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화
남색.
빨주노초파남보 중, 끝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등급.
파랑색이 확정적인 유니크 아이템이고, 남색은 유니크 상위권이나 레전더리 등급으로 예상하고 있다.
호르헤른이 건넨 상자는 계속해서 남색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선대 때부터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가보 중의 하나일세.”
귀족 가문의 가보!
과연 레전더리 아이템이라고 해야 할까.
언럭키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손을 뻗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는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니. 심지어 선불이다.
적응 안 되는 상황에 손가락이 떨리지만, 애써 진정하고는 상자를 열었다.
-파앗!
언럭키에게만 보이는 남색 빛이 한 번 더 진하게 터져 나왔다.
빛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아이템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단검?’
날 길이가 대략 30cm 가량 되는 묵색 단검.
빤히 쳐다보고 있자 아이템 정보가 나타났다.
[사신극검]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91 상승.
-착용자의 힘 능력치 + 5, 체력 능력치 + 5, 마력 능력치 + 10 상승.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을 시 데미지 + 50% 상승.
-특수 스킬 ‘비검’ 사용 가능.
-호르헤른 가문의 선조가 그 당시 최고의 암살자로 군림하던 ‘사신’을 죽이고 획득한 단검이다. 노획 도중에 검이 부러졌었고 후에 복원되었다. 허나 대장장이 실력의 한계로 그 성능이 많이 하향되었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30 이상.
언럭키의 눈이 찢어질 듯 동그래졌다.
“고, 공격력이…!?”
91?
급하게 지금 차고 있는 명예의 시작 롱소드를 확인했다.
시작의 도시에서 최고 수준의 업적을 성공시킨 대가로 받은 유니크 아이템.
이 검의 공격력이 28이다.
레벨 제한이 10짜리이긴 하지만, 공격력 차이가 3배도 넘다니.
거기에 치명타 데미지도 높여주고 특수 스킬까지 붙어 있었다.
압권은 아이템 설명이었다.
한번 부러졌다가 고쳤는데, 대장장이 실력 부족으로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게 떨어진 성능이라고?’
떨어지기 전에도 레전더리인데. 그러면 안 떨어졌을 때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다는 거야?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이 아이템이 ‘단검’ 이라는 것.
현재 직업인 검왕은 검이나 도 같은 장병류만 쓸 수 있다.
아무리 레전더리 단검이라고 해도 직업 효과를 받지 못하면 안 쓰니만 못하다.
그만큼 현재 직업은 좋았다.
‘그러면…슬슬 직업을 한 번 바꿔봐야 할 때인가.’
5개의 직업을 한 달마다 바꿀 수 있는 레전더리 직업, ‘올마스터’.
검왕에 만족했기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직업을 바꿀 일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직업 체인지를 고려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언럭키가 고민하고 있을 때 호르헤른이 말을 걸었다.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아, 네. 제 인생에 이런 귀한 물건은 처음 봅니다.”
100%의 진심이었다.
미튜브나 월벤에선 스크린샷 같은 걸로 본 적은 있을지언정, 아이템 실물로 이런걸 보는 건 처음이다.
“우리 가문에서 소중하게 보관하던 것이지. 잘 써주면 고맙겠군.”
“물론입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임무에 실패하면 다시 반납해야 하네.”
“…….”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이미 손에 들어온 레전더리 아이템을 다시 뱉어야 한다고?
그 날은 억울하고 분해서 잠도 못 잘 것이다.
그럴 일이 없도록, 이번 퀘스트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
호르헤른에게서 퀘스트를 받은 뒤, 언럭키는 컵라면을 만났다.
“휴. 이제 어느 정도 일처리가 끝났습니다.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이 본격적으로 오픈됐거든요.”
컵라면이 짐짓 과장되게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언럭키가 지난 열흘간 레벨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던 동안, 그는 다른 일에 매달렸다.
바로 영상 옮기기.
이제 조금이나마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한 언럭키이다.
성 팀장과 거래도 원만히 진행되고 있었으니, 굳이 컵라면의 채널에서 계속 영상을 올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언럭키의 채널을 새로 파고, 기존의 영상을 내린 다음 재업로드 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이용승이 이전 영상들까지 새롭게 다시 편집을 했다.
기존에 편집했던 컵라면까지 함께 붙어 편집하니 오히려 영상의 멋이 훨씬 살아났다.
“이제 제가 딱히 필요 없겠군요 하하.”
컵라면이 언럭키의 눈치를 슬쩍 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웃음을 섞어 말하긴 했지만 진짜로 현실이 그러했다.
더 이상 그가 언럭키에게 도움이 될 부분은 없었다.
허나 언럭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이제 저는 채널을 빌려드리지도 않고 편집을 하지도 않는데…”
“그럼 제 영상은 누가 찍어 줍니까?”
1인칭 액션캠으로 찍을 수 있기는 하다.
그건 또 그것만의 매력을 보여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구도를 담으려면 카메라맨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컵라면님은 꽤나 감각이 있지.’
편집도 할 줄 알아서 그런 건가.
매번 바뀌는 상황에서 그는 최적의 영상을 뽑을 줄 알았다.
게다가 직업은 은신 능력이 있는 암살자.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기에는 최적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절 도와주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예 제 전문 영상 총괄 PD로 고용하고 싶은 심정이네요.”
“저를 고용하고 싶으시다고요?”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컵라면이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제가 바라던 겁니다.”
원래 스트리머였던 컵라면이다.
하지만 언럭키를 따라다니며 그의 플레이에 감화되었다.
그냥저냥 사냥하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자신의 방송에 질린 것이다.
그것 보다는 그가 얼마나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 줄지.
그걸 그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보고 찍을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월급이 문제이긴 한데, 적어도 상관없다.
돈이야 뭐. 정 급해지면 간간이 자신의 방송을 키면 그만이다.
팬들이 다 떨어져나가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지. 나중에 언럭키님이 지금보다 훨씬 유명해지면, 오프 더 레코드 썰 푸는 방송만 해도 대박나지 않을까?’
언럭키와 컵라면이 악수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본격적으로 나눠보고,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 역시!”
***
도시 네르센.
빌리프펜 다음의 도시들 중 하나이며, 레벨 31~50 사이의 유저들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했다.
-우웅!
언럭키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넘어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
한 도시에서 레벨을 다 올리고 퀘스트까지 마무리 하면 보통 다음 도시로 넘어갈 수 있다.
육로로 이동하는 길도 있지만, 굳이 시간을 오래 써가며 그렇게 올 필요는 없었다.
어떤 도시는 게이트가 없어서 무조건 육로로 가야 한다고도 하건만.
-먼저 가 계십시오. 금방…은 못 따라가겠지만 저도 최대한 빨리 쫓아가겠습니다.
컵라면과는 빌리프펜에서 헤어졌다.
아마 언럭키처럼 빠르게 레벨업을 하지는 못 할 것이다.
실력의 차이도 있고, 언럭키는 돈을 퍼부어가며 사냥터를 전전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새로운 도시에서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니 딱히 카메라맨이 필요 없지.’
미튜브에 영상을 잘못 공개했다가는 자신이 하고 있는 퀘스트가 알려질 위험이 있었다.
세상에는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레전더리 아이템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라면,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손 뻗는 미치광이들도 많을 터.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비밀을 지키는 게 좋았다.
“네르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병사 NPC가 기계적인 환대를 해줬다.
‘일단 호르헤른님이 말해주신 사람부터 찾아야겠군.’
그는 미리 네르센에 사람을 보내 정보를 조사했다고 한다.
정보원과 접선해서 악의 조직을 찾아야 한다.
정보원이 머무르는 곳은 고급스러운 주택가였다.
당연히 일반 유저들은 못 들어가지만, 언럭키는 조금 달랐다.
“명예로운 분께 인사 올립니다.”
“근무 중 이상 무!”
상관도 아닌데 도시 경비병들이 경례를 해왔다.
지금껏 높여놓은 명예 수치와 호르헤른의 반지 덕분이었다.
“…뭐야 저 사람. 경비병들이 먼저 인사를 하네?”
“나한테는 도시에서 사고쳤다간 감옥에 갇힐 거라며 노려보던데.”
유저들이 그런 언럭키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언럭키는 호르헤른이 말해준 정보원과의 접선 장소로 향했다.
‘여기인가.’
언럭키는 눈 앞의 집을 보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호르헤른님께는 충성을 다해야겠다.’
고급스러운 3층짜리 주택.
마당에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정원수와 조각상들이 꾸며져 있었다.
어떻게 여기를 보고 고작 정보원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본가도 아니고 지부 느낌인데 이런 저택을 가지고 있다니.
이것만 봐도 호르헤른 가문의 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언럭키가 문을 두드렸다.
***
정보원은 베키라는 여자였다.
20대 중반 정도 되는 나이에 은발을 허리까지 길렀는데, 전혀 정보원 같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외모까지. 이 저택을 다스리는 귀족가의 영애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물론, 그런 점이 그녀가 정보원으로 발탁된 이유일 수도 있었다.
누가 그녀를 보고 정보원이라고 생각할까.
“어서 오세요. 어르신께 말씀 많이 들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키는 언럭키를 안으로 안내했다.
깔끔하게 꾸며져 있는 탁자에 앉은 그의 앞에 차를 내렸다.
예법을 잘 배웠는지 동작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깊은 향이 일품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것까지 완벽하게 구현을 했는지. 월드 사가의 기술력에는 매번 감탄이 나온다.
“바로 일 얘기로 들어가죠.”
언럭키가 정신을 다잡고는 말했다.
이번 퀘스트는 중요하다. 실패하면 레전더리 아이템을 다시 뱉어야 하니, 놀 시간 따위는 없었다.
베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우선 제가 현재까지 조사한 정보부터 말씀 드릴게요.”
베키가 설명을 시작했다.
켈리그 도련님을 죽인 흑마법사. 그리고 놈과 끈이 이어지던 악의 조직.
그 흔적은 도시 네르센으로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네르센 동쪽에 있는 어느 폐광산이었다.
“폐광산 내부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둠 속 괴물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수상하다는 걸 눈치 챘음에도, 제대로 된 조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한 번 그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언럭키가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안에 있는 괴물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지금 자신의 스펙이라면 꿇릴 게 전혀 없다.
어둠 속 몬스터건 악의 조직원이건 뭐건 간에 단칼에 썰어버리겠다!
“아뇨. 힘으로 놈들을 압박했다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곤란합니다. 어디까지나 몰래 잠입해서 놈들의 정체와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그렇군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베키를 보며 언럭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잠입을 위한 은신 능력을 보유하고 계시는지요?”
-띠링
[은신 능력 유무에 따라 퀘스트 진행 내용이 달라집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언럭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얼마 전부터 하고 있던 고민과도 연관된 메시지.
생각은 길지 않았다.
“예. 보유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며칠 전부터 시야 한편에 떠 있던 메시지를 가져왔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올마스터로서 새롭게 직업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기존 직업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새로운 직업을 획득한다면 ‘검왕’ 직업의 성장세는 현 상태에서 저장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
[1. 검사]
[2. 마법사]
[3. 궁수]
[4. 암살자]
[5. 사제]
처음에는 여기서 검사를 골랐고, 그 결과 레전더리 직업 ‘검왕’을 획득했다.
하지만 검왕은 잠시 접어둘 때였다.
레전더리 아이템으로 단검을 얻은 것도, 새로운 퀘스트로 은신 미션을 받은 것도.
모두 다 다른걸 골라보라고 강요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참에 올마스터의 다른 직업들도 하나씩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지.’
언럭키가 손가락을 움직여 직업을 선택했다.
[암살자를 선택하셨습니다.]
[한 달 동안 ‘사신(레전더리)’ 직업이 적용됩니다.]
그 순간.
-파앗!
언럭키의 몸에서부터 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