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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18화 (119/225)

118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118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구파일방의 수장을 논하면 응당 소림사고, 그곳의 수장을 맡고 있는 진권은 당연히 유명 인사였다.

진권은 가만히 한 바퀴를 돌아 연무장 주변을 둘러봤다. 연무장 근처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종리운과 적유엽, 팽의석을 비롯한 고수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해진 건, 진권이 무형의 기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인위적임을 못 느낄 압박. 몇 만 명을 동시에 침묵시키는 데는 당연히 기술이 필요했다.

가족들끼리 소곤거리는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마저 잠재워지고, 평상시 숭산인양 새소리가 평화로웠다.

그제야 진권은 포권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소림사 방장 진권이오.”

그 소리는 아주 나지막했지만, 모든 사람의 귓속에 울렸다. 무공과 관련 없는 사람들은 신기해했고, 고수들은 움찔했다. 이렇게 많은 범위를 덮을 정도의 육합전성이라니, 내공이 짐작가지도 않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 나온 건 이번 용봉지회를 맡은 곳이 소림이고, 그곳의 총책임자가 나이기 때문이오. 그 이상의 이유는 없소. 나는 이곳에서 그 누구에게도 군림하지 않는다고 먼저 말씀해두겠소.”

진권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해의 동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 용봉지회보다 선불지회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오. 선불지회는 천하제일인을 가리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소. 굳이 따지자면 비교와 순위를 매겨 숫자 놀음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 근본이 있다고 할 수 있소.”

진권의 말에 사람들이 살짝 웅성댔다. 선불지회는 늘 용봉지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고,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오룡삼봉이 탄생하는 순간을 기대하는 사람들보다, 천하제일인이 탄생하는 순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배의 배는 더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권은 오히려 반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봉지회는 다르오. 선조들께서 한참 마교의 위협을 받을 때, 후일을 걱정하여 후기지수들을 모아 서로의 비무를 시키고 배움을 나누는 모임이 현재 용봉지회가 된 것이오. 그러니 용봉지회의 근본은 마교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정파의 의지와 혹시나 있을 두려워할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줌에 있으니 더 고귀한 건 말할 필요도 없겠소.”

이어지는 진권의 말에 소란스럽던 청중이 다시 가라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진중한 가운데 고아하여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소협들은 여기 강호의 동도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 책임감을 무겁게 가져야 하오. 단순히 무위를 자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오. 긴장감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긴장하고, 그 긴장감을 버틸 수 없다면 스스로 내려감을 택하는 게 서로에게 좋소.”

진권의 말은 용봉지회의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도 들리게끔 한 모양이었다. 축제로 알고 온 사람들의 분위기가 엄중하게 가라앉았다.

“그 긴장감을 버티고 중원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냈다면, 정면 돌파로만 나가시기 바라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작고 협소한 길은 결국 대도(大道)로 환원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오. 모든 참가자들의 건투를 비오.”

진권은 그 말을 하면서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나, 진권은 정파의 조사들을 대신하여 용봉지회가 공식적으로 열렸음을 선언하오.”

진권은 그 말을 하고 연무장 바깥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연무장에서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까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거 참, 엄청 힘주고 들어가는군. 내가 강호에 돌아다닐 때는 꼬꼬마였던 놈이.”

“저런 것도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적유엽과 팽의석이 수군거렸다.

곧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소림의 무인이 몸을 공중에서 회전하며 중앙에 착지했다.

“용봉지회 첫 경기는, 하북팽가의 팽상문 소협과 모용세가의 모용진무 소협이오. 각자 앞으로 나오시길 바라오.”

심판이 무인의 대진을 발표하자, 다시 용봉지회의 연무장은 북새통으로 변했다.

“하북팽가? 이번에 황금세가한테 기싸움에서 밀렸다든데. 올해는 기대를 안 하는 게 좋겠어.”

“모용세가는 지금 이빨을 갈고 있을 걸. 천주성한테 거점을 뺏겼으니 이 악물고 준비했겠지.”

“그럼 모용세가가 이길 확률이 높겠군.”

벌써부터 사람들의 승자예측이 시작됐다. 진권이 깔아놓은 고요함도 잠시뿐이었다.

또 진권이 엄숙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근본적인 의미에서 용봉지회는 중원의 즐거운 축연이었다.

“팽상문 힘내라! 너한테 걸었다!”

애초에 이런 싸움이 있다면 승자를 예측하는 도박도 범람하는 법. 관객들은 서로 편을 갈라 사람들을 응원했다.

동시에 팽상문과 모용진무가 나왔다. 팽상문도, 모용진무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팽상문과 모용진무는 서로 안면이 없는 듯 땅바닥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러면 바로 시합이 진행되니 말이다.

“시작!”

바로 모용진무의 검이 날았다. 검이 찔러가면서 팽상문의 극혈들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찔러갔다. 모용세가도 해남파와 비슷하게 중원에 좀 떨어져있다 보니 실전 검술이 발달한 곳이었다.

비상검법(飛翔劍法)은 그래서 자유로운 기풍과 살벌하기로 유명했다.

팽의석은 걱정했다. 검법이 정사에 걸쳐있는 모용세가와 달리, 하북팽가는 뿌리 깊은 도의 명가다. 심지어 도라는 무기 자체마저 단순하기까지 하니, 실전적인 변초가 많은 모용세가에게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 어?”

“모용 공자가 너무 앞서는데?”

“그렇지!”

주변의 객석들은 이미 승자를 점치고 있었다. 팽상문은 모용진무의 파상공세에 뒷걸음질치고 막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팽상문은 뒤로 너무 밀린 나머지 연무장 가장자리까지 왔다. 당연하지만 연무장 바닥으로 내려가면 탈락이었다.

“흐아앗!”

모용진무가 젖 먹던 힘을 다 쓰는 듯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얇은 검이 흔들리고, 다섯 개의 실초와 스무 개로 이루어진 허초가 날아간다.

채채채채챙!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겹쳐서 났다.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무겁게 부딪쳤던 소리와는 상반되게 달랐다.

모용진무의 안색이 하얘졌다. 그도 팽가의 오호단문도가 단순무식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변초와 허초를 많이 섞으면 될 거라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팽상문은 힘을 감추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도에 엄청난 변화를 줘서 모든 검격을 막아냈다. 도는 하나지만 잔상이 열 개 이상으로 보일 정도였다.

“엇.”

그렇게 잠시 당황할 때였다. 잠시 당황이라는 건 비무에서 봐줄 사항이 아니었다. 팽상문의 칼등이 모용진무의 갈비뼈를 쳐냈다.

“커억!”

모용진무가 오른쪽으로 날아가 벽에 쿵 부딪쳤다. 흙먼지가 일었다.

첫 경기의 승자와 패자가 정해졌다. 심판을 맡은 소림사 무인이 손을 들었다.

“승자 하북팽가 팽상문!”

승자 선언과 함께 연무장이 우레와 같이 울렸다. 팽상문에게 건 사람들이 소리를 친 것이었다. 물론 모용세가에 건 사람들은 침울했다.

“···뭐야, 모용세가가 상대도 안 되는군.”

“저러니까 천주성한테 요녕을 뺏겼지.”

팽상문은 이겼는데도 크게 기쁜 기색 없이, 오히려 갸웃거리며 내려갔다. 뭔가 자신의 마음처럼 잘 안 된 것 같았다.

“아들 잘 키웠네. 그렇지. 단순하게 힘을 싣는 게 오호단문도의 묘리기는 해도, 속도를 올리려면 충분히 올릴 수 있는 도법이니까. 무공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데.”

적유엽이 말했다. 종리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작 뿌듯해야 할 팽의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저 도의 움직임은, 팽상문에게 도무지 못 보던 것이었고 펼칠 수도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 열흘간에 저렇게 많은 변화를 일궈냈단 말인가. 무공의 깨달음이 올라갔다.

팽의석은 당연히 금목환에게 생각이 미쳤다. 열흘 만에 무공의 깨달음을 올리는 성과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 아이의 끝은 도무지 어디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

“야, 대진표 한 번 역하게 짰네. 소림의 정화랑 초유열이 만나려면 마지막에나 만나겠군.”

“우연의 일치입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흰색 수염을 기른 노인이 껄껄 웃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볼 수 없겠지만, 여기서는 연무장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용봉지회에는 권위 있는 심판이 따로 있다. 용봉지회에 패자전이 있다고는 해도, 대진운이라는 게 분명 존재하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권위 있는 심판이 있는 거다. 운이 없어서 패자전에서까지 강자를 만나 떨어진 경우, 심판의 권위 아래 세 명까지는 살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야말로 그걸 선정하는 사람이 권위 있는 사람이니까.

저번에는 검선(劍仙) 오유해였고, 올해에는 약선 화종도였다. 중원에서는 가히 신으로 추앙받는 삼선에 말의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초유열이랑 붙는 애들은 네가 싫어하는 애들이냐?”

“아시지 않습니까. 약선님. 강자들끼리는 분배해야 오룡삼봉을 뽑을 때 논란이 안 생긴다고요.”

“그 명목으로 엄청 많이 대진표 조작했지. 근데 내가 말했잖냐. 올라갈 사람들은 올라가고, 내려갈 사람들은 내려가.”

화종도는 연무장을 바라봤다. 그래도 첫 경기부터 나름 재미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귀찮은 자리는 받지도 않았을 텐데, 돈을 많이 준다고 하기에 수락했다.

근데 막상 와보니 후학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 보는 맛이 있었다.

“아직 처음 팽가의 아이보다 괜찮은 애가 없네. 의석이가 자신 없다고 하기에 흉작인 줄 알았는데, 그냥 엄살이었군.”

“확실히 그 아이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실력이더군요.”

지금도 여전히 용봉지회는 계속되고 있고, 명가의 아이들도 많이 나왔지만 약선 눈에 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뭔가가 부족한대. 그리고 남궁세가는 뭘 가르치기에 애들 검에 독기가 서려있냐. 숫제 사파의 검이 되어버렸군. 형만 창궁무애검법이지.”

진권은 연무장 바깥으로 내려가는 남궁홍예를 바라봤다. 전의 남궁홍학도 그랬지만 정파의 진진함이 없었다. 마치 이기는 것에만 몰두하는 독기 서린 검. 저러면 일정 이상 고수는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벽을 깨기 힘들어진다.

무학은 학문이며, 누군가와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황금세가의 금월상 소협, 화산파의 초유열 소협 나오시오!”

“오.”

심판의 말에 화종도도 진권도 연무장을 바라봤다. 가장 유명한 기재, 초유열의 경기는 봐야 했다.

“그런데 황금세가는 상계 아니야?”

“요즘 무가로 거듭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더군요. 이제는 낙양에서 꽤 유명한 소식인데요.”

“난 그런 헛소문 안 믿어. 직접 본 것만 믿지. 그래도 예선에서 올라올 정도면 실력이 괜찮겠네. 아쉽게도 초유열을 만나버렸지만 말이야.”

“저 친구한테는 불행이죠.”

화종도는 끌끌 혀를 찼다. 안타까웠다. 아무리 기재라고 해도 초유열을 이길 수는 없다. 오 년 전쯤 화산파에 갔을 때도, 이미 그는 후기지수의 수준이 아니었으니.

금월상과 초유열이 동쪽 끝, 서쪽 끝에서 각자 나왔다. 화종도는 금월상을 보고 이채를 띄었다.

“몸 하나는 괜찮네. 몸집도 크고, 팔도 길고, 무공을 익히기 딱 좋겠어.”

“그래도 초유열한테는 힘들죠.”

“그건 너무 당연하죠.”

약선과 소림의 방장도 이런 얘기를 나눌진대, 일반 사람들도 승자에 대해서 아무 이견도 없었다.

“이번 건 때려죽여도 초유열이지.”

“솔직히 정신 나간 녀석이 아니면 누가 황금세가 사람한테 걸겠어. 남궁세가나 무당파 정도면 좀 걸렸겠네.”

“그래도 좀 명가를 붙여주지. 적어도 세 합은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몇몇 사람들은 금월상을 안타까워했고, 몇몇 사람들은 초유열의 검술을 얼마 못 본다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금월상과 초유열이 각자 마주 섰다.

황금세가 사람으로서는 용봉지회 본선 첫 출전이었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연무장의 대기실. 금목환이 팔꿈치를 허벅지로 지탱하고 두 손을 입으로 모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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