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만 하루.
언럭키는 폐광산 내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크하하핫! 죽어라! 죽어!”
눈을 휘번덕거리며 몬스터를 썰어대는 그를 보면, 누가 몬스터고 누가 유저인지 참 알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반쯤 미쳐있었다.
그도 그럴 게, 경험치가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열흘간 레벨 30을 찍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사냥터 비용은 잔뜩 썼지, 근데 레벨이 오를수록 경험치는 더럽게 안 오르지, 시간은 흘러가지…
잠자는 시간 빼고 대부분을 무아지경 상태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검왕이란 직업 덕에 죽을만한 위기는 없었지만,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폐광산의 몬스터들은 경험치를 많이 줘서 마음에 들었다.
다른 유저들이 거의 없어서 몬스터들을 독식할 수 있다는 점은 더 마음에 들고.
돈은 안 쓰는데 몬스터는 널려 있으니 이게 천국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번에는 ‘사신’의 능력을 톡톡히 활용하고 있었다.
‘또 한 무리 찾았다.’
저 멀리 투포 4마리가 바닥에서 머리만 내민 채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언럭키가 대차게 걸음을 옮겼다. 은신 중이라 들킬 일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다음 그대로 단검을 찔렀다.
-푹!
가장 바깥에 있던 투포의 심장에 단검이 꽂혔다.
[치명적인 일격!]
[적을 처치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원샷원킬!
은신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가한 일격은 무려 300%의 데미지를 입힌다.
사신극검의 데미지가 3배로 증폭되니, 일반몹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키엑?
-캬아!
허나 이다음부터는 약간 문제였다.
모든 암살자 직업의 특성이기도 한데, 은신 상태에서 기습을 한 번 하면 그다음에는 은신이 풀린다는 점이다.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는 있지만 그다음이 위험해진다.
투포 한 마리가 언럭키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이크!’
언럭키가 뒤로 넘어지듯 물러나며 피했다.
그럼에도 콧등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으며 HP가 조금 닳았다.
검왕 때와는 이게 달랐다.
그때는 4대1의 전투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면에서 보법을 밟으며 검을 휘둘러 빈틈을 마구 쑤셔대도 이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신으로는 그런 슈퍼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단검술 마스터리가 그렇게까지 행동을 보정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곧바로 다시 은신할 수 있는 스킬도 있긴 하지만…’
문제는 하나였다.
모든 암살자들이 누구나 다 원하는 스킬이라서 굉장히 비싸다는 것!
‘아주 빌어먹을 게임이지. 뭐만 하면 돈을 써야 한다니.’
사냥터도 돈, 아이템도 돈, 스킬도 돈…
돈 없는 사람 서러워서 어디 게임 하겠나?
언럭키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암살자의 이런 단점은 원래 알고 있었다.
알고도 이곳에 들어왔다.
비록 상시 은신 스킬은 돈이 없어서 못 구했지만, 그닥 상관 없었다.
-스르륵
어두운 이 폐광산에서는, 조금만 거리가 벌어져도 몸이 어둠 속에 잠겼다.
그러면 재은신이 가능해진다.
-크락?
투포들이 사라진 언럭키를 찾아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언럭키는 다시금 놈들의 뒤편에서 단검을 찔렀다.
-푹!
[치명적인 일격!]
[적을 처치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또 다시 한 마리를 처치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은신만 성공하면 어지간해서는 원킬 낼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최대 장점이었다.
-캬아….
두 마리를 처치하니 전투의 분위기가 변했다.
투포들이 겁에 질린 것이다.
제대로 탐지도 안 되는 적에게 무리의 절반이나 당했으니 그럴만 했다.
놈들이 갈팡질팡하자 이번에는 언럭키가 다가갔다.
은신이 풀렸지만 상관없다.
-푹! 푹!
-촤악!
단검술 마스터리는 그래도 근접 전투에서 어느 정도 보정을 준다.
급소를 핀 포인트로 맞추는 건 3번에 1번 꼴이긴 하지만, 그래도 치명타가 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금세 한 마리를 처치하고 마지막 남은 투포를 쳐다봤다.
놈은 자신을 제외한 동료들이 모두 죽자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꽤 훌륭한 AI 였다.
투포들은 땅굴을 파서 이동하는데, 구멍 속으로 도망치면 인간이 쫓아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놈은 자신이 파놓았던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그때, 언럭키가 들고 있던 단검을 집어던졌다.
-쐐액!
[특수 스킬 ‘비검’이 발동합니다.]
사신극검에 내장되어있는 스킬, 비검.
하늘을 가로지르는 단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춤췄다.
좁은 땅굴이었지만 단검이 움직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이었다.
빠르게 날아가는 단검은 도망치는 투포를 따라잡더니, 기어이 놈의 뒷목에 틀어박혔다.
-푸욱!
“키엑…!”
[치명적인 일격!]
[적을 처치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땅굴을 내려다보던 언럭키가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메시지를 보고는 히죽 웃었다.
손을 내미니 땅굴에서 날아온 단검이 착 하고 날아와 붙잡혔다.
‘크. 이거지.’
이게 레전더리 직업이고, 레전더리 아이템의 위력이다.
이러니 사냥이 재미가 없겠는가?
남들은 두려워하는 어둠 속의 폐광산?
언럭키에게는 꽃동산보다 더 아름다워보였다.
그의 눈이 다시금 휘번덕거렸다.
“흐흐. 투포야, 투포야. 이쁜 투포야. 어서 나와서 내 단검 맛을 좀 보렴?”
반쯤 미친 것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그가 다시 광산 내부로 전진해 들어갔다.
***
[72시간 이내로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퀘스트는 실패합니다.]
[남은 시간 : 40시간 32분 05초.]
언럭키가 흘끗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이번 퀘스트에는 72시간의 시간 제한이 있었다.
그중에서 벌써 32시간 가까이가 지나갔다.
폐광산 속에서의 사냥이 너무 재밌어서 쉴 새 없이 사냥에 빠져있던 결과였다.
“이제 슬슬 사냥이 아니라 수색을 해야겠는데.”
사실 이것도 너무 늦었다.
누굴 탓하랴.
이게 다 몬스터만 보이면 눈 돌아가서 처리하다 보니 퀘스트고 뭐고 깜빡해버린 내 탓이지.
언럭키가 한숨을 쉬며 움직였다.
또 어둠 속 저편에서 투포들이 보였다.
경험치가 제발 날 좀 먹어줘! 하고 있는데 잡지를 못 하다니!
하지만 이제는 진짜 수색에 집중할 때였다.
언럭키는 괜히 쩝 하고 입맛만 다시고는 놈들을 스쳐 지나갔다.
은신한 채였기에 바로 옆을 지나가도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 폐광산에 자리잡고 있다는 놈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사냥에 빠져있었다고는 해도, 수상한 흔적이 있었으면 눈치 못 챘을 리가 없다.
허나 발견한 건 몬스터뿐.
그 외에는 전무했다.
언럭키는 사냥을 아예 멈추고 수색에 전념했다.
광산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고 무언가 이상이 있나 관찰하며 전진했다.
1시간, 2시간, 5시간…
왔던 곳도 다시 한번 되짚고 다녔지만 발견된 건 없었다.
몬스터들만 더욱 탐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큰일인데?’
언럭키가 걸음을 멈췄다.
[72시간 이내로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퀘스트는 실패합니다.]
[남은 시간 : 35시간 1분 45초.]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이제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조금 넘게 남은 건데.
그 시간 동안 놈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사냥이 아니라 처음부터 퀘스트 할 걸 그랬나?”
비록 그 덕에 레벨은 2개나 올렸지만, 후회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법.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몇 시간이 흘렀다.
언럭키는 아예 걸음을 멈췄다.
“…X됐다.”
이러다 진짜 시간제한 때문에 실패하겠는데?
시선이 절로 손에 들고 있던 사신극검으로 향했다.
공격력은 말할 것도 없고 특수 스킬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최고의 물건.
그런데 퀘스트를 실패한다면 이걸 도로 다시 반납해야 한다.
“내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아니, 들어가고 나서도 그 꼴은 못 보지!”
갑자기 짜증이 확 났다.
바닥에 널부려져 있던 돌멩이를 찼다.
튕겨 나간 돌멩이는 저쪽 벽에 부딪쳤는데, 후두둑 하고 흙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응…?”
언럭키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살짝 무너져내린 흙 안쪽에서부터 은은한 남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서, 설마?”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단검으로 긁어대자 부스러기가 떨어졌는데, 그러면서 흘러나오는 빛이 더 강해졌다.
-퍽! 퍽!
흙을 파내는 언럭키의 손길이 더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흙이 떨어져 나가며 자그마한 미닫이 문이 드러났다.
어찌나 교묘하게 설치해놨는지, 절대 발견하지 못할만한 문이었다.
문을 살짝 열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찾았다!”
언럭키가 히죽 웃더니 조심스레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
“부제님! 발굴했습니다! 찾으시던 ‘마지막 물건’이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뭣이!?”
부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에 희열이 차올랐다.
“드디어!”
고서를 탐독하다가 이 폐광산 밑에 우연찮게 ‘그분’의 장비가 묻혀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떨거지 몇 명을 데리고 발굴 작업에 들어갔었는데.
“크하하핫. 오늘로써 그 결실을 맺게 되는구나.”
부제는 최대한 빠르게 발굴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쩍 마른 사람들이 가느다란 솔로 땅에서 꺼낸 무언가의 흙을 제거하고 있었다.
부제가 지켜보는 동안 점점 흙은 사라졌다.
곧이어 지저분하긴 해도 그 형체가 드러났다.
“확실합니다. 틀림없는 건틀렛입니다 부제님.”
“그렇구나.”
부하의 말에 부제가 활짝 웃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목각 인형 위에 매달려있는 갑옷 한 벌이 있었다.
다른 파츠는 다 찾았고 남은 건 건틀렛 부위뿐이었는데, 드디어 그걸 발견한 것이다.
“됐다. 드디어 성공했다.”
전설상에 나오는 갑옷.
‘그분’께서는 이 갑옷을 입고 엄청난 권능을 휘둘렀다고 전해진다.
부제가 흥분감에 떨리는 손으로 건틀렛을 받아들더니, 갑옷 모형에 갖다 댔다.
이것만 맞추면 완벽한 갑옷 한 세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흥분감에 절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한편, 그쪽으로 시선이 고정된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저걸 어쩌지?’
언럭키였다.
우연찮게 발견한 비밀 통로의 계단을 내려온 그는, 이 커다란 공동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환호성이 나올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이제 돌아가서 이걸 보고만 하면 퀘스트 완료였으니까 말이다.
퀘스트는 놈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었지 소탕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걸 봤는데 어떻게 그냥 움직여?’
적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놈이 들고있는 건틀렛.
그리고 그 앞에 조립되어있는 다른 부위의 낡은 갑옷 세트.
거기서는 휘황찬란한 남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전더리 등급이 분명해보이는 갑옷이다.
이런 걸 눈앞에 두고도 그냥 돌아갈 수 있는 유저가 있을까?
최소한 언럭키는 아니었다.
다만, 저 대장같은 놈이나 주변의 부하 몹들이 꽤 강해 보였다.
대충 나섰다가는 역으로 공격받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언럭키는 타이밍을 노렸다.
은신한 채로 최대한 놈들의 주의력이 흐트러지고, 경계가 약해질 때를 기다렸다.
기회는 곧 왔다.
대장처럼 보이는 놈이 건틀렛을 갑옷에 조립하기 직전.
‘지금!’
언럭키의 눈빛이 번뜩였다.
직업명 그대로, 그가 ‘사신’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