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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06화 (107/225)

106화 형님도 같이 가시죠

106화 형님도 같이 가시죠

팽상문의 도는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대기를 거칠게 찢는 소리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오호단문도다!”

검면이 넓적한 거대한 도가 내 허리를 노리고 베어들어왔다. 팽상문의 도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길을 찾아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쐐애앵!

나는 철판교의 수법을 이용해 횡으로 내둘러지는 검을 피했다. 팽상문이 눈을 부릅떴다.

“잔재주가 있구나!”

팽상문의 도가 속도를 받아서 훨씬 빨라졌다. 오호단문도의 묘리는 간단했다. 도법 자체가 워낙 강맹하니, 조금이라도 건들면 된다는 느낌이었다.

팽상문의 도는 거짓된 허초가 없었다. 오로지 진초. 날카로운 기파가 격자무늬로 내게 빠르게 다가왔다.

난 그제야 검을 발검했다. 송로에 하얀빛이 맺혔다. 팽상문은 씩 웃었다. 내공의 싸움에서 자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 하얀 내공과 팽상문의 내공이 부딪쳤다.

“어엇?”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팽상문의 눈도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보통 기파끼리 부딪치면 나는 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기는 마치 물렁한 재질인 것처럼 팽상문의 기를 감싸면서 뭉그러졌다.

‘내공이 대나무같군.’

내 기파가 팽상문의 기를 감쌌다. 나는 팽상문이 가진 무공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했다.

확실히 정직한 무공이었다. 도법에 걸맞게 내공도 강맹함을 품고 있었다. 꺾일 바엔 부러질 것처럼, 맞섬에 있어 타협이 없었다.

‘우직한 무공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격자무늬의 도기를 내 양쪽 옆으로 흘렸다. 내 뒤쪽 좌우로 땅이 거칠게 파였다.

“놈!”

팽상문은 숨 쉴 틈도 없이 내게로 돌진해왔다. 머리를 숙이고 도를 일자로 짓쳐들어오는 게 코뿔소를 연상케 했다.

뭇 사람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단순한 초식으로 보일 것이었다. 그냥 찌르기니까. 허나 직접 받는 내가 느끼기에는 커다란 충차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오호단문도는 해석하기 참 쉬운 도법이었다. 저렇게까지 균질한 강맹함을 갖추는 게 무공의 핵심인 것 같았다. 나도 역시 검병을 한 손바닥에 받치고 질러갔다. 팽상문의 거대한 도에 비하면 초라한 송로였다.

도극과 검극이 마주쳤다. 도가 워낙 넓어서 맞추기는 쉬웠다. 충차 같은 기운이 바로 해소됐다.

처음에는 그저 놀란 눈의 팽상문이었지만, 그의 눈이 곧 경악으로 물들었다. 검의 뿌리에서부터 푸른 기운이 빠르게 모이다 못해 범람한 것이었다.

만천조종검(萬川朝宗劍). 내가 해남의 절학들을 뭉뚱그려서 만든 무공이었다.

“저건 또 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무공이었다. 당연히 해남파의 사람인 곽진도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내 검이 해남에 뿌리가 있음을 알되, 처음 보는 무공일 터였다.

파도가 백사장을 휩쓸듯 검선을 타고 팽상문의 도로 흘렀다.

“으윽!”

팽상문이 도를 떨쳐냈다. 맞춰놨던 도극과 검극이 떨어지면서 팽상문은 뒤로 크게 물러났다.

“우웩!”

바로 팽상문은 피 한 움큼을 내뱉었다. 억지로 떼었다지만, 이미 내 침투경(浸透勁)은 팽상문의 몸에 커다란 충격을 준 게 틀림없었다.

‘아쉽군.’

더 보고 싶었지만, 무공의 격차는 심했다. 물론 도법이 강맹하다지만 그것도 수준이 맞아야 하는 것. 내가 보기에는 한참 밑에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팽상문은 그걸 아직도 눈치를 못 챈 건지, 아니면 뒤에 도존이 있기에 물러설 수 없는 건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팽상문의 몸에서 내공이 폭발하듯 퍼져 나왔다.

거대한 도에 두툼한 기운이 감싸졌다. 아까보다 훨씬 밝고 밀밀한 기운이었다.

“강기다!”

“비무에 강기까지 나오다니···”

허나 이미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팽상문을 걱정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일반 민초가 아닌 대개 무인들이다. 두 개의 초식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팽상문은 피를 토했으니.

퍽!

허나 도강은 결국 내게 다가오지도 못했다. 팽상문의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면서 앞으로 픽 쓰러졌다. 쓰러진 팽상문 뒤에는 팽의석이 서있었다. 팽의석이 팽상문을 기절시킨 것이다. 아마 더 하면 내상을 입을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하북팽가의 후기지수가 지다니.”

“그것도 이 초식이었네.”

“황금세가의 가주가 저렇게 강했다고?”

“난 들어본 적이 없네.”

구경꾼들은 수군거렸다. 내가 가주고, 해남파의 사결이라는 것도 무인들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상계 사람한테 하북팽가의 후기지수가 졌다는 게 더 컸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올해 열여덟입니다.”

“상문이보다도 두 살이 어리구먼.”

팽의석은 나를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어느 정도 훈련을 한 줄은 알았지만·”

나는 딱히 숨긴 적이 없었다. 그저 그건 내 내공의 특질일 뿐이었다. 태을헌원신공은 자연에 동화되는 내공. 아무리 칠존 중 하나라지만, 내 내공이 얼마인지는 잘 모를 터였다. 만약 알았다면 종리운이 먼저 난리를 쳤을 거다.

지금 난 몸에 흡수하는 내공의 효율을 크게 올려주는 신옥주가 목에 걸려 있는데다가, 폐동에서는 온갖 영약들을 먹으면서 오 년을 보냈다. 나도 내가 후기지수들의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안다. 다만 오룡이라는 이름이 필요해서 왔을 뿐이다.

“자네도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건가?”

“네.”

팽의석이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자가 졌다고 해도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 거였다. 비무의 결과는 명확했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호수에 잠룡이 있었군. 그것도 묵직한 녀석이 말이야.”

팽의석은 팽상문을 추슬러 뒤의 청년들에게 넘겼다. 뒤에 남아있는 두 명은 여전히 어리벙벙한 듯했다.

“이건 어쩔 수 없겠군. 우리가 비켜줄 수밖에.”

“죄송하게 됐군요.”

“그럴 것까지야. 아무튼 이번 용봉지회는 재밌겠군.”

팽의석은 바로 손자들을 이끌고 마차로 돌아갔다. 우리도 그것을 보고 바로 돌아갔다. 하북팽가는 길의 가장자리로 슬슬 옮겨갔다.

참 별 거 아니었지만, 이제 많이 벌어질 일이었다. 굴러온 돌을 반기는 산은 많이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마차로 돌아오자마자, 곽진도가 물었다.

“방금 건 네가 만든 무공이냐?”

“네.”

“뭔가 해남파의 색깔이 많이 섞인 것 같던데.”

“해남파에서 보내준 실전 비급들을 참고했으니까요.”

“···역시 그랬군.”

곽진도가 말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아마도 내가 보여준 검로를 다시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해남의 검법 같지만 해남의 검법이 아닐 거다. 이제 그 색깔은 점점 더 옅어질 거다. 내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근데 굳이 이 초나 쓸 필요 있었느냐?”

금월상이 물었다. 나와서 보지는 않았지만, 초식의 교환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나와의 팽상문의 차이도 말이다.

“하북팽가의 도법을 좀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애들에게 좀 보여줘야 했죠.”

“애들?”

“저희 뒤에 있는 애들 말입니다.”

당연하지만, 여기에는 내가 그렇게 공을 들여 키웠던 금원대 아이들도 있었다. 다는 아니고, 스무 명 정도만 추려서 들어왔다.

그 중에서 특정 누군가에게 더 큰 도움이 됐을 거다. 우리 금원대에도 하북팽가의 방계, 팽차월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말은 참 이상하게 들리는구나.”

생각에 잠겨있던 곽진도가 다시 끼어들었다.

“마치 금원대 아이들도 용봉지회에 나간다는 것처럼 들려.”

그 말에 금월상과 금수린의 얼굴이 내게 홱 돌려졌다. 곽진도는 역시 눈치가 빨랐다.

“네. 맞습니다.”

난 수긍했다. 금월상과 곽진도는 입만 뻐끔거렸다. 그들은 나만 나가는 걸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은 있었지만, 오늘부로 더 강하게 느꼈다. 우리 금원대 아이들도,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에 비해 절대 밀릴 정도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월상 형님도 나가실 건데요.”

“···응?”

금월상이 외쳤다.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용봉지회에 나가실 나이 아닙니까.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음, 어···”

금월상은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생각도 못한 것 같았다.

“···내, 내가 가봤자 세가에 누만 끼칠 거 같은데 말이다.”

“아닐 겁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금월상이 날 보고 살아서 그런가,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냥 세가 안에서 훈련만 하고, 강운이 계속 채찍질을 하니 무인으로서의 자존감은 없을 만했다.

“전 오히려 형님께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걸요.”

내 말에 금월상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슬슬 마차가 움직였다. 하북팽가 사람들은 말머리를 다 옮긴 듯했다. 나는 발을 미리 열어 놓았다. 인사는 해야 했으니. 하북팽가의 마차와 우리가 나란히 지나칠 때, 그들도 역시 발을 들추고 있었다.

“재밌는 구경이었네.”

“네. 들어가시죠.”

팽의석과 내 인사가 이어졌다.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고개를 숙였다. 하북팽가의 청년들도 고개를 숙였다. 마지못해 숙이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가문의 어르신이 인사하는데 따라서 안 할 수는 없었을 거다.

난 그때 잠깐 눈에 걸리는 걸 봤다. 인사를 하던 하북팽가의 자제들이 금수린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였다. 뭐라 할 새도 없이 하북팽가의 발이 먼저 내려가고, 우리도 내렸다.

“뭐 저렇게 째려보냐.”

발이 닫히자마자 금수린이 중얼거렸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건 금월상만이 아니었다. 그 눈빛을 째려보는 걸로 착각하는 금수린도 만만치 않았다.

*

우리는 통째로 빌린 객잔에 들어갔다. 아예 다른 손님을 받지 말라고 했고, 그만큼의 돈을 쥐어 줬다.

당연히 주인은 싱글벙글했다. 무인들끼리 섞여 싸울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고, 돈은 그 이상을 받으니 말이다. 객잔은 작정을 했는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하. 역시 황금세가 분들이라 귀티가 철철 흐르시는군요. 저희 약소한 객잔이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은데요.”

“어우,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객잔 주인은 우리에게 연신 조아렸다. 우리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방을 안내받았다. 시종, 호위 무인들을 포함한 오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움직이니 객잔 안이 통째로 울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여독을 풀겠구나.”

곽진도가 말했다. 남창에서 낙양까지 며칠을 왔으니 피곤할 법했다.

“이제 뭐할 작정이냐?”

창문 바깥은 아직 화창했다. 점심을 먹기도 전이었다. 옆에서 열렬한 시선이 느껴져 바라봤더니, 금수린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누님 데리고 좀 낙양 구경이나 하죠.”

“···안 피곤하느냐?”

“당연하죠.”

대답은 금수린이 대신했다. 금월상이 바로 어깃장을 놓았다.

“그냥 좀 쉬면 안 되느냐. 방금 하북팽가하고 시비가 걸린 걸 못 본 게냐?”

“그때는 어쩔 수 없었고요.”

“그럼 너 알아서 하거라.”

금월상은 빠른 포기를 하고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내가 소매를 잡았기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금월상이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왜?”

“형님도 같이 가시죠. 오랜만에 가족끼리 나들이인데.”

“네가 그런 감성적인 사람인지는 몰랐구나.”

“그리고 저희 예선 등록도 해야 됩니다.”

“아.”

금월상은 다시 자신이 용봉지회에 참가한다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곽진도는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뭔 생각인지 대충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굳이 이 늙은이는 안 껴도 되겠지.”

“네. 스승님은 쉬시죠.”

“큼. 그래, 그래. 조심히 다녀오거라.”

곽진도는 헛기침을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금월상과 금수린이 복도에 남았다. 금월상은 피곤하다는 표정이었고, 금수린은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우리 형제들도 알 때가 되었다. 강호는 바로 어떤 곳인지 말이다.

강호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지금 낙양은 온갖 문파들이 모인 곳이다. 그리고 용봉지회 예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면 무슨 일들이 벌어질 지는 뻔했다.

우리와 방금 하북팽가와 부딪친 건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당장은 지금 낙양이 거대한 중원 대륙의 축소판이 된 거다.

나 역시 금수린처럼 낙양 구경이 기대 됐다. 중원의 중심으로 처음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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