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26장 2화 귀천(歸天)(3)
순조의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먼 나라에 파견 나간 황실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다. 장례에 뒤늦게 참석하는 불충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두 한 몸이 되었다.
이 정보를 서양 언론이 입수하자 순조의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예측했다. 영국에서부터 전해진 신문을 확인해 보았는데 순조가 어떤 인물인지 묘사하는 논평이 담겨 있었다.
<호랑이의 아버지, 그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가?>
논평에는 효명제를 묘사하듯 거대한 호랑이가 납죽 엎드린 채 무언가를 섬기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호랑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들짐승이 끙끙 앓고 있었고.
“태상황 폐하께서 이 논평을 보시면 당장 숨을 거두시겠군.”
이게 순조의 대외적 평가다.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서양으로 보내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한 냉철한 자.
은퇴한 다음에는 점령지의 민심 이반 방지를 위해 모든 일을 다스리는 자. 이 대한을 사실상 열강 말석에 올려둔 기반을 만든 자.
이게 서양의 판단이다. 내가 순조를 잘 아는데 그럴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되었지. 물론 그 과정에서 특유의 성품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고.
“사람이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조금만 더 오래 계시면 좋을 것을.”
순조는 지금 며칠에 한 번씩 의식을 찾는 수준이라 하였다. 이마저도 총리대신쯤 되어서 들을 수 있는 소문이고 실제로는 별다른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
백성들이나 하급 관료들은 태상황께서 노환을 앓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조는 병세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1862년 4월 중순이 되었다.
서양에 건너간 황족 모두가 대한제국으로 돌아오고 보름 정도가 지날 무렵. 마침내 궁궐이 소란스러워졌다.
“설마, 설마! 총리대신님! 지금 궁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좌관의 이야기를 듣고 집무실에서 뛰쳐나왔다. 순조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장례식을 올려야 할 경복궁 태원전, 빈전(殯殿)으로 쓰일 건물 인근의 전각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태원전 방향으로 의원들과 내시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입술을 짓씹으며 상황을 살펴보는데 웅성거리는 소리와 비통에 찬 곡소리가 들려왔다.
예의도 법도도 모르고 일단 몸부터 움직였다. 서둘러 태원전으로 달려가려 하는데 병사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가시면 아니 됩니다. 총리대신께서도 법도를 지키시지요.”
“내 이름을 지어주고 가문에 넣어주신 분을 만나보려고 하네.”
그 순간 태원전 방면에서 소름끼치는 침묵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병사들의 눈을 노려보자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이 침묵이 의미하는 건 하나다. 이 시대에는 심전도 검사가 불가능해서 사람이 죽으면 솜을 코에 대어 숨결을 확인하고 심장 박동소리를 듣는 것이 전부다.
“제발……. 제발…….”
어느새 근정전 방향에서도 효명제가 성큼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인사도 올릴 수 없이 간절한 심정으로 태원전 앞 전각으로 향하니 순조에게 의원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어떠하신가?”
“갑자기 기력을 잃으시고 고개를 떨구셨사옵니다.”
효명제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순조가 사방에 침을 맞은 채 누워 있었고 의원들은 솜을 코에 들이대고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대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이미 심폐소생술을 거행하였는지 순조의 옷자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늑골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해서 별 효과는 없었겠지만.
주변에는 악공과 무용수들이 대기하여 있었다. 효명제는 이 모습을 보고 내가 겨우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병환을 겪으시는 분이 어찌하여 밖에 나오려 하셨는가.”
나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청진기를 움직이고 솜을 조금씩 더 가져다 댄 의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여덟 명의 의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였다.
“태상황께서 승하(昇遐)하셨사옵나이다.”
“지금 무어라…….”
“이미 한 각 동안 심부가 움직이시지 아니하셨사옵나이다.”
효명제가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나도 바닥이 무너지는 것 같이 다리에 오금이 풀려왔다. 정약용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 짐작하였지만 순조는 다르다.
난 순조에게 조금이라도 더 머나먼 훗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순조는 가장 앞에 있는 봄날을 즐기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상위복! 상위복! 상위복!”
즉각 장례 절차가 시작되었다. 효명제가 부축을 받아 안으로 사라지고 나 또한 병사들에게 사과를 하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다음 과정 역복불식, 황실 모두가 삼베옷을 입고 사치스러운 것을 버린 다음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나를 포함한 대소신료들도 이 행동을 같이하였다.
그 과정에서 순조의 시신은 목욕을 마치고 수의(壽儀)로 갈아입혀졌다. 세상을 떠날 사람을 위해 준비한 예찬(禮饌)을 앞에 두고 술을 올리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다음으로는 모든 황실 사람들이 모여 곡을 하였다. 각자 자리를 마련하고 곡을 하는 가운데 문무백관도 집결하여 곡을 울릴 준비를 거행하였다.
“아바마마께서는 이 무치(無恥)한 소자의 광명과도 같은 분이셨사옵니다!”
효명제의 곡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도 상복을 입은 채 경복궁의 홍례문(지금의 흥례문) 앞에서 도열하였다. 여기에 도성 곳곳에 머무르고 있던 황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부여왕이건 심양왕이건 아무든 상관이 없었다. 다들 넋이 나간 채 서둘러 발걸음을 놀렸다.
여기에 일준이도 도착했다. 국립이학대학에서 일준이와 같이 면담을 가졌는지 녀석은 이하응을 달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셔야지요.”
“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네. 이 총장이 안으로 들어가야지.”
발을 동동 구르던 이하응은 그제서 태원전 방면으로 들어갔고 일준이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각지의 의원을 동원해 새로운 약을 찾았는데 그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었어.”
그 말을 듣자 일준이의 생각도 알 수 있었다. 노환을 약으로 피할 수는 없었지만 녀석과 이하응도 여러 노력을 하였다.
이하응이 황실 사람들 중 마지막으로 들어가자 문무백관들이 나를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올릴 준비를 하였다.
당연히 총리대신인 내가 신료들을 통솔할 차례였다. 가장 앞에서 절을 올리며 곡과 함께 내 감상을 말하였다.
“태상황께서 이 나라를 온전히 만드신 분이시니 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사옵니다!”
내가 곡을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 곡을 같이 올렸다. 그나마 대한제국에 고용된 서양인들은 뒤에서 바로 선 채 기도문을 읊으며 곡을 대신하였다.
곡을 올릴 때마다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은 순조의 죽음이 점차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언제나 이러했지.
각 관청에서 장례를 위해 준비한 물건들이 운반되었다. 시신에 넣을 쌀과 진주, 시신의 부패를 막을 얼음덩어리들과 제사를 위한 가마, 여기에 순조가 입었던 옷까지.
그리고 영좌(靈座), 영정을 모실 자리가 마련되고 위패 대신 최초로 사진기로 찍은 순조의 생전 사진이 봉안되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내시가 이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태상황께서는 생전에 밀명을 남기셨소. 위패(位牌)를 남기면 쇠약한 모습을 떠올린 사람들이 더욱 슬퍼할 것이니 가장 빼어난 사진으로 그 슬픔을 덜어내라는 뜻이오.”
사람 몸통 크기로 확대 인화한 사진에는 그 말 대로 순조의 모습이, 가급적 몸이 성할 때에 찍은 밝은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속이 울컥거리며 눈물이 새어 나왔다.
곡을 마치고 마침내 장례 시작 3일차가 되었다. 내가 사직단에, 이하응이 영녕전에, 태자가 종묘에 국상 사실을 고하였고 고운 베가 들어와 순조의 시신을 염습하였다.
이후 순조의 시신을 관에 넣는 예식을 치르자 효명제는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의식을 진행하였다. 사흘 간의 가장 힘든 과정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할 시기였다.
“이제 유고(遺稿)를 공개할 시기입니다.”
“유고 공개라 하였습니까?”
내명부 소속 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리대신인 나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는데 순조는 죽기 전 내명부를 통해 유언을 남기고 이를 나를 통해 공표하려 하였다.
이는 순조의 뜻이기도 하였으며 황실에서도 딱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인 것 같았다. 내용을 살펴보니 순조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상사(喪事)로 인하여 복상(服喪)의 예의를 치르되 그 기일을 정해서 하라. 나라의 중진들은 작법에 맞추어 예의를 표하되 그 외의 백성들은 한 달이면 족하다.
-장례의 격식을 갖추되 묘소는 아바마마의 묘소보다 더 나을 것이 없게 만들라. 죽은 사람에게는 봉분을 세울 한 평의 땅만 있으면 족하나 최소한의 격식을 지키라는 뜻이다.
-삼년상을 권하지 아니할 것이다. 다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면 삼년상 대신 보름에 한 번 들러 묘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하여라.
-이외의 구체적인 사항은 허례허식을 따르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따르도록 하라. 마음의 짐을 덜어내어 자기 자신에게 떳떳할 정도로 예를 갖추라.
이제 54세가 된 효명제를 배려하는 내용이며 허례허식을 줄이라는 뜻이기도 하였다. 특히나 묘소의 크기를 정조 수준으로 낮추라는 내용이 끼어 있었다.
참 어려운 난제를 지정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순조가 남긴 마지막 과제를 수행할 겸, 총리대신 지위로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공표하였다.
“이미 뜻이 정해진 것이라면 내가 직접 행해야겠지.”
성복(成服), 모두가 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길거리에 순조의 유언을 인쇄해 붙였다. 일부러 한글로 작성한 유언이 공개되자 백성들 모두가 절을 올리며 통곡하였다.
“태상황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시니 이 어찌 침통한 일이옵니까?”
도성 방방곡곡에는 한나절이 지나기가 무섭게 빈소가 차려졌다. 생전에 순조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였는지 이 빈소들에 영정사진을 쓸 정도로 사진을 인쇄해 뒀다.
곡반(哭班) 담당자들이 백성들과 함께 곡을 올렸고 흰 상복을 입은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각 대사관의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 * *
정말 폭풍과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한 달이 지나고 장례식이 완료되기까지 6개월이 남을 무렵, 신하들이 모여서 정할 일이 있었다.
“이제 묘호를 정할 시기요.”
시호(諡號)는 효명제와 황실에서 추증한다. 반면 묘호는 신하들이 덕을 기려서 올리는 과정이라 내 담당 직무이기도 하다.
순조의 본래 묘호는 평범한 의미를 담은 순(純)이다. 반대로 지금의 순조는 조선 역사상, 아마 한반도의 역사와 견주어보아도 비교할 수 없는 군주이다.
또한 효명제에게 남긴 유언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순조의 묘호는 순이 아닌 글자로 정하기로 마음을 먹고 의견을 정리하였다.
“선제께서 받으실 묘호는 성(聖) 이외에는 없겠군.”
여러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내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침묵하였다. 대신들은 이 말을 듣고 자신들이 앞세운 묘호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첫 치세 무렵 흠결을 남기신 적이 있으나 지극히 높으신 위업을 달성하시었으며 태상황의 지위에 계실 때에도 사력을 다하였습니다. 조(祖)를 덧붙여 올리도록 하지요.”
“태조대왕께서 정식 묘호는 아니지만 존경을 담아 성조로 불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하니 광조가 적당한 것 같군요.”
“지나치게 드높여도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선제께서는 언제나 겸양을 미덕으로 삼으시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던 분이었습니다.”
일단 높은 묘호를 붙여야 하는데 광(光)이나 고(高)라는 묘호는 고려시대에 쓰인 적이 있다. 그렇다고 고종을 쓰자니 내 심보가 뒤틀려 버릴 것 같다.
더군다나 성종(成宗)은 고려와 조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묘호이다.
그러던 가운데 가만히 앉아만 있던 이하응이 의견을 내세웠다.
“이 나라에서만 따지고 보면 성조는 어울리지 않는 묘호이지요.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여 보면 성조가 가장 나은 묘호입니다.”
“예전에는 조선의, 지금에는 대한의 이름을 세상 만방에 드높인 것이 빛처럼 퍼져 나가지 않소? 그러하니 광(光)조요.”
“아니지요. 빛은 세상에 퍼지는 것이 전부입니다. 옛 성인처럼 사람을 교화하는 일에 힘을 다한 분에게는 성조가 가장 적합합니다.”
순조의 치적 중 하나는 교화이다. 태상황의 자리에서 그가 교화한 사람만 최소 오만 명 이상, 간접적으로 가르친 사람을 감안하면 이십만 명이 넘는다.
실제로는 범죄자를 끌어들이고 이리저리 굴려대고 그다음에는 시베리아를 건너온 러시아 이주민들을 교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범죄를 막기는 하였다.
여기에 의무교육을 벌이는 각 기초 교육기관의 투자자이자 대학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하응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펼치고 말하였다.
“성(聖)이라는 글은 성인을 뜻합니다. 이십여 년 전에 이 나라의 일원이 되려다 불화를 겪은 사람을 교화하고, 그다음에는 이역만리를 넘어온 사람을 교화한 성인이 아니십니까?”
“그런 의미라면 광조보다 더욱 어울리는 묘호 같구려.”
내 제안을 이하응이 받아들인 덕분에 순조의 묘호는 성조가 되었다. 글귀를 이하응이 작성하여 나와 함께 효명제에게 올리게 되었다.
“성조라, 짐이 생각하던 묘호와 크게 다르지는 않구나.”
“폐하의 마음에 드시니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울한 기분에 매몰되어 가던 효명제도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은 것 같다.
한참을 생각하던 효명제는 마음을 정리하고 나에게 예전의 일을 말하였다.
“짐이 예전에 수렴청정을 할 때 아바마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이라는 춤사위를 만든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아바마마께서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사옵니다. 말년에도 이러한 무용을 즐겨 감상하셨지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군.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볼 때마다 기뻐하시던 아바마마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다네. 세상을 떠날 때에 왜 밖에 계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순조는 봄꽃이 피자 사람들을 불러들여 자식이, 효명제가 만들어낸 춤사위를 감상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 춤사위를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고.
나도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만 국상이 진행되는 중에는 화려한 예식도 금지되는 상황인데 예절을 무시하고 무조건 춤사위를 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보면서 가닥이 잡혀 효명제의 마음을 풀어줄 겸 건의하였다.
“이 나라의 풍속은 아니오나 서역에는 헌화(獻花)의 풍습이 있사옵니다.”
“그 풍습은 익히 알고 있지. 내가 영길리에 있을 적에도 헌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이 나라에도 적용해 봄은 어떠하옵니까?
효명제는 애틋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조의 유언에도 스스로의 마음을 따르라는 내용이 있었고 이 내용을 준수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이다.
그 예의와 세상의 통례를 어느 정도 감안하여 헌화로 대체한 것이다. 춤은 도저히 출 수 없더라도 꽃이라도 영전에 바치는 의식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시기에 피는 흰 꽃이 있기는 하군.”
“흰 꽃이라면 수십 종류가 넘게 있지 않사옵니까?”
“우리가 영길리에 있던 동안 아바마마께서 행사한 일이 바로 감자의 전파일세. 덕분에 북방에만 알음알음 퍼져 나가던 감자가 이 나라 전역에 퍼져 나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효명제의 말이 옳았다.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조선시대에 그리 널리 퍼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북방인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서만 길렀다.
그 상황에서 로드 암허스트호가 방문하여 영국에서 개량된 감자 품종을 전해줬다. 순조는 우리가 자리에 없을 때 여러 업무를 하면서 감자를 알음알음 퍼트렸던 것이다.
나도 그냥 넘어간 사실인데 효명제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릴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한동안 생각을 하더니만 나에게 말하였다.
“감자의 꽃은 아름답지만 반드시 꺾어내야 할 물건일세.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면 감자가 덜 자라나 무조건 뜯어내야 할 물건이지.”
“그러하면 아무도 가치 있는 꽃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겠군요.”
“이 꽃은 헌화에 어울리는 하얀색이며 매점매석을 비롯한 행위를 할 수도 없지. 더군다나 아바마마께서 민의(民意)를 위해 반포한 감자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효명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후원으로 향하였다. 경복궁의 후원에는 각종 꽃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소박한 멋을 자랑하는 하얀색 감자꽃도 있었다.
꽃을 잠시 살펴본 효명제는 하얀색의 꽃 한 뭉치를 꺾어 순조의 영전에 가져갔다. 그리고 엄숙하게 절을 올린 뒤 이 꽃을 올려두었다.
“아바마마. 예법을 다하기 위하여 평시 즐기시던 가인전목단을 올릴 마음을 억눌렀사옵니다. 대신 소자와 백성들이 영전에 올릴 꽃을 보시어 혼백을 평안히 하시옵소서.”
마음의 짐을 정리한 효명제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헌화 허용 명령을 내렸다. 최소한 꽃잎이 흰색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외에는 마음이 정하는 대로 따라가게 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꽃이 순조의 영정사진 앞에 쌓이기 시작했다. 양반들은 이제 막 피어오르는 하국(夏國), 여름 국화를 바쳤고 사과 꽃이나 이팝나무의 꽃도 대상이 되었다. 개중에 가장 많은 비중은 효명제의 예상대로 백성들이 바치는 감자꽃이 차지하였다.
그 무렵, 동티단도 한 달에 걸친 여정 끝에 한양에서 장례식에 참석하려 하였다.
“총리대신님 아니십니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왔습니다.”
경복궁 바로 앞의 빈소에 나타난 동티단의 대표는 드미트리 페트로프였다. 수척한 몰골의 드미트리는 눈을 흘기며 빈소를 흘겨본 다음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간 고생이 많은 것 같더구려. 그나저나 오는 길은 평안하였소?”
“새 아버지가 미리 준비한 선박 덕분에 평안하였지요. 자식으로서 할 말은 아닙니다만.”
그의 눈에 담긴 슬픔과 서러움을 보니 내 마음이 울적해질 것 같았다. 그는 그 슬픔을 견뎌내듯 가슴 속에 품어둔 감자꽃 다발을 보여주면서 말하였다.
“그나저나 헌화를 거행하라는 뜻이 참으로 마음에 들더군요.”
“그야 선제께서는 생전에 꽃을 꺾는 무용을 좋아하셨으니 당연한 일이지.”
“하나 더 있습니다. 감자꽃을 헌화하라는 권고를 하셨는데 이 꽃의 꽃말이 뭔지 아십니까?”
꽃말까지는 몰라서 멍하니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드미트리가 헌화를 하고 빈소에 절까지 올린 다음 돌아가서 말하였다.
“감자꽃의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이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 아닙니까?”
순조의 빈소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감자꽃을 쌓아두었다. 꽃말 그대로 모든 백성들이 흠숭하고 따른다는 뜻을 담은 마지막 선물이 영정사진보다 높게 쌓일 지경이었다.
그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헌화 예식이 계속 거행되었다. 드미트리를 비롯한 러시아 이주민들은 한양에서 헌화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