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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24화 (125/225)

124화 너무 썩지는 말려무나

124화 너무 썩지는 말려무나

참가자가 아닌 구경꾼들을 위한 복도, 그곳에는 커다란 대진표가 걸려있었다.

대진표 앞은 사람들이 모여서 굉장히 시끄러웠다. 서로가 고성을 난무하고, 욕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이 안 될 건 뭐냐! 어차피 운인데!”

“이게 운이라고? 참나!”

대진표에서 싸우는 건 참가자가 아닌 구경꾼 무인들이었다. 당연히 용봉지회 비무가 벌어지는 건물에서 싸우는 건 금기다. 소림사 무인들한테 팔이 꺾여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진표 앞의 분위기는 누구 하나라도 출수할 것처럼 흉흉했다.

“이 대진표가 말이 돼? 같은 사람들끼리 두 번을 붙는다니!”

“이 사람아! 대진이 그렇게 나온 걸 어떡하라고!”

“누가 봐도 금월상이 청진이라는 놈보다 훨씬 잘하는데, 청진이라는 놈이 운으로 오룡이 되는 건가? 이건 아니지!”

“네놈이 금월상한테 돈 걸어서 그런 거잖아!”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그들은 금월상과 초유열의 대진표 앞에서 서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저 멀리서 지켜보는 흰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눈에 띄는 복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중원도 좀 바뀌려나.”

노인은 싸우는 그들을 보며 건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소림의 무인들은 깍듯하게 인사를 했지만, 노인은 받는 둥 마는 둥하면서 설렁설렁 들어갔다.

방 안에는 대진표가 걸려있었다. 허나 깔끔한 대진표와는 달리, 참가자들의 이름이 있는 곳이 수정된 부분이 여실하게 보였다.

“아, 약선님. 오셨습니까.”

진권이 포권을 했다. 노인, 약선 화종도는 역시 받는 둥, 마는 둥하며 대진표를 계속 바라보았다.

“이게 맨 위에 있는 이름이 원래 대진이고, 그 다음이 민원으로 바꾼 것들이지? 어휴, 무당파 이 놈은 대체 몇 번이나 옮긴 거야? 자신 없으면 그냥 나오지를 말던가.”

화종도는 혀를 찼다. 이렇게 옮기고 옮기니까 금월상이 초유열과 다시 붙는 우스운 꼴이 발생한 거다.

“진권아.”

“네.”

“내 민원도 받아주냐?”

화종도의 말에, 진권이 흠칫했다.

*

참가자 대기실에 있는 우리들은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진이 바뀌었다는 얘기였다. 이미 사람들은 자신의 대진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바뀐다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소림의 일처리가 이런 식입니까?”

무당의 청진은 아득바득 소리를 질렀다. 소식을 전달하러 온 사람도 당황한 눈치였다. 당연히 저 사람은 내막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대답할 게 없겠지.

그런데 자신이 생각하기도 갑자기 바뀐게 맞고, 이 사람들은 함부로 할 수 없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자제들이다.

물론 금월상, 나, 팽차월 빼고.

“금월상과 초유열의 재대결은 이미 갈렸으니 의미가 없어서 다시 대진표를 짜셨다고 합니다.”

“어차피 무작위로 짜는 거 아닙니까? 그것보다 더한 공정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청진이 외쳤다. 그 말은 다른 명가의 자제들도 외면했다. 그들 역시 용봉지회의 대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공정이라는 말이 나오니 약간 부끄러운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경멸했지만, 나는 청진을 이해했다. 솔직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금월상과 초유열이 다시 붙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금월상이 분투를 했어도 초유열과 격차가 나는 건 사실이었고, 이미 서열이 결정된 상황에서 다시 붙이는 건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밖에 안 되니까.

그러나 청진이 저렇게 목에 핏대를 올리는 건 다른 얘기다. 대진표가 바뀌어져 자신이 초유열과 상대하게 된 것이다.

“···아니, 난 그렇게 해도 되는데···”

그때 금월상이 말을 끼어들었다. 청진의 뱀 같은 눈이 금월상을 확 노려봤다.

사실 금월상은 정말 그런 의도였을 거다. 얼굴에는 괜한 미안함까지 가진 듯했다. 그러나 청진이 듣기에는 이미 바꿨으니 농락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하찮은 상계놈이 좀 띄워주니까···”

“그만해.”

난 청진의 말을 잘라먹었다. 그의 눈빛이 날 향했다.

청진이 기세를 피어올릴 기미를 보이자, 난 바로 기세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냈다.

“컥!”

순식간에 청진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표정이 하얘졌다. 바로 소림의 사람이 들어와서 중간에 해소를 시켰다. 정확히 말하면 중간에 들어오니 회수를 한 것이지만.

“금 소협, 여기서는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 않소?”

“죄송합니다.”

“···뭐, 상황이 이해가 되니 이번 건 넘어가겠소. 아무튼 청진 소협, 건투를 비오.”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청진을 두고 소림사 사람이 빠져나갔다. 내가 볼 때는 이 때가 기회라고 생각해 빠져나간 것 같다. 문을 닫으면서 내게 고맙다는 눈빛을 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 대기실은 아주 조용해졌다. 청진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멍한 눈빛으로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슬쩍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싶으면 눈을 홱 피했다.

곧 경기가 시작되고, 대기실 밖 비무장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색하구나.”

옆에 앉은 금월상이 아주 조그맣게 말했다. 금월상의 상대는 점창파의 무인으로 바뀌었다. 난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난 근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구나.”

“뭐가요?”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말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뜬금없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세요?”

“같은 사람이 뿜어내도 기운의 형태는 다 다르지 않느냐. 분명 네가 평소에 뿜어대는 기와 전혀 달랐지. 엄청 날카로웠어. 정말 해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랬나요.”

난 그냥 기세를 뿜어내서 제압하려는 것뿐이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제가 화낼 일이 무엇이 있었겠어요?”

“나야 모르지. 갑자기 화가 났나봐.”

금월상이 껄껄 웃었다. 뭔가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얼굴이었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한다. 금월상이라면 물어보는데 거리낌이 없으니 물으려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때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황금세가의 금월상 소협, 점창파의 유성만 소협 나오시오!”

금월상은 여전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려줬다. 금월상이 평소 풍겨내는 원래 묵직하고 담담했는데, 지금은 활기차게 흐르고 있었다. 감정에 따라서 내공이 변할 수도 있구나. 난 그저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도 하나를 배웠다.

그러면 난 궁금해진다.

난 화가 났던 것일까?

*

“···아무리 약선님이라고 해도 이런 부탁을 두 번 받아드리긴 힘듭니다.”

진권이 하소연을 했다. 약선, 화종도와 진권이 늘 비무를 구경하는 자리였다. 사람이 손가락 마디처럼 보일 정도로 작았지만, 진권이나 화종도는 그것을 앞에 나타난 곰처럼 크게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래한 거지. 내 약 세 개 가져갔잖아.”

“그렇게 완전 바꾸실 줄은 몰랐죠. 한 사람 구제하는 방식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초기화를 시키시다니요.”

“그게 불만인 걸 보니까, 너도 앵간히 썩었다.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

진권은 입을 닫았다. 대진표를 바꾸는 조건으로 약선이 만든 환단 세 개를 받았다. 이거면 솔직히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차피 그런 건 사소한 일이고, 소림사의 명예는 그런 것으로 흔들릴 만큼 사상누각이 아니다.

“그렇군요. 근데 이렇게까지 용봉지회에 간섭하실지는 몰랐습니다.”

“나도 원래 구경만 하고 가려고 했어.”

화종도가 말했다. 삼선의 위치란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 전대의 고수들을 제외하면 현재 무림에서 가장 추앙받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무림에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심지어 지금 삼선은 더 절대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선, 칠존, 오룡 같은 별호들은 다음 기수가 나타나면 물려주는 게 정상이지만, 이번 삼선은 삼십 년째 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선불지회 안에서 삼 등안에 들어야 하는 거다.

근데 그런 삼선 중 가장 이런 것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약선이 뛰어든 거다. 약선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인식이 박힌 건, 중원의 일에 관여를 아예 안 하기 때문이었다.

“진권아. 난 너 이해한다.”

화종도가 말했다. 진권이 고개를 숙였다.

한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건 완전한 절대자가 아니다. 그것을 견제하는 장로들도 있고, 구성원들 전체를 책임지고 움직여야했다.

그 상황에서 모두와 등지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유연하게 어떨 때는 맞춰가고, 거래를 하면서 이 역사를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경고하건데, 너무 썩지는 말려무나.”

화종도가 앉아서 뒤에 서있는 진권을 꼬나 올려봤다.

“난 아는 사람한테 쇠붙이 대는 거 싫어하거든.”

“약선님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진권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이번 용봉지회는 좀 부자연스럽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진권은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사람들의 반발 반응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군요.”

“그걸 많은 사람들이 정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화종도와 진권은 고개를 돌려 다시 비무장을 바라봤다. 금월상과 점창파의 무인의 시합이었다. 별로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사실 이쯤 되면, 정확히는 못 맞히더라도 대략 알 수 있으니까. 오룡이 확실한 사람, 어중간한 사람, 떨어지는 사람.

“시작!”

쾅!

“승자, 황금세가 금월상!”

점창파 무인은 바로 손도 못 써보고 져버렸다. 화종도는 다리를 꼬면서 그 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 진지한 눈빛이었다. 진권이 물었다.

“누가 그렇게 보고 싶으신 겁니까?”

“네가 궁금한 사람.”

“전 세 명이나 있습니다.”

화종도는 피식 웃었다. 그래봐야 초유월, 금목환, 선우진일 터다.

“거기서 가장 궁금한 사람은?”

“저야 선우진이죠.”

“넌 그렇겠지.”

“물론 금목환도 궁금하지만, 황금세가는 그래도 중원에 유명한 세가입니다. 뭔가 한 수는 숨겨놨겠지만 그래도 다 숨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 반면에 천주성은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성주는 누구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화종도는 인정했다. 소림의 방장 입장에서는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천주성이라는 집단일 거다. 절강에서 일반 사람에게는 선행을 하고, 들어오는 무인들을 차단하는 요상한 집단. 중원의 조율자로서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약선께서는 금목환이시죠?”

“당연하지.”

“저도 선우진이 아니었으면 그 친구가 제일 궁금했겠죠. 잘은 몰라도 분명히 한 수는 있는 친구입니다.”

“한 수?”

화종도는 반문하면서 껄껄 웃었다. 아마 진권은 폭발을 별 상처 없이 막았다는 것이 그 근거의 전부겠지만, 화종도에게는 다른 근거가 있었다. 그의 검로에 자신이 옛날에 팔았던 천혜침법이 보인 것이다.

“한 수는 아닐걸.”

“네?”

진권이 반문할 때 바로 다음 경기가 나왔다. 오늘은 일정이 바쁘다. 여덟명, 네명, 결승이 끝난다고 끝이 아니다. 물론 결승까지 올라간 두 사람은 승패에 관계없이 확정적으로 용이지만, 그 외의 자리는 여러 가지 교차 검증이 필요했다.

삼 위는 팔 위와, 사 위는 칠 위와, 오 위는 육 위와 붙는다. 물론 승자들은 승자들끼리, 비무를 해서 등수를 정하고, 패자들은 패자들끼리 비무를 해서 등수를 정한다.

“정말 복잡하고 쓰레기 같은 방식이라니까.”

“···전통 아닙니까.”

화종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규칙이 이렇게 복잡해진 건 많은 세가나 문파들이 자신의 입김을 넣어서 된 거다. 자기쪽으로든 어떻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규정이 누더기가 된 거다.

이제 진권과 화종도는 아무 말 없이 비무를 보기 시작했다. 오룡을 최대한 공정하게 뽑아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으니까.

첫 번째로 돌아가는 비무는 시시하게 넘어갔다. 무당의 청진이라는 녀석은 초유열을 보자마자 기가 죽어서 일 합도 제대로 못 나누고 졌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두려고 했던 정화는 하북팽가의 팽상문한테 졌다.

정화가 떨어질 때 진권은 혀를 찼고, 화종도는 낄낄 웃었다.

한 바퀴가 돌고 나서는 재미있는 경기들이 이어졌다. 이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실력이 비등비등한 것이다.

특히 해남파의 양초원과 황금세가 팽차월의 비무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보는 맛이 있었다. 양초원의 승리로 끝나기는 했지만 대단한 경기였다.

그 이후에도 금월상과 남궁홍학의 비무에서는 금월상의 승리로.

선우진과 팽상문의 비무에서는 선우진의 승리로.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은 아주 공교로웠다.

“황금세가의 금목환 소협과 화산파의 초유열 소협은 나오시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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