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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2화 (23/225)

22화 헌신하느라 고생했네

22화 헌신하느라 고생했네

“왜 아직도 보고가 안 들어오는 거지?”

이청명이 내총관에게 물었다. 내총관도 정보를 중간에서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성가장에서 주지 않으면 할 말이 없었다.

“이 정도면 여강이 아니라 횡봉(橫峰)에서 출발해도 도착했을 시간인데.”

“믿을만한 보체와 호위무사 몇몇을 보냈습니다.”

이청명은 한숨을 쉬었다. 내총관은 너무 느렸다. 돈으로만 이어진 관계기에 충신이라는 느낌도 없었다. 물론 자신이 그렇게 손찌검을 했기에 충신이 되려야 될 수도 없었다.

“진작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진작.”

내총관은 억울했다. 이청명은 늘 사람이 예상할 수 없는 일을 예상하고 움직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이청명한테 받는 돈이 쏠쏠하기 때문이었다.

“그쪽은 연락도 안 왔나?”

“네. 아직 안 왔습니다.”

이청명은 바로 근처에 있는 목함(木函)을 잡고 내총관에게 던졌다. 목함이 부서지고 내총관의 이마에는 또 피가 흘렀다.

이청명은 늘 그랬다. 자신은 어딘지도 모를 ‘그쪽’과 연락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폭력적으로 돌변했다. 애당초 어느 곳인지 알면 이렇게까지 분통이 터지지는 않았으리라.

내총관은 모르지만, 이청명이 그렇게나 조급해 했던 건 그것이 천주성의 연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청명에게 성가장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천주성이었다.

원래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게 되어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천주성의 연락이 끊긴 거다. 손톱을 깨물었다. 초조했다. 성가장과 천주성의 연락이 동시에 끊긴 게 관련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찝찝했다.

“안 되겠어. 내총관, 직접 가봐.”

“네?”

“애들 못 믿겠으니까 직접 갔다 오라고. 진철이랑 성범이 데려가면 되지. 말을 타고 가면 왕복 두 시진이면 될 거고.”

내총관은 자기 마음대로 계획을 짜는 이청명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청명과 내총관은 사실상 운명 공동체였으니까,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예. 갔다 오겠습니다.”

어쩌다 이런 망종하고 엮이게 됐는지. 이청명과 내총관은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

중원은 역시 넓다. 평생 살면서 한 개의 성을 벗어나지 않은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많다.

전생의 나 역시 그랬다. 심지어 강서성 안에 있는 곳도 전부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의 눈치도 없이 자유롭게 다니는 게 어색했다.

그러나 재미는 있었다. 걷다가 가끔 도로나 산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허허. 아이야. 길을 잃었느냐?”

“아니요.”

“복색을 보니 귀한 집의 자제 같은데, 어찌 혼자 돌아다니느뇨?”

“할 일이 있어서요.”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는 등 뒤에 도끼와 나무토막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지게를 같이 메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혼자 돌아다니지 말려무나. 허리춤에 칼만 차고 있으면 다 무림인인 것처럼 보일 줄 아느냐?”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그머니 등으로 손을 돌렸다.

“이렇게 나 같은 나쁜 어른을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리고 바로 도끼를 꺼내더니 내게 내려쳤다.

“억!”

바로 도끼는 허공을 갈라서 온 힘을 주고 내려쳤던 남자의 균형이 무너졌다. 균형이 무너진 남자는 내게 뒷목을 아주 훤히 내보였고, 나는 그냥 내려치기만 하면 됐다. 잘린 목은 끈에 묶어 근처 나무에 매달아 놨다.

여강으로 가는 길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귀한 옷을 입고 또 어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허나 그런 사람들은 대개 본인에게서 혈향이 난다는 걸 인지도 못하고 친근한 척 다가오기에 다 알 수 있었다. 굳이 몰랐어도 다 피할 수 있는 수준의 잡배들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정말 나를 걱정하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옥화산에서 여강까지 걸어가면 여섯 시진 정도 걸렸다. 꼬박 반나절을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급한 건 아니었다. 만약 급했다면 마을에서 어떻게 말이라도 공수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바깥을 평화롭게 걸어보는 걸 즐기고 싶었다. 물론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나름 좋았다.

나는 여강으로 가면서 걸음을 쉬지 않았다. 해모환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몇 번은 쉬었어야 했을 터다.

허나 이제는 균형 잡힌 하단전의 기운이 내 팔과 다리에 안정적으로 기를 공급하고 있었고,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해가 진 저녁쯤 여강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니 여강을 와보는 것도 처음이구나.”

남창과 가까이 붙어있는 마을 중 하나인데 처음 와봤다. 당연하지만 남창보다 번화한 마을은 아니었다.

작은 객잔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게 띄엄띄엄 보였다. 아직 완전한 밤은 아니라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좀 있었다. 나는 주변 상인 중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혹시 아저씨, 여기 성가장이라고 아세요?”

“성가장? 아. 거기.”

아저씨는 바로 대충 설명했다. 직진한 다음 오른쪽으로 세 번 꺾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성가장을 찾아갔다.

쉽게 설명한 것 치고는 반 시진이 걸리기는 했지만, 난 결국 성가장을 찾아왔다.

딱 봐도 수상한 곳이었다. 주변에는 민가 하나 없이 덩그러니 있는 장원이었다. 정문의 구석에는 커다란 거미줄이 쳐져있고, 현판 또한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문의 경칩은 깔끔했다.

결국 사람이 없는 곳으로 최대한 위장을 하고 있다지만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는 뜻이었다. 역시 금월상은 꽤 좋은 정보처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은 여유가 있었고, 이미 큰 싸움은 끝났다지만 지체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정문으로 걸어가서 문을 흔들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여기 사람 있나?”

나는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한 흔적이 보이기는 했지만 정작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원래 여기 있어야 할 성가장 사람들은 옥화산 땅 밑에서 부패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이들도 주고받은 연락책이 있을 것이고, 최소한 한 사람은 남아있을 게 분명했다.

“어떤 새끼가 문도 안 두드리고 막 들어오나?”

예상대로 안쪽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귀찮은 표정으로 나왔다. 방금 잠에서 깬 듯 눈에는 눈곱이 달빛에 비쳤다.

“뭐야.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남자는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더니 흠칫했다.

“이렇게 안 돌아올 리가 없는데.”

나는 안중에 없이 홀로 부산을 떨며 혼잣말을 하는 남자는 그제야 내게 눈이 닿았다.

“혹시 형님이 보내신 사람인가?”

그의 말에는 일말의 희망감이 담겨 있었다. 내가 성가장의 사람들이 보낸 파발이고, 늦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는 눈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내가 달의 역광을 받아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 누구? 혹시 세가에서 왔나?”

“그래. 황금세가에서 왔지.”

“그래? 그럼 안으로···”

남자는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의 행동을 바라봤다. 남자는 소매에 있는 비수를 꺼냈다.

아무리 안 보여도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니까.

남자가 경계하고 나도 슬슬 검을 꺼내려고 할 때 뒤쪽에서 갑자기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난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난 바라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바로 내총관이었다. 내총관의 좌우에는 호위무사 두 명이 있었다. 내총관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내총관의 거리나 각도에서는 내 얼굴이 명확하게 보일 터였다.

“···공자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내총관이 물었다. 나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내총관은 여기 어쩐 일이지?”

“세가 일로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나도.”

내 말에 내총관은 얼굴을 찌푸리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외총관 없이 혼자 오신 겁니까?”

“응.”

“간이 배 바깥으로 나오셨군요.”

그렇게 말하는 내총관의 표정은 한결 편해져 있었다. 무조건 내가 있으면 외총관이 있을 거라 생각한 듯하다.

“여기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내총관으로서 공자님의 행동을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소리인가. 내총관.”

내총관을 보면서 깨달았다. 이청명은 아직 자신이 끝난지 모르고 있다는 걸. 난 이청명이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이미 세가에서 벗어나 달아나고 있을 걸로 예상했다.

근데 내총관을 여기 보낸 걸 보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였다.

내총관과 이청명이 붙어먹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비밀도 아니다. 이청명은 내총관을 자주 금정원으로 소환했으니까 말이다.

“이청명 장로는 이미 끝났어. 그에게 가담한 사람들도 끝날 예정이지.”

그 말에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표정이 순간 찡그려졌다. 나는 그제야 허리춤의 검을 비로소 빼어들었다.

“내총관. 지금까지 세가에 헌신하느라 고생했네.”

내 몸에서 진기를 흘려보냈다. 몸 바깥으로 흘려보낼 정도면 확실히 진일보한 건 맞았다. 다룰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는 것이니까.

난 진기를 풍기며 내총관에게 서서히 걸어갔다.

그게 그들에게는 얼마 정도의 압박이었는지. 뒤에 있는 성가장의 사람과 앞에 있는 호위무사 두 명이 동시에 앞뒤로 달려들었다.

*

내총관은 금목환의 몸에서 맑고 흰 진기가 나오는 걸 느꼈다. 무인이 아닌 자신도 느낄 지경이니, 근처의 호위무사들은 더 예민하게 느꼈으리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금목환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숨이 점점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아마 호위무사들이나 성가장의 무사가 급하게 출수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거다. 자존심 상하게도, 금목환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낀 거다.

바로 호위무사들과 뒤의 성가장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금목환에게로 날아갔다. 호위무사들 역시 이청명이 꽂아 넣은 무사들이었기에 직계를 해치는 동작에도 거침이 없었다.

내총관은 살짝 긴장했다. 잠깐 금목환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세 명의 무인들이 달려드는 데 꼬마 하나 처리할 수 없겠는가. 긴장이 되는 건 막내공자가 죽고 나서는 어떻게 하냐는 거였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역시 우리 세가 호위무사들은 정말 형편없구나.”

금목환은 검을 가로로 눕혀 세 명의 검을 동시에 막아냈다. 곧 금목환의 검에서 푸른 빛이 나더니 폭발음이 들렸다.

“···내공.”

내총관이 무공을 몰라도 내공과 내공이 부딪치는 소리 정도는 안다. 아까 금목환이 풍겼던 위협은 거짓이 아니었던 거다.

예상치 못한 내공의 부딪침으로 나가떨어진 무사들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제 그들의 검에 맺힌 빛도 한 층 더 강해졌다.

기는 검의 사정거리를 늘려주기도 한다. 보이는 것에만 혹하면 당할 수가 있었다.

금목환은 잠깐 무릎을 굽히는 듯 하더니 위로 길게 뛰었다.

“아직 애송이구나! 위로 도망치지 않는 건 삼류도 아는 상식이거늘!”

성가장의 무사가 소리쳤다. 그의 말은 맞았다.

허공답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공중에서 움직이는 건 제약이 크게 따랐다. 위로 뛰어서 피하는 건 최후의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바로 무사 세 명은 금목환이 떨어질 수 있는 낙하지점에 모여 위로 발검했다.

무사들은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총관은 봤다. 달빛에 비친 금목환의 입가에 미소가 은은하게 걸려있는 것을 말이다.

금목환은 허공에서 칼을 본인의 허리 뒤로 깊숙하게 찌르는 듯하더니 크게 휘둘렀다. 검에서는 하얀 기막이 파도 같은 형상을 해보였다. 파도는 달빛에 비쳐 더욱 아름답고 강력해 보였다.

“기막이 어떻게···”

세 명 중 한 명, 누군가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냈다.

촤악!

물을 땅바닥에 쏟았을 때의 소리가 나면서 세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금목환은 빠르게 검을 휘둘러 엎어진 세 명의 뒷목을 깊게 베었다.

“위에서 내리치는 게 아래에서 휘두르는 거 보단 강한 건 삼류도 아는 상식이 아닌가.”

금목환은 피를 쏟아내는 세 명에게 가르치듯 말하며 내총관을 바라보았다.

내총관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았다.

지금이라도 빌어야 할까, 어떻게 강해졌냐고 악을 써봐야 할까, 자신을 죽이면 장로들의 반발이 강해질 거라고 협박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어느새 금목환은 본인 앞으로 날아와 검병을 앞으로 하여 휘둘렀다.

순간 내총관은 목에 둔탁한 통증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총관은 눈을 떴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손과 발에는 벽과 연결된 구속구가 묶여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목에는 얼얼함이 느껴지고, 머리는 멍했다.

본인이 살아있는 건지, 죽어있는 건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금목환이었다.

“일어났군. 내총관.”

금목환은 구속구로 묶인 내총관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그렇게 말하는 금목환의 눈에는 푸른 안광이 비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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