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50화 (50/218)

#050화

-저벅.

언럭키는 인스턴트 던전을 빠져나왔을 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공했다…!”

[현재 기록 : 13분 21초.]

13분 21초.

새롭게 갱신된 인스턴트 던전 순위를 확인했다.

<1위 - 언럭키 - 13분 21초>

<2위 - 네리즈 - 13분 22초>

<3위 - 그렌우드 - 14분 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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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럭키가 당당히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존 1위였던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의 기록을 1초 차이로 앞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은 돌이 들어선 듯 무거웠다.

‘내가 이 정도까지 했는데 기록 상 겨우 1초 앞섰다 이거지….’

언럭키가 느꼈을 때, 자신의 사냥 방법은 정답에 가까웠다.

박쥐들은 특성상 하늘을 날아다니기에 땅에서 검만 휘둘러서 잡는 게 쉽지 않았다.

투척과 은신을 극대화한 레전더리 직업 ‘사신’이 아니었으면 이런 기록이 절대 안 나왔을 터.

설사 얼마 전까지 썼었던 ‘검왕’ 으로도 이 시간대가 나올 거라고 장담하지 못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얼마나 괴물이었던 거야?’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

자신처럼 레전더리 직업 보유자이자 현재는 유명한 탑티어 랭커 중 한 명이었다.

아마 직업 특성상 정면으로 박쥐들과 싸우면서 갔을 텐데, 자신보다 빨랐다니.

이 시절의 그가 얼마나 강했을지 상상이 됐다.

‘나도 자만하면 안 되겠어.’

사실 최근 들어 마음이 조금씩 헤이해지고 있었다.

동레벨보다 훨씬 높은 스탯에다가 귀족으로부터 연계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고, 보상으로 레전더리 아이템이 두 개나 나왔다.

어디 그 뿐이랴.

올마스터라는 직업은 레전더리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이대로만 가면 쉽게 월드 사가의 랭킹 1위까지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저 윗동네에는 네리즈같은 괴물들이 여럿이겠지?’

피바라기 광전사조차 탑티어는 맞지만 랭킹 1위는 아니었다.

그와 경쟁 관계인 유저들의 숫자도 꽤 많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이 꺾어야 할 사람들이다.

“뭐, 어쨌거나 내가 원했던 건 얻었네.”

그는 잠깐 로그아웃을 한 뒤, 월벤에 있는 베팅 페이지에 들어갔다.

개인정보를 입력하니 팡파레가 터졌다.

[축하드립니다. 베팅에 성공하셨습니다.]

1등에 베팅한 만원이 성공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려 1677배의 역배당!

‘아쉽다. 베팅 한도가 십만 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1억 6천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왔을 텐데.

하지만 베팅 사이트에서 자체적으로 소액만 가능하게 막아뒀다.

너무 과한 도박성이 된다면 문제가 생길 테니, 옳은 결정이긴 하다.

사이트에 당첨금을 수령 받을 계좌번호를 입력했다.

잠시 후.

-우웅!

스마트폰이 떨리더니 알림이 왔다.

은행 앱이었다.

[16,670,00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어올랐다.

“됐다. 이 정도면 당장 급한 불은 충분히 끌 수 있겠어.”

이제부터는 쇼핑 시간이었다.

월벤 사이트의 거래소 탭에 들어가, 재료 아이템 부근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1677만원이라는 총알을 잘 사용해, 벨라에게 갖다 줄 재료들을 전부 구매해야 했다.

***

언럭키가 쇼핑에 집중하고 있는 그 시각.

[미친. 네르센 인스턴트 던전 순위 바꼈는데?]

└어? 진짜네? 누가 또 어그로 끈다고 생각했는데…

└헐. 네리즈 기록 깨진 거임?

도시 네르센의 인스턴트 던전 기록은 꽤 유명했다.

일단 그렇게 오랫동안 1위 기록이 안 깨진 인스턴트 던전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이건 광고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

현 탑티어 랭커 중 한 명인 그가 떡잎부터 대단했다는 것을 신규 유저들에게 주기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언럭키? 이 듣보잡은 대체 누구임?

그리고 그걸 깨뜨렸다는 건, 언럭키가 네리즈의 유명세를 일부분이나마 가져간다는 걸 뜻했다.

미튜브로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던 언럭키였지만 월드 사가의 세계는 굉장히 넓다.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미튜버나 기타 플랫폼 스트리머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언럭키는 이제 시작한 초보였다.

고정 팬 층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대중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헌데 이번 일로 이름을 크게 알린 것이다.

[이 사람. 알고 봤더니 미튜브하고 있었네? 혹시나 뭐 정보 없나 찾아보니까 나름 고정 팬 층이 좀 있나 봄.]

└실력 어떰? 정말 네리즈 이길 정도로 개쩔어?

└네리즈 이길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난 아니긴 하네. 지금 영상 몇 개 봤는데 확실히 잘 해.

└오 그래? 나도 한 번 봐봐야겠다.

화려한 스킬을 날리는 대신 정교한 실력으로 승부보는 게 언럭키의 사냥 컨셉이다.

그 특성상 어그로를 끌기는 어렵지만, 한 번 팬이 된 사람들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인스턴트 던전 기록 쟁탈 사건으로 인해, 언럭키의 방송으로 유입된 신규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여기가 네리즈 꺽은 미튜버 채널이라고?]

[자. 시청자 여러분. 냉정하게 판단해보겠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지, 제가 낱낱이 파헤쳐드리죠.]

그리고 월드 사가를 방송하는 미튜버들 역시 상당수가 언럭키를 주제로 영상을 찍었다.

언럭키의 이름이 서서히 대중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하아.”

오전 6시.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러 공용 부엌으로 나온 백현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뭐야. 왜 아침부터 죽상이야?”

그런 그를 보고 박세훈이 물었다.

시리얼 한 그릇과 우유를 들고 맞은편에 앉은 박세훈.

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기는 뭘. 백현 씨 얼굴만 봐도 걱정이 한가득이구만. 말해봐. 내가 뭐 누구한테 백현 씨 일을 얘기할 것도 아니고, 고민 상담 정도는 맡겨 볼만 해.”

맞는 말이긴 했다.

과거 증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 덕분인지 아니면 사람 자체가 그런 건지.

가벼워보이는 인상과 달리, 박세훈은 상당히 진중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농담도 많이 던지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특히 돈에 관해서 그러했다.

이용승에게 영상 편집을 맡기고 박세훈에게는 성 팀장에 대한 조언을 듣는 등, 지난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은 안했지만 박세훈 정도의 사람이라면 백현이 돈을 꽤 잘 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그러나 박세훈은 단 한 번도 백현에게 돈을 빌려달라거나 하는 식의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 역시 빚쟁이라서 마음이 급할 텐데 말이다.

박세훈은 상당히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별건 아니고요. 월드 사가 문제죠.”

“왜. 슬슬 앞길이 막히나?”

박세훈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백현은 그냥 게임을 즐기기 위해 월드 사가를 하는 게 아니었다.

빚을 갚고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신분 상승의 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쉽겠나.

10억이나 되는 인구가 플레이하는 게임이지만, 그 중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극소수였다.

태양처럼 빛나는 그들을 따라가려다가 다리가 찢어져 죽는 사람들은 태반이고 말이다.

특히나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백현은 성공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실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걸 박세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막히는 것 까지는 아닌데, 생각보다 돈 들어갈 데가 많네요.”

고대 흑기사의 판금갑옷.

벨라에게 부탁해놓은 그 아이템을 수리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온통 비싼 것들뿐이었다.

기록 배팅에서 1위를 하며 1600만원이라는 거금이 생겼지만, 그걸로도 재료값은 부족했다.

결국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 넣었다.

20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쏟아부어, 결국 필요한 재료를 다 구 한 것이다.

‘이게 옳은 선택인건지 모르겠다니까.’

2000만 원이면 이 레벨대의 유니크급 아이템을 하나 살 수도 있었다.

매물을 아주 잘 구한다면 최하급 레전더리 정도도 가능하겠지.

헌데 재료비만 이렇게까지 투입하는 게 옳은 걸까?

벨라는 그 손상된 갑옷을 레전더리 등급으로 복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흠. 돈 들어갈 데라. 하긴. 제대로 월드 사가를 하려면 집 한 채 금액으로도 부족하다고 하니까. 그럴 만하지.”

박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백현 씨. 장부 같은건 잘 작성하고 있는 거야?”

“장부요?”

“그래. 용돈 굴리는 것도 아니고 꽤 큰 돈이 왔다갔다 할 텐데.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성 팀장이 입출금 내역 보면 딴지를 걸 수 있을걸?”

“…….”

맞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저번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빚을 갚을 때는 입을 잘 털어서 커미션 50만원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성 팀장은 분명히 경고를 날렸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자신 같은 빚쟁이들에게는 국세청보다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 성 팀장이다.

수틀리면 강제로 돈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철두철미하게 장부를 만들어 놔야했다.

백현이 눈을 반짝였다.

“안 그래도 세훈 씨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뭘?”

“자금 관리요. 혹시 부탁을 드려도 됩니까?”

박세훈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나한테 정식으로 의뢰를 맡기겠다는 거야? 성 팀장이 딴지 못 걸도록 자금 관리를 해 달라는 거지?”

“예.”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세훈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내 뭘 믿고?”

그들은 아직 만난 지 채 두 달도 안 된 사이였다.

물론 같은 처지에 고생하는지라 급속도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돈 문제를 맡기는 건 위험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빚이 많아서 이 지옥으로 끌려온 것 아니던가.

언제 눈이 돌아갈지 모른다.

“당연히 통장 관리같은 건 제가 할 거에요. 세훈 씨는 장부만 관리해 달라는 거죠.”

“그러니까 나를 어떻게 믿냐고. 내가 슬쩍 조작하면 성 팀장이 물고 늘어질 건수를 줄 수 있을 텐데?”

박세훈의 말에 백현은 빙긋 웃었다.

“그냥 뭐. 제 감이라고 할게요.”

조금 전에, 복도를 지나오면서 쪽창 밖으로 하늘이 초록빛으로 물들어있던걸 봤다.

오늘 하루 행운이 따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백현은 자신의 눈을 믿었다.

보육원에서 자라오면서 길렀던 건 눈치밖에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을 배신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 나쁘지 않다고 자부했다.

지난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박세훈을 봐오면서, 그가 믿을만하다고 판단했다.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솔직히 큰 타격은 없을 거야.’

어쨌거나 통장은 직접 쥐고 있을 생각이었다.

장부로 골탕을 먹이면 곤란은 하겠지만, 큰 문제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터.

그것까지 예상하고 제안한 것이었다.

허나 박세훈은 예상치 못하게 감명받은 표정이었다.

“감이라…. 감으로 날 믿어 준다는 말이지….”

그는 묘한 눈빛으로 백현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한 때는 잘 나가던 증권맨이었지만, 자신이 이 모양 이 꼴이 되면서 사기꾼 취급이나 받고 살았다.

그나마 성 팀장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했지만 마소처럼 부려먹을 뿐이었다.

헌데 이렇게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다니.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꽤 감동이었다.

살짝 코를 훔친 박세훈은 손을 내밀어 백현과 악수했다.

“내 몸값은 꽤 비싸다고? 앞으로 잘 부탁하지.”

“예. 근데…”

“?”

백현이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처음엔 열정페이로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제가 요즘 자금이 좀 부족해서….”

“…….”

박세훈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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