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화
언럭키는 비밀 통로의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불빛도 거의 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안쪽이 훤히 보였다.
-철컥!
-슈르르륵!
기관 장치가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화살 세 방이 천장에서 쏘아졌다.
두 방은 고개를 젖혀 피하고 하나는 단검으로 튕겨 냈다.
-캉!
“오.”
뒤따라오던 핸더슨이 훌륭하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언럭키는 살짝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그가 보여준 활약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중간에 한 번씩 함정뿐만이 아니라 갈래길도 나왔다.
두 갈래길이나 세 갈래길이 등장했는데, 핸더슨만 있었으면 곤란했을 것이다.
단단한 벽돌로 축성된 복도는 발자국 같은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추적에 장기가 없는 핸더슨은 설사 이 비밀통로를 찾아내 쫓아왔다고 하더라도, 갈래길에서 헤매다가 놓쳤을 터.
‘여기군.’
그러나 언럭키는 아니었다.
레전더리 직업 ‘사신’.
은신과 암살에 특화되어 있긴 하지만, 명색이 레전더리 직업이다 보니 추적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약간만 도움이 되도 상관없었다.
-파앗!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 그에게 길을 보여 줬으니까 말이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색깔을 따라가면 되었다.
‘이거. 어쩌면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추적자 계열일지도 모르겠어.’
아니면 탐색가 쪽이라던가.
그런 쪽은 능력의 도움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화르륵!
-퍼엉! 퍼어어엉!
“조심!”
핸더슨이 경고했다.
갈수록 함정들의 위력은 높아졌다.
처음에는 화살 몇 방 정도였는데, 그 후부터는 폭발물이 매몰되어 있거나 발리스타 같은 두꺼운 투사체가 날아왔다.
그때 빛을 발한 건 언럭키의 강력한 방어력과 체력이었다.
-쾅!
체력수치 101에, 고대 흑기사의 판금갑옷의 조합.
동레벨 탱커들도 감히 비벼보지 못할 수치이다.
언럭키는 함정들을 몸으로 때우면서 전진했다.
“…허. 참. 쉐도우 나이트들은 원래 이런가? 상식을 초월하는 방식이군.”
핸더슨이 뒤에서 경악하며 혀를 찼다.
암살자들만의 전투 방법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는데, 저런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은 처음인 것이다.
위력은 탁월했다.
사실 함정의 위력이 거세지면서 핸더슨은 자신이 앞서 나가려고 했다.
빠르게 길을 찾고 전진하려면 언럭키가 앞장서는 게 좋지만, 함정의 위력이 암살자가 견딜 만한 게 아니었다.
헌데 뚜껑을 까고 보니 탱커처럼 맞으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버티는 능력은 거의 나 못지않은 것 같은데.’
핸더슨이 아무리 공격력에 치중된 기사라고 해도 명색이 기사.
그에게 필적한 방어력을 보여 준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쉐도우 나이트의 명성이 괜히 퍼진 게 아니었군. 영주님이 최후까지 숨겨 둔 칼이라고 할 만 해.”
“…….”
중얼거리는 핸더슨의 말을, 언럭키는 못들은 체 했다.
나중 가서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은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건 그냥 핸더슨이 혼자 오해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언럭키는 길 뚫기에 전념했다.
***
“젠장…젠장…. 핸더슨 저 녀석.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거지?”
어두컴컴한 복도를 내달리며 집사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상황이 더럽게 꼬였다.
죽었어야할 핸더슨은 살아남았고, 그도 모자라 갑작스럽게 자신을 공격했다.
추측이지만 영주의 명령을 받고 이런 건 아닐 것이다.
어린 조카는 성정이 유약하다.
감히 무력으로 붙어볼 생각은 하지 못할 터.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설마 놈이 독단으로 움직일 줄이야.
“하필 이런 타이밍에 맞춰서 오다니. 끔찍하군….”
원래 집사에게도 자신을 지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영주의 수족을 모두 처치했다는 안도감에, 호위 기사까지 전부 다른 임무에 투입시켰다.
영주성 내 중립 기사들을 감시하는 임무.
그 후 남은 병력만으로 영주를 사로잡고, 자신이 섭정의 자리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핸더슨은 그 환상적인 타이밍에 치고 들어온 것이다.
“환장할 일이야.”
허나 집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성공적으로 도망쳤다.
하인보고 밑에 상황을 알아보라고 시켰을 때부터 느낌이 쎄했다.
곧장 비밀 통로를 타고 피한 것이다.
‘꽁꽁 숨겨둔 곳이라서 미리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찾을 수 없을 거야.’
설사 찾아도 상관없다.
여긴 설계 때부터 만약을 대비해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만들어 놓은 장소이다.
추격자를 반겨줄 각종 트랩들, 몇 번이나 나오는 갈래길.
병력이 잔뜩 있는 거면 모를까, 핸더슨 혼자서는 자신을 쫓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간이라도 많다면 모를까, 중년인이지만 집사는 체력 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탁탁탁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이제 출구가 머지않았다.
곧이어 저 멀리 두터운 나무문이 보였다.
집사가 눈을 빛냈다.
‘이제 곧…!’
저기만 나가면 자연스럽게 도시 내부에 뒤섞여 들어갈 수 있다.
그 후에는 자신의 기사들과 합류해, 영주를 공격하면 된다.
이 쪽이 먼저 공격받아서, 합당한 반격을 했다는 이유로.
영 틀린 말도 아니다.
핸더슨이 혼자서 판단하고 움직였건 말건, 어쨌거나 그는 영주의 감찰 기사였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강제로 영주 자리를 가져가게 되면 중립 기사들이 나를 따르지 않을 테지만…’
어쩔 수 없다.
영지 병력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 이런 저런 작업을 펼친 거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무력을 동원할 수밖에.
중립 기사들 문제는 영주 자리에 올라선 뒤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겠다.
“후. 다 왔군.”
문 앞에 도착한 집사가 숨을 고르며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순간.
-푹! 푹!
“끄아아악!”
돌연 그가 땅을 뒹굴며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손등에 하나, 허벅지에 하나.
두 자루의 단검이 날아와 박힌 것이다.
“끄으으…어, 어떤 놈이….”
그가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누군가 걸어 나왔다.
새카만 갑옷을 입고 손에 단검 한 자루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그는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발견했네.”
언럭키가 히죽 웃었다.
***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언럭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가 몸빵으로 떼웠다고는 해도, 함정이 너무 많았다.
얼마나 제대로 깔아뒀는지, 어지간한 탱커쯤은 그대로 죽을만한 위력이었다.
레전더리 갑옷이 있었으니 버텼지, 아니었으면 언럭키도 꼼짝없이 죽었을 판이었다.
하지만 함정을 돌파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간신히 집사가 탈출하기 직전에 붙잡을 수 있었다.
“끄으으….”
“집사!”
뒤늦게 따라온 핸더슨이 바닥을 뒹구는 집사를 보며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달려가려고 한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언럭키를 돌아봤다.
그 뒤, 그가 제 가슴에 주먹을 댄 채 절도 있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건 인사를 먼저 하는 게 맞겠군. 고맙소. 그대가 아니었다면 분명 놓쳤을 것이오. 저 반역도를 말이오.”
-띠링!
[기사의 존중을 받았습니다.]
[명예 수치가 +1 상승합니다.]
기사가 행하는 명예로운 인사.
그걸 받은 것만으로도 명예 수치가 올라갔다.
놀라운 일이지만, 그만큼 쉽게 받기 힘든 것이다.
죽어가는 그를 구해줬을 때도 이런 건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허리를 편 뒤 핸더슨이 슬쩍 웃었다.
“더불어 쉐도우 나이트들의 대단함에도 경의를 표하지. 그대들은 우리 감찰 기사들 못지않게 뛰어난 자들이오. 하핫.”
그러면서 핸더슨은 집사에게 다가갔다.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집사. 너를 감찰 기사 살인죄, 반역 모의 및 주도죄로 체포한다. 이만한 병력을 모으고 있었으니 변명의 여지는 없겠지.”
“끄으으으….”
집사의 표정이 탁 하고 풀렸다.
“아쉽겠어? 쉐도우 나이트가 아니었다면 우리 감찰 기사들을 성공적으로 다 죽이고 네 뜻대로 영지를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쉐도우…나이트? 누가…?”
“누구긴 누구야. 단검을 두 방이나 맞아놓고 누구한테 맞은 지도 모르겠나?”
집사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저 놈이 쉐도우 나이트라고? 그럴리가….”
그 놈들은 이미 한참 오래전에 전멸했다.
멍청한 자신의 형님이자 전대 영주가 무리해서 운용하다가 골라 갔다는걸 듣지 않았나.
자신이 반역을 꿈꾸며 오랫동안 힘을 기른 것도, 영주의 왼팔이라고 불리는 쉐도우 나이트가 사라진 데에서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쉐도우 나이트가 남아 있었다고?’
여기까지 자신을 추적해 온 걸 보면, 그 능력은 틀림없이 쉐도우 나이트의 그것이다.
그렇다면 형님이 자신을 속인 거였나?
왜?
‘설마…내가 반역할 걸 알고?’
그래서 일부러 빈틈을 드러냈다는 건가?
“하….”
집사의 마음에서 짙은 패배감이 올라왔다.
평생 무시해왔던 형님이, 사실은 자신 몰래 쉐도우 나이트라는 비수를 숨겨두고 있었을 줄이야.
허탈한 마음에 팔다리에서 올라오는 통증마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수십 년간 우월감을 가졌던 마음이 단번에 꺾였으니, 그 정신적 충격이 강렬했다.
핸더슨의 손아귀에 대롱대롱 잡힌 채, 집사는 더 이상 반항을 포기했다.
‘다 끝났군.’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핸더슨은 집사를 데리고 곧장 영주성을 향해 출발했다.
아무리 집사를 사로잡았다고 해도, 집사 휘하의 기사들은 멀쩡했다.
시간을 주면 그들이 집사를 구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완전히 결판을 내야 했다.
-여기 있는 자료들을 취합해 주시오. 나는 이 놈부터 일단 영주님께 데려가야겠으니.
-알겠습니다.
-이런 잡일만 맡겨서 미안하오. 사실상 그대의 공이 대부분인데…
핸더슨은 미안해했다.
영주에게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일의 주역은 핸더슨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정작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도, 비밀 통로의 추격을 성공시킨 것도 언럭키가 한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언럭키보고 영주에게 가서 보고하라고 말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언럭키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주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실제로 쉐도우 나이트가 아니었으니, 영주를 만날 수 있는 명분 자체가 없었다.
집사를 사로잡아 간다면, 감히 도시의 2인자를 공격했다는 소리나 들을지 모른다.
때문에 언럭키는 웃는 얼굴로 핸더슨을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까.’
언럭키의 목적은 집사와 싸워 이기는 게 아니었다.
퀘스트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언럭키는 집사의 집무실인 5층 전체를 뒤적거렸다.
그가 도시 내에서 해왔던 부정부패들이 기록된 장부가 한가득이었다.
그 내용들을 살피며 차곡차곡 정리하다보니, 결국 발견했다.
<폐광산의 조직 후원 내역>
퀘스트에서 요구했던, 폐광산의 추종자들과 집사의 연결고리를 말이다.
그 즉시 메세지가 나타났다.
-띠링!
[집사를 처치하고 폐광산의 추종자들과의 연관 증거를 찾았습니다.]
[퀘스트 성공!]
[베키를 찾아가서 퀘스트 정산을 받으십시오.]
언럭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