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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3화 (114/225)

113화 정파의 가치를 지켰을 뿐

113화 정파의 가치를 지켰을 뿐

초유열은 천천히 내려왔다. 눈동자는 나한테 고정한 채였다. 나도 천천히 연무장 앞으로 나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건 당연했다.

“드디어 저 오만한 황금세가 사람이 두드려 맞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초유열은 못 이기지. 현재 후기지수 중 개화한 사람은 초유열밖에 없다네.”

“애초에 현 중원에서 개화했던 무인이 얼마나 된다고.”

다른 사람들은 여유 있게 내 패배를 점치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초유열의 검이 더 화려하고 멋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렇게 검을 휘둘러야만 이길 수 있던 건 아니었다. 그 역시 나처럼 장심으로만 올라올 수 있는 실력이었다. 난 그게 보였다.

“다시 보게 될 것 같았지.”

초유열이 말했다. 그의 눈은 침착한 듯하면서도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됐네.”

“너는 강하냐?”

느닷없는 질문이었다. 강하다는 건 상대적이 아니던가. 아무리 약한 사람도 더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초유열과 나를 비교해보면 된다.

난 초유열을 슬쩍 보고 말했다.

“응.”

초유열은 픽 웃었다. 비웃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도 질문 하나 했으니, 나도 하나 해도 될까.”

“뭐든지.”

“예선은 왜 나온 거야?”

묻기는 했지만 대략 짐작은 갔다. 그래도 확실하게 물어보는 게 나을 터였다.

“벽이 느껴져서 말이야. 많은 사람들하고 무공을 나누면 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수한테도 엄청난 검격을 보여준 거다. 물론 그걸로 직접 치진 않고 마혈만 툭툭 눌러줬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나도 많이 배웠다. 근데, 너한텐 더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너한테는 배울 게 있을 것 같아.”

“그럼 다행이군.”

초유열은 느리게 손을 사선으로 내려 검병을 잡았다. 시퍼런 칼날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빛에 비쳤다.

“난 예전에 매화검선(梅花劍仙)님을 본 적이 있다.”

초유열이 말했다. 매화검선이라. 한 이백 년 전의 사람이었다. 이백 년 전에 천하제일인이었던 무인. 갑자기 여기서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다.

“아직도 살아있어?”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다 헛것을 본 거라고 했지만, 난 내가 진짜 봤다고 믿는다. 그분은 내가 천하제일인이 되면 다시 오신다고 했다.”

초유열이 말했다. 눈빛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난 끊임없이 수련했고, 그 덕분에 나름 촉망받는 후기지수로까지 성장했다.”

초유열의 몸에서 매화향이 옅게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연무장을 꽉 채울 정도가 됐다. 꽃냄새가 자욱하니 마치 진법 안에 갇힌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벽을 빨리 깨야 한다. 저 벽 너머에 천하제일인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매화향은 물론이고 이제는 분홍색 안개까지 퍼졌다. 나도 기를 피어 올렸다. 전신에서 기가 소용돌이치고, 그 회전력으로 밖으로 내보냈다.

후우욱!

바람을 걷어가는 소리와 함께 연무장의 매화향과 안개가 걷어졌다. 초유열은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쪼록 내가 이 벽을 빨리 깰 수 있도록, 네게 협력을 구하고 싶구나.”

초유열은 곧바로 내게 도약했다. 난 심판을 바라봤다. 심판도 당황한 거다. 시작도 안 했는데 바로 달려들다니. 초유열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난 바로 송로를 꺼내서 내리치는 초유열의 검을 막았다.

쾅!

심판은 바로 뒤로 물러났다. 초유열이 든 검에서 분홍색 강기가 맺히더니, 곧 구체처럼 형상화됐다.

“검환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검환은 강기가 구체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것은 강기의 사용이 익숙해질 정도의 경지라는 거였다.

초유열은 한 걸음 내딛는 듯 하더니, 신형이 쭉 늘어져 내 앞에 다가왔다. 연무장 바닥에는 발자국에서 분홍색 기운들이 연기처럼 올라왔다.

매화색 안광과 함께 크고 작은 검환들이 순식간에 날 압박해왔다.

‘대단한데.’

난 인정했다. 초유열은 내 또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다른 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검격이 거칠지도 않았고, 완급조절도 완벽했다.

“역시 넌 고수였구나!”

초유열이 외쳤다. 그 목소리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난 몸을 작게 돌아 회전력을 만들었다. 내 손에서 만천조종검이 펼쳐졌다. 검에서 푸른색과 흰색, 두 줄기로 된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초유열의 검환과 내 강기가 부딪쳤다.

콰콰쾅!

거품처럼 떠있는 검환들에 내 강기가 냇물처럼 흘렀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면서 귀가 멍멍할 정도의 소리가 났다.

“···믿을 수가 없군.”

“강기를 저렇게 능숙하게 쓴다니···”

객석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들 앞에서 강기도 보여주지 않았고, 검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숨긴 게 아니다. 쓸 필요 없이 이길 수 있으니 안 보여준 거다. 허나 초유열의 검환은 권장법으로 맞설 수준은 아니었다.

“흐읍!”

초유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들의 검환은 내 굽이치는 강기에 하나씩 부서졌다. 물론 그게 초유열의 마지막 수는 아니었다. 검이 환영을 보였다. 세워진 칼이 가시가 달린 수레바퀴처럼 원으로 돌아간다.

검극마다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신기한 운용법이었다. 꽃처럼 되어있는 강기의 형태는 아름다웠지만 가장 효율적으로 강기를 쓰는 방식이기도 했다. 기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끈끈했기 때문에 벨 수는 없었다.

나는 검을 어깨 높이에서 수평을 만들고 꽃이 피어난 방향을 전부 찔렀다.

“대단하구나!”

초유열이 외쳤다. 목소리는 명백하게 즐거워하는 듯했다. 커다래진 목소리의 비례해서 강기가 연무장 바닥에서 더욱 피어나고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주변이 꽃밭이 됐다. 물론 밟으면 터지는 강기의 꽃들이었다.

콰콰쾅!

“으아악!”

그때였다. 연무장 객석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린 건 말이다. 초유열과 나는 뭐라 할 것도 없이 바로 초식의 교환을 멈추고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

초유열은 놀랐다. 황금세가의 가주라는 금목환은 분명 자신보다 어려 보였다. 딱히 거만을 떨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 나이대에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이미 초유열은 불혹을 넘은 매화검수와도 비등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거만이 아닌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검법은 커다란 파도를 보는 듯하고, 금목환은 그 파도 위에 타서 굽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콰콰콰쾅!

강기가 너무 터지다 보니 귀도 먹먹하다. 한 두 번 강기 터지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니지만, 금목환은 초유열이 펼치는 강기를 전부 막아냈다.

‘이런 사람이 중원에 안 알려졌다니.’

초유열도 많은 후기지수들과 비무를 해봤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후기지수라는 것들은 대개 상대가 안 됐다. 정말 한 합에 다 끝났으니. 그러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금목환의 검법은 유유한 것 같으면서도 강맹했다. 초유열은 금목환의 검에서 파도를 느꼈다. 뚫고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한 밀밀함이었다.

그러나 초유열은 그 사이에서도 파도를 한 번에 관통할 수 있는 검로를 생각했다. 오로지 이 검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검격.

막 생각한 것이지만 그건 초유열의 입장에서도 창의적이고 훌륭한 검로였다.

쿠구구궁···

강기와 강기가 서로 부딪치고 비벼대며 땅바닥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초유열에겐 길이 보였다. 그 길 외에 검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강제된 것 같은 초유열의 검로. 그 검로들은 초유열이 지금까지 써본 적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밖에 없으니 가는 것뿐이었다. 정신없이 휘두르던 초유열은 뒤늦게야 그 사실을 눈치 챘다.

‘···설마.’

지금 금목환이 자신의 검로를 통제하는 걸까. 그 생각이 들자 등줄기에서부터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비등한 고수까지는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격차라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들어온 천재라는 말만 수천 번은 될 거였다.

쾅!

그때였다. 연무장 근처에서 폭음이 들린 건.

금목환은 폭음이 난 쪽을 바라봤지만, 초유열은 소음이 난 곳 보다 금목환을 먼저 봤다.

지금 자신은 호흡이 거칠어져 있는 반면, 금목환은 안정된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

심판이 말하며 소리 난 쪽으로 주먹을 뻗었다.

쿵!

마치 벽을 친 듯한 소리가 나더니 권풍이 빠르게 날아갔다. 소림의 절학. 백보신권이었다. 권풍은 폭음과 먼지가 이는 쪽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곳에선 한 명이 오만하게 서있었고, 몇 명이 머리에 땅바닥이 박힌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당연히 소림의 심판과 주변에 있는 소림의 무인들이 서있는 사람을 둘러쌌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소림의 무인들이 있는데도 저런 일을 저질렀다는 건, 손속이 굉장히 빨랐다는 걸 의미했다.

“···저 녀석이 정파인 같지 않은 이야기를 하더군. 그래서 정파인으로서 단죄를 내렸다.”

그 사람은 초유열도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천주성이라는 곳에서 나온 선우진이라지. 이 대회에서 깊이가 가늠이 안 되는 두 사람 중 하나였다. 나머지는 당연히 금목환이었다.

아무튼 선우진은 용봉지회에 나올 정도로 어려 보이는데, 이립은 넘은 것 같은 소림의 무인들 앞에서 반말을 하는 걸 보면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 안 되지는 않지.”

선우진이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저들이 어떤 말을 입에 담고 있었는지. 당신도 들었을 거 아닌가.”

선우진은 손가락으로 소림의 무인을 가리켰다. 그들 근처에 있던 무인이었나보다. 소림의 무인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용봉지회 중 소란을 일으키는 건 실격 대상이다.”

“용봉지회 같은 행사가 우선인가, 정파의 가치가 우선인가. 난 정파의 가치를 지켰을 뿐이다.”

선우진은 못내 당당했다. 그쪽으로 도약한 소림사 심판이 물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건데 그러는가?”

소림사 무인은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차마 입에 담기도 뭐할 정도로 천박한 성희롱이었다. 그 대상은 황금세가의 금수린이라는 여자였다.

초유열도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백마사 앞에서 금목환 옆에 있던 여인을 말하는 것이겠지. 황금세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쪽으로 이야기가 흐른 것 같았다.

소림의 심판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정파의 가치가 상반되는 더러운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런 음담패설 때문에 용봉지회의 소란을 불러왔다는 건 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참 애매했다.

“알아서들 판단하시오. 날 탈락시키는 것도, 본선에 올리는 것도 그대들의 자유이니.”

선우진은 그렇게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빠져나가기 전 연무장 쪽을 바라봤다. 선우진의 눈은 금목환을 향하고 있었고, 금목환도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청난 기세가 오고간 듯했다.

선우진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고꾸라진 무인들을 일으켰다. 참 애매한 건, 선우진은 이미 본선이 확정된 무인이었고, 음담패설을 한 무인들 중 몇 명도 본선이 확정된 무인이었다는 거다.

“···허.”

심판이 혀를 찼다. 그런데 쓰러진 무인들은 최소 세 달은 정양해야 될 정도로 심하게 얻어맞았다. 사실상 본선에 가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심판은 몇몇 사람들과 회의를 하다가 이내 결과를 발표했다.

“용봉지회 예선은 끝이오! 본선에 갈 사람들이 모두 정해졌소. 결과는 닷새 후에 방을 붙이겠소. 소협들은 모두 돌아가도 좋소.”

초유열은 눈을 끔뻑였다. 예선이 거의 막바지긴 했지만 본선에 갈 무인들이 부족한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바로 목을 홱 돌려 금목환을 바라봤지만, 금목환은 이미 연무장에서 내려가 자신들의 무리로 향하고 있었다.

*

나는 말아놓았던 종이를 다시 펼쳤다. 이해는 된다. 황금세가가 없었다면 이번 용봉지회의 주인공은 천주성이었을 거니까.

새로운 신비문파의 중원 출현. 생각만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이 받아야 할 주목을 황금세가가 전부 흡수해버린 거다.

“재미있는 판단인데.”

선우진이라는 무인은 본선을 확정지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걸 안 것이다. 천주성의 목표도 황금세가와 똑같았으니까.

그러니 저렇게 도박수를 건 거다. 금수린을 향한 음담패설을 잡은 건 개인적으로 고맙지만, 사실 선우진은 그냥 이목을 끌만한 일을 한 것뿐일 테다.

초유열도 어떻게 보면 선우진한테 은혜를 입은 셈이다. 예선에서 떨어져야 했는데 그의 행동 때문에 본선으로 올라간 셈이니까.

“복잡하군.”

이제 슬슬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던 구파일방, 오대세가들도 올 거다. 사흘 뒤에 해남파의 사람들과 무림맹 사람들이 온다는 연락도 받았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어떤 파란이 펼쳐질지는 나도 쉽사리 예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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