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화
하루가 지났다.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서 최초 공개가 시작됩니다.]
[제목 : 머드 골렘의 영토에서 암살자가 혼자 싸우는 법]
이한영이 설정해 두었던 최초 공개 영상이 공개되었다.
‘머드 골렘의 영토’ 에서의 사냥.
<머드 골렘의 영토? 여기 안 붐비는 사냥터로 꽤 유명하지 않나?>
<ㅇㅇ 맞아. 사냥터거 디립다 커가지고 널널하게 다닐 수 있는 곳임.>
월드 사가 초반부 구역의 사냥터 붐빔 현상은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이런 넓은 사냥터는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물론 몬스터 사냥 난이도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잘 맞는 파티를 구하면 꽤 편하게 레벨업이 가능했다.
<어? 근데 쟤 지금 뭐하는 거임?>
<머드 골렘의 영토를…혼자서 들어가?>
그러나 영상 초반부 언럭키의 행동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파티를 구하는 유저들을 그대로 지나쳐, 혼자서 사냥터 안에 입장한 것이다.
<뭐지? 암살자라서 그냥 파티 구하는 거 포기한 건가?>
머드 골렘들을 잡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탱커다.
그렇기에 어느 파티든 실력 있는 탱커는 영입 1순위였다.
반면에 딜러들은 자원이 넘쳐난다.
특히나 암살자들은 직업 특성상 근거리에서 딜을 넣어야 하기에 머드 골렘 같은 걸 사냥할 때는 기피되는 편이었다.
<말이 되나. 언럭키가 그냥 암살자도 아니고. 스펙 살짝만 공개하면 파티원들은 구름처럼 몰려들 텐데?>
<그건 그렇지.>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였다.
언럭키는 네르센 인스턴트 던전에서 1위까지 한 사람이다.
당연히 범상치 않은 아이템을 착용했을 테고, 그걸 공개하면 어느 파티든 환영할 것이다.
어쨌거나 언럭키는 혼자서 사냥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머드 골렘과 마주쳤다.
-그어어어!
<어어…?>
<점마 저거! 뭐하노!>
언럭키는 머드 골렘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탱커가 아니면 버티기 힘든 놈의 주먹질을, 정면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쾅!
곧이어 언럭키와 머드 골렘의 주먹이 부딪쳤다.
결과는 놀라웠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언럭키가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시청자들은 눈치 챘다.
<갑옷이다! 그러고 보니 언럭키가 갑옷을 입고 있어!>
<정말이네? 아니 무슨 암살자가 갑옷이야?>
영상 초반부에는 카메라 줌이 언럭키가 아니라 주변을 많이 비춰서 알아채는 게 늦었다.
헌데 언럭키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탱커 직군이나 입을 만한 판금갑옷을 말이다.
<옵션이 어떻길래 암살자가 판금갑옷을 입을 수 있지?>
<직업 제한이 없는 거 같은데…그래도 괜찮나?>
아무리 제한이 없더라도 저걸 입는 순간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암살자에게 있어서 스피드는 생명.
그렇기에 저런 식으로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푹! 푹! 푹!
은신할 필요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다.
언럭키는 머드 골렘의 공격을 맞으면서 단검을 쑤셔 넣었다.
원래부터 공격력은 높기로 정평이 나있었기에, 머드 골렘은 몇 방 버티지도 못하고 죽었다.
가볍게 한 놈 처치한 뒤,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단검을 던지고 은신을 쓰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이용했다.
거기에 강력한 탱킹력이 더해지니, 머드 골렘들은 픽픽 쓰러졌다.
<아니…저기 원래 파티 단위로 다녀야 하는 곳인데….>
<솔플을. 그것도 암살자가 혼자서 나대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아마 어디서 얘기를 들었으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증거가 들이밀어지지 않았나.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채팅 창이 빠르게 휙휙 넘어간다.
[실시간 시청자 수 : 3079명.]
화면 하단에 뜬 숫자를 본 이한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실시간 3000명 넘었다!”
어제 올린 인스턴트 던전 영상 덕분일까.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심지어 그 숫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아마 저 중에서 일부분은 고정 시청자가 되어 주겠지.
24시간 만에 영상 한 개를 더 올린다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이제…일하자.”
그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눈으로 다시금 접속기를 향해 걸어갔다.
비축 영상이 사라졌으니 빨리 또 새로 찍고, 레벨도 올리는 등.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
영주 암살 미수 사건으로 언럭키가 다음 도시로 떠나는 게 잠깐 지체되었다.
그동안 그는 컵라면(이한영)을 만났다.
“벌써 가신다고요?”
“네. 레벨도 50이 됐으니 여기서 더 할게 없네요.”
“하…. 무슨 레벨업 속도가 그렇게 빠릅니까.”
컵라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편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 레벨업 속도도 잘 이용하면 콘텐츠 하나 나오지 않을까?’
이제는 뭐든 콘텐츠로 써먹어 보려는 컵라면이었다.
“언럭키님. 그러고 보면 이제는 조심하셔야 됩니다.”
“네? 뭘요?”
“슬슬 유명해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단순히 팬만 생기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컵라면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스트리머 생활을 해 오면서 본인이 엄청나게 뜬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는 갑자기 벼락 스타가 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면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팬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안티도 많아진다는 것!
“악플을 달거나 이유 없이 비방하는 건 약과에요. 그런 놈들은 그냥 고소 때리면 되는데, 정말 위험한 거는 언럭키님을 이용하려는 놈들입니다.”
어떻게든 상대를 제끼려고 하는 놈들.
유명세에 빌붙거나 아예 사기를 치려는 쓰레기들 등.
세상에는 그런 놈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쩌면 벌써 그런 놈들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으음….”
언럭키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문득 아까전의 영주 암살 미수 사건이 떠올랐다.
거기 은신하고 있었던 암살자들이 설마…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언럭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병신도 아니고 자신을 노리려다가 실수로 영주를 노렸다. 같은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 놈들은 아마 사로잡힌 집사의 잔당들일 것이다.
집사의 거처를 습격했을 때 핸더슨이 다 처치했지만, 외부로 나가있던 애들도 있었을 테니까.
“아, 그리고 신변의 위협도 주의하세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떤 미친놈들은 우연히 노출된 주소로 찾아와서 테러를 가하는 놈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테러요?”
언럭키가 피식 웃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편집 일체는 이용승에게 맡기는데, 그간 보아온 바 그가 주소 노출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게임 속 내용이 주된 콘텐츠이니 현실의 방송을 할 일은 거의 없을 거고.
게다가 테러를 온다치면 그건 테러범의 안위를 걱정해 줘야 한다.
현실의 언럭키가 머무는 곳은 (주)머니앤캐시의 고시원같은 작업장.
탈출하려는 노예(빚쟁이)들을 막기 위해 덩치들이 층마다 여러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보스는 성 팀장인데, 여기에 언럭키를 노리고 온다?
‘그러면 그 날로 작업장에 일꾼 한 명 추가되는 거지.’
아니면 통나무가 되어 해외로 가는 배에 실릴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고 있겠습니다.”
“예. 노파심에 드리는 조언이었습니다. 다음에 가는 도시가 텔르흐렌이었죠? 제가 또 거기까지 가려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컵라면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언럭키 혼자서 다니면 1인칭 액션캠밖에 못 찍는다.
PD로서, 카메라맨으로서 항상 따라다니며 콘텐츠를 뽑아내야 하건만 그걸 못하니 미안했다.
“괜찮습니다. 퀘스트 하고 있는 게 있어서 당장 카메라 찍을 일은 없을 거예요.”
언럭키가 그를 두둔해 주었다.
실제로 그는 가서 베키가 말한 정보원을 만나야 했다.
거기서 또 퀘스트를 받아 의뢰를 수행할 텐데, 그것들은 영상으로 담아놓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언럭키가 슬쩍 옆쪽을 살폈다.
게이트 근처 소란이 잦아 들어지고, 다시금 병사들이 사열하기 시작했다.
영주도 암살자들을 일단 대충 처리해두고 다시 언럭키를 배웅하기 위해 돌아왔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예. 금방 따라갈게요!”
컵라면과 헤어진 뒤, 언럭키가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우웅!
게이트가 푸르게 빛나며 그 안에서 언럭키가 빠져나왔다.
그의 눈앞에 웅장한 성벽과 그 앞에서 창을 치켜든 채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이 보였다.
‘여기가 텔르흐렌….’
새로운 도시이다.
오기 전에 월벤에서 사전 조사를 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저기요. 지나갈 거 아니면 비켜주실래요?”
“아, 예.”
감상에 빠져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는 유저들은 많았고,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성문 안으로 입성하려했다.
언럭키 역시 대열을 따라갔다.
다만, 그는 성문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옆에서 병풍처럼 서있는 지킴이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는 흘끗 그를 보더니 살짝 목례했다.
“명예로운 분이시군요. 저에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일반 유저라면 개무시했겠지만 언럭키에게는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급히 성문을 들어가던 몇몇 유저들이 그 상황을 호기심 있게 살폈다.
경비병이 저렇게 대우해 주다니. 뭔가 중요한 퀘스트라도 있나?
그러나 딱히 더 크게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언럭키는 그저 병사와 대화만 나누고 있었다.
유저들은 김 샌 표정으로 다시 갈 길을 갔다.
“이걸 영주성으로 전해줄 수 있습니까?”
한동안 잡담으로 주변의 관심을 흐트린 뒤, 언럭키가 경비병에게 건넨 건 한 장의 편지였다.
-이걸 가져가시오 경. 텔르흐렌과는 연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경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오.
여기 오기 직전, 네르센의 영주가 직접 써 준 친필 편지였다.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까지는 모르지만, 영주가 설마 나쁜 의도로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
경비는 편지를 보더니 표정이 살짝 변했다.
“네르센 영주님의 편지…. 이건 제 선에서 처리할 게 아니군요. 윗선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
언럭키는 병사를 따라 성문 안 쪽, 한켠에 마련된 임시 숙소로 갔다.
거기서 잠시 기다리다보니 영주의 서기관이라는 자가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아, 예.”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네르센의 영주님이 암살자에게 습격을 당했는데, 그 놈들이 텔르흐렌 출신이라더군요.”
그런 내용이었나.
‘텔르흐렌 놈들이 왜 네르센까지 온 거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희 쪽에서 수배까지는 아니지만 주의 깊게 보고 있던 놈들이었습니다. 헌데 영주 살인미수죄까지 적용하면 바로 현상 수배를 적용할 수 있죠.”
“그렇군요.”
“아무리 이미 잡혔다고 해도 수배서를 작성하려면 증인의 첨언이 필요합니다. 혹시 그 놈들의 외관이나 특징 같은걸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일단 생긴 건 복면을 쓰고 있어서 제대로 못 봤는데…”
“아. 제가 아니라 기록관에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 쪽이 현상 수배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서기관의 말에 언럭키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아니 뭐 이렇게 귀찮게 시키는 게 많아?’
그냥 뭐 좀 얻어먹을 거 없나 해서 찾아왔건만.
퀘스트 하기도 바쁜데 이것저것 시키고 있다.
당연히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짤랑.
그 때, 서기관이 돈소리가 나는 자루를 내밀었다.
“그리고 네르센의 영주님께서는 이 편지를 가져온 자가 암살자를 잡는데 큰 공을 세웠으니, 보상을 주라고 하시더군요. 이건 현상금입니다.”
“!”
언럭키의 표정이 확 변했다.
금화를 준다면 얘기가 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