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화
악에 물든 지하.
오크의 숲 안에 있는 던전이다.
“빌어먹을. 무슨 사냥터 하나 이용하는데 이렇게 비싸.”
언럭키가 투덜거리면서 오크의 숲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이 숲에서 사냥을 하려면 한참 줄을 서서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잔뜩 써서 기다려도 한 파티당 할당된 시간은 고작 1시간.
때문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시간을 사서 숲 안에 들어오는 게 보통이었다.
언럭키 역시 그렇게 했다.
그가 이번에 빌린 시간은 7시간이었다.
원래는 4명이서 내야 할 돈을 혼자서 지불했으니 지출이 무시 못 할 정도로 컸다.
던전을 판 돈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시간은 금이니까 어서 가죠.”
언럭키가 뒤를 보며 말했다.
“예. 부지런히 쫓아가겠습니다, 하하.”
컵라면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나저나 참 대단하시군요. 어떻게 던전을 또 하나 더 발견하셨습니까?”
“운이 좋았죠.”
“역시 닉네임을 잘못 지은 것 같은데….”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컵라면의 말은 무시했다.
언럭키는 이번 악에 물든 지하 던전에 컵라면을 함께 데려갈 생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제가 잘 따라다니면서 찍어 보겠습니다.”
뒤에서 언럭키를 찍어 줄 카메라맨이 필요했으니까.
‘또 언제 돈 쓸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부지런히 영상 찍어둬야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미튜브가 잘 되는 지금, 열심히 영상을 찍을 생각이었다.
눈대중으로 보아하니 이번 퀘스트는 악에 물든 지하 던전을 공략하는 것.
그 정도면 퀘스트의 비밀이 탄로 나지 않으면서 영상까지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그래서 컵라면을 데려온 것이다.
문제가 되면 최종 편집본은 자신이 검수한다고 말한 뒤 삭제하면 그만이고.
‘생각해 보면 컵라면님만한 카메라맨이 없지.’
문득 든 생각이었다.
레어급 암살자 직업이니 잘 은신하면서 따라오면 그를 지키며 싸울 필요도 없다.
참 좋은 사람을 카메라맨으로 구했다.
‘아예 내 전속으로 데리고 다니고 싶을 정도야.’
혼자 카메라를 찍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1인칭 시점이다.
그런 액션캠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편집을 잘한다고 해도 스트리머의 모든 걸 보여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괜히 공중파 방송국에 카메라맨이라는 직업이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찍을 줄 아는 사람과 좋은 편집자가 합쳐지면 그 시너지는 무시 못 한다.
허나 본업이 스트리머인 그에게 자신의 카메라맨을 해달라고 제안하는 건 조심스럽다.
그가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으니.
‘나중에 각을 보고 한 번 말해 봐야지.’
언럭키는 빠르게 오크의 숲을 돌파했다.
원래라면 숲 안에 널려있는 오크들 뚝배기를 열심히 깨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무시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시간이 남는다면 나올 때 오크들을 잡아도 괜찮으리라.
***
‘미쳤네. 진짜로 던전을 또 발견했잖아?’
컵라면은 언럭키를 따라 ‘악에 물든 지하’에 들어가며 감탄했다.
그가 자신을 부르면서 이야기를 하긴 했다.
던전을 발견했고 사냥을 할 건데, 카메라맨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믿지 못했다.
언럭키가 허언을 할 사람이 아니기는 한데, 무슨 같은 도시에서 던전을 2개나 발견한단 말인가.
월드 사가 초창기에는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났다고 하지만, 지금은 오픈한 지 1년 6개월도 더 된 게임이다.
‘역시 행운이 장난 아니시네.’
편집자를 구한 것도, 미튜브가 순항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게임 속에서도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다니.
“후우.”
악에 물든 지하는 토굴 형태의 좁은 던전이다.
걸어갈 때마다 주변만 횃불이 자동으로 밝혀지는데, 언럭키가 저 멀리 어둠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는 결국 이 끝을 다 보지 못했다.
시간이 촉박했고, 능력의 한계도 약간은 봤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강력한 자본으로 무장한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크르르….”
눈 전체가 검정색으로 물들어 있는 오크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놈은 언럭키를 보며 눈을 빛냈다.
“헛….”
컵라면이 헛숨을 들이켰다.
놈의 머리 위에 띄어 있는 레벨을 봐서이다.
[악에 물든 오크.]
-레벨 : 25.
무려 25레벨짜리 오크.
컵라면의 레벨은 18이다.
언럭키가 퀘스트를 하느라 바쁠 때, 그 역시 부지런히 줄 서서 사냥터를 이용했다.
조금이라도 언럭키의 뒤를 따라다니려면 레벨이 뒤쳐지면 안되었으니까.
지하 수로 던전을 팔기 직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언럭키에게 제공받기도 했고, 본인이 밤잠까지 줄여가며 노력한 끝에 오크의 숲에 들어올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25짜리 오크는….’
월드 사가에서 레벨 차이는 체감이 굉장히 크다.
특히나 이런 저레벨에서는 더더욱.
언럭키의 레벨은 잘 모르지만, 오크의 숲에 들어올 정도면 자신보다 많이 높지는 않을 텐데.
과연 저 놈을 상대할 수 있을까?
덩치도 일반 오크에 비해 더 크고 흉악하건만…
“걱정 마세요.”
언럭키 역시 컵라면의 그런 걱정을 눈치챘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땅을 박차고 뛰어가자 오크도 몽둥이를 치켜들더니 마주 다가왔다.
“크아아아!”
-콰직!
둘의 신형이 스쳐 지나갔다.
절묘하게 오크의 공격을 피하고 검을 꽃아 넣은 언럭키.
놈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다시 한 번 검을 내리쳤다.
“크악-!”
오크도 비명은 비슷하다.
언럭키는 그대로 몇 번의 검격을 더 때려넣었다.
저 악에 물든 오크들은 쉽게 죽어주지 않는다.
일단 레벨대가 25부터 시작하고, 설정 때문인지 체력과 방어력이 높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언럭키의 레벨은 이제 20.
이것도 지난번에 오크의 숲에 들어왔을 때 쉴 새 없이 노력해서 올린 결과였다.
-쿵!
이기긴 했으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언럭키가 쓰러진 놈을 내려다봤다.
‘지난번엔 이래서 한계를 맞았지.’
한 마리씩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허나 던전 깊은 곳까지 나아가면 좁은 곳에서 여러 마리에게 둘러싸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아직 레벨이 부족한 언럭키로서는 힘들어졌다.
물론,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와…깔끔하네요.”
뒤에서 전투 장면을 지켜본 컵라면은 박수를 쳤다.
몇 번을 보고 편집까지 했었던 검술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언럭키의 검은 아름답다. 화려한 이펙트는 없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아까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이대로 계속 가겠습니다.”
언럭키는 가볍게 대답한 뒤 앞으로 이동했다.
“크아아!”
금세 어둠 속에서 또 한 마리의 오크가 등장했다.
컴컴한 곳에서 덩치 큰 근육질의 괴물을 마주치는 건 공포스럽다.
컵라면은 그 점에 신경써서 카메라 초점을 잘 잡았다.
‘이 던전. 분위기 한 번 제대로네.’
어두운 토굴이라는 배경은 난이도를 떠나서, 던전 자체를 위험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잘만 하면 영상미가 상당할 것 같다.
그리고 언럭키의 화려한 검격이 이어지면…
-푹!
-콰직!
“?”
집중하던 컵라면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어?”
방금 내가 뭘 본거지?
25렙짜리 오크가 단 두방에 쓰러졌어?
***
‘효과가 괜찮네.’
언럭키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시야 한쪽으로 조금 전에 지나간 메시지들이 떠 있었다.
[일곱 번째 타격 성공!]
[대가의 검술 효과로 203%의 추가 데미지가 발생합니다.]
[치명적인 일격!]
7번의 스택이 쌓일 때마다 기본 공격력의 203%의 추가 데미지를 넣는 스킬, 대가의 검술.
급소 부위에 적중시키면 치명타라서 또 추가 데미지가 들어간다.
사실 대가의 검술은 활용하기 굉장히 어려운 스킬 중 하나이다.
꾸준히 맞추면 쿨타임 없이 계속 데미지를 넣겠지만, 아니라면 한 번도 제대로 쓰기 어렵다.
전형적인 실력파 스킬.
‘그리고 나는 전형적인 실력빨 유저이지.’
누구는 뭐만 하면 좋은 아이템과 스킬을 턱턱 얻어서 운빨x망겜이라고도 불리는 게 월드 사가인데.
자신은 전형적인 실력파이다.
언럭키는 방금 전 자신의 전투 장면을 복기했다.
‘검을 더 빨리 휘둘러야겠어.’
지난번에는 최소한의 방어력을 확보하기 위해 검방을 활용했다.
이번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
차라리 검을 더 빨리 휘둘러서 스택을 빠르게 쌓는 게 이득이다.
“바, 방금 그게 뭔가요?”
컵라면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너, 너무 빨리 잡은 거 아니에요?”
분명 조금 전에 만났던 오크도 쉽게 잡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였다.
척 봐도 까다로운 상대인데 두 방만에 쓰러트리다니?
언럭키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씩 한 번 웃어준 다음 계속 전진했다.
컵라면의 의문은 한동안 풀리지 않았다.
한동안 오크들은 한 마리씩 등장했다.
언럭키는 질풍처럼 놈들을 처치하면서 돌진했다.
치명타를 전부 꽂아넣는다는 가정 하에, 오크 한 마리를 잡는데 5번의 칼질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 번의 사냥이 끝나고 두 번째는 단 두방만에 끝내는 전략.
그 결과 거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쫓아가는 컵라면은 영상을 찍으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같은 사람 맞냐 저거….”
이 목소리도 녹음이 되겠지만 상관 없다.
자신의 이 허탈한 마음을 시청자들도 알아야지.
한동안 멈추지않던 언럭키가 드디어 멈춰섰다.
좁은 토굴 중간에 나타난 살짝 넓은 공동.
“크르르….”
“캬아!”
거기에 3마리의 오크들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둘러쌓인다면 다수를 상대하는 입장에서 곤란하다.
빠른 발놀림을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럭키의 선택은 정면 돌파였다.
-쾅!
-콰지직!
번개처럼 휘둘러진 검이 오크들을 베고 지나갔다.
최대한 몸을 움직여 놈들의 몸둥이와 주먹 세례를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몇 방은 맞았다.
그나마 팔이나 어깨로 흘리면서 스치듯 맞은 게 다행이랄까.
HP가 뚝뚝 떨어진다.
역시 위험한 놈들이다. 레벨 차이는 무시할 게 못되고, 잘못 맞으면 검왕이고 나발이고 죽는다.
체력바가 줄어들고 시야가 붉게 물드는 상황에서도 언럭키는 침착했다.
중요한건 몇 대 맞으면서도 공격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막히면 끝장이다.
-서걱! 서걱!
대신 그렇게 스택을 쌓으면…
-쾅!
[일곱 번째 타격 성공!]
[대가의 검술 효과로 203%의 추가 데미지가 발생합니다.]
[치명적인 일격!]
오크 한 마리가 쓰러졌다.
이제 2대1.
한 마리가 빠지니 상황이 급격하게 언럭키에게로 기울었다.
두 마리에게 사이좋게 칼침을 3방씩 꽃아넣어 줬다.
또다시 충전된 스택.
-쾅!
한 마리가 픽 하고 쓰러졌다.
바로 이어서 옆에 놈까지 베고 지나가자 그 놈 역시 HP가 간당간당했는지 동시라고 할 정도로 바로 누웠다.
“후우.”
오크 3마리를 눕힌 채 가볍게 숨을 고르는 언럭키.
‘이거. 쿨타임이 짧은 것 외에도, 스킬에 특수한 모션이 없는 게 장점이네.’
공격력이 증폭되는 것이다 보니 연계하기가 굉장히 좋다.
지난번에는 이 3마리 오크를 잡느라 시간을 상당히 많이 끌었다.
검방을 쓰느라 어쩔 수 없었는데.
결과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레벨업!]
심지어 레벨까지 하나 올라서, 언럭키의 입가에 띈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대, 대단합니다!”
그리고 컵라면이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찍고 있었다.
“다시 출발하죠.”
언럭키가 걸음을 옮겼다.
보스룸이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계속 직진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