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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05화 (106/225)

105화 무례를 범하지 마라

105화 무례를 범하지 마라

용봉지회에 갈 사람들은 결정지어져 있었다. 금화청과 내가 머리를 한참을 맞댄 결과였다. 행정 공백과 수비 공백을 고려하고, 필요한 사람들을 최대한 추려낸 거다.

이제 황금세가 식구들도 워낙 많으니, 그걸 하는 데만 해도 오래 걸렸다.

“넌 굳이 가야 되냐?”

금화청이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은 한 명의 추가 인원이 생길까, 말까하는 시점이었다.

“네.”

“왜?”

“다른 세가들은 어떻게 문파 방어를 하는가. 진법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답사용도.”

금수린은 당당하게 말했다. 금화청은 어이가 없다는 듯 금수린을 바라봤다. 그건 나도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너까지 가면 시종 더 붙여야 되잖아. 지금 사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안 붙여도 돼요.”

“억지 좀 부리지 마라.”

지금 금수린이 하남행에 끼냐, 마냐에 대해서 반 시진을 토론하고 있었다. 그 토론은 진전 없이 부딪치기만 했다.

보다 못한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중재를 했다.

“그냥 누님도 데려가죠.”

“역시 목환이야.”

금수린은 날 폭 껴안았다. 금화청은 혀를 차고 다시 종이를 폈다. 하남으로 가는 사람의 인명부였다. 그 끝의 마지막에 금수린의 이름이 써졌다.

금화청이 인명부를 좌우로 쫙 펼쳤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많이도 간다.”

금화청의 마지막 검수 이후, 황금세가의 내원이 바삐 움직였다.

우리 세가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나간 적은 단연코 없었다.

세가가 공식적으로 강호에 첫 발돋움을 하는 때였다.

*

낙양이 시끄러워졌다. 사실 낙양뿐 아니라, 우리는 남창에서 출발할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오십 명이 가까이 되는 머릿수, 화려한 수레에는 붉은 피를 흘리는 것만 같은 말들은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슨 황제라도 행차하는 건가?”

“저 마차만 해도 얼마일까? 적어도 은자 백 개는 하겠지?”

“예끼,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하나.”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마차 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밖이 시끄러웠다. 금수린은 창의 발을 살짝 들었다. 역시 구경하는 인원들로 인산인해였다.

“벌써 재밌다. 그렇지?”

“네.”

“놀러온 게 아니지 않느냐.”

난 무난하게 대답했지만, 금월상이 분위기에 물을 끼얹었다. 곽진도도 말을 이었다.

“지금 낙양은 별의 별 문파 사람들이 있을 거다. 당연히 구파일방도 있고, 오대세가도 있겠지. 혼란스러울 거니까, 최대한 침착한 마음을 유지해라.”

“···아, 네.”

금수린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조금 풀이 죽은 듯했다.

금수린과 반대로 곽진도와 금월상은 긴장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세가가 강호의 중심으로 간다는 것에 긴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현재 낙양에 있었다. 낙양은 중원에서 가장 혼잡한 곳 중 하나였다. 왼쪽에는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는 섬서, 오른쪽에는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 위쪽에는 개방과 하북팽가가 있는 하북, 아래쪽에는 무당파, 제갈세가, 무림맹이 있는 호북이다.

황금세가가 있는 남창은 상인들의 도시라면, 낙양은 무인들의 도시였다.

“남창보다 훨씬 시끄러운 것 같군요.”

“곧 용봉지회 예선이니. 올해는 저번 용봉지회보다 더 많은 걸.”

용봉지회에는 단순히 예선에 참가하려는 무인들도 있지만, 우리처럼 조직 단위로 움직이는 곳이 더 많았다.

이곳이야말로 각자 본인들의 힘을 여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이다. 우리가 이렇게 힘을 주고 온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마차는 천천히 낙양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통째로 빌린 객잔이 있는 쪽이었다.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마차는 느려졌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이 정도면 마차를 버리고 걸어가도 되겠군.”

금월상이 말했다. 마차는 느려지고 느려지다 이제는 아예 멈췄다.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멈추는 건 종종 있던 일이라, 모든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러나 멈추는 게 오래되자, 금수린이 답답한 듯 창문의 발을 확 걷었다.

“깜짝이야. 왜 이렇게 많아?”

금수린은 바로 발을 다시 내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느꼈다.

“좀 비키쇼!”

그 말이 나온 건 우리 마부 쪽이었다. 맞은편에서도 곧 언성 높은 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냐!”

우렁찬 소리였다. 목소리에 꽤 깊은 내공이 담겨 있었다. 마부도 무공을 익혔다는 것이었다.

“하북팽가다.”

“벌써 시작됐군.”

사람들이 멈춰서 관람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세가들끼리의 기싸움. 지금 우리가 맞선 곳은 하북팽가인 모양이었다. 안 비키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근데 황금세가가 비켜줘야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이 많아서 빼는 건 어려워 보이는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충돌을 본 사람들은 각자의 평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난 발을 살짝 걷어 길을 바라봤다. 이 길 자체가 넓지 않아 마차 두 개 반이 간신히 나란히 있을 정도였다. 비키기는 좀 힘들어 보였다.

“우리가 머릿수가 많으니 비켜줘야 하는 것 아니오!”

우리 마부가 말했다. 만약 이게 표물끼리의 충돌이었으면 그게 맞는 말이었다. 당연히 하북팽가는 코웃음을 쳤다.

“하북팽가는 말로 하지 않는다. 안 비키면 용봉지회는 구경도 못하게 팔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테다.”

하북팽가의 마부는 명백하게 목소리에 기를 담아 협박을 했다.

수레 근처에서 기가 느껴진다. 우리가 데려온 호위무사들이 기를 풍기는 거다. 바로 맞은편에서도 기가 올라왔다. 대기에 흐르는 긴장이 팽팽해졌다.

그때 마차 앞부분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북팽가의 마부와 다르게, 우리 마부는 황금표국의 사람일 뿐이었다.

“가, 가주님. 비켜야 할까요?”

하북팽가의 위명을 알고 있는 마부가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곽진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비켜줘. 어차피 중요한 건 용봉지회다.”

“아, 알겠습니다.”

마부는 재빨리 대답했다. 금월상과 금수린은 살짝 안심한 표정이었다. 그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충돌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곽진도 역시 득보단 실이 많은 충돌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황금세가는 득실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보여줄 때였다.

“아니. 내가 나가볼게.”

내 말에 수레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곽진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난 수레 문을 열고 내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난 마부 앞으로 나갔다. 하북팽가도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꽤 큰 규모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지?”

“황금세가의 공자인가본데. 얼굴만 봐도 귀공자구먼.”

사람들이 중얼대는 게 내게 들렸다. 하긴 내가 컸다지만 그래봐야 열여덟이다. 가주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호위무사들은 기를 거둬라.”

명령을 내린 나는 하북팽가 마부 뒤에 있는 마차를 바라봤다.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입니다. 안에 있는 분들을 좀 뵙고 싶군요.”

내가 말하자 주변 사람들의 웅성임이 더욱 커졌다. 황금세가의 직계인 건 알았지만 가주인 줄은 몰랐을 터다. 그러나 하북팽가의 마부는 꼿꼿했다.

“상가의 가주가 하북팽가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이냐!”

“그만하거라.”

마차 안에서 중후한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서 무거움이 느껴질 정도로 울림통이 컸다. 곧 하북팽가 수레의 문이 열렸다.

긴 흰수염을 기른 노인이 느릿하게 내려왔다. 나이는 칠순을 넘은 것으로 보였지만, 몸은 우락부락했고 눈빛은 형형했다.

그 노인을 보자마자 사람들의 웅성임이 커졌다. 내가 나올 때보다 훨씬 큰 웅성거림이었다.

“어? 저 분은···”

“도존님이시다!”

“풍채가 신선과도 같으시군.”

난 노인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노인을 보며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게 맞다면, 이 노인은 하북팽가의 태상가주 도존 팽의석이라는 말이었다.

“태상가주님이시군요.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입니다.”

노인은 날 유심히 바라봤다. 그 눈빛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도가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황금세가의 가주라. 아해가 가주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어리구나.”

노인이 말했다.

“하북팽가의 팽의석이다.”

팽의석이 이름을 밝히자 주변 사람들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칠존 중 하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곧 우리 쪽의 수레 문이 열리고, 곽진도가 나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주님. 아니, 이제는 태상가주님이시군요.”

“오랜만이구먼. 광랑검 선배의 아픈 손가락이었지.”

팽의석이 웃음을 지었다. 팽의석은 곽진도와 적유엽 중간의 배분으로 보였다.

우리가 나온 걸 느낀 건지, 팽가의 수레도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왔다.

우리 나이 또래 되는 아이들 남자 세 명이었다. 그들은 곽진도를 보면서 인사를 했다.

“천류유성검 선배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래. 하북팽가의 아이들이로군.”

하북팽가의 아이들은 곽진도에게만 인사했다. 나를 바라볼 때는 아무 표정도 없었는데, 아예 없는 사람을 취급하는 것 같았다.

긴장은 있었지만 마부들끼리 말을 나눌 때처럼 이야기가 험해지지는 않았다. 도존도 무림의 명숙이고 곽진도도 마찬가지다. 용봉지회의 실상이 어찌 됐든, 명분은 중원의 화합과 축제였다.

“좁은 길에서 마주쳐 괜히 무안하게 됐군.”

팽의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주가 우리를 불렀으니, 뭔가 생각이 있을 것 같군.”

“각자 조금씩 비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난 즉답했다. 바로 팽의석 뒤쪽의 하북팽가 사람들이 반발했다.

“저런, 오만방자한 소리를 하다니!”

“할아버님. 지금 저 놈이 우리 하북팽가를 모욕했습니다!”

그건 비단 하북팽가 사람들만의 의견은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있는 민초들도 수군거렸으니까.

“도존께서 나오셨는데도 저리 뻣뻣하다니.”

“너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 아닌가.”

나는 팽의석 뒤의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적대감이 가득 충천되어 있었다.

“무례를 범하지 마라. 난 한 세가의 가주야.”

“뭐?”

하북팽가 사람들의 눈이 더욱 치켜져 올라갔다. 가만히 있는 팽의석은 나를 훑어보기만 했다.

“상계의 가주 따위한테 경어라도 쓰라는 것이냐, 놈!”

“우리는 이제 상계에 국한되지 않아. 그리고 내 배분이 너희보다 높을 거다.”

난 품에서 푸른 매듭을 꺼냈다. 팽의석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내가 꺼낸 건 해남파의 사결 매듭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무시를 당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이번 하남행에는 챙긴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실례를 범했군. 천류유성검의 제자인 것 같은데,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팽의석은 바로 내 배분을 인정했다. 하긴 그도 어찌할 도리는 없을 거였다. 내가 매듭을 꺼낸 이상, 나를 무시한다는 건 해남파를 무시한다는 것과 같았다.

“얘들아. 보거라. 이래서 강호는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해남파의 사결이면 장로 아랫급 배분이라 봐야하니.”

생각 외로 팽의석은 자신의 가문사람들을 타일렀다. 팽가의 청년들은 얼굴이 붉어졌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팽의석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청년들에게 훈계를 마친 팽의석은 나를 돌아봤다.

“허나 가주, 그렇다고 우리가 비킬 수는 없다네. 보통 이렇게 사람들끼리 부딪치고, 서로 비킬 생각이 없는 상황은 용봉지회에서도 전통적인 일이지. 그러면 그 방법도 전통적으로 풀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겠죠.”

난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용봉지회는 본선만이 비무의 장이 아니다. 많은 중원인들이 모인 만큼, 많은 시비가 걸리고 많은 비무가 생겨난다. 무인들의 해결 방식은 칼이었으니.

“할아버님. 제가 나가게 해주십시오. 상계 따위가 기어오르는 것을 확실하게 짓밟아놓겠습니다.”

바로 팽의석 앞으로 나선 건 제일 커다란 도를 메고 있는 사람이었다.

“형님, 제가 나가겠습니다.”

“형님까지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뒤에 있는 청년들이 말하는 걸 보니, 아마 저 사람이 첫째인 모양이었다. 팽의석은 나를 바라봤다.

“우리 첫째인 상문이랑 해보겠는가. 나이도 비슷한 것 같고.”

“좋습니다.”

내 대답에 바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넓게 퍼졌다. 곧장 수레와 수레 사이에는 간이 비무장이 만들어졌다.

“일 초 안에 끝내겠습니다.”

팽상문은 팽의석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팽의석은 고개를 저었다.

“방심하지 말거라. 강호는 만만한 곳이 아니니.”

내가 나가려고 할 때, 곽진도의 목소리가 뒤에서 조용히 들렸다.

“죽이진 말거라.”

“당연하죠.”

전음입밀로 나눈 우리의 대화는 팽의석도 못 들은 듯했다. 난 앞으로 나갔다. 도를 꺼내기 전에 팽상문이 내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내 가랑이 사이를 지난다면 넘어가주마.”

자신이 질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난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몸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태을헌원진기가 몸에 따뜻하게 퍼져나가며, 몸 바깥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팽상문의 눈빛은 여전히 오만했지만, 팽의석의 눈빛이 변했다. 허나 이미 비무는 무를 수 없었다. 팽상문이 커다란 도를 휘두르며 내게 짓쳐들어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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