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26장 3화 혁명의 불길(2)
러시아 제국의 공업화는 대한제국의 도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863년이 되자 영국과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 열강들도 한 손을 벌려 공업화에 가담하였다.
정확히는 러시아 제국을 망가트리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개편하기 위한 공업화였다. 이미 대한제국이 손을 벌린 시점부터 이 투자는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다.
자고로 영국의 특기는 제대로 된 나라의 구조를 망가트리고 복속시키는 것이다. 이 특기를 옆에서 전수받은 프랑스 또한 대규모 공업단지 설립을 골자로 투자를 실시하였다.
“우리 영국이 보기에는 러시아의 철강 생산은 개선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돈바스 일대의 풍부한 석탄을 기반으로 남부 러시아에 제철소를 잔뜩 세워주시지요.”
“프랑스도 한 손 거들 예정입니다. 닐슨 조가 창안한 닐슨 전로를 기반으로 철강을 생산하시지요. 저 머나먼 우랄에서 철강을 언제까지 생산할 생각이십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합당한 투자였다. 풍부한 철광석과 석탄을 러시아의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가까운 남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가공해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알렉산드르 2세도 이 계획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하였다. 그는 얼마 전 신문기사로 전해진 카를 마르크스의 투자 실패 사례를 들먹이며 말하였다.
“카를 마르크스의 의견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친구는 요즘 뭘 하고 있나?”
“그 친구는 한 번 성공하더니만 온갖 엉뚱한 물건을 제안하더군요. 대한제국에서 운이 좋아서 캐낸 석유를 대규모 공장으로 계획적으로 정제할 필요가 있다 하였습니다.”
“쇠고기 수입으로 번 돈을 모조리 유전 탐사에 투자하더군요. 그게 뭔 쓸모가 있다고.”
영국과 프랑스의 공장주들은 이미 카를 마르크스를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신문 기사를 내서 비판하고 공격하였지만 실제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투자 비중을 독점하기 위한 견제구도 알렉산드르 2세가 보기에는 신뢰성을 높여줄 만한 내용이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다음 계획을 정리해 공표하였다.
“유조프카(현 도네츠크)를 시작으로 모스크바까지 연동된 대규모 공업단지를 설립하겠소.”
“차르께 감히 간언을 올립니다. 최소 삼억 루블 이상의 투자비용이 필요합니다.”
알렉산드르 2세는 자신이 처음에 계획한 토지 개혁을 떠올렸다. 토지를 소작농에게 강제 분배하면서 10억 루블 이상의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공업화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가까스로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온 상황이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짜증을 담아서 말하였다.
“설탕, 담배를 비롯한 기호품에 세금을 좀 늘리도록 하지. 그럼 극복할 수 있겠군.”
투자 유치 서류에 차르의 서명이 기입되었다. 사실상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의미하는 서류이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고통을 겪을 신호탄이었다.
더군다나 개선의 여지조차 막아버린 수단이었다. 세금을 올려 차관을 갚아 나간다는 선택을 한 순간부터 각 자본가들은 정부 정책에 반발하지도 못하고 자본적으로 예속되었다.
물론 알렉산드르 2세는 지표를 확인하고 만족하였다. 심지어 대한제국의 품에서 벗어나 시베리아를 통해 돌아온 이들이 얌전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기까지 하였다.
그 행복한 장밋빛 계획과 반대로 각 지방에서는 불만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뭐 이딴 일이 다 있어! 담배를 어떻게 피우라고!”
담배를 사러 읍내에 들른 농민은 40%나 오른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자 지방 귀족 아래에서 일하는 가게 상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차르께서 명을 내리시어 담배의 세금을 올렸소. 우리 러시아를 부양하기 위한 방책이오.”
“우리를 부양하는데 담배의 가격을 올린다고? 아예 술도 못 마시게 하지?”
“이게 다 불순종자 탓이오. 이상한 사상을 배운 놈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도주해서 나라의 세금이 고갈되었다 하더구려.”
소작농은 얼마 전 마을에서 도주한 ‘불순종자’를 떠올리면서 치를 떨었다. 아직까지는 차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농민으로서 그는 허름한 옷을 곧게 펴면서 말하였다.
“하긴 위대하신 아버지 차르께서 잘못된 일을 하실 리는 없지.”
아직까지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퍼져 나간 불만은 신뢰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농민들에게 서서히 퍼져 나갔다.
특히나 러시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탕 관련 세금이 문제였다.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고 설탕을 잔뜩 넣은 요리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 전제조건이 깨어지면서 도둑이 들끓기 시작했다. 한 아낙네는 사탕무를 수확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설탕 가격이 오 할이나 폭증했는데 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없네. 도둑놈만 득시글거리잖아.”
사탕무밭 곳곳은 작물을 훔쳐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설탕 가격이 폭증하며 사탕무를 뽑아 즙을 짜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국가는 배를 채워나갔다.
한번 부과된 세금은 눈덩이가 구르듯 불어났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중공업 단지를 완성하고 체질을 개선하려는 알렉산드르 2세의 욕심은 크나큰 화근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담배와 설탕을 비롯한 기호품으로 시작된 세금은 석탄, 성냥, 등유와 같은 생필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최악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주류 독점을 선언한다. 앞으로 국가는 증류주와 와인을 독점적으로 구매한다>
<모든 주류는 사적으로 판매할 수 없다. 국영 판매점에서만 유통할 수 있다>
<건전한 음주문화를 권장하고 몸을 망치는 과도한 음주를 중단할 목적이다>
<보드카를 비롯한 밀주를 판매할 경우 강제 노역 처벌을 내린다>
주류 독점판매를 실시하면 국가 세수의 15%가량을 벌충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물건을 건드렸다.
“야! 이 미친놈아! 보드카 한 통에 얼마? 종전 가격의 두 배를 받아먹어!”
“지나치게 비싸면 사지 마시오.”
“그럼 만들어 먹고 말지!”
“이 목록 보이시오? 이제는 사모곤(Samogon –밀주)도 금지 대상이오.”
각 지방에서 주류의 독점 판매를 담당한 사람은 당연히 귀족들 휘하의 상인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증가한 주류 세금에 약간의 이득을 덧붙여 더욱 큰 이득을 꾀했다.
예전에는 경쟁으로 인해 서로 가격을 낮추면서 서민들도 어느 정도 독한 보드카에 입을 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경쟁이 사라지고 독점 체제가 되면서 부패한 귀족이 가담했다.
이들은 판매 금지 목록이 아닌 주조(酒造) 금지 목록으로 농민들을 윽박질러서 술의 독점을 꾀한 것이다.
대부분의 식자층에게 입막음으로 술을 좀 준 덕분에 까막눈 신세의 농민들은 이 협박에 속아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남은 것은 쉬어빠진 맥주가 전부였다.
“이제는 담배도 못 피우고 설탕이 잔뜩 들어간 잼도 못 먹고 보드카도 못 마시게 되었네.”
아직도 차르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농민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집 근처에 가자 기묘한 향기가, 심금을 울리는 향기가 퍼져 나갔다.
그 향기는 시베리아에 유배를 갔다 돌아온 사람의 집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농민들이 쭈뼛거리며 담장 안을 확인하자 기묘한 물건이 있었다.
“그건……. 뭐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요?”
“아, 이게 동양 방식의 증류주 제조법이오. 쉰 맥주로 술을 만들어보려고.”
“그러다가 두들겨 맞는다고! 자네 유배를 다녀왔으면서 강제 노역까지 당하고 싶나!”
마당 한편에는 옹기로 대충 재현한 동양 방식의 소줏고리가 자글자글 끓으며 술을 내뿜고 있었다. 동티단을 가르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옛 방식을 알고 있는 양반들이었다.
제자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들은 같이 따라온 소작농을 시켜 소주의 제조법을 알려주었다. 그 제조법이 머나먼 이국에서 어설픈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내가 시베리아에 한 번 다녀왔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겠소? 모노폴카(독점 판매점)에 다녀와서 목록을 쭉 훑어보았는데 소주는 없더라고.”
“소주가 뭔 술이오?”
“동양 방식의 술이지. 아무튼 보드카도 아니고 원료가 맥주이기는 하지만 소주 맞소.”
동티단원은 술을 한 잔씩 농민들에게 건넸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탄내를 비롯한 자질구레한 냄새가 진동하고 오줌처럼 노란 색상의 기괴한 술이었다.
그러나 알싸한 알코올의 향을 러시아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술을 한 잔씩 마시고 세상 시름을 잊은 듯이 잔을 돌려주며 말하였다.
“한 잔 더!”
“여부가 있겠소. 집안에 잠들어 있는 맥주는 모두 가져오시구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베리아에 다녀온 사람의 집은 밀주 제조장이 되었다. 농민들은 알음알음 맥주를 소주로, 러시아어로는 ‘쏘쥬’라는 술로 바꿔나갔다.
“언제쯤 끓을까. 그동안 시베리아에서 겪은 이야기라도 해주시오.”
본래 동티단은 자신이 가져온 재산을 털어내며 농민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의 주류 독점 정책으로 인해 동티단에게 알아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술자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 농민들은 이번 술자리에는 좀 먼 나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질문을 하였다.
“멀쩡히 살아 돌아온 걸 보면 그럭저럭 살만한 것 같은데?”
동티단원은 자신의 생각대로. 미리 계획한 대로 일이 돌아가자 소줏고리를 매만지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증류주를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옥 속에서 낙원을 발견하였소. 참으로 멋진 나라더구려.”
“시베리아에 나라가 있다고?”
굳이 길거리에 나와 일장연설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동티단원들은 밀주를 만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였고 그 내용은 소작농 입장에서는 정말 낙원에서나 일어날 사건이었다.
“세상에, 대한제국의 전대 차르께서 사람을 구휼하였다고?”
“귀족들이 세금을 거두지 않고 국가에서 세금을 거둔다고?”
“그……. 비료라는 물건이 뭐요? 정말 땅에 뿌리기만 하면 작황이 좋아진다고?”
삶과 연관된 이야기를 들은 농민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차르에 대한 믿음은 무너지지 않더라도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자 자신들의 비루한 현실이 더욱 절박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많소이다. 나는 근래에 들어 우리가 고통을 겪는 이유가 차르의 올바른 정책을 헝클어트린 귀족 나부랭이들의 행패라 생각하고 있소.”
“대한에도 귀족은 있지 않소?”
“시험을 보아 자격을 증명해야 하오. 반대로 말하면 우리 같은 농민들도 시험에만 합격할 수 있다면 양반이 되고 이후 증손자까지 양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지주 나리는 완전 금치산자(禁治産者)라서 시종이 업무를 보던데.”
동티단은 각지의 농민들을 계획적으로 자극하였다. 차르는 잘못한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차르의 올바른 뜻을 헝클어트리는 귀족의 문제라는 말이었다.
그 설득의 기반은 차고 넘쳤다. 어느새 밀주 판매장은 혁명의 불씨를 더욱 키울 장소가 되었으며 농민들은 입단속을 철저히 하며 동티단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각 마을에 교사를 보내 학문을 가르쳐야 하오!”
“동무는 그것 정도로 만족할 수 있겠소? 교사가 아닌 학교를 세워야지!”
“땅과 재산을 독점한 귀족들은 자기의 자격을 증명해야 하오! 아니라면 죽든가!”
이러한 불씨는 동티단이 귀향한 각 지역에서 더욱 큰 불길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년여에 걸친 이 과정이 어느 정도 구체화 될 무렵. 또 다른 불씨가 커져갔다.
더 많은 중공업단지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착취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길거리에서 계약서를 대충 작성하고 쉴 새 없이 굴려지고 있었다.
“언제쯤 제대로 잘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넌 그래도 형편이 좋잖아. 난 어제 바퀴벌레에게 물린 손가락이 곪아 들어가고 있어.”
쉴 새 없는 착취의 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개선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그 개선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인 영국과 달리 러시아는 간단히 대응하였다.
-일하기 싫어? 계약 위반 벌금을 안 물 테니 고향으로 꺼져.
최소 일 년을 꾸준히 일해야 제대로 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몸을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철강자재가 들어오고 이 자재를 무기로 바꿔 나갔다.
어둡고 매연이 들끓는 공장 안에서 한 노동자가 피로에 절어 몸을 휘청거렸다.
그가 프레스 기계로 곤두박질치려는 순간. 거친 손길이 그의 등을 부여잡았다.
“야! 일어나! 죽고 싶냐!”
“고맙습니다! 형님!”
공장에 잠입해 있던 동티단원은 노동자를 지켜주는 든든한 큰형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손길에 구원을 받은 노동자들만 따져도 스무 명이 넘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협상을 하여 노동 시간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일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섬세함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그 동티단원은 오늘 퇴근시간에 다가올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주목! 월급을 지급하겠다!”
자신의 예상대로 부패한 귀족들이 움직인다면 벌어질 일이 있었다. 청나라의 몇몇 공장에서 벌어진 사례인데 그 일이 조만간 이 공장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함께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동자들이 모두 업무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월급 대신 이 공장에서 생산한 소총들이 쌓여 있었다.
공장주는 목을 가다듬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이번 공장 운영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 원자재비용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서 너희들의 급료 대신 같은 가격의 소총을 지급하게 되었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소총을 지급한다니요!”
“당연히 총알이 없는 소총을 지급하지. 개수작 부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동티단원은 한때 병사로 복무한 적이 있어서 지금 벌어지는 일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공장 직원들을 보살핀 덕분에 목표 생산량을 초과하여 소총을 생산하였다.
지난 일 년 동안 초과 생산된 조금씩 쌓여나갔고 어느덧 월급으로 지급할 수량이 쌓인 것이다. 공장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남는 장사가 따로 없었다.
러시아제 소총의 가격은 개당 35루블에 달한다. 당연히 시중 판매가이고 공장에서 막 만들어진 제품의 원가를 따지면 25루블 정도이다.
“너희의 월급이 삼십 루블이지. 그런데 삼십오 루블의 소총을 지급하면 오 루블이 남는 장사 아니야? 어때, 급료를 좀 더 높게 쳐준 것 맞잖아?”
“아니 그렇기는 하지만요…….”
“너희에게 작성한 계약서를 봐라. 월급을 지급할 수 없게 되면 대체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지?”
노동자들은 탄환도 없고 사용법도 모르는 소총을 한 개씩 강매당했다.
다음 날이 되자 소총을 구매하기 위한 업자가 왔는데 가격을 대놓고 후려치기 시작했다.
“개당 이십이 루블에 사겠소.”
“야 이 개자식아! 이 소총 가격이 삼십오 루블인데!”
“그러면 팔지 마시든가. 소총을 핥아먹으면 맛이 아주 좋겠는데.”
철저히 계획된 이중 착취구조였다. 기숙사 월세와 식대를 내면 정확히 20루블, 월급 대신 받은 총을 팔아봤자 푼돈 조금만 남게 된 상황이었다.
부패한 귀족들은 업자들과 결탁하여 총을 밀매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다들 절망한 가운데 동티단원은 불만이 가득한 노동자들에게 제안을 하였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소총을 판매하면 어떤가?”
“형님이 아는 사람이 있다니요! 대체 누구입니까?”
“그야 발이 좀 넓고 손이 좀 큰 사람이지. 아무튼 그 사람이면 소총을 구매할 수 있을 거야.”
바로 밀주 판매를 실시하는 또 다른 동티단 소속 농민이었다. 한 명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여러 명이 힘을 합치면 소총을 모두 구매하고도 남을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
곧이어 편지를 전달받은 동티단 소속 사람들이 소총을 제 가격에 구매하였다. 아직 러시아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갑식 소총과 유사한 물건이 혁명 세력의 손에 들어갔다.
당연히 공장주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는 힘 좀 쓰는 사람들을 고용해 이번 일을 추진한 동티단원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아! 소총을 어디에다 팔아 치웠어!”
“어디에다가 팔기는. 내가 시베리아를 건너오며 사냥꾼을 많이 알게 되었소이다. 그 사람들이라면 신형 소총을 구매할 재력도 갖추고 있지 않겠소?”
“나라에서 쓸 소총을 멋대로 팔아!”
“댁이야말로 나라에서 쓸 소총을 멋대로 월급으로 지급해!”
공장주와 동티단의 시선이 교차하였고 공장주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번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문책당하는 것은 자신이다.
설령 이 자리에서 상대를 때려죽여도 마음이 후련할 뿐 공장 직원 전체를 죽이지 않는 한 소문은 결국 퍼져나갈 것이고 자기도 문책으로 공장장 직위를 박탈당한다.
결국 뭘 해도 엉망진창이 된 꼴이다. 그 상황에서 동티단 노동자가 좋은 제안을 하였다.
“시베리아 사냥꾼들에게 소총이 들어가 봤자 차르에게 소문이 퍼지려면 몇 년은 걸리고도 남겠지. 그러하면 초과 생산 물량을 제 가격에 판매하는 상황이 되는데.”
“하긴……. 물량을 덮어놓고 많이 보내봤자 차르가 기뻐하실 뿐 남는 돈이 별로 없어.”
오히려 알렉산드르 2세는 어깃장을 놓으며 목표 생산량을 높일 것이 분명하였다. 공장주는 동티단 노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다 이 제안을 수락하였다.
“분기 당 일천 정 정도를 판매할 수 있겠나? 대신 가격을 사십 루블로 높여서.”
“얼씨구. 목표생산도 아니고 생산 미달로 징계를 받으실 작정이시오?”
“돈이 먼저지. 대신 식사도 좀 좋게 해주고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지.”
공장주는 시베리아 사냥꾼이 탄환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을 진행했다.
이 방식이 전파되자 수많은 공장에서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약간의 문책을 각오했다.
그 결과 소총 생산물량 중 상당수가 민간에 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