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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34화 (35/225)

34화 생각보다 대어가 낚였군요

34화 생각보다 대어가 낚였군요

옹소후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금목환이라는 놈이 옹문규를 이길 정도의 무위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놀랐지만, 비무 중 형산 무인의 팔을 베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강호에 몇이나 되겠는가.

삼대제자들이 곧장 정원으로 달려가 옹문규의 혈을 점하여 팔을 지혈했다. 옹문규의 장담대로 잘려진 팔의 단면은 어딘가에 깔려서 뜯어진 듯 뭉개져 있었다.

얼떨떨해 하는 옹소후를 향해, 금목환이 말했다.

“안타깝게 됐군요.”

“···안타깝다?”

옹소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보셨겠지만, 먼저 위험한 초식을 써서 맞받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전이 노려지는데 손바닥을 노리면 육참골단으로 제가 당했을 테니까요. 만약 제가 먼저 살수를 쓰고, 여기가 형산이었다면 팔이 아닌 목이 날아갔겠죠.”

금목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납검했다. 옹문규의 비명은 삼대제자들이 마혈을 짚어 기절을 시키고 나서야 가라앉았다.

정원에 흐르는 공기가 가라앉았다. 옹소후도 알고는 있었다. 옹문규가 먼저 하단전으로 향하는 살초를 날렸다는 것을.

그러나 고작 상가 따위에서 모욕을 당한 걸 모자라, 촉망받는 후기지수의 미래까지 빼앗기고 왔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옹소후는 계산을 마치고 발검해 기수식을 세웠다.

검의 형태를 따라 기가 크게 솟았다. 단순히 검의 테두리를 따라 기를 두르는 게 아닌, 검을 매개로 해 길이를 늘이는 경지.

검이 직접 닿지 않고도 사람을 상할 수 있는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 옹소후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이 일류라고 증명하고 있었다.

“불복하겠다는 겁니까?”

금목환이 물었다. 옹소후의 눈이 침잠했다. 이 상계놈들에게 강호의 생리를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강호의 이치를 따르는 법이라네. 약자랑 한 약조를 지키는 강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비겁한 말이에요!”

말을 외친 건 금수린이었다. 금수린은 손을 떨었다. 자신이 무인한테 이렇게 말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다만 자신을 뱀처럼 바라보는 거나, 금목환을 위협하는 거나,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 그녀를 너무 화나게 했다.

“계집이 삼가지 않고 말하는 걸 보니 아직 교육이 덜 되었구나.”

옹소후는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첩(姬妾)이 되면 가르칠 게 많겠구나.”

아까는 힐끗 바라 본 것이지만, 대놓고 바라보는 눈에는 음심(淫心)이 가득했다. 금수린은 소름 돋는 걸 간신히 참으며 옷매무새를 안쪽으로 여몄다.

“너무 더러운 말을 많이 들어 귀를 씻고 싶군.”

금월상도 금수린 앞에 서서 칼을 꺼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먼저 옹소후가 출수를 했다. 그것을 신호로 바로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온 검광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금수린과 금화청은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번쩍임만 볼 수 있을뿐이었다. 무인들과 일반인은 그런 정도의 차이였다.

옹소후는 구향검법의 묘리를 이용해서 서서히 압박했다. 거의 모든 방위를 이용하여 유려하게 공격한다. 형산의 모든 무공에 바탕이 되는 검법이 유유하게 펼쳐졌다.

전방위에서 가둬진 것 같은 검격이 금월상을 감쌌다. 금수린은 두 손을 입에 모았다. 금월상이 모든 검격에 찢겨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허나 금월상은 검극에 뇌기를 모으더니 일점돌파를 해나갔다.

섬섬극극(閃閃亟亟)의 초식. 직선으로 뻗어지는 검광. 감싸오는 무공을 일점으로 뚫려는 생각이었다. 검 끝에 기를 집중하는 무공의 특성상, 부딪치기만 하면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금월상의 뻗은 앞발과 다가오는 옹소후의 신발 코가 서로 맞닿았다.

옹소후는 눈을 번쩍 떴다. 금월상의 무공을 배웠다는 건 알았지만, 자신을 압박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월상은 생각보다 자신의 몸에 가까이 붙었다. 엄청난 쾌검과 속도였다. 이건 웬만한 내공의 폭발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생각보다 내공이 많다. 옹소후는 그렇게 판단하고 여러 방위에 펼쳐놨던 검기들을 모두 회수해 금월상을 검을 막았다.

쿵!

옹소후가 밀렸다. 옹소후의 발뒤꿈치로 흙이 말려서 올라갔다. 금월상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옹소후는 자신을 얕보고 커다란 초식을 썼다. 이미 옹소후의 무게중심은 뒤쪽으로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

이궁천뢰검법의 이 초식. 뇌강산퇴(雷降山頹)가 펼쳐졌다.

금월상은 몸을 앞으로 굴러서 도약한 다음, 옹소후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찔러갔다. 검집을 받치고 나온 섬섬극극보다 속도가 떨어지기는커녕 더 올라갔다.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내공과 검격을 쓸 수 있는 까닭은 역시 독각화망의 내단을 해소하여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잡았다.’

그렇게 금월상이 생각했을 때, 옹소후는 몸의 자세를 낮추고 검병을 땅과 맞닿기 직전까지 떨어뜨렸다. 옹소후는 아래에서부터 검로를 회전시켜서 올렸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회오리 속으로 번개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검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살벌하게 나고, 둘이 떨어졌다. 금월상의 어깨와 볼에서는 피가 흘렀고, 옹소후는 멀쩡했다. 검기의 질 차이였다.

“형산을 무너뜨리기에는 작은 번개구나.”

옹소후가 비웃었다. 내심 놀랐지만 질 것 같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 황금세가의 직계 한 명은 불구로 만들어놓고 가야 아버지에게 할 말이 있었다.

옹문규가 팔이 잘린 것 따위는 괜찮았다. 아버지도 잠깐 화를 내겠지만, 곧 다른 뛰어난 아이를 입양하면 가라앉을 터다.

허나 여기서 약속대로 삼대제자들의 목까지 내놓고 가면, 자신도 위험했다. 옹소후의 머리가 자기 위주로 팍팍 돌아갔다.

옹소후가 다시 발검을 하려고 할 때였다.

자연스럽게 모든 이의 눈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거대한 압력이 정원을 덮듯이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 하늘 위에 있는 게 검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 검은 점은 유성처럼 정원에 떨어졌다. 옹소후와 금월상의 사이였다.

콰콰쾅!

땅이 깨지고 파편이 올라왔다. 흙먼지가 자욱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옹소후는 봤다.

방금 떨어진 무언가는 금월상이 방금 쓴 것과 똑같은 초식이었다. 검에 깃든 기, 패, 쾌 등 어느 하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했지만 같은 초식이기는 했다.

곧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깔끔하게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나타난 자는 옹소후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하다. 황금세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천류유성검 곽진도. 그는 어깨에 이상한 주머니를 들쳐 메고 있었다.

“남악검군(南嶽劍君)의 자식 농사가 흉년인 걸.”

옹소후는 자신의 아버지를 들먹이는 말에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곽진도의 몸에서 나오는 패도적인 기운이 옹소후의 모든 신경을 눌렀기 때문이다.

“약조한 걸 지키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하니, 협객은커녕 남자도 못 되는 놈이군.”

“···황금세가는 형산을 적으로 돌리시는 겁니까.”

옹소후는 간신히 말을 뱉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협박이었다. 한 음절씩 뱉을 때마다 목이 잘릴 것 같아 심장이 서늘했다. 그런 옹소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곽진도는 껄껄 웃었다.

“간자를 심어놓은 걸 들키고 그 무슨 뻔뻔한 말이더냐?”

곽진도의 말에 옹소후가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넣었다. 맞는 말이었다.

“형산은 이미 우리의 적이거늘.”

그리고 곽진도는 주머니의 끈을 풀어 옹소후 앞으로 던졌다. 옹소후의 발 앞에 주머니가 떨어지고, 풀린 주머니 사이로 사람의 머리가 굴러 나왔다.

형산이 황금세가의 외당에 심어놓은 간자들이었다. 옹소후는 완전히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황금세가는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였다. 어쭙잖게 정보를 주워가겠다는 생각은 너무 안일했다.

“공자는 돌아가길 허락하겠네. 준비도 안 된 적을 기습하는 건 강호의 도의가 아니지 않은가.”

“제 동생이 팔을 잃었습니다.”

“그거야 먼저 살초를 쓴 대가가 아닌가.”

명분은 완전히 황금세가에 있었다. 그들은 완벽히 자신을 대처하고 있었다. 황금세가 직계들은 자신이 올 걸 알고 처음부터 연기를 하고 있던 거다.

“···후회하실 겁니다. 선배님.”

옹소후는 이빨을 갈고 삼대제자들을 불렀다.

“가자꾸나.”

“잠깐만요.”

그때 입을 연 건 금목환이었다. 옹소후는 저 시종일관 담담하게 말하는 어린 목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저들은 약조한 목이니, 우리가 거둬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저들의 목을 허락도 없이 내기로 건 것은 당신입니다.”

금목환의 말과 함께 삼대제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삼대제자들은 바로 옹소후를 바라봤다. 옹소후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두려움과 원망이 반씩 담겨 있었다.

옹소후는 억울했다. 옹문규가 자기보다 어린 상계의 아이에게 질 거라고 대체 누가 상상했겠는가.

“비무로 남의 목을 거는 건 듣도 보도 못했군.”

곽진도가 비웃었다. 그 말이 중원으로 퍼지면 옹소후는 전 중원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형산의 체면도 크게 추락할 거였다.

자신이 지켜야 할 어린 제자들의 목을 걸고 자신은 추하게 도망을 나온다니. 삼대제자들은 고작해야 옹문규와 비슷한 나이거나 아래인 경우가 많았다. 도의적으로도 지탄받을 건이 분명했다.

별 생각 없이 수락했던 게 얼마나 큰 실수였던지 옹소후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하나 더 부탁드리죠.”

옹소후는 생각을 마쳤다. 지금 이 일이 형산에 퍼지면 장문인은커녕 형산 자체에서 파문을 논할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됐다.

“삼대제자들의 목을 드리겠습니다. 대신 어린 아이들의 목을 벴다는 건 황금세가에게도 부담이 될 터입니다.”

“그래서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 건가?”

곽진도가 흥미진진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옹소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 동생의 목도 가져가시죠. 어차피 동생도 그걸 원할 겁니다. 팔을 잃은 무인이 어디 쓸모가 있단 말입니까.”

곽진도는 웃었다. 경멸의 웃음이었다.

일견 동생을 생각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멸구를 부탁하는 꼴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의 문파 제자들과, 자신의 동생을 말이다.

그리고는 형산에 돌아가 황금세가의 습격으로 다 잃었다고 우는 목소리를 높일 거다.

강호 생활을 길게 한 곽진도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판단이었다.

“기절한 사람을 죽이기는 좀 그렇군요.”

할 말을 잃은 곽진도 대신 말을 한 건 금목환이었다. 옹소후는 금목환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기 싫다는 얘기였다.

옹소후는 금목환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며 검을 꺼냈다. 그리고 기절한 옹문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엎드려 있는 옹문규의 목에 칼이 꽂혔다. 옹문규는 팔다리를 쭉 뻗어 부르르 떨더니 곧 멈췄다. 형산에서 가장 유망한 후기지수는 그렇게 비명도 없이 절명했다.

곽진도는 금목환을 잠깐 바라봤다. 금목환은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잘 가게. 배웅은 필요 없겠지.”

“하신다고 해도 사양하겠습니다. 선배님.”

“재미있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옹소후는 대답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았다. 마지막으로 일별하는 삼대제자들의 눈빛이 무뎌질 만큼 무뎌진 옹소후의 양심에도 찔렸다.

옹소후는 바로 형산에서 가장 빠른 보법이라는 회안보(回雁步)를 써서 세가를 빠져나갔다.

남아있는 삼대제자들은 덜덜 떨었다. 바로 자신의 발치에 목에 검이 박힌 옹문규가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생각보다 대어가 낚였군요.”

금목환은 삼대제자들을 보면서 말했다. 옹소후는 너무 몰린 나머지 이성적이지 못한,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

이 삼대제자들을 죽일 이유는 아무 데도 없었다.

살아있는 형산파의 비급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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