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49화 (49/218)

#049화

언럭키는 월드 사가에 접속한 다음, 도시 네르센의 서쪽 성문으로 향했다.

서문으로 나가면 여러 사냥터들이 존재하는데, 이번의 목표는 사냥터가 아니었다.

서문 바로 옆에 위치한 인스턴트 던전.

겉보기에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오두막처럼 생겼다.

그러나 NPC는 접근할 수 없고 오직 유저만 입장할 수 있었다.

‘이 안이 던전이라는 거지.’

오픈 월드 형식의 다른 곳과는 다르다.

오직 한 명만 입장할 수 있으며, 몬스터는 죽여도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

그 대신 클리어 기록이 순위로 남는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여유로우면 이런 거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언럭키는 속으로 불평했다.

매달 천만 원의 빚에 커미션까지 갚아야하는 언럭키이다.

거기에 이제는 편집자 월급과 PD(아직 정식 계약은 아니지만) 월급까지 챙겨 줘야 할 수도 있었다.

매일 매일 빡세게 살아도 모자란데, 겨우 기록이나 남기기 위해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가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는 관심이 전혀 없어서 그 존재만 대충 알고 있었는데, 월벤에서 인스턴트 던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봤다.

게임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인지, 인스턴트 던전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네르센 이후에 인스턴트 던전을 보려면 몇 개의 도시를 더 지나쳐야 했다.

그렇기에 자기 실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거쳐 갔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상에서 내기까지 벌어지게 되었고.

‘나도 좀 여유로웠으면 생각이 달랐으려나?’

물론 지금은 사람들이 이 기록에 열광하는 데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록으로 배팅도 하고 내기가 활발하게 벌어졌으며, 자신이 돈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띠링!

[인스턴트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중도 포기가 가능하며, 재입장은 한 달 뒤에 가능합니다.]

도전은 한 달에 한 번만 가능하다.

그러나 2번 이상 도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언럭키만큼은 아니어도, 겨우 기록 하나 남기기 위해 도시에 한 달 이상 남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네르센은 어쨌거나 초반부 도시이기에, 사람들이 금방 레벨업하고 다음 도시로 떠나곤 했다.

“도전한다.”

언럭키가 빨려 들어가듯 인스턴트 던전으로 입장했다.

***

[인스턴트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의 목표 : 모든 몬스터를 사살하십시오.]

네르센의 인스턴트 던전은 처음 들어왔지만 꽤 익숙했다.

이미 월벤에 던전에 대한 정보가 전부 퍼져있는 것이다.

지형이 어떠한지, 나오는 몬스터는 어떻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

그걸 토대로 많은 연구를 해서 공략한 사람도 있었다.

100위 안쪽에 이름이 올라간 기록들은 사실 대부분 그러했다.

그리고 언럭키 역시 연구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렴 기회는 한 번 밖에 없는데, 다짜고짜 도전하겠는가.

‘다행히 내 직업으로 충분히 1등 먹을 만해.’

던전은 박쥐 형태의 몬스터. 뱃맨이 나오는 동굴이었다.

어두컴컴한 이런 환경은 암살자에게 있어서 유리하다.

폐광산처럼, 언제든지 은신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차이점 하나가 있었다.

‘이걸 위해서 스킬도 하나 질렀으니까.’

언럭키가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스킬북 하나를 쳐다봤다.

[스킬북 : 투척 예술]

-스킬 등급 : 레어.

-스킬 효과 : 단검을 투척하여 무기 공격력의 최대 130%에 해당하는 데미지를 입힌다. 마나를 소모하여 단검의 궤적을 수정할 수 있다. 투척하는 단검의 아이템 등급에 따라 궤적은 예술적으로 변한다.

투척 예술.

암살자 전용 스킬로서, 레어 등급 치고는 상당히 저렴한 470만원이라는 금액에 구했다.

사실 가격이 증명하듯이, 이건 그리 좋은 스킬이 아니다.

무기 공격력의 130%라는 데미지 증폭률은 레어 치고 굉장히 낮다.

거기에 투척 단검의 궤적을 조종할 수 있는데, 그게 아이템 등급에 따라 바뀐다.

노멀 등급 단검으로는 이 스킬을 제대로 뽕 뽑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마, 나라면 엄청나게 잘 활용할 수 있을 거야.’

그도 그럴게, 언럭키는 무려 레전더리급 단검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준비는 끝났다.’

현재 이 던전의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네리즈라는 유저였다.

레전더리 직업 ‘피바라기 광전사’ 를 보유한 그는 강력한 힘으로 이 던전을 분쇄하듯 돌파했다고 한다.

1년 넘는 시간동안 1위 기록이 바뀌지 않아서 몇몇 기자들이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때 본인이 말했었다.

-저벅. 저벅.

언럭키가 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푸드드득!

-퍼덕! 퍼덕!

동굴 저편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박쥐들 특유의 듣기 싫은 괴성도 한 번씩 퍼져나갔다.

아무리 담이 좋은 사람이라도 겁 먹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언럭키에게는 상황이 약간 달랐다.

레전더리 직업 <사신>.

어둠은 친숙할 대로 친숙했다.

컴컴한 동굴 내부가 그에게는 환히 보였다.

어디 그 뿐인가, 날아다니는 박쥐들도 먹잇감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쐐액!

언럭키의 손에서 단검이 날아갔다.

정확히 벳맨 이마에 명중.

-퍼억!

한 마리가 아무것도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원 킬!

방금 던진 단검은 노멀 등급이었다.

아이템 공격력이 낮기는 했지만, 언럭키의 스탯은 이미 동레벨 유저들을 한참 전에 뛰어 넘은지 오래.

인스턴트 던전의 박쥐는 그리 강력한 놈이 아니다.

원 킬은 어렵지 않았다.

“캬아아악!”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동료애가 심한지, 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박쥐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이 때부터 유저들은 개싸움을 시작한다.

한 마리 한 마리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숫자가 굉장히 많은, 귀찮은 놈들.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한 마리씩 잡으며 인스턴트 던전을 나아가는 게 보통이었다.

그걸 가장 잘 한 게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였고.

그러나 언럭키의 해답은 달랐다.

“키릭!?”

박쥐들은 날아오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럭키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은신.

어두컴컴한 동굴은 ‘사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아무리 어그로가 끌린 상황이라고 해도 조금만 움직이면 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박쥐들은 시력이 안 좋았다.

언럭키는 자유롭게 내부를 헤집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박쥐들을 노리기 가장 좋은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쐐액! 쐐액!

-쉬이이익!

그의 손에서 단검들이 춤추듯 날아갔다.

투척 예술이 적용된 십수 자루의 단검들은 그대로 박쥐들을 꿰뚫었다.

-푹! 푹! 푹! 푹! 푹!

위치 선정을 잘 했기에 노멀 단검은 많이 휘지 않았지만 전부 헤드샷으로 꽂혔다.

-퍼버버벅!

거기에 그 사이에서 사신극검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내장된 스킬 ‘비검’ 덕에 꽤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신극검은 박쥐를 한 방에 4~5마리씩 처치하고 다닌 것이다.

한 무리의 박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현재 기록 : 00분 05초.]

처음 한 무리의 박쥐들을 처치하는데 고작 5초.

‘이 페이스대로 가면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그러다 방심할 수도 있으니,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가볍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단검들을 회수한 뒤, 언럭키가 동굴 안쪽으로 달려나갔다.

-탓!

곧이어 한 무리의 박쥐 떼가 다시금 보였다.

이번에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단검을 쉴 새 없이 날렸다.

-푹! 푹!

언럭키의 강력한 힘으로 던진 단검이다.

박쥐를 꿰뚫은 단검들은 힘을 잃지 않고 그 너머까지 날아갔다.

이대로 있으면 동굴 천장 여기저기에 박히겠지.

그때, 언럭키의 손이 다시금 움직였다.

-쐐액!

[특수 스킬 ‘비검’이 발동합니다.]

사신극검이 뒤늦게 날아갔다.

레전더리 단검이라서 늦게 날았음에도 그 속도는 훨씬 빨랐다.

허공을 유영하는 사신극검은 먼저 날아간 단검들을 가볍게 후려쳤다.

-팅!

-태탱!

단검들의 궤적이 허공중에서 급격하게 꺽였다.

90도는 기본이고 어떤 단검들은 180도 꺾였다.

운동에너지를 뒤틀고, 예술 투척의 스킬 효과를 더한 결과였다.

다시금 박쥐 무리에게 쇄도하는 단검들.

-푹! 푹! 푹!

결국 단검들은 또 한 차례 박쥐들을 꿰뚫었다.

그 때쯤 언럭키 역시 박쥐 무리 앞에 도착했다.

이미 거의 다 처치한 박쥐들이었기에, 나머지는 언럭키가 근접전으로 처리했다.

어느새 다시 날아온 사신극검이 그의 손에 들린 채 춤추었다.

-서걱!

-촤악!

언럭키가 슬쩍 시선을 옮겼다.

[현재 기록 : 00분 09초.]

그렇게 박쥐 한 무리를 더 처치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4초.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기록 1위 달성에다가…이건 영상도 잘 뽑히겠어.’

가상의 액션캠이 그의 정수리 쪽에서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건 보나마나 잘 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

월벤에서 주최되는 인스턴트 던전 내기 베팅.

재미로 벌어지는 이 베팅은, 사람들의 열기가 과열되는걸 막기 위해 일인당 만원으로 금액이 제한되어 있었다.

“하. 이런 멍청한 놈들. 바보도 아니고 1위에 배팅한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

월드 사가를 즐기는 유저 메후락은 월벤의 내기 베팅을 보며 낄낄 웃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의 광팬이었다.

레전더리 직업을 가진 랭커이면서 유명한 길드에 소속된 남자.

단지 그 뿐이라면 비슷한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피바라기 광전사라는 직업은 무식하게 1선에서 싸우는 스타일이다.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직 전진만 있는 야만인!

그런 플레이 스타일에 반한 사람들은 많았고, 메후락 역시 그러했다.

그가 도시 네르센의 내기 베팅을 한 번씩 보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였다.

그 누가 피바라기 광전사의 기록을 깰 수 있겠나!

1년 넘는 시간동안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 10년이 더 흘러도 깨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도 그럴게, 1위인 네리즈와 2위의 기록은 1분 넘게 차이가 났다.

그 밑 순위의 기록들이 고작 1초 차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베팅률을 보면 극소수이긴 하지만 1위에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 배당률은 1677.84배.

저 숫자를 보고 현혹된 바보들이겠지.

“쯧쯧. 만원을 저렇게 쓸 거면 차라리 나를 주지.”

메후락이 혀를 찼다.

땅에다 돈을 버리는 거랑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인스턴트 던전 순위는 매 시 정각에 갱신되는데, 새로고침을 한 메후락은 눈을 크게 떴다.

“어, 어?”

그의 눈에 보이는 순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1위 - 언럭키 - 13분 21초>

<2위 - 네리즈 - 13분 22초>

<3위 - 그렌우드 - 14분 36초>

.

.

.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네리즈가 2위로 밀려났다.

“뭐, 뭐야 이거? 오류야?”

1위에는 처음 들어보는 유저 닉네임이 있었다.

언럭키? 이름 참 운 없게 생겼네.

메후락이 한 쪽 구석에 있는 버그 리포트를 클릭했다.

이런 바보 같은 버그라니.

그렇게 완벽하다고 칭송 받는 월드 사가라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만든 게임이구나 싶었다.

순위에 오류가 생긴 것 같다고 버그를 보내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답장 역시 빠르게 왔다.

[버그 리포트 신고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아무런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류가 아니라고?”

메후락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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