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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화 (12/225)

11화 스승님

11화 스승님

의식이 돌아온다. 뒷머리로 차가운 바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손으로 땅을 짚고 일으키려는데, 어째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팔만인가, 다리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팔과 다리에 있는 신경다발이 끊긴 느낌이었다.

목을 제대로 돌릴 수도 없던 그때 옆에서 곽진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냐?”

“네.”

목소리도 간신히 쥐어짜내서 해야 했다. 전체적으로 힘이 없었다. 지쳐서 느려진 게 아니라, 힘이 아예 사라져버린 희한한 느낌이었다.

“몸에 힘이 없지?”

“네. 주화입마라도 걸린 걸까요?”

“그럼 네 입에서 말 대신 피가 나왔어야지.”

죽은 팔초어(八梢魚)처럼 사지를 엉망진창으로 하고 누워있는 내게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무리 움직이지 못해도 상단전의 감각은 살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몸이 제한당하니 예민해진 것 같았다.

곧 곽진도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표정은 뭔가 즐거워 보이는 듯했다.

“알고 계시는군요.”

“뭘?”

나는 온 힘을 다해 미간을 좁혔다.

“제가 지금 왜 이렇게 된 건지요.”

“알지. 요즘에도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몰랐을 뿐이다.”

아무래도 곽진도는 계속 싱글거리는 게 쉽게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난 천천히 상단전의 내공으로 몸을 살폈다.

그러나 내공이 정말 좁쌀만큼 밖에 없어서 다 돌릴 수는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듯 곽진도는 말했다.

“그래도 꽤 의연한 자세야. 네 나이에 그 증상을 겪으면 울고불고 부모를 찾기 마련인데 말이야.”

“이 정도 증상이면 성인도 울고불고할 것 같은데요.”

“성인 정도 됐으면 이런 실수는 안 하지.”

계속 실수라고 하는 거 보면 내가 기초적인 실수를 하기는 했나보다. 난 상단전으로 처음에는 심장, 간장(肝腸) 등 장기를 살피고 팔과 다리를 살폈다.

기본적인 실수인 만큼,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는 명백하게 보였다. 몸에 기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리 힘을 써서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근력은 남아있다. 근데 지금 내 몸은 그 이상을 쥐어짜내서 끝까지 해버린 거다.

근데 그게 가능한 걸까. 천돌(天突), 선기(敾璣), 옥당(玉堂), 단중(胆中), 거궐(巨闕), 구미(鳩尾), 모든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정말 어느 곳에도 몸에 기가 없었다.

“꽤 편안해 보이는구나.”

내가 가만히 있자 곽진도가 말했다.

원래 놀리는 것도 반응이 있어야 재미있는 법이었다. 곽진도의 장난은 끝났다. 그는 내 등에 손을 잠깐 대더니 자신의 진기를 불어주는 듯했다. 등 쪽에서부터 시원한 기운이 전신으로 뻗쳐갔다. 그럭저럭 전신에 힘이 돌아왔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건 침기(沈氣) 현상이라고 한다. 몸에 내공을 한 방울도 안 넘기고 다 쏟아 부었다는 바보짓을 했다는 얘기기도 하고. 싸우고 있는데 침기 현상이면 나 죽여주시오, 하는 꼴이 아니겠느냐.”

“반 각도 안 휘두른 것 같은데, 제가 내공이 많이 부족한가보군요.”

나는 힘이 생기자 땅을 딛고 일어섰다. 여전히 팔과 다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움직이는 데까지는 무리가 없었다.

“그건 아니야. 물론 네가 내공이 부족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네가 펼친 무공이 너무 상승의 격이라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거다.”

“그럼 제 수준에 안 맞는다는 건가요?”

곽진도는 내 질문에 잠깐 말이 멈추고 눈알을 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애매하구나. 확실히 내공의 수준에 비하면 상승의 무공이지.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내공은 없는 대신 초식을 완벽하게 펼쳐냈기에 반 각도 안 되서 기절한 거다. 드문 상황이야. 이런 건 보통 주화입마에 걸려 단전이 정상이 아닌 고수에게서나 볼 수 있다.”

난 눈을 살짝 찡그렸다. 침기 현상이 난 뭔지도 몰랐다. 대강 무공에 대한 잡학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잡학 축에도 못 끼는 실수였나 보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군요.”

“그냥 네가 머저리 같이 무리를 했다는 거지.”

“이제 이해가 되네요.”

몸이 안 움직이는데 억지로 운동을 하면 다음날 움직이기 힘든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될 터였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다는 말이겠군요.”

“그래. 반 시진이면 다시 회복 될 게다.”

“반대로 말하면 반 시진을 이렇게 힘빠진 채로 있어야 되는 거군요.”

“오히려 잘됐지.”

평소와 목소리가 달라서 나는 몸을 풀며 곽진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진지해져있었다.

“할 말이 많으니까.”

“무슨 할 말이십니까?”

곽진도는 입을 열려다가 숨을 한 번 쉬고 말했다.

“전에도 말해서 알겠지만, 네가 펼친 간 남해십이검이다.”

“네.”

“그리고 해남파의 불출(不出) 절기 중 하나지.”

나는 잠시 대답을 골라야 했다.

명가의 방파마다 불출 절기는 무조건 있었다. 적전제자에게 가르쳐주는 걸 속가제자한테 가르쳐줄 수 없으니까.

화산파로 치면 기명제자들은 자하신공(紫霞神功)을 가르치고, 속가제자들은 자하삼결(紫霞三決)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불출 절기를 문 외 사람이 익힌 것이 파악되면 그 문파에 속한 자들은 무조건 그를 죽이려고 한다. 어떻게 얻었는지를 막론하고 말이야.”

곽진도는 날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당연한 거야. 자신들이 거기까지 올라온 무공이 시장바닥에 팔리면 자기들 수준도 시장바닥이 되는 거니까. 특히 소림의 금강반야신공(金剛般若神功) 같이 적전제자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무공이라면 서역까지 쫓아가서 죽여 버리겠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러면 외총관님이 만드신 것처럼 변형을 했을 때는 어찌 처리합니까?”

“만드는 건 상관없는데 대신 원류 무공이 있는 문파에서 실현을 한 번 해줘야 돼. 거기서 유사성이나 기의 흐름 등을 검토하는데, 통과가 되면 아류 무공이 탄생하는 거지.”

생각보다 강호는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당당하게 할 말이 있었다.

“전 훔쳐서 해남의 검법을 배운 게 아니라, 가문의 이궁천뢰검법을 조금 변형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 얘기도 해야겠군. 눈치를 채고 있겠지만 이궁천뢰검법은 내가 너희 가문한테 선물한 무공이야. 내가 배운 남해십이검을 최대한 변형을 시켰고, 해남파에게 승인까지 맡았지.”

당연한 얘기였다. 같은 느낌의 무공인데 하나는 물에 대한 심득을, 하나는 번개에 대한 심득을 요구한다. 억지로 비틀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꽤 잘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는 놈이 있을 줄 몰랐지. 그것도 이런 꼬마가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구나. 기의 흐름이 어쩌고···”

“그래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상황이 완벽히 이해가 됐다.

“글쎄. 곤란하지. 네게 잘못이 없는 건 명백하다. 넌 훔친 게 아니니까. 잘못이 있다면 그 무공을 네가 눈치 채게끔 변형한 나와 그걸 검수한 해남에게 있겠지.”

“그렇군요.”

나는 답하고 곽진도의 눈을 바라봤다. 기분탓인지 목덜미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전 외총관님이 지금 당장 저를 때려죽인다고 해도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숨을 잠깐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게 제가 죽을 이유가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허나 무림은 도리와 명분이 아닌 힘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나는 모든 불합리를 경험하고 왔으니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곽진도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곽진도도 내 눈을 바라봤다. 내 말이 끝난 다음에도 눈빛 사이의 침묵은 팽팽했다.

“흐흐흐.”

그때 곽진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에게 뜻밖의 행동이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흐흐하하하하하하하!”

새어나온 웃음은 곧 연공부를 울릴 정도로 쩌렁하게 커졌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곽진도는 내 눈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녀석이군.”

곽진도의 웃음은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야 그쳤다. 그리고 등을 돌려 내가 아까 검을 썼던 연무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내가 썼었던 검이 사선으로 꽂혀있었다.

곽진도는 자연스럽게 검을 뽑더니 검극에 붙어있는 흙을 휘두르며 털어냈다. 흙이 피처럼 바닥에 흩뿌려짐과 동시에 검풍이 일었다.

그 검풍은 단순히 빠르게 휘두른다고 나는 게 아니었다. 그 검풍에는 귀를 멍하게 하는 울림이 있었다.

“남해십이검을 한 번 보여주마. 어떤 무공인지 끝까지 봐야겠지.”

곽진도는 검을 휘두르기 전에 날 바라봤다.

“너, 남해를 본 적 있느냐?”

“없죠. 집 안에서만 있었는데.”

“그렇겠지.”

알아서 납득한 곽진도는 기수식(起手式)을 세웠다.

“너한테는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곽진도는 무릎을 안으로 모으고 다리를 구부렸다. 검을 든 팔은 살짝 낮춰 검이 땅바닥에서 반 치 정도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됐다.

나는 저런 기수식 같은 거는 몰랐다. 금월상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보자마자, 저 기수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걸 깨달았다.

기수식에서는 바다가 되기 전 지류(支流), 즉 강의 운운(澐澐)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게 어떤 말도 없이 곽진도는 검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화려한 검무였다. 그는 나를 배려해서 속도를 낮추거나 세기를 낮추지 않았다. 그저 검에 흐르는 기만 붙잡고 있을 뿐.

내가 반 각 동안 보여줬던 네 초식은 한 초식처럼 보일 정도로 빨랐고, 그 후의 초식들은 점점 거세지는 파도처럼 갈수록 흉맹해져갔다.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 곽진도의 검은 마지막으로 하늘까지 입을 벌린 파도가 일거에 내리치듯, 위로 뛰어서 아래를 찍어내듯 벴다.

내공을 전혀 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이 기세에 밀려 내게 강하게 불었다.

“대단한 무공이군요.”

나는 감상평을 말했다. 분명 해남파가 아낄 수밖에 없는 절학이었다.

곽진도는 그런 격렬한 초식을 펼쳤음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 앞으로 왔다.

“만약 해남의 문인이면 너의 남해십이검을 보고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면 문파에서 포상금을 쏠쏠하게 주거든.”

곽진도는 아까처럼 내 눈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보통 해남의 문인이라면 말이다.”

나와 그의 눈빛이 오간다. 사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곽진도가 날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가 무림은 힘의 논리라고 말한 건, 그저 내 생각을 드러낼 기회가 있어서 그랬다.

난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곽진도는 그렇지 않을 수 있었기에 미리 알려준 것이었다.

지금도 곽진도가 내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랐다.

“허나 해남에서 제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위치에 있으면 다르지. 그저 네가 내 제자가 되면 무탈하게 넘어가는 거다.”

“협박을 하신 거군요.”

“네가 좋아하는 힘의 논리에 따라서 시험이라고 말하자꾸나.”

“무엇을 시험하고자 하신 겁니까?”

“갑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의 기개를 보려고 했지.”

곽진도는 멋쩍게 웃었다.

“왜냐하면 네가 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이기에. 많은 역경과 험지를 뚫고 나가야 할 길이기에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너는 내 시험을 넘은 대답을 하더구나. 기개는 신념의 토대다. 네가 신념이 있다면 이미 기개는 있는 것이니, 내가 할 말이 없더구나.”

곽진도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의 검병을 내 손에 쥐어줬다.

“원래 대 해남검파의 제자라면 입문 의식이 화려해야 하거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로구나.”

“괜찮습니다.”

나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웃었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나한테 이득이 되는 방향임은 분명했다. 강호에서 꺼낼 직함이 하나 생긴 셈이니까.

“넌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었지. 난 해남파의 천류명운검(千流溟澐劍) 곽진도라고 한다.”

“그렇군요. 전 황금세가의 막내 금목환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망설였지만 그 뒤에 말을 덧붙였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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