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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22화 (123/225)

122화 괜찮다니까요

122화 괜찮다니까요

“···이거? 이걸 왜?”

“만년한철이라서요. 피해자인데 그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진권도 그것이 만년한철이라는 건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서 집어든 건 아닐 터였다.

당장 그들은 형산파의 제자가 암수를 썼고, 그를 조사해야 하니까.

진권은 이상한 눈빛을 하면서도 그냥 내게 던져줬다.

“역시 상계 사람이라서 계산이 돌아가나보군.”

“네. 그렇죠.”

“근데 자네는 괜찮나? 혹시 내상을 입은 거라면 의원을 붙여줄 터인데.”

“네. 괜찮습니다.”

“꽤 강한 폭발이었는데···”

진권은 갸웃했다. 그의 상식대로라면 후기지수 수준에서 받아낼 폭발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막아냈으니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이건 용봉지회를 맡은 소림에도 책임이 있으니, 개인적으로 바라는 걸 말하게나. 웬만하면 소림이 다 들어줄 터이니.”

진권은 그 말을 하고 홍문원을 들쳐업고 나갔다. 나는 칼자루를 받고 허리춤에 찔러넣었다. 아직까지 마기가 느껴졌다.

내 앞에 있던 곽진도, 팽의석, 적유엽도 약간 당황했다.

“그게 끝까지 봐서 얻은 가치더냐?”

곽진도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이제 돌아가시죠.”

그들은 단체로 황당한 표정을 했고, 구경꾼들은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가는지 몰라 웅성대기만 했다.

“근데 도존하고 해남파 장문인인데?”

“옆에는 천류유성검인데.”

“황금세가의 가주와 무슨 관계인데 저렇게 나왔을까.”

다른 사람들 역시 칼자루보다 우리들의 관계를 더 궁금해했다. 하긴 용봉지회에서 별미는 고수들끼리 모이고, 어떤 고수와 고수가 사이가 좋고, 나쁜지가 보인다는 거였다.

우리는 웅성대는 그들을 두고 연무장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이긴 걸로 처리됐고, 팽차월도 내 전번에 해서 이겼기 때문에 황금세가는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직 양초원과 팽상문의 비무가 남아있어 하북팽가와 해남파는 다시 관객석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내게 걱정을 했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바깥으로 나와 숭산을 내려가려고 할 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가주님!”

굉장히 빠르게 다가오는 기감. 난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호흡이 거칠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내 앞으로 선 건 한유림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날 바라본 한유림의 눈에 수심이 가득찼다.지금 내 모양은 옷도 많이 잘리고, 핏자국도 많아서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인 탓이다.

나 대신 곽진도가 대답했다.

“목환이는 괜찮다. 목환이가 걱정되서 온 게냐?”

“그게 제 할 일이니까요.”

“뭐, 그렇긴 한데···”

한유림은 곽진도의 말이 있었음에도 계속 내 몸을 훑어봤다. 아직까지 걱정이 덜 가신 모양이었다.

“괜찮아. 근데 비무는 하고 왔어?”

“아뇨.”

난 잠깐 할 말을 잃었고 곽진도는 떨떠름한 표정이 됐다. 그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또 누군가가 여기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보니까 달려오는 건 갈유월이었다.

갈유월은 곧 내 앞에까지 왔다. 그녀 역시 내 몰골을 보자 눈이 수심에 잠겼다.

“괘, 괜찮아?”

갈유월은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호흡도 부족해보였다. 내가 볼 때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녀가 더 안 괜찮았다.

“응.”

“많이 다친 거 아니야?”

“응.”

갈유월의 흥분하던 열기가 스르륵 식어간다.

“너도 설마 비무 안 하고 왔어?”

내가 물었다.

“···응.”

갈유월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유림은 내 호위가 본업이니 그나마 이해가 됐지만 갈유월은 왜 비무까지 내팽개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갈유월 본인조차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

난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실격됐을 확률이 높았다. 그녀들은 멍하니 나만 바라봤다. 이 상황은 애매했다.

한유림은 여기 온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 듯 떳떳했지만, 갈유월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한유림. 내가 말했지. 내 호위도 호위지만, 황금세가를 지키는 게 우선이야. 내가 너를 용봉지회에 내보낸 건 황금세가라는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였어.”

난 한유림에게 말했다. 한유림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크게 질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근데 뭐,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이건 잘못이 아니니까. 네 선택일 뿐. 그래도 너무 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

“네, 알겠습니다.”

한유림은 당당했다. 아까 고개를 숙였지만, 그냥 그건 반응이었을 뿐이었다. 아마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한유림은 내게 다시 달려올 확률이 높았다. 근데 그것까지 뭐라할 생각은 없었다.

난 그리고 갈유월을 바라봤다.

한유림은 얼결에 나왔다고쳐도, 이번 용봉지회는 갈유월에게는 많은 게 달려있었을 거다. 종리운의 명예, 무림맹의 명예 등.

“갈유월.”

난 갈유월을 불렀다. 마치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고양이처럼 갈유월이 흠칫했다.

“···으, 응?”

난 잠시 생각했다. 한유림은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지만, 갈유월은 아니었다. 갈유월에게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이었다고 말하는 건 내 소관이 아니었다. 종리운이 알아서 할 터였다.

그러니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고작 이런 것밖에 말이다.

“만약 실격됐으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어? 그게 돼?”

“아마도.”

난 방금 소림사 방장이 뭔가를 부탁하면 들어준다는 얘기를 생각했다. 솔직히 소림사한테 별로 받을 것도 없는데, 이렇게 쓰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 다시 돌아가봐. 어떻게 됐는지 모르니까. 한유림, 너도.”

“네.”

“···응.”

난 그녀들을 보냈다. 한유림과 갈유월은 경공을 써서 달려갔는데, 달려가면서도 내 쪽을 계속 뒤돌아보았다. 내가 내상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일까. 그렇게 큰 진동이 울렸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진권도 물어봤었지.

“아.”

난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면 용봉지회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그렇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난 전혀 내상을 입지 않았는데 말이다.

*

“하, 골치 아프네.”

진권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형산파의 제자는 정말 모르는 일이고, 문파에서 검을 받았다고만 증언했고, 형산파는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형산파 자체에 의심이 가는 게 사실이었다. 사실 비파검 정도면 어떻게든 형산파 제자에게 의심이 쏠릴 수 있었다.

당장 비파검처럼 벽력탄을 쓰지 않고, 검의 끝에 내공을 줘서 깨뜨리는 초식도 있으니 말이다. 암기의 사용이 무조건 실격의 요소는 아니었다. 가끔 그런 식으로 더럽게 올라가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근데 이건 대놓고 살상을 목적으로 했다. 은원이 있는 건 황금세가와 형산파지, 금목환과 홍문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냐는 거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거창하게 용봉지회를 망친다? 오히려 그게 형산파에게 더 안 좋았다.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거였다.

일단 형산파의 제자는 옥에 가둬두었고, 형산파 사람들에게도 하산금지령을 내리고 사람을 붙여놨다.

골치 아픈 진권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똑똑.

“누구냐.”

“공휴(空休)입니다.”

“들어오거라.”

공휴는 진권의 한 배분 밑인 사질이고 최측근이었다. 그에게 진권의 입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더냐.”

“황금세가 가주가 서한을 보내왔습니다.”

“가주?”

잠깐 누구인지, 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오늘 있었던 사건의 피해자, 금목환이었다. 워낙 어려서 가주라고 생각하기가 좀 힘들었다. 중원에서 가주라면 대부분 빨라야 불혹이었으니까.

진권은 뭔 그렇게 어린 놈이 가주인지, 투덜거리면서 서한을 받았다.

“···음.”

서한의 내용은 용봉지회에서 실격된 둘을 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붙지도 않았고, 흔들림을 느꼈을 때 자신의 명예를 도외시하고 왔으니 오히려 더 칭찬해줘야 한다는 교묘한 논리였다.

“그래도 이런 전례는 없는데···”

용봉지회에서 패자가 부활하는 방법은 권위 있는 심판이 강함을 인정해서 하는 것으로, 아예 불참한 건 논외였다.

근데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고, 당장 두 시진 전에 본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웬만한 건 들어주겠노라고.

진권은 어이가 없었다. 소림사 방장이 무언가를 준다는데 이렇게 빨리 말하는 사람이 대관절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둘을 살려달라는 얘기다. 하긴, 도존, 천류유성검, 광랑검이 아끼는 아이인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였다. 어딘가는 범상치 않다는 것. 그 단면을 진권도 본 것 같았다.

“···얘들 살려.”

진권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 커다란 폭발이 있었던 것도 용봉지회에서 처음이었고, 이런 식으로 살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전례가 없는 상황이 많이 나오는 용봉지회였다.

*

용봉지회는 쉼이 없었다. 그냥 하나의 상황처럼 지나갔다. 사실 소림 입장에서도 굳이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을 터였다.

형산파가 어쨌든, 형산파 제자가 어쨌든 결국 용봉지회를 맡은 건 소림이고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굳이 그걸 길게 끌고나갈 건 아니었다. 물론 조사는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근데 너 진짜 괜찮은 거냐?”

“네. 괜찮다니까요.”

오늘만 해도 난 이 질문을 스물 일곱번을 들었다.

어제 내가 그런 꼴로 돌아가니 금수린과 금월상이 경악을 하고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난 계속 괜찮다고 말했지만, 금월상과 금수린은 지지 않겠다는 듯 더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아침에도 괜찮냐는 안부, 다쳤는데 비무를 나가야겠냐는 말들이 많았지만 난 그냥 나왔다. 근데 같이 나온 곽진도도 기어이 한 마디를 끼어든 거다.

“아니, 네가 괜찮다고 하는 걸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제가 안 괜찮았던 적이 있었나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엄청난 폭발 아니었느냐.”

“괜찮다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곽진도는 황망한 표정이 됐다. 내가 그렇게 말을 끊어버린 적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너무 많이 들었기에 나도 방어는 해야 했다.

대충 내 심기를 눈치 채고 조용한 팽차월과 함께 참가자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로 들어가자 많은 무인들의 시선이 꽂혔다. 저 사람이 어떻게 나왔지, 하는 표정들 같았다.

그들은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빠질 걸 이미 염두해두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하긴 그들의 상식에서는 그런 폭발에서 내상을 안 입는 게 말이 안 될 거다.

“···가주, 괜찮은 겁니까?”

물론 그 중에서도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있었다. 하북팽가의 팽상문이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오룡보다는 목숨이 중요한 건 아닐는지.”

그때 우리의 대화에 누가 꼈다. 난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었나. 근데 어디선가 낯이 익었다.

“···누구냐?”

“날 모르느냐?”

남자가 도끼눈을 떴다. 난 팽상문을 바라봤다. 팽상문의 지인 아닐까. 팽상문은 다행히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무당의 청진이요. 뭐 개인적으로 아십니까?”

난 잠깐 머리를 돌렸다. 아주 옛날에 해남파에서 시비가 붙었던 무당파의 무인이었다.

“황금세가 금목환 소협, 황보세가의 황보웅 소협 나오시오!”

나는 그때 심판의 소리를 들었다. 황보웅도 이번에 숭산에서 만난 연이었다. 좋은 연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나도 은원이 많은데.’

난 슬며시 웃었다.

은원 하나를 정리할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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