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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111화 (111/218)

#111화

도시 두바르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내전이 끝났고 마침내 차기 영주가 탄생했다.

그러나 도시 주민들은 영주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새로운 영주가 원래 어쌔신 로드였다지?”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통치가 시작되겠군.”

“정적들은 다 죽일 거고 잘못하면 괜히 죄 없는 우리들도 피해를 볼 수도 있겠어….”

도시민들의 입장에서 영주의 교체로 좋아지는 점은 크게 없다.

오히려 단점이 더 많았다.

내전을 벌여서 승리했으니 부하들 한몫씩 챙겨주고 자기도 크게 한탕 갖는 등.

그런 것들이 다 도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는가.

게다가 무력으로 집권한 영주이기에 반항할 수도 없었다.

허나 그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바뀌었다.

“이봐. 들었어? 이번에 릭스 패거리가 아주 개작살이 났대.”

“뭐? 릭스를 누가? 그놈 왕년에 검투사 랭킹 10위권까지 갔던 놈이잖아?”

“아 그렇지. 그래서 자기 힘만 믿고 뒷골목을 재패했는데…새로운 총령 각하께서 직접 응징하셨다더라.”

“총령 각하? 아니…너무 뜬금없잖아. 그분이 왜?”

술잔을 기울이던 남자는 이게 뭔소린가 싶었다.

총령 각하라면 도시 서열 2위.

실권으로 따지면 영주와 거의 막상막하라고 볼 수 있을 만한 대단한 권력자였다.

심지어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어쌔신 로드가 영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총령 덕분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 거물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뒷골목 깡패 무리를 처단했겠는가.

“나도 직접 보진 못했고 들은 건데, 뭐라더라. 세금 하나도 안 내면서 장사하는 너희 같은 놈들은 싹 다 감옥에 잡아넣어야 한다고 했던가?”

“뭐? 푸하하핫.”

그 말을 들은 남자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걸 릭스 패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로 있다니.”

“그러니까 말이야. 권력자들에게는 뒷돈 먹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폭력으로 누르니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는데 말이야.”

무법자들의 도시답게 불법 영업을 하는 자들은 많았다.

권력자들에게 적절한 성의 표시라 쓰고 뇌물이라 읽는 것들을 건네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특히 릭스 패거리 같은 거대 깡패 집단은 더더욱 그런 관리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새로운 총령은 골때리는 사람이었다.

-뭐? 뒷돈을 주겠다고? 이 새끼들이 미쳤나. 그만한 돈이 있으면서 세금도 안내고 장사하고 있었다고? 너희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진짜.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언럭키는 자비 없는 행사를 보였다.

-뭐 해. 저놈들 싹 다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어. 이 건물이랑 안에 있는 재산들은 싹 다 몰수하고, 흐흐흐.

언럭키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그는 도시 제2의 권력자였다. 심지어 영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깡패들한테 받는 몇 푼으로 성이 차겠는가.

‘싹 다 국고로 환수하면 그게 다 내 거지.’

도시의 쓰레기도 청소하고 세금 명목으로 슬쩍 좀 챙기고.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그런 언럭키의 행동은 시민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뭐, 뭐야. 권력자가…뇌물을 거부해?”

“와…나 살면서 저런 거 처음 봤어.”

“청렴결백…나 이 단어 사전에서만 봤는데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거구나.”

다른 도시는 몰라도 두바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권력자!

릭스 패거리 외에도 언럭키는 뒷골목 전체를 샅샅이 훓었다.

그러면서 돈 좀 있어 보이는 애들은 전부 작살을 내놓았다.

당연히 그럴수록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는 일상이 좋아졌다.

“이번 영주님은 좀 다른가 본데?”

“또 똑같은 놈들이 우리 수탈해가나 싶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

웨인을 비롯한 권력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웨인에게도 전해졌다.

“허어…. 정말이지 그 남자는 참….”

영주의 집무실.

이제는 어쌔신 로드가 된 이아손과 독대하던 웨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게 매번 예상을 벗어나는군.”

언럭키의 활약으로 웨인을 비롯한 새로운 영주 일당의 이미지가 전부 좋아졌다.

아무리 힘으로 영주직을 차지했다고 해도 민심을 무시할 수는 없다.

힘과 민심 둘 다 챙겨야 단단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 영주가 된 웨인은 수하들과 함께 매일같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좋게 보일 수 있을까.

헌데 생각지도 못하게 언럭키가 그 해법을 내놓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조금 그렇지만…저는 총령 각하가 좀 많이 해 먹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그랬어.”

이아손의 말에 웨인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언럭키는 이번 내전의 킹메이커였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그였기에 솔직히 총령의 자리를 주었다.

솔직히 그가 권력을 이용해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뭐라 할 수는 없었으리라.

헌데 그는 말도 못 할 행보를 보였다.

시민들이 이해 못 한 것처럼 웨인을 비롯한 영주 쪽 인물들 역시 이 소식이 진짜인가 싶어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역시 저 같은 소인배는 그분의 큰 뜻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음.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가 나와 함께해 준 것은 정말 천운이군. 거기에는 네 덕도 크다 이아손. 어쨌거나 네가 그를 나에게로 안내해오지 않았나.”

“어찌 그게 제가 잘해서였겠습니까. 영주님의 은총이지요.”

“하하. 참 듣기 좋은 말은 잘 하는군.”

그렇게 둘은 몇 마디 덕담도 건네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때 눈치를 보던 이아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그래서 말입니다 영주님.”

“뭘 그렇게 뜸을 들이나? 시원하게 얘기해 봐.”

“예. 사실 당분간만이라도 총령 각하를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웨인이 이아손을 빤히 바라봤다.

“아마 그는 이 도시에 평생 머물지 않을 거야. 여기 왔던 것처럼 언젠가 바람처럼 떠나가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언럭키가 총령이 된 것처럼, 이아손 역시 어쌔신 로드로 승진했다.

도시 두바르의 3인자이자 강력한 어쌔신 부대를 수족처럼 부리는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언럭키를 따라가려면 그 직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 늦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가, 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내라면 배울 게 많은 법이지. 로드 자리는 공석으로 비워둘 테니 더 성장해서 오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영주님. 평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아손이 감격해서 무릎을 꿇었다.

***

도시 두바르에 대한 게 미튜브로 방영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화제성은 생각보다 더 컸다.

오전 6시.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식사 겸 한자리에 모인 백현과 박세훈, 이용승.

세 사람은 오늘따라 심각한 표정이었다.

“백현 씨. 소식은 용승 씨한테 나도 들었어.”

“그러면 얘기하기 편하겠네요.”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새벽.

미튜브 채널에 달아놓은 백현의 계정으로 여러 문의 메일들이 왔다.

건수는 여러 개였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월드 사가의 ###길드입니다. 귀하의 미튜브를 감명 깊게 보았으며…(중략)…도시 두바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비밀리에 구매하고 싶습니다. 보수는…(중략)…

길드 이름과 미사여구 내용, 금액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쉽게 말해서, 두바르의 정보를 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진지하게 얘기해 보죠. 자유롭게 생각나시는 거 있으면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백현이 말했다.

그들이 오늘 고민하는 주제는 딱 하나였다.

“애블솔루 길드의 제안을 어떻게 할까요?”

애블솔루 길드.

월드 사가에서 수없이 많은 길드 중에서도 꽤 큰 덩치를 자랑하는 대형 길드였다.

유저 수도 많고 복지도 좋으며 성장세도 강력한 곳인데, 심지어 길드를 후원해주는 회사가 빵빵하다고 한다

그래서 엄청난 자금력으로 인재와 아이템, 스킬들을 휩쓸고 있다고.

어쨌거나 그런 애블솔루 길드에서도 메일이 왔다.

“이야. 백현 씨 성공했네. 정보만 받는 대가로 5억을 준다니. 실화야 이거?”

금액은 무려 5억.

억 단위 금액을 제시한 길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고작 정보 하나 받자고 5억이나 부른 건 애블솔루 길드가 유일했다.

사실, 처음 봤을 때 백현은 혹했다.

5억이라니.

(주)머니앤캐시에 갚아야 할 금액이다.

아니. 최근 몇 달간은 월에 천만 원씩 갚았으니 5억이 채 안 될 것이다.

빚을 갚고도 남는 돈!

이걸 받으면 당장 빚을 갚고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팀’과 함께 여기를 빠져나가기로 다짐했던 백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이용승한테 이 소식을 전했고, 박세훈한테도 전달해달라고 했다.

이미 그들과 함께 가기로 한 건 결정된 일이다.

그러니 괜히 더 욕심이 나기 전에 이걸 공개하고 함께 토의할 생각이었다.

“으음…. 5억이라….”

“…….”

박세훈과 이용승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박세훈이 히죽 웃었다.

“백현 씨. 그냥 이참에 빚 털고 먼저 나갈래?”

“예?”

“아니, 그렇잖아. 전에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앞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먼저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게 맞지.”

“…….”

백현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 역시 어젯밤에 했던 고민이지 않은가.

“…아뇨.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이거 숨기고 몰래 써서 나갔을 거예요.”

그러나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짐승도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안다.

그가 여기서 무사히 지내고 빠져나갈 희망이 생긴 데에는 두 사람의 도움이 컸다.

박세훈이 자금 관리를 해주고 이용승이 잘 편집해주지 않았다면 5억이라는 기회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군.”

박세훈은 목이 먹먹해오는지 침을 한 번 삼켰다.

지난번에도 알았지만 백현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런 애가 여기는 왜 들어온 건지.’

과거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지 듣지 못했지만, 참 궁금했다.

“크흠. 큼. 아 이거 아침부터 분위기 참 요상하네. 우리 다른 얘기 해보자고.”

박세훈이 애써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아 맞다. 백현 씨. 그러면 그 돈 나한테 맡겨 보는 게 어때?”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내가 요즘 다시 코인 시장을 좀 보고 있거든. 비록 한 번 대차게 말아먹어서 빚쟁이 신세가 되긴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 자신 있어.”

“…예?”

“우리 셋 다 나가려면 15억 필요하잖아. 그걸 언제 벌어서 모으겠어. 이거 터지면 인생 한 방이라니까? 그러니 그 5억으로…컥.”

듣다 못한 이용승이 그를 툭 하고 쳤다.

“그만 하세요 형님. 백현 씨가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도 안보이세요?”

“아니…나 명치 맞았어…숨이 안 쉬어져….”

“어…괜찮으세요? 제가 세게 치려고 한 게 아닌데….”

배를 부여잡고 엎어진 박세훈.

이용승은 뒤늦게 미안해졌는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려줬다.

그러면서 괜히 한마디 했다.

“무슨 이거 맞고 아프다고 해요. 형님은 역시 운동 좀 하셔야겠어요.”

“넌 사람 아프다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사실인 걸 어떻게 합니까. 형님은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두 사람을 보며 백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나 먼저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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