 위에 올려놓은 대지주는 이를 직선으로 움직였다. 텍사스나 테네시를 돌파한 병력들은 남부로 거침없이 진군했고 그동안 비숍이 다가왔다.
반면 비숍들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밀집해 있었다. 이 비숍도 빠르게 움직이기는 하였지만 앨라배마에 들어오기 전, 나이트들이 진로를 가로막으며 진격이 가로막혔다.
그동안 룩이 앨라배마 남부 해안까지 파고들고 경로를 꺾어 조지아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이 설명을 마친 대지주는 손을 털면서 말하였다.
“이게 결론일세. 탈영병이 넘쳐나는 테네시를 종심 돌파하거나, 경색된 아칸소와 미시시피를 관통하거나. 아무 방향에서건 지원 병력을 보낼 수 있지.”
“눈앞에 일에 급급해서 대세를 놓치고 있었군.”
“검둥이를 병사로 징집하는 주제에 뭔 대세야. 아무튼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알고 있나?”
대지주들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성한 계약을 저버린 쪽은 남부 연합이며 자신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잠시 굴복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저택으로 돌아간 지주들은 흑인들을 자발적으로 훈련시켰다. 이 과정에서 흑인들에게 해방을 약속한 것은 덤이었다.
주 정부의 눈을 속인 대지주들은 북부를 향해 밀서를 보냈다. 대부분 북부 병력이 진군할 때에 ‘현지 협력자’가 될 것이라는 밀약을 담고 있었다.
설령 남부 연합이 이기더라도 자신들은 파산을 회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협력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밀지는 애리조나 민병대의 점령지로 전해져 북부에 전달되었다.
* * *
대지주들의 예상대로 북부의 추가 증원이 대평원의 한복판, 세인트루이스 남부에 집결해 있었다. 윌리엄 셔먼을 사령관으로 삼은 남부 돌파 군단이었다.
“예상대로 현지 협력자가 등장하였군.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참 좋은 시기입니다. 제가 알기로 테네시와 아칸소의 병력은 이미 앨라배마 구원을 위해 후퇴했다 하더군요.”
“전선이 잘 숙성된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지.”
부관의 말을 들은 셔먼은 소집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셔먼 직할 병력인 샤프슈터 대대와 공병 연대를 시작으로 테네시, 조지아, 텍사스에서 소집된 병력이 주축이었다.
여기에 벌판을 가득 메운 기병들이 있었다. 카우보이를 시작으로 대평원에서 도적들을 사냥하며 훈련받은 아메리카 원주민 5개 기병 연대.
여기에 서부에서 훈련된 흑인들을 모은 3개 기병 연대까지 있었다. 이들은 애리조나 민병대 소속 기준을 미치지 못하여 링컨의 병사로, 다시 셔먼 휘하에 분류되었다.
이 대군의 병력은 총인원 4만 8천여 명, 이 가운데 절반이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셔먼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병력들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병사들은 두려움과 흥분 그리고 공포가 엿보였다.
“지금부터 전황을 알려주겠다! 애리조나의 최정예 기병들이 앨라배마 주를 시작으로 남부 일대를 뒤흔들어 놓았다! 지금 남부의 병력은 흰머리수리를 만난 칠면조처럼 움츠려 있다!”
이미 남부의 병력들은 도시 사이를 이동하지도 않으며 서로 전신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상황에서 5만에 달하는 병력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소르칸의 기병 공격을 막기 위한 진영은 대규모 보병 병력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셔먼은 여기에 먼저 돌파해야 할 남부 연합의 진지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전선 상황 또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놈들의 병력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머니의 품 안으로 기어드는 여섯 살 꼬맹이처럼 탈영을 저지르고 있다!”
이미 서부 전선, 본래 종심 돌파를 위한 우회 병력으로 꾸준히 밀어붙여야 할 방면의 전선은 북군의 파상공세에 밀려날 지경이었다.
셔먼은 다시 목을 가다듬고 말하였다.
“우리가 할 일은 얇디얇은 전선을 돌파하고 각 도시에 웅크린 병력들을 격파하는 것이다! 그러하면 승산이 있겠는가! 없겠는가!”
-있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병사들은 서서히 기세가 올라 셔먼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적진 한복판에 돌입하면서 겪는 고난보다는 손쉬운 상대를 섬멸하고 전공을 세울 욕심을 품었다.
여기서 더욱 기세를 올릴 명령이, 링컨이 고심 끝에 내린 대전략을 공개할 차례였다. 셔먼은 병사들을 한 번 훑어본 다음 말하였다.
“이미 애리조나의 민병대! 최정예 기병이 적진을 들쑤셔 놓았다! 우리는 두 번째 파도가 되어 적의 얇은 전선을 붕괴한다! 그다음에는 우리의 뒤로 텍사스 병사들이 진입할 차례다!”
그쯤 되면 남군의 전쟁 수행능력과 보급능력 모두가 붕괴하여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몰골이 될 수준이었다.
셔먼은 병사들에게 최종 작전 명령을 하달하였다.
“우리는 행군하는 도중에 자유롭게 식량을 징발한다. 각 여단 지휘관은 병사들 가운데 재주가 있는 사람을 동원하여 징발부대를 운영하도록.”
“징발 부대의 징발 가능 물품에는 모든 것이 해당된다! 기존 점령지를 제외하고! 부대 보급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마음껏 징발하되 진군에 방해가 되는 양은 즉각 폐기하도록!”
-왜 폐기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병사가 셔먼을 보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셔먼은 삿대질을 하면서 그 병사를 포함한 이해하지 못한 병력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말하였다.
“좋은 말이다! 우리는 적을 굶주리게 하고 피폐하게 만들어 전선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애리조나 민병대가 점령한 도시로 운반하도록!”
“다음 명령은 풍차, 농토, 공장, 제분소 등의 생산시설과 연관 건물을 파괴하라! 여기에 말, 당나귀, 노새 그리고 소를 포함한 군사용 가축을 마음대로 징발하라!”
“이 과정에서 현지 협력자와 우호적인 자들의 재산을 철저히 보호하고 적대적인 자들을 철저히 분류하라. 또한! 현지에서 징발할 수 있는 대상은 흑인들이다!”
병사들 모두는 무제한적 약탈 명령을 듣고 흥분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 욕심을 꿰뚫어 본 셔먼은 손뼉을 세게 쳐서 주의를 환기하고 각 사단에 명령을 내렸다.
“샤프슈터 대대! 적의 지휘관을 모조리 쏘아라! 민병대 지휘관이건 대지주건 아무 상관 없다! 항복하지 않는 적은 항복할 때까지 모조리 격멸할 것이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공병 대대! 모든 물자를 철저히 파괴하라! 놈들의 군사적 도구를 아무 쓸모도 없는 고물로 만들어라! 다만! 이상한 짓을 배워서 농토에 암염을 뿌리고 불을 지르지는 마라!”
-나중에 복구 작업을 위해 남부에 취직하겠습니다!
공병 대대는 철저히 파괴하겠다는 말을 에둘러 말하였다. 그 대답을 들은 셔먼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좋다! 취직해서 뒤통수에 총 맞지 않게 조심하도록! 다음! 보병 연대는 뭘 하는가!”
-약탈입니다!
“틀렸다 이 멍청이들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징발이다! 명심해라! 징발이다!”
-알겠습니다! 신나게 징발하겠습니다!
백인 병력들에게 훈시를 남긴 셔먼은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이쪽 또한 잔뜩 흥분한 병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셔먼을 바라보았다.
“다음! 인디언 차례다! 인디언 기병 각 연대는 뭘 해야 하겠나!”
-우리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어주신 대통령 각하의 명령을 완수해야 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겪은 훈련을 기억하라! 너희 모두를 위해 법을 만들고 재산을 보호하며 미국 시민의 자리를 만들어준 은혜를 이 자리에서 갚도록 하라!”
마지막 차례는 흑인들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해방된 흑인 노예 중 쓸 만한 인재를 고르고 애리조나의 기병들과 함께 교육을 하였다.
그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셔먼이야 지난 아파치 토벌 전쟁에서 흑인들이 가진 잠재력을 알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백인들은 흑인 병사를 훈련된 원숭이 수준으로 인식했다.
심지어 아메리카 원주민마저도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셔먼은 이들의 자긍심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말하였다.
“나는 흑인들을 한때 모래주머니 정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흑인들은 지금까지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을 뿐 엄연한 미국의 시민이며 링컨 대통령께서 이 권리를 부여하였다.”
민감한 정치적 주제가 나오자 병사들의 함성이 잦아들었다. 흑인들조차도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겪어온 삶을 되새기며 침울한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그러나 셔먼은 부관에게 손짓을 하여 서류 뭉치를 가져왔다. 남부 지주들이 몰래 보내온 서신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셔먼은 이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이미 남부의 지주들은 흑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에게 서신을 보내왔다. 흑인 해방을 거부하고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의 지주들이 이들을 사람으로 본단 말이다!”
남부 지주들의 이반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링컨은 후방에 대규모 기병대가 난입하면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셔먼과 함께 작전을 계획하였다.
남부가 얼마나 폐쇄적인 사회인지 북부에서 징집된 병력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 남부 지주들이 발 벗고 흑인 해방을 자처하고 나선 꼴이었다.
“남부의 꼴통들도 흑인을 사람으로 보는 형편이다! 우리가 흑인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남부의 꼴통보다 더욱 무식한 머저리가 되는 꼴 아니겠나!”
어느새 백인 병사들의 시선도 흑인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반면 움츠러든 흑인 병사들은 가슴을 꼿꼿이 펴고 자부심을 가진 채 셔먼을 바라보았다.
“흑인 병사들은 들어라! 너희는 모래주머니도! 원숭이도! 덜떨어진 사람도 아니다. 모두가 미국 시민이다! 너희의 자유를 쟁취하고 동포를 구출하라!”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가자! 더 이상의 이견은 필요 없다!”
병력이 분열하고 각 개별 연대 지휘관들이 셔먼 휘하로 합류하였다. 개중에 셔먼과 인연이 있으며 뛰어난 두뇌로 어느새 소령 자리에 오른 조슈아 툼이 반가운 말투로 말하였다.
“몇 년 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로군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마련이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들먹인 셔먼은 조슈아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그는 군주론까지는 읽은 적이 없어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말하였다.
“목적도 정당하고 수단도 정당한데요.”
“흑인 노예 해방은 목적도 수단도 아니야, 우리의 대전략 자체가 남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꺾을 목적이요. 이를 위해 남부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뒤틀린 수단이지.”
남부의 전쟁 수행능력 자체를 멸절시키는 ‘대행진’ 전략은 북부 군부 내에서도 많은 이견이 나올 전략이었다. 그러나 조슈아 툼은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나마 셔먼 중장님이 나서주셔서 다행입니다. 소르칸 주지사님이 세운 첫 전략 기억하십니까? 남부에 수레바퀴를 굴리겠다고 하셨지요?”
“대통령 각하께서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굴리고도 남을 기세였지.”
“그랬다면 정치적 문제 이전에 이 나라가 정말 반 토막이 나버렸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그 피해를 복구하는 데 오십 년은 흘렀겠지요.”
수레바퀴가 무엇인지 모르는 지휘관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고 대평원 부족에서 선발된 원주민 지휘관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셔먼 또한 조슈아 툼의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당시에 어떻게든 ‘수레바퀴’를 중단시키기 위해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
-링컨 각하께서는 흑인을 구원하려 하십니다. 수레바퀴를 돌리면 그 지역에 살던 흑인들이 모조리 굶어 죽는데 굴리면 안 되겠지요?
예전의 셔먼이 보기에는 모래주머니에 불과한 흑인들은 어느새 지켜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는 저 머나먼 남부에 펼쳐진 전선을 바라보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진군한다. 첩보에 의하면 적의 방어진은 이미 보초조차도 제대로 교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다 한다. 단숨에 돌파하고 미시시피를 거쳐 진군한다.”
두 번째 물결이 남부로 들이닥쳤다. 본래 역사의 ‘바다로의 진군’보다 훨씬 거센 파도가 모래덩어리처럼 경색에 빠진 남부 최후방을 초토화시킬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