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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91화 (92/225)

91화 첫 휴식

91화 첫 휴식

한유림의 손에 담겨 있는 작은 구슬에서는 오묘하다 못해 상서로운 기운이 풍겼다.

신옥주는 주변 내공을 흡수하고, 정화하는 능력이 있는 귀물이었다. 그 말은 운기를 할 때 훨씬 높은 효율로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거다.

“중원칠종신기라.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곽진도가 말했다. 중원칠종신기. 중원에 있는 수많은 귀물(貴物)과 보물(寶物)들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곱 개의 물건을 말했다.

황제(黃帝)가 중원에 남겨놓았다는 말도 있고, 하늘에서 숭산으로 떨어졌다는 말도 있는, 여러 가지 전설이 많은 귀물들.

그 중 하나가 보타암에 있다는 건 정말 놀랄 일이었다.

“대개 실전됐다고 들었는데···”

금월상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중원칠종신기에서 가장 명확한 소재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단 세 개뿐이었다.

소림에 있다는 멸마선장(滅魔禪杖)과 명경(明鏡), 무당에 있다는 수호의(水狐衣).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신옥주가 보타암에 있었던 거다.

믿기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저 구슬에서 나오는 기운하며, 다른 곳도 아닌 보타암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난 누구보다 빨리 당황에서 벗어났다. 그러고 나니 내게 당면한 문제가 보였다.

“근데 이걸 나한테 줘도 돼?”

“네.”

한유림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까는 맡긴다더니, 처음부터 아예 나한테 주려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가주님은 제 은인이시기도 하지만, 보타암의 은인이시기도 해요. 만약 가주님이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정말 실전되었겠죠. 아니면 이상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중원을 시끄럽게 한다든지요. 그런 점에서 가주님께 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나는 곽진도와 금월상을 바라봤다. 좀 난처한 문제라는 걸 아는 듯 다들 내 눈을 피했다.

“어머니가 저한테 말하신 것이니, 이건 제 거예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건, 가주님의 것이에요. 그러니 부담가지지 마세요.”

날 바라보는 한유림의 눈빛이 빛났다.

분명 나는 무인들이 아닌 사람을 사려했다. 그래, 지금 한유림처럼 말이다.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는 한유림의 손에서 신옥주를 받았다. 한유림은 전혀 아깝지 않은 듯했다.

한유림은 내게 그걸 건네주고, 또 다른 구석으로 향했다. 그녀는 구석을 파더니 오래된 책자 하나를 꺼냈다.

“전 이것만 있으면 충분해요.”

“여기는 참 좁은 곳이지만, 많은 걸 가지고 있구나.”

금월상이 말했다. 한유림이 든 책자를 본 곽진도는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옥녀단마신공이구나.”

“네. 맞아요.”

한유림은 품 안에 고이 옥녀단마신공을 넣었다. 역대 검후들만이 익혔다는 그 신공.

그녀가 내게 신옥주를 주는 것도 이해가 됐다. 사실 한유림에게 중요한 건 중원칠종신기보다 보타암의 절기였을 거다.

쿠르릉.

동굴 안에서도 구름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

곽진도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중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거대한 파란(波瀾)을 동반한 채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를 타고 대륙으로 돌아갔다. 주산은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

엄조후와 혈랑파의 대주들은 항주에서 이틀 동안 허탕을 쳤다. 금산군은커녕 아이들만 호랑이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게 요즘 유행하는 금산군 놀이라고들 했다.

결국 금산군의 꼬리도 찾지 못한 혈랑파 사람들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망할, 금산군인지 뭔지!”

엄조후는 돌아오는 내내 금산군을 욕했다. 그냥 절대고수가 장난을 치고 가는 건지, 뭔지 모를 일이었다.

또한 비마저 추적추적내려 그들은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거기다가 엄조후와 대주들은 항주에 있던 이틀 동안 잠도 자지못한 상태. 피로감이 극에 달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곧 진해에 도착해, 혈랑파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배를 탔다. 그리고 곧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됐다.

“···이게 무슨?”

엄조후가 넋이 나간 채로 읊조렸다.

주산 전체가 불에 타고 있었다. 그 불길과 연기는 당연히 혈랑파 본채와도 이어져 있었다.

정말로 어이가 없을 노릇이었다. 고작해야 그들이 혈랑파 본채를 비운 건 닷새. 그 사이에 엄조후가 가진 보물들은 화마에 잡아먹혔던 거다.

“빌어먹을!”

엄조후는 주먹으로 선반의 난간을 내리쳤다. 난간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으아아아악!”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엄조후는 괴성을 지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배의 나뭇조각이 날아가고, 갑판이 뜯어지고, 배에는 물이 새기 시작했다.

그렇게 광적으로 배를 분해하고 있던 엄조후에게, 누가 뒤에서 외쳤다.

“어이, 문주! 그만합시다.”

그 말에 엄조후가 멈췄다. 지금 이렇게 문주가 분노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말투라니. 어떤 오만불손한 녀석인지 보고 싶었다.

엄조후는 살기를 드러내며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갑판 사이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뒤에는 대주들이 초승달 모양으로 서있었다.

“···뭐냐.”

엄조후는 고개를 꺾은 채로 멈췄다. 대주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비져나왔다. 그것은 아주 작았지만, 전염이라도 되는 양 대주들 전체를 감쌌다.

“하하하하!”

대주들은 엄조후를 앞에 대고 웃었다. 엄조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혈랑파 본채가 탄 것 때문에 대주들도 미친 건가 싶었다.

“뭐하자는 건가?”

엄조후가 물었다. 중앙에 있던 대주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엄 씨. 정파와 사파의 차이를 아시오?”

그는 분명 항주로 전부 가자고 할 때, 반기를 들었던 대주 중 한 명이었다. 대주는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뒤로 대주들 전체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정파의 도는 사람에 있고, 사파의 도는 건물에 있다오.”

퍽 유명한 이야기였다. 정파는 멸문당해도 비급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으면 멸문당한 게 아니지만, 사파는 건물만 무너져도 알아서 멸문이 된다는 말이었다.

“당신은 이제 우리 문주가 아니란 말이오.”

대주들이 엄조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겹쳐진 그림자가 짙게 엄조후를 감쌌다. 엄조후는 그저 몸뚱이를 비튼 채로 그들을 올려다봤다.

*

종리운과 제갈헌, 여상우는 셋이서 둘러 앉아있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곳은 무림맹주실이었고,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황금세가에서 넘긴 정보들이었다. 그곳에는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적혀져 있었다.

검후는 고독을 먹었고, 그 고독을 먹인 건 마교. 주산파와 혈랑파는 그저 마교의 꼭두각시 놀음을 했다는 것이었다.

“여기 명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다고 했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른 간자의 여부였다. 간자의 기록에는 같은 간자로 보이는 사람과의 접촉이 나와 있었다. 구파일방의 속가제자, 형산파의 장로, 어떤 표국의 총표두 등.

종리운도 여기 있는 몇 사람의 이름은 들어보았다. 근데 이들이 다 간자라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다 내뺐답니다.”

제갈헌이 답했다. 더 조사를 해보니, 한날 한시에 홀연히 사라졌다고 했다. 이미 그들은 간자 중 한 명이 잡힌 것을 알고 바로 잠적한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이라도 진상을 알았다는 거겠죠.”

제갈헌이 말했다. 모두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간자가 계속 활동을 했다면, 정파 내부가 언제 어디까지 곪아들어갔을지 몰랐다.

“그 중에 불행인 건, 더 있을 확률이 농후하다는 거겠고요.”

여상우가 말했다. 제갈헌도, 여상우도 동시에 옳은 말을 했다. 이들이 이만큼 침투해있다면, 다른 경로로도 간자를 심어놨을 확률이 높았다.

“일단 저희는 이들의 행동을 더 추적해봐야 됩니다. 구파일방과도 공조를 해야겠군요. 간자를 품고 있었던 곳이면 책임도 물어야겠죠.”

“이렇게 무림맹 영향력이 넓어지는 건가?”

“그게 아마 황금가주가 그리는 그림일 겁니다.”

금목환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잠깐 말을 멈췄다. 이 역시 금목환 독단적으로 해낸 일이었다. 늘 느끼지만, 이 어린 아이는 당최 종잡을 수가 없었다.

형산파를 봉문시키지 않나, 해남에서는 개파조사의 무공을 되찾았다고 하지 않나, 이번에는 간자까지 찾아냈댄다.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이만큼 최근 정파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 있던가.

“근데 가주는 이걸 어떻게 안 거지?”

종리운이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 대답은 여상우의 몫이었다.

“···뭐, 워낙 신비로운 분이니까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절강에서 뭔 냄새를 맡으신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절강에서 한 바탕했다? 주산이 아예 불타고, 혈랑파가 완전히 흩어진 것도 가주가 한 거겠지?”

“제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당장 혈랑파 같은 거대 사파를 밀어냈으면, 어떤 문파도 나서서 자랑할 법한데 아무도 그렇지 않으니까요. 금 가주의 행동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상우의 말에는 모두가 납득했다. 애초에 그들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언급은 안했지만, 종리운과 제갈헌은 절강에 잠깐 떠돌았던 금산군 무리들 역시 황금세가의 사람들일 거라고 확신했다.

“벌써 황금세가가 정파를 한 번 구한 셈이군요.”

제갈헌이 말했다.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니었다. 마교의 간자를 찾고, 그 간자의 뿌리까지 캐냈다는 건 정말 커다란 공로였으니까.

“정말 언제 봐도 대단한 친구야. 거, 벌써 누가 채갈지 궁금하단 말이야. 유월이랑 짝이 됐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그것보단 차라리 재희가 좀 더 가능성 있겠군요. 재희는 가주가 직접 데려간 인물 아니겠습니까.”

종리운과 여상우가 갑자기 눈빛을 부딪쳤다. 쓸모없는 곳에서 경쟁이 붙은 셈이었다. 두 사람은 마교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아이들을 자랑하기로 바뀌었다. 어떨 때 예쁘고, 어떨 때 참하다는 둥···

제갈헌은 그 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그 둘보다는 자신의 조카 연이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

파란이 났다. 대신 중원에서 일어난 게 아닌, 우리 세가에서 일어났다. 한유림도 옥묘각으로 돌아가 따로 치료를 받았지만, 난 좀 심했다.

내가 명재희한테 정보를 건네주기도 전에, 난 금월상과 곽진도에게 떠밀려 온갖 영약들을 먹어야 했다. 그런 정보는 자신들이 전달해도 충분하다며.

“내상을 안정시키는 데는 또 영약만한 게 없지.”

곽진도는 그렇게 말했다. 외부에서 정순한 기를 부으니, 그것도 맞긴 하지만 누가 경미한 내상에 영약을 한 가득 부을까. 황금세가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영약을 먹고 대주천까지 다 마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본원에서 나가려고 할 때, 금수린과 마주친 게 치명적이었다.

나가려던 난 바로 방 안으로 거꾸로 돌려세워졌다. 금수린은 나를 침대에 눕히더니, 양털로 속을 가득 채운 두터운 이불을 덮어주고, 얼음을 가득 채운 모시주머니를 이마에 얹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거 되게 좋은 약재들이 많이 들어갔어. 합개(蛤蚧), 두충나무(杜冲) 껍질, 산수유, 부자(附子)···”

금수린은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탕약을 지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황금세가는 잡학의 달인이 아닌 사람들이 없었다. 그 정도로 책을 독파했으면, 어디 뻔뻔한 돌팔이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누님, 괜찮은데요.”

“무슨 소리야. 얼굴이 그렇게 창백한데.”

생각보다 금수린은 고집이 강했다. 내가 몇 번이고 일어나려고하자, 내 어깨를 밀어서 눕혔다.

그렇게 난 금수린이 지어주는 탕약 다섯 그릇을 비워야했다.

저녁이 되고 나서는 금월상과 금화청이 나란히 찾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내 꼴을 본 금월상이 금수린을 바라봤다.

“수린아. 이 정도까지 할 건 아닌 것 같은데···”

금월상의 말에 금수린이 목소리를 높혔다.

“오라버니! 지금 같이 가서 막내도 못 지키고 오신 주제에 뭔 말씀이 그렇게 많아요?”

“아. 미안하구나···”

조금이나마 난 금월상을 응원했지만, 금월상의 반란은 바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금화청은 그런 금월상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몸은 좀 괜찮냐?”

금화청이 물었다. 나는 금수린의 눈치를 슥 봤다. 그녀는 뒤돌아서 약재에 관한 책을 보고 있었다.

“네. 그럭저럭요.”

“아니! 무슨 소리야? 목환이 넌 한 달은 더 누워있어야 돼.”

금수린이 바로 도끼눈을 뜨고 나와 금화청을 바라봤다. 금화청은 날 안타깝다는 듯 일별하고 눈을 돌렸다. 한 달이라.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럴 시간은 없었다.

“누님.”

“응?”

“제가 다 나으면, 가족들끼리 어디 놀러라도 가시죠.”

내 말에 저 멀리서 책을 보고 있던 금수린이 섬전처럼 내 앞에 다가왔다. 그녀는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정말?”

“네. 약속 드렸잖아요. 이 일 끝나고 오면 휴식하기로.”

“아. 그랬지, 그랬지!”

금수린이 기쁘다는 듯 내 두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난 금수린에게 물었다.

“그럼 언제쯤 가면 좋을까요?”

“내일 가자!”

금수린은 바로 답했다.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싸늘한 두 사람의 눈빛을 받아야 했다. 금월상과 금화청이 눈을 좁히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하하.”

그 시선을 눈치 챈 금수린이 민망한 듯 웃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 가족의 첫 휴식 일정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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