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95화 (95/218)

#095화

“여기쯤인데….”

언럭키가 지도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텔르흐렌을 벗어나 계속해서 걸어온 지 며칠이 지났다.

다행히 저번과 달리 이 방향에서는 가끔가다 몬스터가 등장해 줘서 마냥 시간을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레벨을 올리지는 못했어도 벨라의 숨겨진(?) 탱커로서의 면모를 확인하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여정이었고, 그들은 사막 지형에 도착했다.

발이 푹푹 담기는 모래나 몸을 따갑게 찌르는 햇빛을 보면, 어떻게 여기가 가상 세계인가 싶기는 하다.

어쨌거나 그런 사막 중에서도 어느 한 구석.

지도에는 두바르라고 표시된 지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건 모래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지도는 정확하다고 암상에서 자부했습니다.”

컵라면의 말에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입장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걸까요?”

그가 인벤토리에서 초대장을 꺼냈다.

당연히 일반 도시에서처럼 성문을 지키는 경비에게 보여 주고 입장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어떻게 쓰는 거야 이거?’

언럭키가 초대장을 팔락팔락 흔들었다.

그러나 딱히 큰 변화는 없었다.

혹시 찢으면 도시로 이동되는 건가 싶다가도, 만약 아니라면 상당히 곤란하니 뭘 해볼 수가 없었다.

언럭키와 컵라면, 벨라까지 세 사람이 뭘 어쩌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그 순간이었다.

-파악!

-팍!

모래 바닥이 솟구치더니 까만 야행복에 복면을 쓴 괴인들이 나타났다.

총 숫자는 여섯.

그들은 언럭키 일행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등장하더니 순식간에 세 사람을 포위했다.

“제 뒤로 오세요.”

언럭키가 굳은 표정이 되어 그들을 쳐다봤다.

복면인들은 제각각 단검을 쥐고 있었다.

그 때, 언럭키가 손을 까딱였다.

입으로 작게 스킬을 외자 검은 마력이 확 퍼져나갔다.

잠시 후.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해골 기사 두 기가 땅에서 솟구치더니 언럭키 일행의 앞뒤에 섰다.

마치 일행을 지키는 듯한 포지션.

그 외에 다른 해골들 18기는 조금 떨어진 곳에 등장했다.

복면인들의 바깥쪽에서 놈들을 포위하듯 크게 원을 그린 것이다.

언럭키 일행을 압박하듯 서있던 복면인들의 눈빛이 그제서야 흔들렸다.

자신들의 주변에서 칼과 활을 겨누는 해골들에게서 풍겨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디버프 스킬들을 사용하자 마력이 한 번 더 퍼져나가 복면인들을 감쌌다.

마력 수치가 180이 넘는 네크로 엠페러가 사용하는 디버프 스킬이다.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일말의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큭….”

복면인들 중 누군가가 불편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때,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해골 군대가 한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덜그럭 덜그럭.

복면인들은 이제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계속 언럭키 일행을 포위하자니 해골 기사가 이미 그들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반대로 뒤에서 자신들을 노려오는 해골 군대 쪽을 보자니, 이번에는 해골 기사들에게 등지는 셈이 된다.

말 위에 올라타서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해골 기사들을 본 순간,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그런 놈에게 등을 보였다가는 끝장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면인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제서야 언럭키가 입을 열었다.

“뭐냐. 너희.”

***

사막의 도시 ‘두바르’.

일반 도시와 다르게 이 곳은 범죄자나 어둠 속성을 지닌 자들이 모여 만든 도시였다.

그렇기에 조금 다른 점도 있었다.

평범한 도시의 무력을 상징하는 건 기사였지만, 두바르에서는 어쌔신이다.

은신과 암살을 주력으로 하는 어쌔신들이 두바르를 수호했다.

이아손은 그런 어쌔신들의 조장급 중 한 명이자 부단장이었다.

그는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정찰조의 보고에 부하 어쌔신들과 함께 출동했다.

떠돌이 여행자라면 죽여 없애고, 초대장을 가진 손님이라면 함부로 도시에서 까불지 못하도록 기를 죽여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 아니…그냥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야.’

어쌔신의 장점이 기습이건만, 설마 거의 완벽하게 그에 대응하다니.

처음에는 자신들이 포위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역으로 해골 군대에 포위되었다.

심지어 그냥 해골도 아니었다.

주인의 명령을 뚝딱거리며 수행하는 바보들이 아니라, 심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특히나 전방에 있는 해골 기사들은, 만약 놈들이 여기로 돌진해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렸다.

‘들어본 적 있어. 전설의…검은 뼈를 지닌 해골들.’

두바르에는 온갖 범죄자들이 모인다.

그런 두바르에서도 무시할 수 있는 손님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리바 델 레이’였다.

이상한 악신을 모시는 광신도들.

그들은 두바르에서도 자주 포교 활동을 했는데, 그러면서 그들이 모시는 신의 생전 능력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살아있는 인간일 적에는 검은 뼈의 해골을 다루고 어마어마한 저주를 뿌리던 존재.

‘저 자가…?’

해골들의 뒤편.

새카만 로브를 펄럭이며, 끝에 검은 보석으로 장식된 왕홀을 든 남자.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감히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했다.

이 해골들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확 왔다.

“뭐냐. 너희.”

그가 입을 열었을 때, 이아손은 급하게 눈을 낮춰 시선을 피했다.

더 쳐다보고 있다가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당할 것 같았다.

이아손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저 남자의 손에서 팔락이던 초대장을 봤었다.

그는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항상 하던 대로 기를 팍 죽이고 도시로 안내해 줄 생각이었지만, 이런 거물에게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초대장의 주인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이아손이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제 주인에게나 보일 법한 공손함이었다.

함께하고 있던 부하 어쌔신들 5명은 꺼냈던 칼을 집어넣더니 아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두바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저 이아손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아손은 긴장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주의했다.

만약 저 남자가 기분이 상한다면 자신들은 이대로 검은 해골들에게 짓밟혀 죽을 것이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를 잠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이아손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등을 돌렸다.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일단 주인님께 먼저 안내해드릴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주인님께서 좋아하시겠군. 이 시국에 저런 실력자를 우리 측에서 먼저 접선할 수 있게 되다니.’

그게 현 상황을 타파할 단초가 될 수도 있으리라.

***

‘후. 큰일 날 뻔했네.’

앞서가는 이아손을 따라가면서 언럭키가 그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모래바닥에서 어쌔신들이 갑자기 뛰쳐나왔을 때는 솔직히 깜짝 놀랐다.

아마 놈들이 단순히 포위만 하지 않고 바로 기습을 해왔었다면 한 방 먹었을 것이다.

‘사신’일 때와 다르게 지금은 은신을 눈치챌 수 없으니까.

‘물론 벨라님이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았겠지만.’

벨라의 아이템은 사기적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걸 몇 번이고 느꼈다.

방패, 갑옷. 기타 여러 방어구들.

그걸 잘만 활용하면 철벽처럼 앞에서 버티는게 가능했다.

해골 병사들과 조합이 좋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직업이 사기란 말이지.’

추가로 벨라가 설명해 준 바에 의하면 그녀는 아무 아이템이나 착용할 수 있지만 착용 가능 레벨과 차이가 너무 크면 성능이 많이 감소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 레벨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갑옷을 입으면 상관 없다.

레전더리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는 탱커일 때 효율이 아주 좋았다.

그녀가 성능 좋은 검을 들어봤자 힘 능력치가 낮으니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데미지는 그저 그럴 것이다.

반대로 좋은 갑옷과 방패를 들고 버티는 거라면 같은 수준의 탱커와 비교해 크게 꿀리지 않을 테고.

‘아니. 오히려 동레벨 탱커보다 더 낫겠지. 걔네들은 레전더리 방패랑 레전더리 갑옷이 없을 테니까.’

그래서 한 번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 재료들은 도대체 어디서 다 구한 겁니까? 아이템은 벨라님이 만들었다고 해도 재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닐 텐데요.

아무리 재료 아이템이라고 해도 레전더리 등급 정도의 결과물이 되려면 평범한 재료로는 안 된다.

아주 값비싸고 희귀한 물건이라야 가능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오빠가…줬어요.

-오빠라면 친오빠요?

-…네.

언럭키는 여기서 더 묻는걸 멈췄다.

‘이런 빌어먹을 금수저들.’

그런 귀중한 걸 동생이랍시고 턱턱 내어주다니.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고아인 언럭키로서는 마냥 부럽기만 했다.

“여기입니다.”

어쨌거나, 언럭키는 무사히 두바르에 들어올 수 있었다.

왜 이 놈들이 모래바닥을 불쑥불쑥 뚫고 왔나 싶었는데, 두바르는 사막의 지하에 있는 도시였다.

이아손이 초대장을 찢자 모래가 들춰지며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난 것이다.

‘그냥 고민하지 말고 처음부터 찢을걸 그랬어.’

이아손의 부하 어쌔신들이 먼저 앞으로 달려 내려갔다.

“귀한 손님이 오신다는 걸 먼저 보고하기 위해 보내겠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아손이 말했다.

언럭키는 고개만 한 번 끄덕여 주었다.

계단을 다 내려가니 도시가 나타났다.

성벽이 존재하지 않지만, 지하에 세워진 도시는 장관이었다.

“우와….”

컵라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이걸 놓치지 않고 담으려는 듯 연신 가상의 카메라를 여기저기로 돌려댔다.

벨라 역시 말은 안했지만 입을 벌리며 놀라하는 중이었다.

“도착했군. 이제 안내는 끝인가?”

언럭키가 이아손을 보면서 물었다.

원래 NPC에게 공손한 그였지만 이아손과는 첫 만남이 좋지 않았다.

그 후에 먼저 머리를 박은 이아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대화가 굳어져버렸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 주인님을 만나보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절대 억지로 제안드리는 건 아닙니다만,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아손의 말에 언럭키가 고민에 빠졌다.

그가 주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이 곳의 영주일 것이다.

일반 도시였다면 당연히 두 팔 벌려 환영했겠지만, 여기는 조금 다르다.

무법자들의 도시 두바르.

괜히 찾아갔다가 그 놈이 비신사적인 녀석이라서 공격해오면 어떡하겠나.

그러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언럭키가 고민에 빠져 있는 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사이드 퀘스트 : 도시 두바르 지배자와의 만남.]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도시의 지배자는 자신의 어쌔신들을 제압한 당신에게 흥미를 갖고 있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라.

-퀘스트 보상 : 대량의 경험치,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보지.”

대량의 경험치랑 연계 퀘스트?

이건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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