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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82화 (83/225)

82화 뱀들이 많으니 굳이 안 쳐도

82화 뱀들이 많으니 굳이 안 쳐도

“···또 떠나?”

금수린은 서운한 감정을 팍팍 드러냈다. 세가로 돌아온 지 칠주야도 되지 않았는데 가는 것이었으니.

“죄송합니다.”

“막내가 바쁜 건 하루 이틀일이 아닌데.”

금화청은 뜻밖에도 날 두둔해줬다. 아니, 그냥 금수린에게 핀잔을 주려는 걸 수도 있고. 난 금수린에게 말했다.

“이거 끝나고 오면, 휴식하죠.”

“어, 정말?”

지금까지 어두운 표정은 다 연기였다는 듯 금수린의 표정이 확 펴졌다. 금화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상한 것만 배워가지고.”

“무르기 없기다? 다 같이 가는 거야.”

“네.”

금수린은 거짓말을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 나를 향해 눈빛을 태웠다. 그 이후로 형제들은 금월상과도 인사를 했다. 금수린과 금화청도 내가 금월상을 왜 데려가는지 몰랐고, 심지어 금월상 본인도 몰랐다. 나는 그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월상 오라버니, 잘 갔다 와요.”

“세가에서 하는 일이 없었으니, 공백은 안 느껴지겠군요.”

“···말을 해도.”

금월상은 금화청에게 서운한 척을 하면서도 웃어줬다. 우리는 이미 금화청의 화법에 다 익숙해져 있었다.

절강으로 가는 인원은 총 네 명. 나, 금월상, 곽진도 그리고 한유림이었다. 자신이 왜 가는지 묻는 금월상과 달리, 한유림은 묻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분명 한유림도 검후하산의 진상을 더 알고 싶어 했던 거였다.

명재희는 비각에 놔두고 계속 검후하산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보라고 했다. 내가 어디선가 매를 보내면, 바로 답신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난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황금세가 정문을 등졌다. 금수린은 손을 깃발처럼 흔들었고, 금화청은 어린 물고기의 꼬리처럼 흔들었다.

금월상도 내 뒤에서 손을 흔들었는데, 그때 금월상이 내 등을 쿡 찔렀다.

“막내야. 너도 손 한 번 흔들려무나.”

금월상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잠깐 멈칫했지만,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손목을 까딱였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왠지 크게 흔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금월상은 그걸 보며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

염소수염을 가진 남자가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렸다. 의자는 화려했다. 왼쪽에는 현무(玄武)가 오른쪽에는 봉황(鳳凰)이 조각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모두 순금으로 보였다.

여기가 바로 전 주산파의 건물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있는 곳도 당연히 주산이었다.

전에는 주산파였지만, 이제는 혈랑파(血狼派)라는 현판이 정문에 걸려있다. 형산파와 힘을 합쳐 황금세가를 먹으려던 주산파의 말로는 퍽 자연스러웠다. 당시에 문주와 전력의 반 이상을 잃고 지리멸렬 흩어지게 된 거다.

그리고 지금 혈랑파 내부 대전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런 주산파의 빈자리를 완벽히 꿰찬 혈랑파의 문주, 엄조후였다.

“오늘 항주 수익이 왜 이러나? 너무 많이 떨어졌는데.”

엄조후는 혀를 찼다. 주산파는 절강의 패자였던 만큼 당연히 서호(西湖)와 항주의 보호세도 걷고 있었다. 그것 역시 혈랑파가 모두 점거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통행세를 올리다보니, 사람들이 절강 자체를 안 찾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녹색 장포의 남자가 말했다.

바로 엄조후의 의자 오른쪽에 있던 봉황 조각에서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녹색 장포의 남자 귀 옆으로 쐐액 날아갔다. 남자는 바로 뒤에서 조각이 깨지는 소리에 더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묻나? 그러면 대책을 강구해 와야지.”

“죄송합니다.”

엄조후는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장포의 남자를 바라봤다. 혈랑파의 지낭. 장소열이었다. 그는 절강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으로, 언변이 좋아 절강의 상인 중 가장 발이 넓은 사람 중 하나였다.

장소열은 절강의 주산파가 사라지고, 각축전이 되자 바로 혈랑파에 붙어서 지낭 역할을 한 것이다.

상산(常山)의 작은 군소 사파에서 절강 전체를 호령하는 문파가 된 건, 모두 장소열의 지략이었다. 문주인 엄조후도 처음 그 공로는 인정했다.

모든 사파들이 주산파의 빈자리를 노렸지만, 그때마다 장소열이 기가 막힌 전략으로 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장소열은 혈랑파가 절강의 패자가 되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소열아.”

“···네.”

“아무리 네 특기가 무공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지금 네 몸은 너무도 나태해 보이는구나.”

장소열은 얼굴을 붉혔다. 엄조후의 말대로 정보를 수집하려고 동분서주하여 날렵했던 그의 턱선은 뭉개져있었고, 끈으로 싸매야 할 정도로 품이 넓었던 허리에는 삐져나온 살들의 윤곽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엄조후도 마찬가지였다. 삼류 무인에 가까운 장소열이 더 심하기는 했지만, 절정인 엄조후도 살이 찌고 있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엄조후도 이만큼 보호세를 올릴 생각이 없었다. 다만 처음으로 큰돈을 만지니 더 큰돈이 가지고 싶었고, 더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고, 더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었던 거다. 그것이 절강을 보호세, 통과세가 올라간 이유였다.

분명 엄조후가 보호세와 통과세를 올린 이후 오히려 더 수입은 적어졌지만, 엄조후는 그걸 자신의 실책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봐. 우리도 사내로 태어났으면 거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좋은 기회에서 자네가 흔들리면 어떡하라는 말인가.”

“···네.”

“보호세 감시를 더 철저히 하게. 상인하고 연합해서 보호세 나눠먹는 놈들도 목 자르고, 안 내고 뻐팅기는 상인놈들도 팔다리 부러뜨려도 되네.”

엄조후는 의자 밑에 있는 벽사(辟邪)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쓰다듬었다. 한나라 때 청백옥(淸白玉)으로 조각된 귀한 보물이었다. 벽사는 요물을 물리친다는 신화답게, 늠름한 머리와 몸뚱이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취미가 되어버린 보물 수집이었다. 다음 목표는 최근 흑점에 나온 서주(西周)의 산시반(散氏盤)이었다.

엄조후는 여전히 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

우리의 목적지는 절강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많은 도시, 항주였다. 명재희가 가져온 정보에는 거기에 주산파의 자리를 꿰찬 혈랑파(血狼派)가 있다고 했다.

물론 주산파의 건물을 쓰고 있다고 했으니 본단은 항주에서 먼 주산에 있었다. 활동 지역이 항주인 것뿐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이 항주에 머물고 있다는데, 왜 굳이 본단을 주산으로 고집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 선하령(仙霞嶺)을 넘어가면 절강이다.”

제일 앞에 있는 곽진도가 산을 보며 말했다. 남창에서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선하령. 절강과 강서, 복건이라는 세 개의 성 사이에 위치한 요지였다. 그러니 사람들의 출입도 많은 곳이었다.

실제로 봇짐을 멘 상인들과 몇 개의 표행 무리가 선하령을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살펴보니 황금표국은 없었다. 오늘은 절강이나 복건에 표행이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장로님 말씀대로군요.”

금월상이 말했다. 곽진도는 선하령에게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끼리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선하령에는 사람이 많았다. 하긴 선하령은 자그마치 세 개 성의 경계다.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난 기감을 펼쳐봤다. 기감에는 언덕 중턱 즈음, 세 성의 갈림길 부분에 사람들이 밀집돼 있었다.

“여기 녹림이 있나요?”

내가 물었다. 곽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구룡산 구룡채 관할이야. 여기 애들이 일을 참 잘해. 딱 봐도 자기들이 못 이길 것 같은 무인들에게는 바로 길을 내주거든.”

곽진도는 그 말을 하면서 껄껄 웃었다. 녹림이 상인, 표국과 공생 관계라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통과료를 내면 안전하게 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녹림이 있는 산길에는 더욱 표행길이 몰린다고 했다.

그냥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에는 아예 목숨까지 털어버리려는 강도들이 존재했으니까. 나도 옛날에 여강에서 남창으로 혼자 오면서, 그런 녀석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무공을 갓 배운 나도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무공을 안 배운 봇짐 상인들에게는 충분한 위협이었고, 또 거기서 또 어떤 고수가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표국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도박보다는 안전한 길을 선택해야 했으니.

“그나저나 생각보다 길이 좀 막히는 걸.”

곽진도가 줄을 쭉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한 사람이 통과할 때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았다.

“일 빨리빨리 처리하기로 유명한데, 어찌 이럴까.”

곽진도는 불평을 했다. 여전히 기감에 밀집된 사람들이 잡히는 걸 보면, 그렇게 일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녹림이라는 조직 특성상 사람들이 빨리 바뀔 것이고, 개중에서는 일을 못하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구룡채주가 있으면 인사라도 하려고 했건만. 안 되겠군.”

곽진도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이 서있는 줄에서 이탈했다. 우리도 똑같이 그를 따라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우리가 통행료를 낼 것도 아니고, 무인들은 암묵적으로 다른 길로 간다. 숲을 가로지르는 경공을 쓰는데 굳이 기다릴 필요가 무어냐.”

우리가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하자, 어떤 상인 하나가 자신도 길을 빠져나와서 우리 앞을 막았다. 물론 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자신의 봇짐을 그 길에 내려놓았다. 자신의 자리라는 걸 확고히 하는 듯했다.

“어우, 이 사람들 큰일 날 짓들을 하시오. 요즘 선하령에 샛길 없는 거 모르시오?”

나온 상인은 쥐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소심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중년의 남자였다.

“뭔 소리요?”

곽진도가 물었다. 그 상인은 곽진도의 위압적인 덩치에 살짝 몸을 움츠린 다음 말했다.

“지금 선하령은 혈랑파 사람들이 계속 순찰 중이오. 그것도 전 산맥을. 아예 통보를 하는 거지. 통행료 안 내고 다니는 건 생각하지도 말라고.”

“혈랑파?”

곽진도가 되물었다. 혈랑파라. 생각보다 일찍 듣게 된 이름이었다.

“허, 혈랑파를 모르시오? 절강에 주산파 대신 생긴 세력인데. 주산파보다 더 악독한 놈들이라오. 선하령에 통행세도 올렸지, 항주 상가의 보호세도 올렸지.”

“그건 알고 있소. 근데 그들이 무인들을 막을 정도로 광오하게 활보하고 다닌단 말이오?”

나도 곽진도처럼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하령을 넘으려는 많은 무인들이 있을 터이고, 그 중에서는 일개 사파 무리인 혈랑파가 감당할 수 있는 무인들도 있을 터였다.

“보통 여기 오는 무인들은 다 항주, 서호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아니오. 근데 거기를 혈랑파가 꽉 잡고 있으니까, 통행료를 안 낸 무인들한테는 장사를 안 하는 게지. 물론 고수들이 혈랑파 몇 명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럼 더 귀찮아지니까 그냥 내는 거요.”

“흠. 그렇군.”

“대협도 잘 생각하시오. 자식들을 데리고 놀러온 모양인데, 굳이 피를 보여주기는 싫지 않소. 대협이 얼마나 강한들, 문파 하나를 없애는 건 말도 안 되고 힘들기까지 하오. 아무리 하늘엔 천당이 있고, 땅 위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지만 관람하는 값으로는 너무 비싸지 않겠소.”

역시 상인이라서 그런가. 말이 퍽 논리가 있었다. 만약 우리가 정말 구경 목적으로 왔다면 설득됐을 것이다.

허나 우리는 그 혈랑파라는 곳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이었다.

통행세를 안 내고 가면 혈랑파의 온갖 견제를 받는다. 퍽 끌리는 제안이었다. 원래 항주에서 하려고 했던 것인데, 일정이 앞당겨진 셈이었다.

“뱀들이 많으니 굳이 안 쳐도 나오는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곽진도가 말하고 내가 답했다. 상인은 무슨 얘기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래 항주에서 하려고 했던 건 타초경사(打草驚蛇)였다. 풀을 때려서 뱀을 튀어나오게 하려는 전략.

이렇게 먼저 튀어나와주면 우리로서는 고마웠다.

“일러준 말 고맙소.”

곽진도는 그렇게 말하고 줄을 지나쳐 위로 올라갔다. 우리도 같이 따라 올라갔다. 우리를 가로막았던 상인은 우리가 주저없이 위로 올라가자 어떤 말도 못했고, 줄을 서있는 어떤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어떤 사람들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들도 어떻게 보면 강호의 한 다리를 걸친 사람들이다. 곧 벌어질 유혈사태를 감지한 듯했다.

줄을 안서고 바로 올라가니 정말 선하령 언덕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반 각도 안 걸려 올라올 길을 사람들은 지금 한 시진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통행세를 받고 있던 혈랑파 사람들도 빠르게 올라오는 우리를 감지한 듯, 잠깐 받는 걸 멈췄다.

“줄을 안 거치고 올라왔다는 건, 통행세의 세 배를 내겠다는 이야기인가?”

험악하게 생긴 무인이 우리에게 으르렁거렸다. 꽤 담대한 사람이었다. 곽진도도 위압적인 몸인데,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 너희들이 혈랑파 사람들인가?”

“그래. 그것도 모르는 걸 보니 절강에는 오랜만인가보군. 칼을 차고 있는 걸 보면 무인인 것 같은데, 우리는 구룡채처럼 만만하게 일을 안 해. 당신이 삼화취정이든, 오기조원이든 받을 건 받아야겠다는 말이야.”

사파녀석은 팔을 쭉 뻗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검도 안 꺼낸 채였다.

“베어보라고, 어디. 혈랑파 전체랑 상대할 자신이 있으면 말이야.”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떤 무인들도 이렇게 처리를 했던 것 같았다.

그 말의 울림이 채 일 장이 퍼지기도 전이었을 거다. 곽진도의 검병에서 섬광 하나가 쏘아져 나왔다.

“어?”

험악한 머리가 공중에서 구르며, 뒤늦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이 땅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곽진도의 검은 이미 칼집에 들어가 있었다. 칼집 주변에 피도 안 묻은 걸 보면, 얼마나 빠르게 베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와아아악!”

돈을 내려던 상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냅다 달렸고, 혈랑파 무인 중 한 녀석은 옆에 누워 있는 징을 신속하게 들어 강하게 쳤다.

윙윙.

귀가 멍해질 정도로 징 소리가 산에 울렸다.

선하령에 있는 모든 혈랑파가 소집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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