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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04화 (105/225)

104화 천하제일세가로 가기 위한

104화 천하제일세가로 가기 위한

나는 천천히 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간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내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몇 년 동안 갇혀계셨으니 감이 예민해지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었고, 난 아버지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아버지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오 년 전에 봤을 때의 시간에 그대로 멈춰계신 것 같았다.

“많이 잘생겨졌구나. 아들아.”

아버지가 작게 미소를 띄었다. 목소리는 평안했다. 난 아버지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괜찮다. 오히려 너무 빨리 온 감이 있구나.”

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그런 걸까. 나도 홀로 외딴 공간에 가둬져본 적이 있다. 지금도 그 경험은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단다.”

아버지는 내게 말하고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따라서 들어갔다.

언덕 위에서 내려 봤을 때는 바뀐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못 본 곳이 있었다. 담장에 붙어있는 작은 텃밭이 있는 거다. 그건 분명 전에 없었던 거고, 아버지가 가꾼 것 같았다.

“올해 가을에 수확할 마가 참 시원하고 맛있을 텐데. 주지 못해 아쉽다.”

텃밭은 네 등분으로 나뉘어져 각자 무언가들이 심어져 있었다. 지금은 두 번째 텃밭이 제일 풍요로웠다. 여름에 수확하는 당귀, 미나리, 쑥갓들이 자라고 있었다.

“계절을 세고 계셨군요.”

“그래.”

“정말 제가 빨리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아버지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난 나갈 생각이 없거든.”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생각하지 못한 답이었다. 똑같이 갇혀있던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답이기도 했다.

“내가 나가면 너희들에게 더 부담만 될 게 아니냐. 내가 해줄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야. 괜히 신경만 쓰이게 하겠지.”

“절 기다린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전부 정리된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 그 전에 나가면 너희들 짐이 될 뿐이야.”

아버지는 쭈그려 앉아 꼬인 줄기들을 풀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게 알려지면 어쨌든 중원에 주목을 받고,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던 누군가를 모르는 이상 위험 요소가 있으니.

“너희들에게 미안하구나. 여기 있어도 너희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꼴이고, 나가면 아무 도움도 안 되니. 그나마 내가 여기 있으면 신경 쓸 건 없겠지. 너희들이 잘하고 있으니 네가 여기 온 것 아니냐.”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느리게도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바람 한 줄기 없었다.

“아뇨. 돌아오세요.”

아버지는 그제야 날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내가 회귀하고 이런 선택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에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단다.”

“이게 바른 길입니다.”

지금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감이 잡혔다. 우리에 대한 부채감으로 가득 차 있는 거다.

나는 평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평상 위에 올라갔다.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할 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싫으셔도,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난 발을 살짝 들어 평상을 밟았다. 그러나 발에는 내공이 담겨 있었고, 평상이 중앙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나 부서졌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 뭔가 외치는 듯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나 거대한 진법이 무너지고 있으니, 대기가 소리를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쿠구구궁-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 이후 다시 집안을 돌아보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문의 경칩은 낡아있고, 지붕에 올린 볏짚도 삭아있었다. 진법은 사람을 속일 뿐, 자연까지 기만할 수 없던 거다.

“다행히 텃밭은 살아있군요.”

난 아버지에게 말했다. 모든 것이 세월을 맞아 사라졌지만, 아버지가 계속 가꿨던 텃밭만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저 정도로 반듯하게 남아있으면, 상자로 옮겨 남창으로 운반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멍하니 날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강행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같이 가시죠.”

난 여전히 쭈그려있는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

내가 아버지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황금세가는 뒤집어졌다. 특히 아버지를 알고 있는, 옛날부터 황금세가에 충성을 다한 외원의 사람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도 못할 정도였다.

외원의 원주들은 당장이라도 축하연을 해야 된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난 그들의 회포를 풀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가주님, 정말 걱정했습니다.”

“허허. 금선원주. 이제 가주는 목환이 아닌가.”

“아, 그렇죠.”

외원의 원주들은 껄껄 웃었다. 확실히 나와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훨씬 많으니 말이다.

곽진도 역시 업무를 전부 내팽개치고 왔다. 그들의 눈에는 깊이를 해석할 수 없는 우정이 엿보였다.

“몸은 좀 괜찮소?”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아버지는 간략하게 얘기했다. 그냥 중독되어 어디서 누워있었다, 정도. 당연히 그 뒤에 엮여있는 마교의 고독이라든가 일은 얘기하지 않았다.

“오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엄청난 고초셨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해후를 즐길 수 있도록 좀 멀리 떨어졌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기쁨에 눈치를 못 채고 있었지만, 내 형제들은 오지 않았다.

일이 바쁘기도 하고,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이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에게만 유일하게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웬만한 일이면 시간에 희석됐을 터이지만, 어릴 때 기억은 쉽게 떨쳐지는 게 아닌 듯했다.

나도 그래서 불참한다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알아서 그들이 풀 문제였다. 아마 그들은 당장 어색한 건 물론이고, 혹여 잘 안 되서 영영 앙금을 못 풀 수도 있을 터다. 난 그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자, 이렇게 기쁜 날에는 마셔야죠.”

금선원주의 그 말을 기점으로 축하연이 시작됐다. 우리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쨌건 간에, 그들에게는 기쁜 날이었다.

“난 별로 고초를 겪지 않았네. 목환이가 고생이지. 잘 도와주게나.”

아버지는 연신 내게 공을 돌렸다. 그는 아직도 우리를 볼 때마다 눈을 내렸지만, 원주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당연히 저희가 가주님을 보필해야죠.”

“가주께서는 정말 황금세가의 복이군요. 아들을 정말 잘 낳으셨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확실히 아버지는 밑사람들에게는 인망이 있었나보다. 외원의 원주들이 이렇게 내게 감사하니 말이다.

원주들은 이제 날 바라볼 때 존경심마저 서려있었다. 한참 나이가 높은 사람들에게 그런 눈빛을 받으니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정말 밤새 마셨다. 나는 조금씩만 목만 축였다. 취기는 바로 내공으로 내보냈다. 아직도 쓴맛만 나서 굳이 왜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덧 창문 밖을 바라보니 자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왁자지껄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걸 조용히 바라보던 내게, 누군가가 슬쩍 다가왔다. 거대한 그림자만으로도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스승님. 아버지와 해후를 더 즐기시죠.”

“괜찮다. 이제 당장 내일 떠나지 않을 테니, 시간은 많지 않겠느냐.”

곽진도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겹쳐있음에도 곽진도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넌 정말 대단하구나.”

느닷없이 곽진도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말을 이었다.

“네가 없었다면 가문은 여전히 외적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었을 거고, 나도 밖을 맴돌았을 터고, 네 아비도 진법 속에 죽은 듯 자고 있었겠지.”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난 짧게 대답했다. 곽진도는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특히 네가 어릴 때 그 나이 누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단 말이냐.”

곽진도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 곽진도에게 이런 칭찬 일색을 들은 건 또 처음인 것 같았다.

“또 이번엔 돌아오자마자 네 아비를 데려왔지 않느냐. 이쯤 되면 난 궁금하다.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그럼 앞으로 넌 무엇을 할 테냐. 네가 여기까지 만들어 줬는데, 그 이후 관리는 나머지 사람들이 양심상 해야 될 것 아니냐.”

곽진도가 말했다. 그는 날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심정은 대충 이해가 됐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고생을 한 것처럼 보일 거다. 허나 전생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곽진도의 말대로 세가는 이제 안정화됐다. 세가 안에는 해남파도 있고, 무림맹하고도 긴밀히 엮여져 있다.

“이제부터는 외연을 확장할 생각입니다.”

“외연?”

곽진도가 반문했다. 그가 목적으로 했던 황금세가의 정상화는 지금쯤 정도였을 거다. 다시 아버지가 돌아오고, 옛 일상을 되찾는 것. 하지만 난 그 이상을 생각했다.

“용봉지회에 한 번 나가볼까 합니다.”

내 말을 듣자 곽진도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용봉지회라. 벌써부터 네 상대들이 불쌍해지는구나.”

“또 모르죠.”

“넌 적어도 이 나이 대의 성취는 아니다. 그건 내가 장담한다.”

곽진도는 두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다음 달에 예선이고, 다다음 달에 본선이었지?”

“네.”

“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잘갔다 오거라.”

곽진도가 껄껄 웃었다. 내가 볼 때는 곽진도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승님도 같이 가셔야됩니다.”

“···응? 그냥 너만 갔다오는 거 아니었느냐?”

“네. 용봉지회가 단순히 싸우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용봉지회는 후기지수들끼리 대련을 본다는 의의도 있지만, 사실상 중원의 이름 있는 문파들이 전부 모인다는 게 더 의의가 있었다. 우리가 준비됐는데 굳이 안 나갈 필요가 없었다.

“세가가 그만큼 준비되었다고 보는 것이구나.”

“이제는 보여줄 때죠.”

“허허.”

곽진도가 웃었다. 그제야 그는 술로 흐렸던 눈을 조금 씻어낸 듯했다. 날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럼, 어디까지 갈 예정이냐?”

“이번 용봉지회에서 상계라는 꼬리표를 뗄 겁니다.”

내가 말했다. 곽진도가 되물었다.

“그 다음은?”

“중원의 누구도 얕보이지 않을 만큼 좋은 성과를 내야겠죠. 전 오룡이 될 겁니다.”

“그 다음은?”

“오대세가 중 하나가 되어야죠.”

곽진도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대답할 줄은 모른 모양이다.

오대세가. 명문세가의 기준. 현재 하북팽가, 제갈세가, 남궁세가, 사천당가, 황보세가가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쉽지 않을 거다.”

곽진도가 진지한 눈빛을 했다. 웬만큼 성장하는 건 모르지만, 오대세가로 들어가는 건 다른 이야기기는 했다.

오대세가의 구성은 근 백 년째 바뀌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으니까. 그들이 쌓아온 전통과 시간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고, 괜히 오대세가에 도전했다가 왕창 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지금껏 준비를 해온 거였다.

“어렵겠죠.”

내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천하제일세가로 가기 위한 발판일뿐입니다.”

예전부터 내가 생각했던 우리 세가의 최종적인 목표였다. 황금세가가 모두 위에 군림하는, 천하제일세가가 되는 것.

곽진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꿈이 그렇게나 크게 들린 모양이었다.

곽진도에게는 어떠한 반응도 못 들은 채로 연회가 끝났다.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고주망태가 됐고, 각자 시종들은 한 사람에 세 명씩은 달라붙어서 복귀시켜야 했다.

나도 본원으로 돌아왔다. 달도 자취를 감추고, 해는 떠오르기 직전인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이때까지 그 맛없는 술을 마셨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천하제일세가.”

난 내 검인 송로를 집어 들고 본원 안쪽의 연무장으로 갔다.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서 사람들은 못 보는 개인 연무장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오 년 동안 익혔던 절학들을 다시 한 번 펼쳐볼 예정이었다.

조용히 검을 허공에 그려보았다. 푸른 검로가 대기 중에 새겨졌다. 해남파 개파조사의 무공인 영해검법을 포함해 이어검법(鯉魚劍法), 녹수검(綠水劍) 등 수많은 검로들이 그려져 나갔다.

검은 물을 베는 듯하고, 타는 듯하고, 새처럼 튕기는 듯도 했다. 각자 검마다 묘리가 달랐다. 소담한 물줄기도 있고 패력을 가진 물살도 있었다. 해남의 각기 절학이 내 손에서 펼쳐졌다.

물론 검로는 많이 변형되어 있었다. 해남파의 사람들이나 엄청난 고수들이 아니라면 못 알아볼 터다.

나는 영해검법의 마지막 초식, 창해일로(滄海一路)를 펼친 다음에야 납검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제 중원 사람들은 이 검들을 곧 목도하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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