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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29화 (29/218)

#029화

언럭키가 양 손을 활짝 펼친 채 숨을 깊이 들이켰다.

도대체 이 게임은 무슨 기술로 만든 건지. 숲의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까지 느껴졌다.

“스읍~하! 이게 오크의 숲의 공기구나.”

성 팀장에게 문의하자 곧바로 허가가 떨어졌다.

지난 열흘간의 고민이 무색하게, 언럭키는 곧장 사냥터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진작에 연락해 볼 걸 그랬어.’

설마 이 빌어먹을 회사가 나에게 도움이 될 줄이야.

원래라면 파티원을 구해서 함께 들어와야 했었는데,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혼자서 정해진 구역을 독점하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보통은 혼자서 사냥터에 들어온다고 하면 죽기 딱 좋지만…

“취익! 취익!”

멀찍이 숲 안쪽에서부터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소리였다.

언럭키가 기다렸다는 듯 검을 빼어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조금 나아가다 보니 숲 속에 앉아있는 오크들의 숫자가 보였다.

얼추 6~7마리.

그가 활짝 웃었다.

“답답한 던전 내부가 아니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언럭키가 바라던 사냥터가 이런 거였다.

이런 쾌적한 환경! 널려있는 몬스터!

검을 빼어 든 언럭키가 휙 몸을 움직였다.

“취이익! 사냥감이 제 발로 달려온다!”

“죽여라! 잡아 찢어, 취익!”

오크들은 달려오는 언럭키를 보며 붉은 눈을 번뜩였다.

오크의 숲 오크들은 선공 몬스터이다.

정면 대결을 숭상하지만 기습의 묘리도 살릴 줄 아는 놈들.

숲 속에서 숨어있다가 급작스레 튀어나와 돌진하는 녀석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월벤에 가보면 오크들을 처음 보고 당황한 초보자들의 글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오크들 왜 이렇게 강해?

-튜토리얼에서 만난 애들과는 전혀 다른데?

모든 유저들은 튜토리얼에서 약화된 오크들을 한 번 겪고 온다.

그렇다. ‘약화된’ 오크이다.

힘과 파괴력이 거세당하고, 무시함만 자랑하는 오크들.

초보자용으로 상대하기 딱 좋다.

그런 놈들을 봤다가 오크의 숲에 들어오면 방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된통 사람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물론.

-촤악!

-푹! 서걱!

언럭키에게는 달콤한 경험치 덩어리들이 고맙게도 달려들어 줄 뿐이었지만.

“하하핫!”

강력한 근육질의 육체?

스펙만 따지면 언럭키는 오히려 그들을 압도한다.

레벨대는 비슷한데 능력치는 훨씬 높으니까 말이다.

단순 근력 수치만 봐도 그렇다.

-콰직!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치명적인 일격이…]

거의 모든 공격에서 치명타 판정이 떴다.

오크들은 공격력에 비해서 방어력이 약한 몬스터이다.

근육이 단단하긴 하지만 그걸 믿고 아무런 방어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꾸워어 아프다!”

“고통스럽다! 너도 이 고통을 맛보아라 인간!”

오크들은 상처를 입을수록 눈을 부릅떴다.

성향이 워낙 무식한 놈들이었다.

오크들은 언럭키의 칼날에 휘청거리면서도 반격을 멈추지 않았다.

“우어어어!”

내 고통을 두배로 돌려주리라!

놈들의 마인드셋이었다.

그건 일반 유저들 입장에서는 공포스럽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현실에서 덩치 큰 근육질의 광전사가 같이 죽자는 듯 달려들면 어떻겠는가.

이기고 있더라도 심리적으로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부웅

날아오는 도끼를 언럭키가 고개만 슬쩍 돌려 피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가는 도끼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검왕의 직업 보정으로 슬로우모션처럼 보이는데, 겁을 왜 먹겠는가.

그 후, 훤히 드러난 빈틈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서걱!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취이익….”

훤히 드러난 목을 베고 지나가자 강력한 오크도 도저히 버티지 못했다.

언럭키는 죽은 놈을 쓰러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한 팔로 잠시 받치고 있었다.

죽은 몬스터는 시간이 흐르면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만 잠깐의 텀이 존재한다.

그 위로 다른 오크들의 도끼날이 날아들었다.

-콰직!

-쾅!

오크들은 죽은 동료를 공격했다는 것에 당황했다.

“취익!”

“감히 우리 동료를!”

언럭키가 그 틈에 죽은 놈을 치워내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게 잘 보고 도끼질을 했어야지!”

그 틈에 언럭키의 검이 춤을 췄다.

여럿에게 둘러싸였지만 언럭키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광전사인 오크들보다 오히려 더 공격적이었고, 기술적으로는 몇 단계나 앞선 상황.

그 결과, 그리 오래지 않아 달려들었던 오크들을 모두 처치했다.

“후우.”

언럭키가 잠시 가만히 서서 숨을 골랐다.

보통 여럿이서 파티를 맺고 들어와도 힘든 곳이 오크의 숲이다.

특히나 초행자가 껴 있으면 오크들의 광기에 당황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럭키는 거의 아무런 피해 없이, 파티가 할 일을 혼자서 해낸 것이다!

그는 방금 전 전투 장면을 복기했다.

‘나. 생각보다 이런 곳에서의 싸움이랑 잘 맞는 것 같은데.’

숲 속 전투는 그의 전투 스타일과 잘 맞았다.

은엄폐는 오크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나무 사이로 돌아다니며 소수 인력으로서의 강점을 뽐낼 수 있었고, 기습의 묘리를 살릴 수 있었다.

‘오히려 나처럼 혼자서 사냥할 거면 암살자 종류의 계열이 더 잘 맞을 수도 있겠어.’

검왕 직업으로도 이런데 암살자 종류라면 어떻게 될까?

장담하는데 숲 전체를 자기 집처럼 삼아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직업은 아예 암살자로 골라볼까?’

한 달에 한 번씩 직업을 바꿀 수 있는 올마스터.

검사, 마법사, 암살자, 궁수, 사제 계열 중에서 처음에는 검사를 골랐다.

검왕 직업에는 만족했지만 다른 것도 써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직업 선택의 순간이 돌아오기까지 2주도 남지 않았다.

검왕을 한 번 더 하는 것도, 아니면 다른 걸 골라보는 것도 모두 다 좋을 터.

언럭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다.

일단 사냥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움직이려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컵라면님을 데려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

방금 전 사냥 장면은 자신이 생각해도 꽤 잘 뽑혔다.

카메라맨이 뒤에서 찍어줬으면 괜찮은 영상이 건졌을 것 같은데.

혼자였기에 1인칭 액션캠처럼 영상을 녹화하긴 했지만, 퀄리티가 어떨지는 확인해봐야 안다.

‘게다가 컵라면님은 암살자니까 여기서 사냥도 같이해도 나쁘지 않고.’

물론 아쉽긴 하지만 정말로 데려올 수는 없다.

사냥터를 이런 식으로 얻을 줄 몰랐던데다가, 그는 단순히 레벨업을 위해 온게 아니었다.

켈리그의 흔적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서 하려는건데, 영상에 찍을 수는 없었다.

문득 언럭키가 시선을 오른쪽 하단으로 내렸다.

확인하지 않았던 메시지들이 쌓여있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적을…]

그가 활짝 웃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역시 오크의 숲.

머드칵들과는 경험치양 면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취익! 취익!

-크르르!

숲 안쪽에서 더 많은 오크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이런 전투를 한 번 겪으면 아무래도 겁먹기 마련이지만 언럭키는 반대였다.

“경험치! 내 경험치들!”

성장에 목마른 그에게는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들렸다.

길바닥에 경험치가 떨어져 있다?

이건 못참지!

켈리그고 뭐고간에, 일단 저 놈들부터 먼저 다 잡아야겠다.

***

“그래. 바로 이거지!”

같은 시각.

컵라면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 이한영은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전문 편집자라서 그런가. 실력이 확실히 남다르네.”

언럭키로부터 전달받은 1차 편집본 영상.

그걸 확인했다. 퀄리티 하나는 확실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보다 몇 단계는 더 뛰어난 실력자였다.

편집점이나 구도, 이펙트를 넣어 주는 타이밍이 훨씬 고급스러웠다.

“이게 1차 편집본이면…완성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디테일 면에서 고급스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 영상의 성패를 결정한다.

편집자로서, 그리고 선배 스트리머로서 보자면, 이건 90% 이상 성공이 예정되어있다.

‘그다음 영상들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고.’

지하 수로 던전은 한두 번 더 영상으로 만들만 했다.

보스몹 사냥 장면은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봐도 말도 안 됐으니까 말이다.

언럭키의 앞에는 꽃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컵라면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문제는 나인데….’

언럭키와 자신의 격차는 벌써 벌어졌다.

앞으로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채널까지 그가 직접 운영하게 된다면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없어지는데.

그때 가서 다시 혼자서 스트리밍을 할 생각을 하니 영 흥미가 안 난다.

언럭키의 센세이셔널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종합 게임 방송으로 돌아가면 하나도 재미없을 것 같다.

고민해봤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일단 나도 레벨을 올려야지.’

지금은 카메라맨으로라도 따라다닐 수 있다.

허나 레벨 차이가 더 나면 이것마저도 못할 터.

언럭키가 이제 지하 수로 던전은 뽕을 다 뽑았다고 마음껏 이용하라고 했다.

솔로 플레이.

빡세긴 하지만 그 역시 레어 직업이 있었으니 조심스럽게 도전하면 해 볼 만 할 것이다.

언럭키를 지켜보며 놈들의 패턴도 익힐 대로 익혀놨으니 말이다.

-치익!

이한영이 캡슐에 누우며 굳은 얼굴로 다짐했다.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따라다녀 볼 생각이었다.

***

언럭키는 신나서 오크의 숲 내부를 돌아다녔다.

숲은 크게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9시간 동안 통째로 대여했다.

물론 그가 구매한 건 아니고 (주)머니앤캐시에서 대여한 거지만.

어쨌거나 쫙쫙 올라가는 경험치바를 보며 오크들을 사냥하고 다니길 몇 시간.

‘어?’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졌다.

숲 저편 깊숙한 곳에서 초록색 빛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네 번째. 초록색 빛이다.

원래라면 눈이 뒤집혀서 헐레벌떡 달려갔을 것이다.

허나 언럭키는 수상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빛을 바라봤다.

‘이거…색깔이 왜 이래?’

분명 초록색 빛인데 묘하게 거무튀튀하다.

원래는 청량한 밝은 빛을 뿜어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 빛이었다.

어쨌거나 언럭키는 찝찝한 마음을 내리누른 채 이동했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 발동했으니 확인해보는 게 당연하지 않나.

“취익!”

“인간? 이런 깊숙한 숲까지 들어오다니. 얌전히 먹잇감이 되어라!”

가면서 몇 번이고 오크들을 마주쳤지만 언럭키는 빠르게 놈들을 처리했다.

“방해하지 말고 저리 비켜 이 자식들아.”

쭉쭉 올라가는 경험치에도 그리 기쁘지 않았다.

저 이상한 빛을 빨리 확인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간 결과, 흙과 수풀더미로 교묘하게 가려진 곳에 도착했다.

빛이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못 보고 지나칠 정도로 특이점이 없었다.

언럭키가 발로 수풀을 헤치고 흙을 걷어냈다.

그러자 그 밑에 누워있던 사람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NPC : 켈리그]

퀘스트에서 찾아오라던 켈리그 도련님이었다.

허나 언럭키의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의 상태 때문이었다.

-현재 상태 : 사망.

“아….”

언럭키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름값 한 번 제대로 하네.”

언럭키.

역시 자신은 운이 더럽게 없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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