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너희들을 고치려고 온 사람이야
57화 너희들을 고치려고 온 사람이야
하오문 강서 지부의 지부장. 요화(謠華)는 화장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응대를 하러 갔던 문도가 사색이 된 채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문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무슨 은자를 한 자루째로 들고 왔다는 것이었다. 요화는 허겁지겁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그들이 기다린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코까지 덮는 검은 죽립을 쓴 두 명이 있었다. 어디 신원을 숨긴 구파일방의 사람들일까. 가끔 명문가들도 하오문을 쓸 때가 있긴 했다.
“안녕하세요. 하오문 강서 지부장 요화입니다.”
“네. 앉으시죠.”
요화는 놀랐다. 죽립을 쓴 목소리가 지학도 안 되어 보일 정도로 앳되었고, 경어를 쓴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 돈을 가지면 명문가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하오문을 천박하다 경시해서 보통 말을 놓기 마련이었다.
“흠, 흠. 절맥에 걸린 아이들을 찾고 계신다고요.”
“네.”
목소리가 앳된 건 충분히 변조가 가능했다. 지금 이 앞에 있는 게 마교의 사람인지, 살문의 사람인지, 구파일방의 사람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절맥에 걸린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절맥에 걸린 아이들은 무공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치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물론 고치기가 힘들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끔 들어오는 의뢰이기도 했다. 근데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전 중원이라니. 무슨 짓을 하려기에 절맥에 걸린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단 말인가.
요화는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절맥에 걸린 아이들이라. 아이라면 몇 살을 기준으로 말씀하시는 걸까요?”
“열다섯까지입니다.”
“···아, 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절맥마다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절맥에 걸린 사람들은 치료하지 않으면 보통 열다섯에 죽는다. 그럼 당장 오늘내일 하는 사람의 정보도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대체 뭐하는 자들이기에. 목 끝까지 그 질문이 차올랐지만, 절대 그 질문을 하면 안됐다. 하오문은 그저 돈을 받고 정보만 갖다주면 되는 집단이다. 그걸 잊으면 안 됐다.
요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입을 벌린 주머니 안은 은자가 가득했다. 어림잡아 봐도 천 개는 넘는 것 같았다.
욕심이 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강서 지부장으로 취임한 이후로 가장 큰 의뢰 금액이니까.
그러나 하오문은 하오문의 도리가 있었다.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비장하게 말했다.
“이 돈이 얼마나 됩니까?”
“은자 천오백 냥입니다.”
“이만큼은 필요 없습니다.”
요화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하오문은 받은 만큼만 일한다. 그 신의가 무력 하나 없이 무림에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전 중원에 있는 절맥 아이들의 정보만 필요하신 거면, 은자 오백 냥으로도 충분합니다. 절맥에 걸린 아이들은 마을에 소문이 나있으니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다만 중원이 넓으니 그만큼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앳된 목소리의 사람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순간 스치는 얼굴을 보고 놀랐다. 진짜 어린 아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얼굴이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고작해야 눈 한 쪽을 잠깐 마주친 게 전부였으니까.
“그럼 나머지 천 냥으로는 그 사람들을 남창으로 데리고 오는 심부름 값으로 쓰세요.”
“···네?”
“원래 부탁드리려고 했던 일입니다. 돈이 더 필요할 줄 알았더니 생각 외로 싸군요.”
남자의 입에서는 어이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은자 천오백 냥이 싸다는 미친 헛소리였다.
“그 모인 아이들은 여강의 성가장이라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그들에게는 치료를 해주겠다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만약 가족들이 반대를 하면 가족들 전체를 데려와도 좋습니다. 그들을 설득하는데 비용은 상관없습니다. 추가 비용을 낼 테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옆에 있는 남자도 같이 따라서 일어났다. 요화는 어리벙벙했다. 정말, 이렇게 허술하게 은자 천오백 냥을 두고 간단 말인가.
요화는 기본 중의 기본인 인사도 못한 채로 그들을 홀연히 떠나보내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 잠깐 앉아있자, 어느새 방문이 또 열렸다. 들어온 건 예의 검은 죽립 사내였다.
요화는 내심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은자 천오백 냥이 싸다고 하는 건 허세였을 거다. 뒤늦게 본인의 잘못을 알고 정보 처리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식으로 알아봐주는지, 깎을 수는 없는지 물어보러 온 것일 테다.
하지만 그게 딱히 꼴불견은 아니었다. 원래 그보다 더한 인간군상들을 많이 보는 곳이니까.
“어쩐 일로 다시 오셨을까요?”
요화는 죽립 사내가 다시 들어온 것 때문에 여유를 살짝 되찾았다. 그도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좀 괜찮아진 것이다.
“맡기고 싶은 게 더 있어서요.”
그는 그리고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형태를 보니 어음이었다. 가치는 적은 주제에 무겁기만 한 동전 시대 때는 많이 썼지만, 은 화폐가 통용되고 나서는 거의 안 쓰는 물건이기는 했다.
“절정 무인을 만들 수 있는 상승의 무공 비급을 구하려고 합니다.”
“···예? 얼마나···”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그게 무슨···”
앳된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어 서늘하게 느껴졌다.
요화는 순식간에 머리를 돌려봤다. 딱 들어도 이건 하오문 강서 지부만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이런 의뢰의 특징은 비용이 얼마나 어떻게 발생될지 몰랐다. 그래도 하오문이 어디인가. 정보의 보고. 이런 의뢰를 받을 때의 강령도 있었다.
요화는 바로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정보는 저희는 받는 만큼 드립니다. 추가 비용이 언제 어떻게 발생될 지 모르거든요.”
“아, 그렇군요.”
남자는 바로 옆에 꽂혀있는 붓을 들어 어음에 휘갈겼다.
“그럼 이 정도로 써드리겠습니다.”
요화는 얼떨결에 남자가 주는 어음을 받았다. 남자는 어음을 맡기고 방문을 바로 나섰다. 그녀는 어음에 적힌 금액을 보자마자 경악을 토했다.
“이건 또 무슨···”
오만 냥. 어음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건 무조건 본부에 알려야 할 사안이었다.
*
하오문의 일처리는 꽤 깔끔했다. 당장 우리가 산 여강 성가장의 장원이 점점 가족들로 채워졌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웬만하면 가족 단위로 왔다.
성가장에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마쳐져 있었다. 사람들을 나누는 숙소와 식량은 물론이고, 그들을 돌봐줄 시종까지 완벽하게 배치했다.
“오늘로 칠십이명 째. 오늘 온 애들이 청해에서 온 애들입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오문도들은 꼭 일이 끝나면 이렇게 알려주고는 했다. 돈을 많이 주니까 이렇게 해주는 건지, 원래 이러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사람은 많은데 조용하군요.”
나는 언덕 위에서 성가장을 살펴봤다. 하오문도의 말대로 사람은 많은데 조용했다.
“반신반의하고 있겠죠. 치료를 해주고 돈까지 준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니까요.”
치료를 해주고 돈까지 준다니, 그들에게 있어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좋은 얘기일 것이다.
신기한 것은 가족들보다 침착한 건 절맥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시종들의 관리에 따라 밥을 먹고, 지정한 곳에서 잠을 잔다. 어떠한 불평도 없었다.
“보통 절맥들은 명가가 아니면 치료하지 못하니까요. 돈이 워낙 들어야죠. 만석꾼 집안들도 절맥을 치료하려다가 망한 적이 허다합니다. 그러니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겠죠.”
“그렇군요. 가족 없이 온 애들은 몇 명이나 되죠?”
“여덟 명입니다.”
“꽤 많군요.”
“절맥을 진단받는 순간 버리는 집도 많습니다. 웬만한 집안은 병간호도 힘드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족에게 버려진 것이었다. 절맥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빛은 가족들이 있건, 없건 침착하니 비슷했다. 사실 침착함이라기 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절맥인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미래를 미리 들었을 거다. 구음절맥에 걸린 아이들은 불 앞에서도 이빨을 떨며 죽는다는 말을, 극양절맥(極陽絶脈)에 걸린 아이들은 가장 추운 소한(小寒)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죽는다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을 거다.
그들은 애초에 삶에 희망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전생의 나처럼 말이다.
“이제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지부장님이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하셔서···”
“괜찮습니다. 혼자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오문도는 그 말에 바로 허리를 숙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지부로 사람을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무래도 모두한테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테니, 내가 돈을 많이 줘서 이렇게 친절한 것 같았다.
나는 하오문도를 보낸 다음 성가장으로 내려가는 언덕을 탔다.
성가장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눈빛도 가까워졌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모두 어두운 밤하늘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도 별을 띄워놓은 아이들이 있었다. 너무 멀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따름이다.
역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있었다. 나는 몰랐지만, 금월상이 그러지 않았는가.
그러한 상황에서도 무공을 배우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다. 전생의 나는 그런 반항은 생각지도 못했다.
성가장 정문이 보였다. 옛날 기억이 났다. 여기서 성가장 조무래기들과 호위무사들을 베었었다.
난 그것을 추억하며 정문 중앙에 섰다. 그 다음 고개를 꺾어 위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바로 현판이 있는 천장에서 사람의 신형이 내게로 훅 떨어졌다. 난 바로 발검해서 검을 수평으로 눕혔다.
쿵!
손바닥에 저릿한 한기가 끼쳤다. 그 작은 소녀는 하오문이 데려온 절맥 중 한 명이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그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바로 장법을 내질러왔다.
‘이게 음공이구나.’
내가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음에도 가슴께가 시려왔다.
바로 장법을 회수한 그녀는 아래에서부터 돌려 찼다. 이 역시 음기가 가득 찬 각법이었다.
텅!
그녀는 나를 압박하듯이 손으로 허공에 그리듯 하며 다가왔다.
“흐앗!”
기합소리와 함께 그 중앙에서 장법이 뻗어져 나왔다. 퍽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티가 났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형산의 유망주라는 아이와 대등할 정도.
그리고 그 정도면 내 상대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난 바로 밑으로 치고 들어가 그녀의 손목을 잡은 다음, 겨드랑이에 어깨를 넣고 바로 메쳐버렸다.
“악!”
짧은 비명소리가 났다. 난 그녀를 위에서 바라봤다.
“너 뭐야?”
“···흐으, 빨리 죽여. 이 악당놈아!”
악당이라. 꽤 유치한 단어 선정이었다. 그녀는 나를 증오 가득 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소란에 안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구경을 하러 나왔다. 몇몇은 가족들의 제지에 의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온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그냥 웅성이기만 할뿐, 딱히 이 아이와 단합을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난 애초에 그녀가 현판 위에 숨어있던 걸 알고 있었다. 내 기감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충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예상됐다. 그래도 난 더 확실히 하려고 물었다.
“왜 갑자기 날 공격했지?”
“뻔뻔한 놈! 이렇게 절맥인 아이들을 모아놓고서도 왜 공격했냐고?”
“절맥인 아이들은 모아놓으면 안 되나?”
“이런 절맥들을 모아놓을 정도면 구파일방 정도의 명가거나 마교인데. 구파일방은 아니니까 네놈은 마교도겠지!”
여자아이의 말에 지켜보던 아이들과 안쪽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 말이 설득력을 얻은 것 같았다. 이미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불을 지피니 삽시간에 퍼지는 것도 당연했다.
나도 알고는 있다. 절맥을 가진 사람은 마교도들이 납치를 해간다는 풍문 말이다. 하긴 절맥은 희귀한 만큼 흉흉한 이야기들도 많이 퍼져있다. 감염이 된다는 둥, 전생에 죄를 지었다는 둥, 같은 낭설들도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나온 것일 테다.
“당장 한 사람 절맥을 치료하는데 얼마나 드는지 알아? 최소 은자 천 냥이야. 그런데 이렇게 많이 모아놓고 치료를 한다고? 거짓말도 정도가 있지···”
아까 무공을 보나, 지식을 보나 여자아이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 같았다. 이런 아이가 왜 가족도 없이 여기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이 소요의 불꽃을 진화해야 했다.
물론 사람들을 설득하는 법은 쉬웠다. 보여주면 된다. 말보다 열 배는 강한 것이 행동이다.
“내가 악독한 마교도라면, 불시에 습격한 너를 죽여야 마땅하겠네?”
“그, 그, 그래! 빨리 죽이란 말이야!”
눈은 두려움을 가득 담고 있었지만 여자아이가 외쳤다. 점점 더 사람들의 동요가 커졌다.
“난 안 죽여. 마교도가 아니니까.”
난 동요가 더 커지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된 여자아이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여자아이를 세운 뒤, 난 사람들을 넓게 바라보며 선전포고하듯이 말했다.
“난 너희들을 고치려고 온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