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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03화 (104/225)

103화 모실 때가 됐지

103화 모실 때가 됐지

강호는 시끄러워졌다. 명문 중의 명문인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비무 중 독을 썼다는 소식이 퍼진 거다.

그리고 그 독을 밝혀낸 건 황금세가의 가주, 금목환이라는 말도 같이 퍼졌다.

그러나 강서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중원인들은 황금세가에 가주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 애초에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무림맹과 남궁세가의 관계였다.

그걸 관심 있어 하는 건, 몇몇 문파와 가문뿐이었다.

당연하지만, 남궁세가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여러 의견을 수집하고 있었다.

기둥에는 하늘이 음각되어 있는 이곳은 남궁세가의 대전이었다. 가운데 앉아있는 사람은 불혹 정도로 보이는 남자로,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선우였다.

“그러니까 홍학이랑 홍예, 선용이 앞에서 독이 발라져 있다는 게 증명이 됐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남궁선우는 턱에 손을 괴었다.

자신의 동생, 남궁선용은 잔머리는 뛰어난 놈이었다. 안 걸리게끔 장치를 만들어 뒀을 거고, 그걸 확신했으니 인가해준 것인데 이렇게 일을 망칠 줄은 몰랐다.

“···이건 가주인 내 잘못이군. 내가 개인적으로 인가한 것이니. 조상님들께 죄송한 날이야.”

“누구 탓을 돌려서 뭐하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남궁세가 장로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 말은 맞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는 법. 모든 문파와 세가에는 이런 부침이 하나씩 있었다. 수많은 위기들을 대처하고, 극복해야 명가가 될 수 있는 거다. 남궁세가는 그런 점에서 경험치가 많았다.

“공식적인 의견은 냈지?”

“네. 본가와는 무관하고,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밝혔습니다. 무림맹주에게도 사과 서한을 보냈습니다.”

“좋아.”

남궁선우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말을 이었다. 조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지금 무림맹에 억류된 애들이 여덟 명인가.”

“네. 무인 다섯 명을 포함해서 여덟 명입니다.”

“홍학이랑 홍예까지만 구해.”

남궁선우가 말했다. 꼬리를 자르라는 뜻이었다. 남궁세가의 장로들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동생 분은 어찌하십니까?”

“책임질 사람 한 명은 있어야지.”

남궁선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자신의 동생을 내치는 데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일에 황금세가 가주가 큰 역할을 했다고?”

“네.”

남궁선우가 생각에 잠겼다. 황금세가가 무림맹하고 친한 건 알았지만, 가주의 소식은 근래 들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더 궁금한 건, 어떻게 알았냐는 거였다. 황금세가의 사람이면 무인도 아닌 상계 사람일 텐데 말이다.

“좀 알아보게.”

어떤 놈이기에, 남궁세가에게 이렇게 물을 먹였는지 궁금했다.

*

나는 맹주실에 있었다. 종리운과 제갈헌은 아직도 치를 떨고 있었다. 남궁세가가 이런 독니를 드러낼 줄은 몰랐을 터였다.

“씹어 먹을 것들.”

종리운이 이를 갈았다. 원래는 말렸을 제갈헌도 그저 침음을 내고 있었다.

“유월이는 괜찮습니까?”

내가 물었다.

“일단 아프지는 않은 것 같던데, 정양하라고는 했네.”

“그렇군요.”

사실 갈유월은 정말 괜찮을 거였다. 난 그녀를 점혈하면서 내 기를 불어넣었고, 그건 갑옷의 역할을 했다. 그래도 종리운이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주가 아니면 유월이가 심하게 다칠 뻔했군. 남궁세가가 그런 짓까지 할 줄이야.”

종리운이 내게 감사함을 표했다. 어제 일이라서 그럴까. 아직 눈에 선했다.

독이라고 판별이 났을 때 남궁세가 사람들의 허탈한 표정과 종리운의 분노가. 얼마나 기운을 쏟아댔는지, 무공을 안 익힌 남궁선용은 거품을 물고 기절할 정도였다.

“남궁세가에서 별도 연락은 왔습니까.”

“예상하던 말만 하더군. 우리는 몰랐다. 위로를 표한다. 뭐, 이런 것들.”

종리운이 찡그리며 말했다. 무림맹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더 파낼 방법은 없을 터였다.

“그나저나 가주도 걱정이군. 남궁세가가 분명히 앙심을 품을 걸세.”

“괜찮습니다. 은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세가가 본격적으로 중원에 나서야 했고요.”

“···허.”

이제 우리가 쉽게 먹힐 일은 없었다. 다음 단계는 중원에 우리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굳이 숨을 필요는 없었다. 숨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힘을 기른 것이 아니던가. 내실은 다졌으니 덩치를 키울 때였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종리운이 물었다. 난 되물었다.

“당장 뭘 할 지를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물어보시는 겁니까?”

“둘 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겐 숨길 필요도 없었다.

“당장은 아버지를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종리운과 제갈헌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인 듯 침음을 냈다. 아마 그들은 우리 아버지를 잊고 있었을 거였다.

“그건 응당 그래야지.”

냉정을 되찾은 종리운이 말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군. 진작 신경 써줬어야 되는 일인데.”

“아뇨. 제 가족인데 제가 챙겨야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난 정말 별로 상관이 없었다. 내가 볼 때 아버지는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난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주제를 돌렸다.

“다른 질문에 대답하자면,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당장 마교의 간자 조사 권한을 넘겨받아야겠죠. 중원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명예나 명성이 있어야겠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나?”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언제 침투할지 모르는 마교였다. 황금세가가 중원제일거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늘 위험하다고 봐야 했다.

“···흠.”

종리운은 기억하고 있을 거였다. 그저께 남궁세가 사람들이 나간 다음, 갈유월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한 말들을 말이다.

현재 문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폐쇄성이었다. 무림맹은 그걸 억지로 개방시켜야 했고, 적어도 마교의 간자 명단은 상호 협조를 해야 했다. 그것이 그때 대화했던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한 말은 그 대화의 연장선이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더 힘을 키워야 했다. 무림맹도 그렇고, 우리도 그랬다.

“혹시 가주, 용봉지회 나가볼 생각 없나?”

가만히 있던 제갈헌이 느닷없이 말했다.

“자네 실력이라면 오룡 중 하나는 무조건 따놓은 당상이야. 오룡삼봉이 된다는 건 후기지수의 중심이라는 것이고, 황금세가를 알릴 기회이기도 해.”

제갈헌의 말에 종리운이 손뼉을 쳤다.

“그렇군. 강호에서 영향력을 높이기에는 그런 방법만한 것도 없어. 이번 용봉지회가 쟁쟁하다고는 해도, 가주한테는 해당 안 되는 이야기네. 오 년에 한 번 있는 기회야.”

내가 직접 나가본다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장 세가에 돌아가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봉지회에 참가해 황금세가를 중원에 알릴 수 있다면,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겁니까?”

“아. 몇몇 문파들은 바로 본선에 올라가지만, 황금세가는 아마 예선부터 치러야 할 걸세. 그게 좀 걸리는군.”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검증이 된 세가에는 우선권을 주고, 그 밑은 알아서 올라오라는 식이었다. 나름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무림맹은 우선권이 있습니까?”

“한 명 본선에 내보낼 수 있지. 당연하지만 유월이가 나가야지.”

“그렇군요.”

나는 차를 다 마시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맑은 소리가 맹주실에 울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용봉지회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겠군요.”

“벌써 가는 겐가?”

“네. 이제 제가 여기서 할 일이 없습니다. 아마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남궁세가가 알아서 처리할 것입니다. 본가와 관련이 없다고 하는 말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종리운은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뭔가 머뭇댔다. 내가 이렇게 급하게 갈 줄은 몰랐다는 식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할 때야, 종리운은 입을 열었다.

“유월이는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유월이요?”

난 잠깐 멈칫했다. 글쎄. 보고가야 되는 걸까.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허나 종리운은 응당 그래야 된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 유월이가 자네한테 감사할 시간은 줘야지.”

“굳이 감사할 필요는 없는데요.”

“그래도 한 번만 가주게. 내 부탁일세.”

종리운이 내게 말했다. 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난 종리운과 제갈헌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갈유월에게 잠깐 들르고 바로 떠날 참이었다.

종리운은 갈유월의 방이 있는 곳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맹주실을 나왔다.

“음.”

바로 계단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문득 사람들이 몰렸던 게 생각이 났다. 굳이 그 길을 다시 갈 필요가 없었다. 난 조심스럽게 발에 내공을 담아서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무림맹 별관은 바로 본관 뒤에 있었다. 다행히 별관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난 종리운에게 들은 대로 갈유월의 방을 찾았다. 그 방 앞에는 호위무인 둘이 있었지만, 나를 아는 듯 허리를 꼿꼿이 폈다.

“황금세가 가주님이시군요.”

“네, 맹주님이 유월이를 한 번 보고 가라고 하셔서요.”

“그럼요. 아가씨도 깨있으십니다.”

호위무인들은 바로 복도를 빠져나와줬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난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이미 갈유월은 내가 왔다는 걸 방 안에서 들은 듯했다. 난 문을 열었다.

갈유월은 침상에서 이불을 입까지 끌어올린 채로 누워있었다.

나는 방 안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침상 옆에 놓고 앉았다. 갈유월은 내가 다가오자 이불을 코까지 끌어올렸다.

“맹주님이 너 보고 가래서.”

“···아니면 안 보고 가려고 했어?”

“모르겠어.”

갈유월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말을 잘못한 걸까. 허나 다음 갈유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고마워.”

“그래.”

그 이후로 침묵이 돌았다. 갈유월은 커다란 눈만 굴리고 있었고,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일 각을 있었던 것 같다. 난 일어났다.

“갈게.”

“···응.”

갈유월은 이불을 이제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만 이불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때 침상이 약간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갈유월 쪽을 바라보니 이불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뭔 일 있어?”

“···아니.”

“그럼 간다.”

“잠깐만!”

갈유월이 이불 속에서 외쳤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멈춰 섰다. 개미만한 목소리가 이불 속에서 흘러나왔다.

“혹시, 그, 내가 준 손수건 아직도 가지고 있어?”

난 잠깐 기억을 되짚어봤다. 해남파에서 돌아올 때,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

내가 말했다. 지금 그 손수건은 내게 없었다. 이불이 크게 흔들렸다. 난 말을 이었다.

“너무 많이 써서 닳았거든.”

난이 그려져 있는 수건이었다. 옷 안에 넣고 계속 수련을 하기도 했고, 많이 쓰기도 해서 빨리 닳았다.

이불 끝에서 갈유월의 하얀 손가락이 작게 나와서 접혔다. 이불이 다시 갈유월의 코까지 걷혔다. 그러고 보면 난 여기 들어와서 그녀의 입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들어줄게.”

갈유월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원체 새하얀 피부라 붉은 게 더욱 도드라졌다. 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안녕.”

다시 갈유월은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난 문을 닫고 나왔다. 난 갸웃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녀가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지 몰랐다.

*

남창에 가기 전, 난 들를 곳이 있었다. 당장 용봉지회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돌아다니는 이는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번화하지 않은 곳을 걷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적벽. 지금 내 앞에는 봉추암 정문이 있었다. 배풍대, 무후궁. 역시 전에 왔을 때와 같았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고운 흙이 발밑에서 부서지고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껏 피어있는 푸른 수국이 고색창연하다. 아무 인적이 없어서 풀과 꽃들은 무성했다.

“···모실 때가 됐지.”

이제 황금세가는 점점 중원에 드러날 터였다. 드러날 때가 됐다. 황금세가는 호락호락하지 않게 변했으니까.

아무도 모르지만, 이건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우리가 힘이 생겼다는 걸 선포하는 거였다.

그게 마교든, 중원이든, 어디든.

무후궁 뒤쪽으로 걸었다. 파인 분지 밑, 정말 변함없는 집이 있었다.

그때와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때는 평상에 아버지가 누워있다면 지금은 정문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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