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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60화 (61/225)

60화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습니다

60화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습니다

종리운은 몰래 숨어서 청무대의 연무장을 바라봤다. 힘찬 기합 소리로 가득차야 할 연무장은 나무토막을 때리는 소리밖에 없을 정도로 정적이었다.

청무대장 천지약은 그 꼴이 보기 싫은 듯 연무장의 부하들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누가 그렇게 대충하라고 했나!”

“대장님 같으면 힘이 나겠습니까. 그나마 들어오던 봉급도 밀렸고, 밥도 시원찮게 주는데요.”

병사의 말에 있는 음절 하나하나가 숨어있던 종리운의 가슴을 후벼 팠다. 지금 무림맹은 알거지 상태였다.

형산파를 봉문 시키고 난 다음, 예상대로 구파일방의 지원금이 끊긴 것이다.

원래 구파일방은 무림맹에게 딱 먹고 살만큼만 줬었다. 그러니 아무리 알차게 써도 돈이 남을 수가 없었다. 그 지원금이 끊기니 바로 이렇게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이었다.

회의감이 들었다. 무림맹은 지원금이 끊기자마자 무력해진다는 것이. 다른 명가들은 속가제자를 받는 둥 수익 활동이 있지만, 무림맹은 오로지 돈 나가는 일밖에 없었다.

“···휴.”

당장 청무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힘이 없었다.

종리운은 문득 금목환이 생각났다.

사실 황금세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금전 지원 받을 생각을 안 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종리운의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병력들과 세가의 지원을 해주며 받으려했는데, 금목환이 아무 것도 필요 없다며 벽을 세운 것이다.

결국 직접적으로 손을 벌리는 일만 남은 셈이다. 민망한 일이기는 했다. 저번에는 병력을 지원해준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 이건 숫제 달라는 얘기나 다름없었으니까.

과연 검존의 체면이 우선인가, 무림맹의 사기가 우선인가. 당연히 무림맹의 사기지만···

그런 생각들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두리번거리던 시종이 맹주를 보고 달려왔다.

“무슨 일 있느냐?”

종리운은 숨어서 보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 괜히 엄숙하게 물었다.

“황금세가의 가주님이 오셨습니다.”

“그게 정말이더냐?”

시종의 말에 종리운의 거짓 엄숙함은 바로 깨져버리고 말았다. 시종은 흠칫했다. 그 목소리가 경박하리만치 기쁨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리운은 시종이 놀라든 말든 바로 맹주실로 향했다.

바로 맹주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맹주실 앞 복도에 제갈헌이 있었다.

“뭐, 보고할 거 있는가?”

“아뇨. 황금세가의 가주가 왔다고 들어서요. 같이 좀 봐도 되겠죠?”

“뭐, 안 될 건 없지.”

종리운은 대답하며 맹주실의 문을 열었다. 이미 금목환은 정갈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오셨습니까.”

금목환의 인사에도 종리운은 답하지 못했다. 마치 천신이라도 내려온 듯, 뒤에 빛이 번쩍였다.

“처음 보는군. 난 제갈헌이라고 하네.”

“신산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금목환이라고 합니다.”

제갈헌과 금목환이 대화를 나누는 데도, 종리운은 인사를 답하지 못했다. 적어도 종리운의 눈에는 금목환의 모습이 그렇게나 눈부셨다.

*

“잘 지내셨습니까?”

“음, 그럼. 잘 지냈네.”

오늘의 무림맹주는 이상했다. 말에 대한 반응도 느리고, 눈빛을 어디에 둘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종리운은 자리에 앉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아. 손님이 있는데 차를 내와야겠군. 조금만 기다리게나.”

맹주실 안쪽에서는 분주함이 느껴졌다. 집기가 떨어지는 소리도 나고, 숨 쉬는 소리도 컸다.

“에휴.”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제갈헌은 한숨을 쉬었다. 살짝 창피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종리운은 김이 나는 찻잔 세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나왔다.

“감사합니다.”

“자네가 말한 뒤로 특급 황산모봉으로 바꾸었네. 확실히 맛과 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더군.”

나는 고요한 찻잔의 수면을 바라보았다. 정상적인 황산모봉이면 선명한 황록색을 띄고 있어야 하는데, 너무 색이 옅었다. 자세히 보니 찻잔 바닥에 깔려있는 잎들이 퉁퉁 불어있었다.

그래도 이걸 말할 수는 없는 법. 예의 삼아 몇 모금을 마셨다. 황산모봉의 맛이 조금 났다. 그 뒤에는 그냥 끓인 물맛이었다.

종리운도 차의 상태는 알고 있는 듯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종리운을 바라보는 제갈헌의 눈빛이 한심함에서 혐오로 바뀌었다.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먼. 가주 인계식 이후로는 처음 보는 거니까 말이야.”

종리운은 급하게 얘기를 꺼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때가 대한(大寒)즈음이었는데 지금이 벌써 입춘(立春)이니까요. 한 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가내를 바로잡느라 좀 늦었습니다.”

“뭘 굳이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러나.”

종리운이 허허 웃었다. 꽤나 마른 웃음이었다. 사실 종리운이 이상한 이유는 뻔했다. 당장 맹주실로 들어오는 길에 사람들이 봉급이 밀렸다며 푸념을 하는 걸 들었다.

무림맹이 구파일방에게 지원금을 받아서 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의존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 뭐, 용건이 있는가?”

종리운이 말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나는 즉각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세가에서 무인들을 양성하려고 합니다.”

그 말에 종리운과 제갈헌의 눈빛이 동시에 빛났다. 종리운이 말하기 전에 제갈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군. 당장 구파일방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려있을 때 빨리 준비하는 게 낫지. 명분이 없으니 쉽사리 움직이지도 못할 거고.”

“네. 맞습니다.”

확실히 지금만큼 황금세가가 병력을 양성하기 좋은 시기는 없었다. 나도 그래서 내 훈련도 등한시한 채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을 도와줄 사람들을 좀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세가에 훈련을 도와줄 수 있는 인물이 고작해야 외총관, 아니, 수석 장로밖에 없는데 그분도 바쁜 터라.”

난 바로 내 본 목적을 꺼냈다. 내 말을 들은 제갈헌은 갸웃했다.

“의외군. 양성하는 동안 병력을 보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그래, 뭐. 자네가 괜찮다면야.”

제갈헌이 바로 수긍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세가의 일은 가주가 결정하는 것. 외부인이 뭐라할 수는 없었다. 확실히 이들은 나를 아이가 아닌 가주로 대우하고 있었다.

“훈련을 도와줄 사람이라.”

종리운은 여러 인물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이어서 붙였다.

“물론 공짜로 지원해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희의 돈과 무림맹의 인력을 교환하자는 의미입니다.”

종리운과 제갈헌의 눈에 반짝거리는 섬광이 비쳤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에 가장 큰 반응들이었다.

“크흠, 큼, 큼.”

종리운과 제갈헌이 동시에 헛기침을 했다. 나보다 훨씬 어른들이었지만, 왠지 그 두 사람이 짠하게 보였다.

그들의 할 얘기는 뻔했다. 얼마나 줄 수 있냐는 것일 테다. 그러나 아무래도 무림 선배이자 어른들이 아이인 내게 돈 얘기를 꺼내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머뭇거리는 거다.

“무림맹 일 년 예산이 얼마나 되죠?”

나는 그들을 배려해서 먼저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종리운이 즉각 답했다.

“은자 오백 냥 정도 되네.”

난 미간을 모았다. 종리운은 내 표정을 보자마자 급히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도 꽤 하는 게 많다네. 인원수도 많고, 훈련자재들을 계속 채워 넣으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네.”

종리운은 내 표정을 완전히 잘못 해석했다. 난 오해를 바로 잡았다.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생각보다 적어서 놀랐습니다.”

“···이게 적다고?”

종리운이 물었다. 제갈헌도, 종리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은자 오백 냥이면 식읍 이백 호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네. 그게 어떻게 적은가.”

“···그렇군요.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군요.”

나는 차를 마셨다. 요즘 너무 커다란 금액에 익숙해져 있지만, 현실은 은자 한 냥이면 객잔에 있는 모든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오백 냥은 나와 너무 동떨어진 금액이기는 했다.

난 이제는 맹물 맛밖에 나지 않는 찻잔을 내려놓고 품에서 어음을 꺼냈다. 사실 이미 금액은 남창에서 써놓고 왔다. 무림맹에게 지원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근데 막상 예산을 들어보니 그들에게 너무 허무맹랑한 금액을 적은 것 같았다. 그래도 줄일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야 황금세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저희가 무림맹에 지원할 금액은 이 정도입니다.”

나는 어음이 보이게끔 책상에 펼쳐놓았다.

“억.”

어음을 확인한 제갈헌이 기함을 했고, 종리운은 곧바로 어음을 붙잡고 떨기까지 했다.

“···이, 이게 무슨. 잘못 쓴 거 아닌가?”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맹주.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종리운과 제갈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계속 어음을 보고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숫자를 계속 세어보는 듯했다. 나는 그들이 괜히 안쓰러워 확인을 해주었다.

“맞습니다. 십만 냥.”

어차피 묵혀있는 돈은 쓸모없는 법이다. 돈은 써야 의미가 있는 법. 가장 확실한 우군인 무림맹이 커지면 나도 그만큼 좋았다. 그런 생각으로 쓴 금액이었다.

“···허, 허어···”

“이 무슨···”

너무 충격적인 금액이었을까. 종리운과 제갈헌은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걸로 건물도 좀 넓히시고, 고수들도 많이 양성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겠네. 그래야지. 그래야지.”

넋이 나간 종리운과 달리 제갈헌은 그래도 꽤 빠른 시간 내에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면 무림맹 전체를 교관으로 쓰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말이야.”

“어차피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니, 절정 고수 네댓 명만 있으면 됩니다.”

내 말에 종리운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갑작스러운 종리운의 행동에 제갈헌도 나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이어붙이는 말은 우리를 더 놀라게 했다.

“강운 장로와 목현학 장로를 보내주겠네.”

“아니, 맹주님. 장로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갈헌이 당황했지만 종리운은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괜찮아. 내가 책임지고 보내주지. 가주는 걱정하지 말고 있게나.”

“···네. 알았습니다.”

나야 고수를 불러준다는데 나쁠 건 없었다. 당장 강운이나 목현학은 종리운을 제외하면 무림맹의 최고수들이니까.

물론 아직 백지인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그 정도 인력이나 필요할까 싶었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였다.

“그럼 얘기는 마치도록 하지.”

어이없어 하는 제갈헌을 놔두고 종리운이 벌떡 일어났다. 어음을 바로 쓰고 싶어 안달 난 모양새였다.

다음에 무림맹에 올 때는, 맹물이 아닌 제대로 된 차를 대접받을 수 있게 될 거였다.

*

금목환이 떠나고, 종리운은 바로 제갈헌과 황금전장에 환전을 하러 갔다. 무한 지부 황금전장은 이미 얘기를 들은 듯 십만 냥의 어음을 당황하지 않고 처리해줬다. 당연히 한 번에 바꾸는 게 아닌, 분할로 환전하는 식이었다.

종리운은 무거워 보이는 주머니를 어깨에 들쳐 메었다. 원보 백 개가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이렇게 환전해도 오천 냥이군요.”

“그러게 말일세.”

종리운과 제갈헌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데도 이 어음에는 구만 냥이 넘게 남은 거였다.

“십만 냥이라. 황금세가가 황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있구먼. 난 처음에 그 금액을 보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음을 보고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갈헌은 확실히 맹주가 금목환을 그렇게까지 칭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공도 강하고, 진법도 강하다지만 제갈헌은 그의 심계를 봤다.

금액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거나, 중원의 상황을 통찰하는 시야나 여러모로 생각이 깊었다.

“확실히 우군으로 둬야 될 사람이군요.”

“그렇지?”

“아직 어린 나이에도 이런데, 더 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갈헌의 말에 종리운은 잠깐 금목환의 큰 모습을 상상해봤다. 도저히 예상이 되지 않았다. 저런 아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내 부끄러운 말 한 번 해도 되겠는가.”

“그러십시오.”

종리운은 잠깐 호흡을 늦추더니 입을 열었다.

“그 어음을 꺼내줄 때, 난 정말 원초적인 동경이라는 감정을 느꼈네. 어릴 때 검선(劍仙)을 뵈었을 때 이후로 처음 느낀 감정이네. 난 몰랐는데 돈이 많다는 게 그리 멋있는 거더군.”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다른 거겠죠.”

제갈헌이 종리운의 감상을 잘랐다. 확실히 십만 냥을 꺼낼 때는 제갈헌도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금목환은 자신들에게 숙제를 준 셈이었다.

하루아침에 무림맹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게 됐다.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가 문제가 된 거다.

“내일부터 무림맹은 확 달라질 겁니다.”

제갈헌이 자신 있게 말했다.

무림맹 대변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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