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언럭키는 오론을 보고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보스몹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 줄이야.
“너도 수문장이었구나.”
처음 봤던 수문장 벨리온은 훌륭한 경험치원이 됐다.
어디 그 뿐인가. ‘악의 정수’라는 레전더리 재료까지 드랍했다.
지금쯤 벨라가 열심히 그걸 가공하고 있겠지.
그런 녀석과 연관되어있다고 하니 절로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거, 거짓말 하지 마라.”
반대로 오론은 당황했다.
오론은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 이라는 타이틀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자신보다 윗줄에 있는 첫 번째 수문장께서 저런 제물에게 당하다니?
그러나 마냥 거짓말로 취급하기엔 걸리는 게 있었다.
‘어, 어째서 놈에게서 정수의 향기가 나는 거지?’
악의 정수.
위대하신 첫 번째 수문장에게만 제공되는 그것은 지옥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증명이자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보물이었다.
놈은 한 때 정수를 들고 있었던 건지, 그 정수의 향이 미세하게나마 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론은 혼란스러워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감정을 뒤에서 지켜보던 피자호빵도 느끼고 있었다.
‘아니…보스몹이 무슨 저렇게 당황을 해?’
항상 평범한 일반 유저였기에 보스몹 레이드 현장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헷갈리긴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보스몹이 저러는 건 이상한 것 같은데?
혼란스러워하던 오론은 고개를 붕붕 젓더니 악을 썼다.
“더 이상 제물의 개소리는 들어주지 않겠다. 너희 전부 지옥을 끌고 가 주마!”
악마 수문장 오론이 창을 바닥에 푹 찍었다.
-화르르륵!
불길이 피어나더니 보스룸 가장자리 부근이 전부 활활 타올랐다.
느껴지는 열기에 피자호빵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죽으면 손해배상 청구할겁니다 진짜?”
“그러세요.”
“으으…. 아 진짜 이거 레어 아이템인데…이번 달 생활비 다 털어 넣어서 산거란 말이에요. 혹시 드랍이라도 하면 큰일이라구요.”
피자호빵이 불평하자 언럭키는 피식 웃어보였다.
“그럴 일 없으니까 영상이나 제대로 찍으세요.”
“그건 걱정 안하셔도 돼요. 어차피 뒤에서 가만히 찍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피자호빵의 대답을 들은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새삼 컵라면의 빈자리가 아쉬웠다.
‘컵라면님이라면 오히려 역으로 이게 더 낫지 않겠냐며 제안도 해 줬을 텐데.’
새삼 그는 카메라맨이나 PD로써 재능이 있었다.
먼저 어떤 구도가 좋을지 설명을 해줄 때도 있었고, 알아서 편집점을 잘 잡아서 촬영 해 준 것이다.
그러나 일일 알바인 피자호빵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겠지.
그냥 3인칭으로 영상을 잘 담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쾅!
언럭키의 선빵으로 레이드가 시작됐다.
“크으윽….”
오론은 불타는 창을 들어 공격을 막았지만 힘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언럭키는 꽤나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고민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확실히 쉽겠다.”
한 수의 교환으로 대충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별로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펄럭
언럭키의 등 뒤로 빛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펼쳐졌다.
‘성왕’의 패시브 스킬, 하이 홀리 오오라였다.
“디바인 포스, 블레스.”
-화악!
우레 망치 머리 부근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언럭키가 한층 더 강화된 힘을 느끼며 망치를 치켜들었다.
‘와…이건 진짜 그림 멋있는데?’
피자호빵은 다급하게 카메라 구도를 잡았다.
주변은 불꽃에 휩싸여있고 눈앞엔 박쥐날개를 지닌 악마와, 그에 대치하는 신실한 성기사.
선과 악의 대결. 혹은 지옥과 천국의 대칭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애초에 영상 찍는걸 좋아하다보니 이런 알바를 하고 있던 건데, 멋있는 장면이 보이자 진정하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콰아앙!
-쿠르르릉!
“컥…!”
버프를 둘둘 두른 상태로 크게 한 방 휘두르자 아까와는 위력이 천차만별이었다.
거기에 더해 주변으로 퍼지는 ‘우레’의 벼락까지.
제대로 얻어맞은 오론의 HP가 확 줄어들면서 놈이 비틀댔다.
“확실히 벨리온보다는 많이 약해.”
커다란 화염칼 두 자루를 쓰던 벨리온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 때는 헤탄과 에토가 함께했었다.
언럭키가 앞에서 탱에만 집중해도 알아서 딜을 잘 넣어줬던 두 사람이 없는데도, 이 놈은 할 만했다.
-쿠르르릉!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우레’가 발동됐다.
심지어 ‘증폭의 지렁이’로 강화된 우레이다.
오론도 마냥 당해주지만은 않았다.
활활 불타오르는 창을 마구 찌르며 반격했다.
“크으윽. 죽어라 제물!”
-카가가각!
그러나 언럭키는 제자리에 서서 몸으로 전부 막아냈다.
“아니…!?”
오론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자신의 공격을 막거나 피한 것도 아니고 몸으로 그냥 버티다니?
-꽈아앙!
“커어어어어억….”
정확하게 또다시 얻어맞은 망치에 오론의 눈이 잠깐 새하얗게 변했다.
망치의 공격력에 우레의 피해까지.
HP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순간적으로 스턴에 빠진 것이다.
“와, 와아….”
뒤에서 피자호빵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저래서 파티원 없이 혼자서 하겠다고 한 거구나….”
언럭키의 전투를 보다보니 조금 전까지의 불안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로 계획 같은 것은 필요 없이 보스몹을 상대로 무식하게 치고받다니.
그러면서도 압도할 수 있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 공수 교환을 하다 보니 금세 전투는 중반부 이후로 넘어갔다.
그때부터 오론의 공격 패턴이 살짝 변했다.
-화르륵!
놈의 주변으로 불꽃이 치솟은 것이다.
사람 키보다도 더 높아진 불꽃이 파도치듯 주변을 덮치자 피자호빵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언럭키의 걱정이 되었다.
탱커가 버티는 딜과 저런 속성 공격은 또 다른 법인데….
-우웅!
허나 그 때 불꽃 속에서 환한 빛이 퍼져나갔다.
“힐!”
언럭키는 그을음 하나 없이 멀쩡한 얼굴로 불꽃 속에서 튀어나온 다음, 다시금 오론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불꽃에 피해를 입었지만 즉시 회복하고 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쾅!
-쿠르르릉!
번개와 망치의 콤보!
오론이 내지르는 창은 그냥 몸으로 맞고, 화염 피해는 버티다가 힐을 써서 회복한다.
단순 무식하지만 최고의 전략이었다.
“크아아악….”
결국 오론은 바닥을 박차고 훌쩍 날아올랐다.
“놈!”
오론의 눈동자가 공포로 흔들렸다.
“인정할건 인정해주마. 확실히 근접전에서 너는 나보다 우위에 있구나.”
지옥의 수문장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오론은 무식한 다른 악마들과는 달랐다.
‘인간은 보통 하늘을 날 수 없는 법이지. 천천히 요리해주마.’
박쥐 날개를 퍼덕거리며 공중에 체공했다.
어떻게 놈을 죽일까.
가까이 갔다간 또 저 무시무시한 망치에 얻어맞을 수 있으니 천천히.
그래. 불꽃으로 익혀줘야겠다.
회복도 할 수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자신의 불꽃은 무한하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승산은 이 쪽에 있을 터.
그러나 다음 순간 오론은 화들짝 놀랐다.
“가자 호야!”
“크릉!”
품속에 넣어두었던 고양이가 갑자기 커다란 백호로 변신하더니, 언럭키를 태우고 하늘을 달려왔던 것이다.
그 속도는 날개를 가지고 있는 자신과 필적할 수준.
-쾅!
“크아아악!”
당황하여 반응이 늦었던 오론은 또다시 얻어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언럭키는 절대 거리를 내어주지 않고 달라붙어 망치를 휘둘렀다.
대부분은 호야를 탔고, 그게 아니더라도 대도의 장화에 붙어있는 ‘슬리퍼리’를 쓰면 거리는 충분히 따라붙을 수 있었다.
오론은 어떻게든 창술과 화염으로 언럭키를 떨쳐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무슨 보스몹을 일반몹 패듯이 잡냐.’
피자호빵은 어이가 없는 상황에도 열심히 카메라로 그 모든 장면을 찍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었다.
‘이거 미튜브에 올리면 조회 수는 엄청나게 뽑히겠다.’
* * *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기분 좋은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우.”
언럭키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솔로 보스몹 레이드.
예상했던 것처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악마와의 상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왕’이라는 직업에, 딜탱이라는 현 상황.
그렇기에 레벨 차이가 15개나 나는 보스몹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다.
‘확실히 교단 공헌도 2만점이 크긴 크단 말이지.’
우레 망치와 세인트크리스의 신성한 광휘.
무기와 갑옷으로서 이 아이템은 그냥 레전더리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최소한 하급은 벗어난 명품이다.
그렇기에 현 레벨에서 이만한 포스를 내보일 수 있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전투가 끝나자 피자호빵이 말을 걸어왔다.
레이드 시작 전과 달리, 그의 얼굴은 약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자신 있게 솔로 레이드에 도전하셨는지 알겠어요. 이렇게 강하시니까 그런 거군요!”
사람들이 랭커들의 미튜브를 보며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의 플레이가 가슴을 뛰게 만들고, 즐거우니까!
자신은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데, 그걸 보고 대리 만족을 느끼며 응원을 하는 것이다.
피자호빵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상은 제대로 찍었습니다. 바로 보내드릴게요!”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저는 뒤에서 지켜본 것 밖에 한 게 없는데.”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 피자호빵은 눈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저…그런데 앞으로도 제가 따라다니면서 언럭키님의 영상을 찍어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일당은 적당히만 주셔도 됩니다.”
함께 다니면 돈도 벌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군요.”
그러나 언럭키는 일언지하에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보스몹은 시간이 비니까 한 번 잡아 봤던 거고, 이제는 지저 도시로 가야하니 굳이 그와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아아…역시나 그렇군요. 네. 그래도 오늘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렇게까지 거절하는데 말을 더 붙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피자호빵은 아쉬운 지 다음에 또 이런 일 필요하면 찾아달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언럭키는 그가 전송한 영상 파일을 가볍게 훑어봤다.
‘…센스도 컵라면님이 더 낫군.’
나쁘진 않았지만 딱 그 정도.
기본은 했지만 개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센스의 영역에서는 컵라면이 더 낫다는 게 느껴졌다.
굳이 그와 함께하지 않기로 한 건 잘 한 결정이었다.
피자호빵이 먼저 맵을 벗어난 뒤, 언럭키는 보스몹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챙겼다.
‘역시 좋은 건 하나도 없구만.’
예상했던 대로 잡템과 골드 정도뿐이었다.
물론 보스몹을 잡고 얻은 골드들이라 이것도 꽤 큰 금액이긴 했다.
그 순간이었다.
-파앗!
“어…?”
언럭키가 흠칫거렸다.
또다시 그의 앞에 빛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남색빛이었다.
‘뭐야. 천공의 탑 보스몹은 아무것도 없다더니. 그게 아니었나?’
지금까지 최소 수천 번은 공략되었던 놈이라, 이 놈은 경험치랑 골드 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미 오피셜이었다.
그런데 이 남색 빛은 뭐지?
언럭키가 빛의 진원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아이템이나 스킬이 아닌, 의외의 것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