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26장 1화 사필귀정
지금까지 미국에서 전달되는 모든 소식들을 보름 정도 간격으로 계속 받아보았다. 4년 가깝게 질질 끈 남북전쟁은 고작 1년 만에 항복협상이 수락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진짜 재미있네. 내가 별다른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이런 결과로 돌아오다니.”
이제 나비효과의 현실화인가. 본래 역사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타타르 효과라 명칭을 붙여주고 싶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나와 일준이밖에는 없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요순학자, 지금은 고생물학자로 불리는 이들의 호위 병력으로 황무지에 최적인 외몽골 사람들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여러 사건이 터지며 여기까지 왔다.
이쯤 되면 몽골계 미국인은 숫자가 적어도 미국에서 무조건 명문가 혹은 실력이 증명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링컨의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었다.
“케식이 뭐야, 호위병이 케식이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이 양반들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미국 대통령 암살 따위는 엄두도 못 내겠네.”
이 시대에 많이 적응해도 몽골계 미국인의 근본은 동양이다. 상무적 계약관계로 다져진 서양인들은 호위 역할을 하면서 자리를 비우거나 자기 목숨을 보신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 사람들은 상대가 총을 겨누면 호위 대상을 몸으로 덮고도 남을 이들이다. 자신들을 어엿한 미국인으로 만들어 준 위대한 칸을 목숨 바쳐 보호할 사람들이지.
미국의 제도를 임기제 칸으로 받아들인 이상 후대 칸들도 정치와 이념에 상관없이 철저히 보호하겠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앞으로 미국에 벌어질 일을 떠올렸다.
“일단 링컨이 안 죽으면 남부 군정도 짧게 끝나고 남부 지원정책도 확실하게 돌아가겠지. 더군다나 사 년 동안 증오를 쌓지 않고 일 년 만에 전쟁이 끝났으니까…….”
뭘 해도 링컨의 앞길에는 영광이 함께하고 있다. 1862년인 지금 막 임기 2년 차인 사람이라서 암살만 없다면 앞으로 6년이나 더 통치할 수 있다.
조만간 텍사스를 시작으로 신품종 목화, 정보에 의하면 면암 목화라 불리는 품종이 개량되고 사회 구조가 개편되겠지. 결국 미국은 더욱 강력한 국가가 될 거다.
대신 남북전쟁이 1년 만에 종전되면서 군사적 발달은 더뎌졌을 거다. 제대로 된 총력전이나 전훈이 만들어지지 않고 전선을 두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다 종전을 맞이했으니까.
“앞으로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죽고 나서 벌어질 일은 신경을 끄자.”
-총리대신님! 행사가 거행될 예정입니다!
점점 늙어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올해 62세가 되어서 슬슬 어금니도 하나둘씩 빠지고 눈도 침침해져 어느새 도수 높은 안경을 쓰게 되었다.
“어이구 삭신이야. 이제는 정말 폐품 꼴이 되겠네.”
아직 지팡이를 짚을 수준은 아니지만 이제는 몸이 서서히 낡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에 지난 일 년 동안 중국 대륙 방방곡곡을 쏘다녔다.
홍수전을 격퇴하는 데 성공한 외몽골을 북원으로 승격시켜 영토를 떼어주었다. 북경을 일종의 공동 통치구역으로 두고 예전에 만난 어린아이인 7대 젭춘담바 후툭투를 즉위시켰지.
다음으로는 중화민국도 다녀왔다. 아직 투표를 하지는 못했지만 영토를 분할하고 이홍장과 이한장 형제에게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데 시간을 보냈고.
대한과 중국대륙을 오가기를 1년, 이제 마지막 행사만 남았다. 복장을 다시금 정돈하고 밖으로 나가니 내 보좌관이 인사를 올렸다.
“서신을 받으신 것 같은데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좋은 일이지. 앞으로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될 정도로 좋은 일이.”
“그러하면 총리로 오래 남아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 내 직함이다. 황제의 권위가 워낙 높은지라 총리는 각종 안건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보고하는 지위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외부대신 시기처럼 외교 문제를 직접 조율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보좌관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덕담을 돌려주었다.
“내 몸이 생각보다 빠르게 늙어가서 문제이지. 생각 같으면 이 치세를 계속 보고 싶은데.”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즉위식을 보실 차례 아닙니까?”
일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보좌관에게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남평, 이제는 평(平)이라는 국가의 수도가 된 청나라 광주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평나라의 왕에 즉위한 석달개는 프랑스의 하수인이자 객가의 대표로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 기세를 증명하듯 수많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불란서의 취향이 가득 담긴 국기로군. 객가들은 싫어하겠지만.”
“여부가 있겠습니까. 청색과 백색 그리고 적색이 조화된 국기인데요.”
평나라의 국기는 간단한 도안이었다. 오른쪽에는 파란색, 왼쪽에는 흰색으로 배경이 나뉘어 있고 가운데에는 한자로 평(平)자가 붉은색으로 적혀 있다.
그 국기가 수없이 펄럭이며 광주를 메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보좌관이 내 말을 교정해 주었다.
“대단히 죄송한 일입니다만 객가라 불리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객가가 아닙니다. 각자의 뿌리를 찾아 한(漢)객, 명(明)객 같이 시기를 분류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홍수전이 얼마나 끔찍한 상흔을 남겼는지 알 것 같다네.”
이제 객가라는 단어는 중국 역사에서 일종의 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수많은 중원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난을 피해 달아난 이들을 싸잡아 욕하는 단어로.
그래서 각 객가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어느 나라 소속인지를 드러냈다. 물론 석달개의 경우에는 초한쟁패기의 명문가랍시고 자신을 초(楚)나라 가문이라고 포장했고.
마음속에서 초객이라는 단어를 되새기며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행사장으로 향하는데 수많은 국가에서 보내온 사절들이 집결해 있었다. 여기에 바다를 살펴보니 20여 년 전의 일을, 철갑선을 격파한 임칙서와 향용들의 노력을 보상하듯 또 다른 행사가 거행되었다.
수많은 장정들이 화려하게 꾸민 나룻배를 몰고 거대한 배의 뒤에 달린 종이 박을 장대로 찔러댔다. 그 모습을 보자니 저절로 칭찬이 나왔다.
“성벽에 똥을 바르고 적과 가짜 싸움을 벌이던 시기에 저런 용사들이 있었지.”
“그 용사들이 이룩한 성과가 평나라라는 결과로 돌아왔지요.”
평나라가 없었다면 광주 일대는 프랑스가 날름 먹어치우고도 남았다.
그러나 광주의 용사들은 용맹한 항전을 이어갔고 자긍심을 가진 채 이를 유지하였다. 결국 프랑스도 현지 협력자를 앞세워 이득을 얻어내는 것에 만족하였다.
보좌관의 뒤를 따라 행사장으로 향하니 이미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한의 총리대신께서 방문하셨군요.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강녕하기는요. 하루하루 늙어가는 걸 체감하고 있지요.”
각 국가의 대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착석하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연단이 조립되고 진홍색 천이 깔리며 행사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렸다.
멋들어진 옷을 입은 선전관이 그 위로 올라와 석달개가 도착하기 전 사람들을 다독였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광주 시민들의 자긍심을 북돋아 주었다.
-이 땅은 수많은 상처를 입고 이를 극복하여 딛고 일어난 땅이다. 옛적 영길리의 흉험한 손길이 이 땅에 아편을 퍼트렸으며!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수 없이 벌어졌다!
그 연설이 중간으로 넘어가자 자신을 자랑하고 프랑스를 응원하는 말을 하였다.
-우리의 새로운 벗이자 동맹이 된 불란서는 이 광주를 시작으로 일대를 통치할 수 있는 기반과 힘을 마련해 주었다. 초객의 일원이신 전하께서 그 힘을 받아들이시기에 이르렀다!
-그 용단 덕분에! 우리는 무너지는 청나라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지켰으며 대역적 홍수전이 남긴 수많은 상흔을 극복할 수 있었다!
홍수전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광주 인근의 객가 마을에서 출발한 홍수전의 세력은 평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 대륙을 진동시키고 수많은 사람을 끔찍하게 처형한 홍수전과 객가 세력의 뿌리. 그 뿌리를 도려내기 위하여 앞으로 부단히 애를 써야 할 것이다.
그 심정을 드러내듯 석달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관을 쓰지 않은 석달개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즉위식에 쓰일 금관이 담긴 상자를 가져왔다.
“초객의 일원인 나 석달개는 백성들과 광주의 용사들의 부름을 받아 왕위에 오를 것이다!”
실제로는 프랑스의 입김도 강했지만 별 상관이 없다. 프랑스는 현지 협력자를 찾았고 최강의 협력자가 두각을 드러내며 주변을 모조리 점령하였다.
“저렇게 능력이 탁월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난세가 일어나면 걸물이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프랑스 대사는 조금 짜증을 드러내며 칭찬을 하였다. 프랑스의 의도는 남경 진격이었는데 어느새 군권을 거머쥔 석달개는 주변 산간오지를 파고들었다.
결국 그 기세에 프랑스도 휩쓸려서 북쪽과 서쪽으로 많이 진격한 것이다. 프랑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석달개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금전적 이득을 본 것이 전부이다.
상자가 열리고 금은보화가 박힌 금관이 드러났다.
금관을 누가 씌워줄까. 아마 프랑스에서 왕으로 인정하기 위해 금관을 씌워줄 것이라 예상했는데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내가 백성의 뜻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하니 백성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사람들이 내 왕관을 씌워줘야 하지 않겠느냐.”
석달개가 불러온 사람들은 광주의 용맹함을 드러낸 향용의 후손들이었다. 나와 안면이 있는 황기영을 시작으로 여섯 명의 사람들이 석달개 앞에서 절을 올렸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모두가 왕관을 잡고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다시 열화와 같은 함성이 퍼져 나가고 석달개가 평나라 왕에 즉위하였다.
“첫 어명을 내리겠다. 번잡한 일은 피하고자 하니 내 성과 이름 석 자를 붙여 쓰지 않는 한 피휘(避諱)를 하지 아니하여도 좋다.”
그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명령이었다. 번잡하게 이름을 바꾸는 대신 촌구석에서 기회를 얻어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한 명령이다.
“두 번째 어명을 내리겠다. 홍수전은 후원(後元)의 기병들에게 짓밟혀 절명하고 시신이 북경 저잣거리에 걸려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러나 후환이 남아 있지 않더냐.”
후환이라는 말에 방금 전의 열기가 사라졌다. 홍수전은 현장에서 즉사, 가까스로 도주한 고위 간부들은 추격당해 대부분 사망하거나 사실상 사망 상태였다.
그러나 홍수전의 아들인 홍천귀복만큼은 찾아내지 못하였다. 홍수전의 첩들이 필사적으로 보호하였다는데 그 덕분에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몰랐다 하던가.
“후환을 어서 끌고 와라.”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감옥에 계속 감금되어 있었는지 피부가 창백한 데다 피골이 앙상한 소년이 끌려왔다. 그리고 석달개가 그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이 소년은 홍수전의 아들인 홍천귀복이다. 내 휘하의 병사들이 사방을 주유하며 산골을 관리하던 가운데 짐승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녀석을 구해냈지.”
홍천귀복은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리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분노를 쏟아 보내며 말하였다.
“놈을 찢어 죽이십시오! 그 흉험한 죄를 대대손손 감당해야 합니다!”
“아비의 고향 근처에서 죽이는 것이 자비입니다! 더 머나먼 곳에서 죽이시옵소서!”
수많은 분노에 직면한 홍천귀복은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사방으로 돌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석달개의 어명이 하달되었다.
“어명을 내리겠다. 홍천귀복은 역적 홍수전의 아들로서 복록을 누렸을 것이다. 옛 법도에 의하면 극형에 처함이 마땅하나 새로운 나라에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자비라 생각하며 질색을 하였는데 난 석달개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이 나라가 형성될 때 양귀비를 재배하는 산간오지의 마을이 호응하지 않으면 깡그리 없앴던 것이다.
일종의 마을 단위의 연좌제로 질서를 잡은 나라이다. 자연스럽게 법이 경직되고 민심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석달개가 여기에 새로운 법을 들먹인 것이다.
“아니 되옵니다! 역적의 자식은 역적의 성품을 그대로 타고났을 것이옵니다!”
“즉각 극형에 처하시옵소서!”
“내가 생각하는 극형은 따로 있다. 살점을 발라낼 수도 없이 앙상한 놈을 이 나라에 두어서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하니 이 나라의 맹우(盟友)인 불란서의 힘을 빌리도록 하겠다.”
석달개는 손가락을 들어 홍천귀복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형벌을 내렸다.
“이 나라 어디에도 네가 발을 붙일 곳은 없다. 설령 먼 나라로 도주하여도 원한을 품은 이들의 칼날이 엄습할 터, 그러하니 이 세상 반대편에 있는 칠레로 보낼 것이다.”
가장 먼 곳에 보내는 귀양 사례로 남을지도 모른다. 칠레가 어디인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석달개의 말이 이어졌다.
“듣자 하니 칠레라는 나라는 새똥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산이 되었다더구나. 이 새똥 무더기를 퍼내면서 네가 누린 복록을 다 토해내도록 하여라.”
“가……. 감사하옵니다!”
홍천귀복은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랑스 군인들이 홍천귀복을 끌고 사라졌고 다음 어명이 하달되었다.
“세 번째 어명은 즐기라는 어명이다. 나는 열국의 사신들을 만날 터이니 너희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접견하며 이 잔치를 즐기도록 하여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열광하며 길거리 곳곳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석달개를 따라 본궁(本宮)으로 삼기 위한 광주 북쪽의 평왕궁으로 들어갔다.
처음 접견을 담당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프랑스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자니 석달개 휘하의 병사가 나를 불러들였다.
“평왕 전하를 뵙습니다. 즉위를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나 또한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을 뵙게 되었수, 수, 소.”
객가 특유의 사투리가 묻어나오자 석달개가 당황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직 31세에 불과한 석달개는 젊은 사람 특유의 열기를 드러내며 말하였다.
“이거 참 곤란한 일이오. 내 머릿속에 옛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야 옛말과 글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는 증표가 아닙니까?”
어느 정도 덕담이 오가자 석달개는 경계를 풀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농담을 섞어가며 나에 대해 평가하였다.
“풍문으로 들었을 때에는 이게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지경이었소이다. 그런데 풍문과 실물은 다르구려. 하긴 나도 위명(僞名)에 두려움을 품었지.”
“위명이라 하셨습니까?”
“이야기하자면 좀 길기는 한데.”
석달개는 프랑스의 협력을 받아들였을 때를 이야기하였다.
성과 이름이 역순인 서양의 풍습을 몰라서 베트남 생매장의 주역인 장 바티스트 세실과 루이스 그로가 친척인 줄 알았다며 부끄러워하였다.
처음에는 학살자를 마주하여 잔뜩 얼어붙은 채 굽실거렸는데 넉 달 정도 지나고 진실을 알아차렸다던가.
그는 무릎을 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였다.
“성과 이름을 혼동한 것에 어찌나 당황하였는지. 아무튼 결과가 좋으니 잘된 일이오.”
“올바른 정보를 입수하였다면 지금쯤 프랑스 군대를 상대로 저항을 계속하였겠군요.”
“그 말도 틀림이 없지만 이길 수는 없었겠지. 그나저나 답을 들어야 할 일이 있소.”
석달개는 갈기갈기 찢어진 중국 대륙 지도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북쪽에 있는 무정부지대, 딱히 열강들이 손을 대지 않은 지역을 손가락으로 훑으면서 물어보았다.
“이 땅 말이오, 우리에게 좀 내어줘도 될 일 아니었소?”
“욕심을 부리다가는 크게 당하는 법입니다. 더 이상 먹었다가는 대륙 한복판에서 사방팔방으로 두들겨 맞으며 덜미를 잡힐 것 같군요.”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하면 대한에 요청을 할 것이 있소이다. 불란서에서는 산간 지역의 좋은 땅에 여러 작물을 심어 장기적 이득을 취하려 하오.”
“좋은 방안입니다. 양귀비보다 몇 배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겠군요.”
지금 평나라에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 강한 수준이 아니고 당장 프랑스가 자신의 지원금을 몇 배로 받아내도 꼼짝없이 뱉어내게 생긴 꼴이지.
그런 상황에서 석달개도 머리를 굴렸나 보다. 그는 손가락으로 남녕이나 광주 인근의 여러 땅을 짚고는 요청을 하였다.
“그 작물을 가공하여 월남으로 가져가 공장에서 뭘 만든다 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공장을 세워서 그 일을 대신하는 게 나을 것 같더군.”
“공장에는 인부가 필요하지요. 작물 재배에 소비되는 인력을 제외하면 공장을 제대로 돌릴 인력 충원이 불가능합니다.”
“홍수전으로 인해 아편에 중독된 이들이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가지 않았소. 이들을 데려와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오?”
석달개는 걸물이 맞다. 촌구석에서 출세하여 지도자가 되고 일 년 만에 정보를 입수하고 취합해 이런 혜안을 보여주다니. 그 잠재력이 두려울 지경이다.
파나마 운하 공사는 계획단계에서 기술 부족으로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청나라 시절 팔려나간 쿨리들은 미국 곳곳에서 기차 노선을 부설하거나 남미에서 인부로 소모되고 있지.
처음 팔려나간 쿨리들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어엿한 청년이 될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쿨리들이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면 절대적 충성을 바치며 일하고도 남는다.
“공장을 설립하여 대한이 이득을 많이 가져가도 좋소. 다만 이 평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또한 이역만리로 팔려나간 한족을 고향으로 돌려주기 위하여 협력을 부탁드리오.”
“훌륭한 방안입니다. 저도 생각만 해 두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실 줄이야.”
상세한 구상은 각 대신들에게 일임하고 총리인 내가 약식 조약을 작성하였다. 상세 조항은 외부대신의 관할이라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었지만.
이제 마지막 행사도 끝나고 대한제국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쌍성자에서 돌아온 순조를 만나야 하겠네.
순조는 더 이상 쌍성자에 머무르지 못한다. 너무 고령인 데다 몸이 쇠약해져서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동티단을 완전 해산하고 지금 도성에 머무르고 있다던가.
#작가의 말
석달개의 재주는 보통 사람을 가뿐히 뛰어넘었습니다.
그는 본래 역사에서 19세의 나이에 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20세의 나이에 홍수전에게 왕위를 받았고 남경을 점령했지요.
23세에는 아예 정치, 경제적 개혁까지 한 괴물입니다.
태평천국 최강의 인물이자 증국번조차도 그를 당해낼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이후 태평천국 내부 분란이 발생하고 내전까지 벌어지면서 가족도 잃고 권력도 상실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달개는 별동대를 이끌고 6년 동안 추격을 뿌리치며 계속 싸워왔습니다.
그는 지금 중국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