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화
60레벨을 달성하기 위해서 언럭키는 던전을 몇 번이고 리트라이했다.
그 동안 던전을 클리어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다섯 번이 넘어가고부터는 본인이 느끼기에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고 생각이 되었으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빅드래곤 길드원은 놀라서 턱이 빠질 뻔 했다.
다만, 아쉽게도 내부의 몬스터들은 아쉽게도 더 이상 사이드 퀘스트 같은 걸 주지는 않았다.
보스 몬스터인 알폰소도 구슬 같은걸 소유하지 않았다.
알폰소 형제단은 그저 이 지하에서 언젠가 영주를 노리기 위해 준비하는 암살 단체일 뿐이었다.
“언럭키님.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뭘요. 로버트님이 이렇게 직접 오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던전 앞에 나와있는 로버트를 보고 언럭키는 찔끔 양심이 찔렸다.
로버트는 명색이 한 길드의 길드장이다.
게다가 회사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었기에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탐나는 인재를 영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월드 사가의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아이템과 스킬을 탐색하는 등. 찾아보자면 끝도 없다.
거기에 본인의 레벨까지 신경써야 하니,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랐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언럭키를 굳이 한 번 더 보러 온 것이다.
“아닙니다. 아무리 정식으로 계약서를 쓴 의뢰라고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해 주실 줄 몰랐습니다.”
이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함으로써 언럭키는 본인의 실력을 증명했다.
로버트 입장에서는 최고로 대우해줘야 할 특S급 인재인 것이다.
헌데 여기서 그는 인성마저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돈만 받고 어영부영 시간을 떼우거나, 아니면 대충 하거나 하는 척 하고 돈만 받거나…
가상 현실인 월드 사가이지만 어쨌거나 캐릭터를 덧씌운 제 2의 삶이다.
현실에서처럼 하지 않고 막나가는 양심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언럭키는 그런 점에서도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고생도 마다하고 몇 번이나 던전에 도전하면서 완벽을 추구하다니.
‘비즈니스를 논하기에 최적의 상대야. 이런 남자라면 한 번 더 보러올 만 하지.’
영업할 때 중요한건 별거 아니다.
얼굴 한 번 더 보고 밥 한 번 더 같이 먹는 등. 눈도장을 많이 찍는게 큰 역할을 한다.
괜히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약속이었는걸요. 일은 확실히 해야죠.”
언럭키가 말했다.
말하면서도 양심에 조금 찔렸지만 어쩔 수 있나. 뻔뻔하게 나가야지.
“오….”
대수롭지 않게 하는 언럭키의 말은 오히려 더욱 신뢰를 주었다.
재벌 3세로서 온갖 인간 군상들을 봐왔던 로버트는 이 일로 언럭키에 대한 믿음이 대폭 상승했다.
“계약에 명시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해 주셨는데 저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보수를 1.5배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
언럭키가 깜짝 놀랐다.
‘원래 3000만원이었으니까…4500을 준다고?’
이래서 재벌, 재벌 하는구나!
갑자기 로버트에 대한 충성심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언럭키는 열과 성을 다 해 로버트에게 던전에 대해 설명했다.
안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어떠한지, 패턴은 어떻고 보스몹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
이제는 눈 감고 사냥할 수 있게 된 놈들이다.
아무리 손쉽게 잡았다고 해도 특징 정도는 완벽하게 파악했다.
언럭키는 돈 받은 값어치를 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정보를 열과 성을 다해 알려주었다.
***
컵라면, 이용승, 박세훈.
언럭키가 재벌 출신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며 책임지기로 결정한 자들이다.
소위 언럭키의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럭키가 열심히 던전을 돌며 레벨업에 열중하고 있던 그 때, 팀원들 역시 놀고먹지만은 않았다.
“어어. 성 팀장님. 백현 씨 장부 가져왔어.”
박세훈이 성 팀장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를 내려놓았다.
올백머리에 무테 안경을 쓴 성 팀장이 무표정하게 그걸 바라봤다.
“…저는 세훈씨에게 그런 부탁을 드린적이 없는데요?”
“백현 씨한테 앞으로 장부 꼬박꼬박 써서 보고하라고 했다며.”
“그랬죠.”
“내가 앞으로 그걸 대리하기로 했어.”
“…….”
성 팀장이 박세훈을 빤히 바라봤다.
박세훈 역시 지지않고 시선을 마주쳤다.
지난 달, 백현은 말장난으로 성 팀장에게 줘야 할 수수료를 낮췄다.
수익은 훨씬 컸음에도 딱 천만원의 빚만 갚고 수수료도 거기서 5%를 떼어 준 것이다.
순수익이랍시고 이게 옳다며 주장하던 백현을 한 번은 넘어가주었다.
그러나 두 번 당할 성 팀장이 아니었다.
입출금 내역과 정확산 수입 증명을 요구해왔다.
앞으로는 정확하게 빚을 추징하고 본인 몫의 커미션을 떼어갈 생각이었다.
헌데…막상 그걸 장부로 가져온건 만들어서 가져온건 박세훈이라니.
촤르륵.
성 팀장은 장부를 슬쩍 훓었다.
역시나.
“대충 봐도 완벽하군요.”
“자세히 봐도 그럴걸? 내가 또 일처리 하나는 죽여주잖아.”
성 팀장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그가 자신의 상사였을 때부터 잘 알았다.
양아치 같아 보이는 외관이나 행동과 달리 일처리는 프로였다.
어찌나 대단했는지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명했다. 박세훈을 영입하려고 몇 개나 되는 회사들이 서로 싸우기까지 했으니.
허나 한 번의 실수로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걸 자신이 주웠다.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박세훈은 빚을 조금 탕감해주는 대가로 그에게 투자 자문을 받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흠.”
성 팀장이 장부를 덮었다.
백현을 괴롭히려면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었다.
완벽한 장부? 작정하고 조지려면 조져진다. 박세훈도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이렇게 나오는건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 장부를 받고 백현을 더 이상 들쑤시지 말라는 것.
“특이하군요. 박세훈 씨가 누구를 이렇게 나서서 도와줄 줄이야.”
“사람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안하던 짓을 하면 죽습니다.”
“지금 이게 죽어있는 것과 뭐가 달라.”
그럴 바엔 믿어 주는 사람이랑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박세훈이 중얼거린 말은 너무나 작아 들리진 않았다.
성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부는 잘 받았으니 가보세요.”
더 이상 이걸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박세훈은 성 팀장에게 개인 자문을 비롯한 투자의 여러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갑은 당연히 성 팀장이었지만 꽤 깊게 엮여있었기에 박세훈이 죽을 각오로 미친 짓이라도 저지르면 피해가 클 것이다.
즉, 박세훈은 지금껏 자신이 해준 것의 대가를 받겠다는 의미였다.
“흐흐. 매번 고맙다고 성 팀장.”
박세훈이 히죽 웃으며 문을 나섰다.
***
“이번 영상은 어떤 걸로 갈까요?”
-으음…. 어렵네요.
박세훈이 일하는 동안 컵라면과 이용승 역시 바쁘게 지냈다.
요즘 둘의 둘의 일정은 거의 대부분 통화하며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럭키의 미튜브 채널을 관리하고 있었다.
레벨업과 본인의 성장에 온 신경을 다 기울이고 있는 언럭키이다.
상대적으로 미튜브에 쏟을 시간이 부족했는데, 그렇기에 컵라면과 이용승에게 자율권을 많이 주었다.
두 사람은 좋으면서도 부담이 되었다.
본인들의 힘으로 채널을 성장시키고 있었지만, 다음 컨텐츠를 뭐로 할지 정하는게 어려웠다.
“언럭키님이 보내 주신 영상들이…하나같이 참 난감해서 말이에요.”
모든건 컵라면과 레벨차이가 많이 나서였다.
그가 언럭키를 항상 따라다닐 수가 없었고, 언럭키는 특이한 퀘스트를 많이했다.
그는 액션캠을 꼬박꼬박 찍어서 보내줬는데, 그 내용들은 경악할 만한 것들이었다.
“영주를 만나고, 기사랑 같이 집사를 잡아 쿠데타를 저지하고…. 도대체 언럭키님은 뭘 하고 다니시는 걸까요?”
-제가 궁금한게 바로 그거네요.
아직 레벨 100도 되지 않은 유저가 굵직한 것들을 많이도 하고 다닌다.
영주와 연관된 퀘스트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는 아마 언럭키가 역대 최저 기록을 갱신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건 지금 공개하기에는 위험해요.”
-맞습니다. 어그로를 끄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어그로가 아니라 압사를 당할 겁니다.
두 사람의 의견은 동일했다.
언럭키의 업적이 대단한건 맞았다.
미튜브에 공개하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겠지. 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안티를 넘어서 직접 행동을 하는 적들이 많아질 것이다.
때문에 영주와 관련된 퀘스트나 행동들을 풀 수는 없었다.
나중에 랭커가 되고 세력이 탄탄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건 어떨까요?”
컵라면이 가리킨건 언럭키의 사냥 영상이었다.
어느 숲에서 나무를 타고 다니는 레드 몽키들을 학살하는 영상.
언럭키는 여기가 영주와 그 직속 기사, 병사만이 들어갈 수 있는 숲이라고 했다.
-음. 확실히 이거라면 괜찮을 것 같군요.
어쩌다 여기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엔 평범한 사냥터 같다.
다른 유저들은 하나도 없다는게 이상할 뿐.
“이거 올리면 또 미튜브가 시끌시끌 하겠네요. 네르센에 숨겨진 사냥터가 있었냐는 식의 반응들이 있을 것 같은데.”
-당분간 유저들이 눈이 벌게져서 도시를 샅샅이 뒤지겠군요.
스마트폰으로 통화 중, 두 사람은 동시에 피식거리며 웃었다.
아직 업로드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 영상의 후폭풍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당연히 조회수 역시 장난 아닐 터.
“바로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예. 저도 할 수 있는 건 돕겠습니다.
자정이 넘은 늦은 밤이었지만 두 사람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
레벨 60이 되고 난 이후는 레벨업 속도가 확 죽었다.
예상은 했지만, 언럭키는 더욱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했다.
‘역시 쉽지 않네.’
빅드래곤 길드의 의뢰를 받아 던전을 여러번 클리어한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레벨업은 쉽지 않다.
도시 텔르흐렌 부터는 어느 정도 사냥터 적체가 해소된다.
광신도들의 마을처럼 인기 많은 사냥터는 여전히 NPC 경비가 인원을 관리하지만, 대부분은 자율성이 부여되었다.
충분히 유저들을 받아들일만큼 사냥터의 크기가 컸다.
그렇다고 그게 편하게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기요. 여기 저희 파티 자리니까 다른 데 가서 사냥하세요.
-혼자서 사냥하겠다고요? 제정신인가?
-쯔쯧. 꼭 그런 유저들이 있지. 자기가 예비 랭커인줄 알고 솔플을 고집하는 사람들.
-탈탈 털려봐야 정신 차릴거야.
언럭키의 인지도는 아직 아는 사람만 아는지라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를 못 알아봤다.
당연히 무시당하기 일수였고 제대로 된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간신히 겨우 1레벨을 올렸다. 거의 열흘 가까이 사냥터를 전전했는데도 말이다.
거기서 얻은 스트레스와 피로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
“하아.”
언럭키가 도시 광장 분수대 앞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바쁘게 살아야 하긴 하지만 열흘간 너무 힘들었다. 숨 좀 돌리고 싶었기에 간만에 광장에 왔다. 최고의 가상 현실답게 풍경만 봐도 힐링이 되었다.
-툭툭.
그때, 도시에 앉아서 쉬고 있는 언럭키의 어깨를 누군가가 건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도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거지 소년 NPC가 보였다.
“이거 받으세요.”
“?”
그는 조그맣게 적힌 쪽지를 건넸다.
“전 확실히 드렸어요. 분명 받으셨죠?”
“뭐?”
“나중에 모른다고 하시면 안 돼요. 그래도 빵은 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
“아니….”
언럭키의 당황한 감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소년은 휙 떠나갔다.
그를 붙잡아 뭔가 조금 더 물어봐야 할까 고민했지만 소년은 금방 사라졌다.
무슨 일인가 싶은 언럭키는 일단 쪽지를 펼쳤다.
[새로운 정보를 알아냈네. 이걸 보는 즉시 오두막으로 와 주게.]
언럭키가 눈을 빛냈다.
오두막으로 오라면 볼 것도 없었다. 헤탄이다.
‘드디어!’
아마 본인이 직접 오기에는 바빠서 사람을 시킨 모양이다.
다시금 연계 퀘스트를 수행할 때가 되었나보다.
벌떡 일어난 언럭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꿀꿀한 기분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