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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8화 (19/225)

18화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요

18화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성가장 사람들은 적어도 여기서 사망자가 나올 줄은 몰랐나보다. 진법에 걸려 열 명 남짓이 허무하게 죽으니 바로 흥분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한테는 오히려 좋았다. 흥분하면 동작이 커지기 마련이고, 가뜩이나 군데군데 있는 허점이 더 잘 보였으니 말이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검진(劍陣)이나 순서, 방위도 정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꼴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어떤 이도 첫 놈을 죽였을 때 썼던 초식, 해운무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해운무봉의 발검술은 경로가 정직한 직선이 아니라, 검을 가슴 앞에 세우고 막으려고 하면 허리춤이 뜯겨나가기 마련이었다.

“으아악!”

성가장의 무인들은 생각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내공 없이도 힘과 속도는 제법이었다.

그러나 역시 근본 없이 배운 무공이라 그런가, 그들이 휘두르는 초식에는 결함이 많았고 내가 가진 초식과 비교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난 무인들이 진지하게 초식을 휘두르는 걸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곽진도의 시범 몇 번과 금월상의 보여준 이궁천뢰검법이었다.

금월상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의 검법을 보면서 좀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기의 흐름대로 움직이지 않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게 왜 그런 것인가 곽진도에게 물으니 이러한 답이 나왔었다.

- 그거야 사람들이 초식을 단련하기보다는 내공을 단련하는데 더 힘을 쓰기 때문이지.

- 왜요?

- 그게 더 편하거든. 내공이 강하면 그냥 검기로 눌러버리면 되니까. 그리고 체계적인 교육을 안 받은 사람이면 초식은 엉망일 확률이 높아. 문자로 된 책을 보면서 완벽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곽진도는 그러면서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 그런 점에서 네가 말하는 기의 흐름, 성질을 따라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거다. 얼마 배우지도 않은 네 초식의 이해도가 현재 해남파의 이대제자 정도 되니까.

- 그렇군요.

-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니, 내가 복장이 터질 지경이구나.

곽진도의 말대로,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었다.

“으아악!”

한 복면이 내게 달려들기도 전에 피를 흘리고 엎어져 굴렀다.

이게 내가 노리는 바였다. 내공을 익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내공을 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싸움이 격화된다 싶으면 내공을 자연스럽게 끌어 올리니까 말이다. 이들은 내공을 완전히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고수도 아니었다.

남해십이검으로 어느 정도 합만 맞춰주면 무인들은 알아서 피를 뿜고 쓰러졌다. 사람이 아닌 짚단을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게 달려든 무인들이 전부 바닥에 누워서 부들거리기까지는 일 각도 걸리지 않았다.

“···이건 당최 무슨 사술이냐! 아니, 이 자체가 환술이 아니냐? 뭐 이런 진법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멍하니 지켜만 보던 수장은 곧 내게 외쳤다. 자신들의 수하가 허무하게 나가떨어진 게 믿을 수 없다는 것 같았다.

“궁금하면 내공 끌어올려봐.”

“정말 어디까지 오만할 예정인거냐.”

남자는 분노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친 김에 복면까지 벗었다. 볼에 검상이 난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내가 파옥쌍검(破玉雙劍) 문호현임을 모르는 구나.”

“처음 들었는데.”

난 대답했다. 스승님 별호도 몰랐는데 굴러다니는 무뢰배의 별호를 알 리 없었다. 허나 그는 자신을 모욕하는 줄 알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놈!”

문호현은 등에 교차해서 멘 검 두 자루를 꺼내 내게 달려들었다. 내공은 안 담겨있대도 밀려오는 대기에 압박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쌍검은 화려했다. 좌수, 우수로 번갈아서 공격하니 도저히 틈이 없었다. 역시 수장이라서 다른 무인들과는 달랐다. 심지어 내공도 간수를 잘하고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검을 계속 튕겨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문호현이 소리를 질렀다.

“내공을 안 쓰면 이길 줄 알았더냐? 너 같은 꼬맹이에게 어떻게 지겠는가!”

“그렇게 자존심이 세면서 어떻게 이청명 장로 밑에서 발바닥을 핥고 있었을까.”

“미친놈!”

처음에는 제압을 하려던 그도 이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었다. 검이 찌르고 베는 곳마다 혈자리였다. 흑도 무뢰배들의 생각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성가장은 이청명 사적으로 쓰는 조직이지?”

“조용히 해라!”

난 계속 질문을 던졌고 문호현은 막으면서 성을 냈다.

“분명 이청명이 돈을 댔을 거고, 그 장부는 성가장 안에 있겠지.”

검은 계속 내게 날아온다. 나는 계속 뒤로 밀려났다. 이제 더 나아가면 형제들이 있는 중문 근처까지 갈 것 같았다. 허나 내 입은 쉬지 않았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넌 언젠가 이청명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거야.”

문호현의 눈이 강하게 찡그려졌다. 정말 난 사실을 얘기한 거였다. 내가 아는 한에 이청명 밑에 성가장이라는 조직이 없었으니까. 언젠가 사라졌다는 거다. 그리고 이청명은 그 조직을 해체할 때 남은 사람을 자유롭게 풀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문호현에게는 믿기 싫은 소리였나보다. 그는 분노를 담아 대놓고 내 목을 노렸다.

난 바로 몸을 뒤쪽으로 젖혔다. 유연하게 허리가 꺾였지만, 차마 따라오지 못한 머리카락 몇 개가 잘렸다.

어깨를 젖힌 것을 다시 앞으로 튕긴다. 궁신탄영(弓身彈影)의 묘리. 몸이 탄환처럼 쏘아져 나가면서 해운무봉을 같이 펼쳤다.

가뜩이나 쾌검 초식인 해운무봉에 궁신탄영을 더하니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촤악!

귓전에 강하게 바람이 분다 생각했더니, 문호현의 가슴팍에는 어느새 내 칼이 박혀있었다.

“···어.”

문호현은 목을 아래로 해 꽂힌 검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본인이 왜 졌는지 이해가 안 되는 듯했지만, 문호현에게 무언가를 이해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검을 뽑자 문호현은 피를 쏟으며 땅으로 엎어졌다.

이제 이 진법에서 서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난 다시 진각을 굴렀다.

안개가 하늘 위로 날아갔다. 하얗기만 하던 안개에는 푸른 실들이 섞여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저것이 사람들의 몸에서 나온 진기였다.

“후우.”

처음 사람을 죽였지만 딱히 어떤 감흥은 들지 않았다.

저리는 손바닥을 펼쳐보니 손금의 길마다 피가 배어있었다.

계단 위의 중문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모여 있는 내 형제들이 보였다. 날 보는 형제들의 눈은 성가장 무인들의 눈과 대동소이했다.

“···네가 왜, 그렇게 강한 거냐?”

먼저 물은 건 금월상이었다. 진법은 안개가 끼긴 했지만 충분히 보일 정도였기에 그들은 내 싸움을 모두 본 거였다.

그나마 나랑 가까운 금월상도 낯설어 하고 있는데, 금화청과 금수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음.”

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것보다 타인이 하는 게 더 정확했다. 그래서 곽진도의 말을 옮겨서 전할 수밖에 없었다.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요.”

“허.”

금월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네가 건곤각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검술을 배운 적 없지 않았더냐. 손바닥에 칼을 휘두른 흔적이 거의 없었는데.”

“맞습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재능이라잖아요.”

말을 끊은 건 금수린이었다. 금월상은 멍하니 금수린을 쳐다봤다. 금수린은 빠르게 중문에서 내려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동생아. 너 진짜 강하구나! 대단해! 진짜 멋있었어!”

“아, 네. 감사합니다.”

금수린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다가 뒤를 홱 돌아보았다.

“월상 오라버니. 지금은 무공 같은 거 물어볼 때가 아니라, 고맙다고 해야죠.”

“···음, 응. 어. 그렇지.”

갑자기 매섭게 변한 금수린의 말투에 금월상은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청 오라버니는?”

“···으.”

금화청은 나를 보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재능이라고 했지. 아무리 그래도 상식선에서 이해가 안 되는데···”

“아, 오라버니!”

금수린은 금화청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금화청은 지금 어머니의 제단 앞에서 소란을 떠는 금수린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충격적인 상황에 예의는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애초에 내가 금화청에게 굳이 감사 인사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오히려 그들을 엮이게 한 게 나였다. 내가 감사함을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감사 인사는 됐습니다.”

난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다음, 금수린과 같이 그들이 있는 중문 쪽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렇게 소란을 피웠다고 해도, 우리는 어머니를 보러 온 거니까. 할 일이 있었다.

허나 몸을 돌리기 전 저 멀리서 누군가가 이 옥화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등령당주인 줄 알았다. 그나마 올라올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러나 걸어오는 사람은 난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좀 더 가까이 와서야 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우리를 옥화산 밑까지 데려다 준 마부였다.

나는 바로 옆을 보고 금수린을 윗쪽으로 밀었다. 금수린은 얼떨결에 다시 중문 쪽으로 올라갔다.

“저기 월상 형님 옆에 붙어계시죠.”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지금 저 마부는 내 상단전의 기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뻔히 보이는 시야에서 기감을 감추며 오고 있었다. 나를 시험하려는 걸까.

나는 짐짓 미소를 지으며 마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마부, 여기까지는 어쩐 일인가?”

마부도 나한테 천천히 다가왔다. 옥화산이 경사가 깊어서 그런지 땀범벅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니, 경사가 높으니까 숨을 몰아쉬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연기는 형편없었다.

“너무 안 오셔서 한 번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마부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연기는 너무 성의가 없어서 잠깐 웃음이 나올 뻔했다.

곧 상대의 이목구비가 명확히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됐다.

“···공자···”

마부가 다시 연기를 하려고 할 때, 나는 바로 들고 있던 검으로 그의 목에 해운무봉을 날렸다. 물살을 닮은 쾌검이 거친 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난 그의 기감을 읽지 못했을 때부터 출수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칼날은 그의 몸까지 닿을 수는 없었다. 검이 닿기도 전부터 어마어마한 반탄력을 느낀 것이다. 저기다 초식을 쓰면 오히려 내 손이 망가질 터였다. 난 중간에 해운무봉을 끊고 홍곡유수를 펼쳐 최대한 웅크렸다.

광적일 정도로 공격적인 남해십이검에 있는 유일한 수비 초식이었다. 순식간에 검극과 검병의 위치가 바뀌었다.

“아까도 봤지만, 굉장한 완성도의 초식이구나.”

마부는 아까 호들갑 떨던 표정에서 어느새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뒷발에 힘을 싣지도 않고 앞발로 내 검병을 밀듯이 찼다.

쾅!

물론 그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석 장(丈)은 넉넉히 밀렸다. 내 발뒤꿈치 뒤에는 작은 모래산이 만들어졌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나는 몸의 내부에서부터 고동치는 찌릿한 진동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그 천하의 천주성이 말이야.”

마부는 내 말을 듣더니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 이후 마부의 입에서 진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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