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보스 몬스터 알폰소의 손에서 강제로 튀어나온 구슬.
알폰소도, 언럭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구슬은 누가 말릴 세도 없이 사신극검에 달라붙더니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졌다.
‘허….’
언럭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퀘스트를 이렇게 바로 완료할 줄이야.’
사이드 퀘스트를 이 던전에서 받았으니, 당연히 던전 공략에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퀘스트도 성공할 줄 알았다.
허나 그게 이런 방식일 줄이야.
만나자마자 놈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더니 퀘스트가 성공했다.
언럭키도 당황했지만, 알폰소만 할까.
보스 몬스터가 체통도 잊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놈이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 언럭키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뭐. 어쨌거나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그가 시선을 돌렸다.
진화한 사신 극검의 형태는 외관에서부터 변화한 점이 보였다.
원래는 단조롭게 생긴 단검이었다면, 이제는 손잡이 쪽에 주홍색 자그마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언럭키가 새롭게 바뀐 단검의 스펙을 확인했다.
[사신극검 - 진화]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108 상승.
-착용자의 힘 능력치 + 10, 체력 능력치 + 10, 마력 능력치 + 13 상승.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을 시 데미지 + 60% 상승.
-특수 스킬 ‘비검’ 사용 가능.
-특수 스킬 ‘주홍 검기’ 사용 가능.
-호르헤른 가문의 선조가 그 당시 최고의 암살자로 군림하던 ‘사신’을 죽이고 획득한 단검이다. 노획 도중에 검이 부러졌었고 후에 복원되었다. 허나 대장장이 실력의 한계로 그 성능이 많이 하향되었다.
-원주인이었던 전설의 암살자, 사신의 힘을 일부분 얻어 단검이 진화했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55 이상.
‘오…. 좋다. 진짜 좋아졌어.’
전체적으로 단검의 성능 자체가 올라갔다.
공격력, 능력치 상승 폭, 치명타 데미지 상승까지.
원래도 좋았던 단검의 성능이었지만 그게 지금 레벨 수준대에 맞춰져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특히나 중요한 건, ‘주홍 검기’ 라는 스킬이었다.
-주홍 검기 : 마나를 큰 폭으로 소모하여 공격력을 증폭시키는 검기를 발생시킨다. 사신의 힘이 담긴 주홍 검기는 은신 상태에서 1초만 발동된다. 재발동을 위해서는 다시 은신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
몇몇 제한이 있긴 했지만 무려 ‘검기’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스킬!
‘와….’
언럭키가 감탄하며 스킬 설명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는 아직도 네르센에서 기사 핸더슨이 검기를 쓰던 장면을 기억했다.
푸른 빛무리가 번쩍일 때마다 집사의 부하들이 짚단처럼 베어졌다.
그것과 같은 검기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검기라는 이름이 붙은 스킬 아니던가!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100레벨까지는 문제없지 않을까?
‘아니. 그건 또 아닐 수도 있겠군.’
레벨 100쯤 되면 본격적으로 돈을 펑펑 쏟아 붓는 자본가들이 템을 맞추는 구간이다.
거기서부터 스펙이 갈리는데, 어지간한 아이템으로는 상위권에 비비기조차 힘들었다.
“가, 감히…감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보스몬스터 알폰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사실 지금도 눈앞이 뿌옜다.
소중하게 모셔온 사신님의 힘이 담긴 구슬을 빼앗기다니.
영주의 암살이라는 조상 대대로의 꿈을 이루어줄 물건이었는데, 왠 알지도 못하는 침입자가 가져간 것이다.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당장 내놓아라!”
분노한 알폰소가 자신의 단검을 치켜들었다.
[보스 몬스터 : 알폰소 형제단장, 알폰소.]
-레벨 : 66.
알폰소의 머리 위로 놈의 레벨이 보였다.
이 던전의 입장 제한 65레벨이었으니, 66렙의 보스몹을 잡기 위해서는 직업별 균형을 맞춰 파티를 이루어야 했다.
보스몬스터는 일반 몹보다 몇 배는 더 강했으니까 말이다.
“어디 한 번 가져가 봐. 할 수 있다면.”
언럭키가 새롭게 진화한 사신극검을 들어올렸다.
이 단검을 시험해보기 딱 좋은 상대였다.
“죽이겠다!”
버럭 소리친 알폰소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녹듯이 사라졌다.
암살자 계열의 보스 몬스터.
탱커가 어그로를 끌기 어렵기 때문에 파티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정말 싫은 타입이다.
그만큼 놈의 은신은 대단했는데, 은신을 간파하는 언럭키의 ‘눈’으로도 상당히 흐릿하게 보였다.
‘과연 보스몹이라 이건가?’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일반몹들과는 차원이 틀렸다.
언럭키 역시 은신을 쓰고 몸을 숨겼다.
갑작스레 사라진 언럭키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알폰소 주변의 어둠이 흔들렸다.
감정이 격화되어 초보자나 할 법한 실수를 한 것이다.
그 틈을 노리고 언럭키가 단검을 내질렀다.
-우웅!
[특수 스킬 ‘주홍 검기’가 발동됩니다.]
사신극검의 칼날에서 주홍빛이 불꽃처럼 흘러나왔다.
-촤악!
“크허억….”
뒤늦게라도 몸을 뺀 알폰소였지만 뼈아픈 타격을 입었다.
“우와…. 데미지가 무슨….”
공격에 성공한 언럭키가 감탄했다.
알폰소의 대응이 기민해서 치명타는 못 입혔는데도 믿을 수 없는 데미지가 들어갔다.
‘방금 일격이 치명타로 들어간다고 치면 증폭률이…310%인가?’
그걸 토대로 계산해보니, 대충 3~4방만 먹이면 놈이 죽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암살자 타입이라도 그렇지. 보스몹이 겨우 그 정도에 죽는게 말이 되나?
‘검기의 위력이 장난 아니네.’
검기를 못 쓰는 상대를 대상으로 검기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주홍 검기의 한계도 있었다.
마나 소모량이 너무 컸다.
아주 잠깐 유지했는데도 불구하고 마나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마력의 영약을 먹기를 잘했네.’
지금으로서는 포션이 없다면 두 번을 쓰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횟수가 뭐가 중요할까.
이 두 번을 제대로 때려 넣는다면 보스몹도 버티지 못할 텐데.
“내, 내놓아라…이 도둑놈의 자식!”
알폰소가 고통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놈의 눈동자에 아까와 같은 분노는 없었다.
구슬을 빼앗겼지만 한 방 먹으면서 냉정함을 찾았다.
알폰소의 모습이 허공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언럭키 역시 마주 은신을 사용했다.
“…….”
어두운 이 곳에 한동안 정적만이 감돌았다.
암살자간의 전투 직전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잠시 후.
-푹!
“끄윽….”
어둠 속에서 알폰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에는 또다시 사신극검이 꽂혀 있었다.
주홍빛 검기가 넘실거린다.
은신 전투라는 면에서 이 레벨대의 암살자 몬스터가 언럭키를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설사 그게 보스몹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알폰소는 선방했다.
무작정 당한게 아니라, 언럭키의 공격을 맞으면서 역으로 함께 돌려준 것이다.
알폰소의 배에 사신극검이 꽂혔지만 언럭키의 어깨 역시 알폰소의 단검이 틀어박혀 있었다.
“역시 보스몹이라거 꽤 하네.”
언럭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나 딱히 위기감은 없었다.
한 방 맞았다고는 해도 HP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탱커 암살자라는 기형적인 입장이기에 큰 타격이 없는 것이다.
“이게 무슨….”
알폰소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불리함을 느끼고는 우선 언럭키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러나.
-꽈악.
“어디가게?”
히죽 웃은 언럭키가 알폰소의 팔을 놔주지 않았다.
알폰소는 당황했다.
팔이 마치 바위에 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간 형태의 보스몹이 ‘힘’에서 언럭키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놔, 놔라!”
당황해하는 알폰소에게 날아든건 언럭키의 단검이었다.
사신극검이 아닌 일반 단검이었지만, 놈의 급소를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푹! 푹! 푹!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알폰소의 팔이 우연찮게 풀렸다.
아니. 우연은 아니었다. 언럭키가 일부러 놔준 것이다. 자유로워진 언럭키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회수한 사신극검이 들려 있었다.
거리를 벌린 알폰소는 급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허나 곧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없다. 어디 갔지?’
언럭키가 어느새 어둠 속으로 은신해 사라진 것!
긴장한 채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언럭키는 찾을 수 없었다.
-촤악! 푸확!
“끄억….”
그때 어둠속에서 다시금 나타난 언럭키가 주홍검기를 휘둘렀다.
1초 유지되는 주홍검기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찌르기 대신 베기를 선택한 것이다.
짧고 굵게. 무려 3방이나 날린 주홍 검기의 위력.
결국 알폰소는 변변한 반항도 못한 채 쓰러졌다.
-띠링!
[보스 몬스터 : 알폰소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쓰러진 알폰소를 언럭키가 내려다봤다.
놈의 모습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말이 보스몹이지, 전투 난이도는 일반몹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지금껏 상대해왔던 그 어떤 보스봅보다 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홍검기 덕분이다.
언럭키가 사신극검을 쳐다봤다.
“역시 템빨이 짱이네.”
아주 훌륭했다.
***
보스몹 알폰소를 잡자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
“엇? 벌써 나오셨습니까?”
앞에 있던 빅드래곤 길드원 한 명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는 로버트의 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언럭키가 밖으로 나오려면 최소 하루 이상 걸릴 줄 알았다.
“설마…공략을 완료하신 겁니까?”
“예, 뭐….”
언럭키는 힐끗 그의 안색을 살폈다.
어렸을 때부터 고생하면서 기른 건 눈치 뿐이었다.
빅드래곤 길드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이. 왜 이 던전은 리젠이 안되서 참….’
언럭키가 아쉬운 마음에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보스몹을 잡으니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긴 했는데, 이렇게 좋은 던전을 나가야 했다는 아쉬움이 사무쳤다.
언럭키는 혹시 몰라 던전에 다가갔다.
그러자.
-띠링!
[알폰소 형제단의 은신처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또 한 번 입장 메시지가 나타났다.
“!”
눈을 부릅뜬 언럭키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재빨리 빅드래곤 길드원에게 다가갔다.
“길드원님. 혹시 제가 나왔다는 거 로버트님한테 얘기 하셨나요?”
“아직이요. 지금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잠시만요.”
언럭키가 세상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가 던전을 클리어하긴 했는데, 아직 지도 제작을 못 끝내서요. 전투에 너무 집중하느라 완벽히 공략을 한 것 같지도 않고요.”
“아, 네.”
길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지 싶었다.
언럭키의 레벨은 55였다.
무려 10레벨 차이가 나는 던전인데, 이렇게 단시간에 클리어하고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래서 말인데, 한 번 더 다녀오겠습니다.”
“네?”
“방금 확인해보니까 따로 쿨타임 없이 재입장이 가능하더군요. 한 번…아니, 몇 번 더 도전해서 완벽하게 지도 제작과 공략을 끝내놓겠습니다.”
언럭키가 다짐하듯 말했다.
지금 그의 상황에서 저 던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을 때까지 뽕을 뽑아야 한다!
그런 언럭키의 모습에 길드원은 감격을 받았다.
‘왜 길드장님의 기대가 이렇게 큰지 알겠네. 책임감이 아주…대단해.’
월드 사가는 직접 몸을 움직여서 플레이해야 하다 보니 피로도가 굉장히 크게 쌓인다.
던전. 그것도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나는 던전을 깨고 나왔으면 휴식이 간절할 것이다.
그런데도 빅드래곤 길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리해서 움직이겠다니!
이기적인 행태를 보여 주는 대다수의 유저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길드장님께 따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
언럭키가 움찔거렸다.
그건 좀 곤란한데…
허나 그런 언럭키의 기색을 눈치 채지 못하고 길드원은 말을 이었다.
“언럭키님이 저희 길드를 위해 애써주신 것.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전달해 드리지요.”
“하하…너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조용조용히 넘어가고 싶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허어. 겸손하시기까지…. 알겠습니다. 제가 길드장님께 꼭 강조 드리겠습니다.”
“?”
어째 언럭키의 원하는 바와는 점점 멀어졌지만 길드원의 태도는 확고했다. 설득의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가볍게 한숨을 쉬고 포기한 언럭키가 걸음을 옮겼다.
사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실랑이 할 시간에 레벨업이나 한 번 더 해야지.’
길드원을 뒤로한 채 언럭키가 던전에 입장했다.
***
그렇게 총 6번을 더 반복하며 던전을 돌았고, 언럭키는 기어코 60레벨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